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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10.12 12:43 수정일 : 2025.10.13 01:46
일제 강점기부터 청춘을 바친 희망의 등대를 회상하며
곽춘만 (전 등대장)
(1) 등대 관련 회고록 2편을 연재하면서
1903년 인천항 항로의 입구에 있는 팔미도등대가 유인등대로 최초로 불을 밝히면서 등대원이라는 직업이 국가공무원으로 자리 잡았다. 일제 강점기는 일본의 군사적 목적도 있어 등대원은 일본인의 고유 직업이었으나 일제 강점기에도 약 20여명의 소수의 인원들이 정규직 등대원으로 근무하기도 하였다.
등대에서는 주로 일본인 등대원들의 업무를 보조하거나 잡일을 하는 용원들을 현지에서 직접 고용하여 업무를 하다가, 일제 강점기 말엽에는 일본인 등대수들이 많이 결원되자 등대원 업무를 도와주는 용원들을 많이 고용하였으며, 이 당시 징용을 피하기 위해서 용원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많았다.
1945년 8·15 광복 이후 일본인 등대원들이 철수하고 등대 용원으로 근무하였던 사람들이 전국 각지 연안 유인 등대 38기(북한 지역 제외)에 등대장 또는 기술 조역으로 근무하면서 일본인들이 철수한 등대를 고유한 기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부단한 노력을 하였다.
이글을 저술한 곽춘만 등대장은 1940년 3월 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사과 인천항로표지관리소에 용원으로 채용되어 1940년 5월부터 1945년 9월까지 무인도인 격열비도등대의 용원으로 근무를 시작하여 1977년 소청도등대장으로 퇴임시 까지 37년간을 등대에서 근무하였다.
곽춘만등대장은 일제강점기에서의 등대 근무와 일본 패망 이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전 까지의 혼란기와 6.25전쟁 시 UN군의 인천상륙 작전에 등대의 지원 등 대한민국의 격변의 시기를 전부 겪고, 이를 생생하게 기록으로 남긴 분으로, 이 기록은 당시의 시대상을 가장 잘 전달한 역사적인 자료로서 이용 및 평가 받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본 연재를 통해 많은 분들이 당시 등대에서 근무하신 분들의 노고를 생각하는 계기가 되기를 바라면서 연재를 시작하고자 한다.
등대 역사 연구가 석영국, 김민철
곽춘만 등대장의 약력
1917년 충북 청원 출생
1940년 3월 조선총독부 체신국 해사과 인천항로표지관리소 용원 입사
1940년 5월 ∼ 1945년 9월 격열비도 등대 용원
1945년 9월 ∼ 1948년 3월 선미도 등대 등대장
1948년 3월 ∼ 1949년 4월 격열비도 등대 등대장
1949년 4월 ∼ 1957년 3월 부도 등대 등대장
1957년 3월 ∼ 1958년 10월 팔미도 등대 등대장
1958년 11월 ∼ 1959년 11월 격열비도 등대 등대장
1959년 11월 ∼ 1960년 10월 연평도 등대 등대장
1961년 1월 ∼ 1963년 5월 선미도 등대장
1963년 5월 ∼ 1965년 8월 팔미도 등대 등대장
1965년 8월 ∼ 1966년 4월 연평도 등대 등대장
1966년 4월 ∼ 1968년 1월 부도 등대 등대장
1968년 1월 ∼ 1971년 1월 선미도 등대 등대장
1971년 3월 ∼ 1975년 1월 팔미도 등대 등대장
1975년 1월 ∼ 1977년 4월 소청도 등대 등대장
1977년 6월 정년퇴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