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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광복80년에 보는 일본이 기록한 등대역사>5. 5. 일본의 등대 설치 요구와 등대 설치 부서 결정

작성일 : 2025.10.12 11:59

 

 

5. 일본의 등대 설치 요구와 등대 설치 부서 결정

 

김민철(공학박사, 항로표지 전공) / 석영국(등대 역사가)

 

일본은 1897년 조선 해안 항로표지 조사 측량을 한 이후 1895. 4. 15. 문서에서 측량이 끝났다고 하여 바로 그것을 빌미로 삼아 등대 건설을 강청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을 것이라는 약속과 달리 측량이 끝나고 이듬해 조사 측량한 결과를 가지고 설계도면과 예산서를 작성한 이후 1898. 9. 1. 일본 외무대신이 재한 변리공사에게 한국정부에 등대와 초표를 속히 설치할 수 있도록 회담을 개최하도록 다음과 같이 지시하였다.

 

·양국 간에 선박 왕래가 날로 빈번해지고 있으나 韓國에는 가장 긴요하고 중요한 곳에 등대와 초표(礁標)가 설치되지 않아서 우리나라 항해업자들이 적지 않게 불편을 겪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정이니 등대와 초표의 설치는 양국간의 무역과 교통을 발달시키는 데에 피차가 다같이 편익을 향유하게 될 것으로 이미 18839월에 양국 정부에서 비준한 조선국재유일본인민통상장정 제31관에서,한국 정부는 장차 통상 각 항구 내를 수리하고 아울러 등대와 초표를 설치해야 한다.”고 규정한 바도 있으니, 이번 기회에 한국 정부에 대해 항해상 가장 요긴하고 중요한 곳에 등대와 초표를 속히 설치하도록 교섭하는 회담을 열고, 그 위에 브라운씨에게도 충분한 권고를 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우리 제국 정부에서도 기술상 상당한 보조를 하게 될 것이니, 그렇게 아시고 본건을 교섭하는 데에 적절한 조처가 있기를 바라며 이 점 훈시합니다.라고 기밀문 제35호로 송신하였다.

 

일본제국정부로부터 문서를 받은 변리공사(辦理公使) 가토마쓰오(加藤增雄)1898. 9. 17. 대한제국의 외부대신서리에게 일본의 요청사항 보다 더 강력하게 등대를 설치하지 않은 한국정부에 유감 표시와 함께 등대와 초표를 시급히 착수하라고 강요하는듯한 문서를 전달하였다.

 

서간으로 말씀드립니다. 귀국과 우리나라 양국 간 선박의 왕래는 날이 갈수록 빈번해지고 있으나 귀국 연해의 필수적인 지역에 등대와 초표(礁標)의 설치가없으므로 우리 항해업자의 불편이 작지 않습니다. 생각건대 그 설치에 대해서는 이미 1883 9월 양국이 체결한 통상장정(通商章程) 31관에 조선정부가 통상 각 항내를 수리하고 등대와 초표를 설치할 것이 규정되어 있습니다. 그런데지금 그 실행을 볼수 없으니 양국 간 무역과 교통 발달을 위하여 매우 유감으로 생각합니다. 따라서 귀 정부에서는 차제에 신속히 이 시설들을 설치하시도록 조치하시기 바라옵고, 그것을 설치하려고 하는데 만약 기술상 필요가 있을 경우에는 우리 정부에서 상당한 조력을 할 생각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상 양해하시고 시급히 착수하시기를 희망합니다. 이점 조회 드립니다.라고 등대 설치를 촉구하였다.

 

일본 제국정부로부터의 계속적인 압력으로 인해 조선 정부에서는 19001017일 공식적으로 대한제국 외부대신 박제순(朴齊純)이 일본 특명전권공사 하야시콘스케(林權助)에게 등대 초표 기공 약속을 다음과 같이 문서로 회신하였다.

 

이달 4일 접수된 귀 조회에, “韓國에 있는 日本 인민 貿易規則 31관에 한국 정부는 앞으로 통상 각 항구 내를 수리하고, 燈臺 礁標를 설치하여 충분히 유지할 것이며, 이에 소용되는 비용은 항해하여 각 통상 항구에 도착하는 일본 선박의 톤수를 따져 매 1톤마다 125의 돈을 납부하게 하여 이로써 충당한다.’고 분명히 실려 있습니다.

 

살피건대 이 조약이 실시된 이래로 이미 여러 해가 지났으며 그 동안 우리 상선들은 그대로 톤수에 맞는 세금을 납부하였습니다. 게다가 왕래하는 선박의 숫자는 해마다 증가하여 지금까지 톤세로 징수된 액수가 거액에 이를 것입니다. 그런데도 귀국 정부에서는 아직껏 각 항구 안을 수리하지 않았으며, 등대의 건설도 네댓 군데에 초표를 설치했을 뿐입니다. 때문에 해운업자는 근래 점점 번창하는데 항로는 아무런 보호 설비가 없어 늘 위험을 느껴야 하는 탄식이 있으므로 본 공사는 매우 이상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이미 유지비로 많은 액수의 톤세를 징수하였는데도 아직껏 항구를 유지할 만한 시설을 건설하지 않았으니, 이는 사리에 어긋날 뿐만 아니라 조약에도 위반되는 것입니다. 사실에 있어서도 항해자의 보호에 필요하다면 각 항구와 다른 연해의 항로로 위험할 염려가 있는 곳에는 마땅히 등대와 초표를 설치하여 항해하기에 적당한 곳인지를 알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라고 하였습니다.

 

살피건대 각 통상 항구 내에 등대를 설치하고 浮樁을 건립하는 것은 조약에 관계되는 것으로 마땅히 시행해야 할 일입니다. 그동안 상선들이 납부한 톤세는 海關에 비축되어 있으니 이를 가져다 처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또한 일시적으로 미처 겨를이 없어서 못한 항로의 위험한 곳에 대한 표시는 보내신 공문대로 總稅務司에게 명하여 각별히 헤아려 조기에 기공하도록 하겠습니다. 이에 문서로 회답하니 귀 공사께서는 번거롭지만 살피시어 잘 조처해 주시기 바랍니다.

 

일본이 조선에 등대 설치요구를 한 근거는 1883. 7. 일본이 강제로 조선과 체결한 일본인민무역규칙31조에 한국정부는 종래 통상 각항을 수리하고 등대초표를 설치한다는 조항을 근거로 요구하였으며, 청국의 권유에 의해 구미 5(영국, 러시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및 미국 등과의 통상조약을 체결하면서 아들인 선세는 모두 등대(燈臺), 부표(浮標), 감시대 등을 세우며 한국의 각 통상 항구의 입구와 연해 각 처에 정박장을 마련하기 위하여 바닥을 파내고 정리하는 각종 공사비로 쓴다.라는 내용을 조약에 포함하여 체결하였다.

 

일본에 등대 설치를 약속한 이후 조선 정부에서는 내부적으로 검토하여 등대의 설치 기공은 관세 수입을 사용하여야 하니 대한제국 외부대신서리인 최영하(崔榮夏)가 총세무사가 담당하도록 정리하고 1901. 5. 2. 에 총해관(總海關)에 다음과 같이 문서를 송부하였다

 

삼가 아룁니다. 광무 29월 이래로 각 항구 안에 등대와 초표(礁標, 암초표지)를 설치하는 일에 대하여, 러시아·일본 공사들의 교섭에 따라 여러 차례 문서를 주고받은 바가 있습니다. 현재 일본 공사로부터 다음과 같은 문서가 접수되었습니다.

 

작년 104일자 제104호 문서에서, “항해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 연해(沿海)의 필요한 지점에 등대와 암초 표지 등을 설치하고자 한다는 취지로 이미 전문(照會)을 보내왔고, 같은 달 17일에는 귀측의 제78호 회답이 접수되었으며, 그 내용은 이는 조약상 시행해야 할 사안이므로, 이미 총세무사에게 지시하여 속히 공사를 시작하게 하였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본 공사는 그 회답에 만족을 표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본 공사의 판단으로는, 이러한 시설을 설치하여 항해자들이 안전을 기할 수 있는 수준에 이르기 위해서는, 대략 100만 원 안팎의 자금이 반드시 필요합니다. 이 자금은 각 항구의 해관 수입으로 충당하는 것이 가장 적절하며, 사업을 계속적으로 추진하는 데에도 실제적으로 편리합니다. 불편하시겠지만 이 방법을 채택하여 실행해 주시고, 신속히 공사를 착공하는 것이 핵심 취지이오니 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해관에서 징수하는 선세(船鈔)는 본래 항로 시설과 선박 편의를 위한 여러 선한 사업에 사용하도록 되어 있으며, 비록 공사비가 크고 비용이 많이 들더라도 부득이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다시 한번 이 문서를 귀 총세무사에게 보내니, 살펴 신속히 처리하여 조약의 취지에 부합하고 상무에도 편리하게 하시기 바랍니다.

 

이로서 대한제국의 등대 설치 부서는 총해관이 담당하고, 총 책임자는 총세무사인 존 맥레비 브라운(John McLeavy Brown)이 등대 설치 권한을 부여받았다.

 

비슷한 시기인 1901. 9. 10. 에 러시아 공사인 파블로프 (А.. Павлов)도 외부대신 박제순에게 톤세를 사용하여 등대를 설치해달라며 다음과 같이 촉구 하는 문서를 보낸바 있다.

 

살피건대,“대한해관(海關)에서는 각국 선박에 징수하는 톤세[船鈔] 금액이 있으므로, 귀 정부에서는 조약에 준하여 대한해변에 등대, 계험표(戒險表) 등을 설립하여 조속히 계약의 뜻을 수행하십시오.”라고 하였고 이윽고 러시아국 수사()의 의견에 따라 어느어느 곳에다가 신속히 등대와 표 등을 설립하라고 우리 달력으로 작년 104일에 보냈던 조회 제44호에서 자세히 알렸습니다.

 

같은 해 109일의 귀 조복(照覆) 35호에서 이르기를, “등대를 설치하고 부춘(浮椿)을 세우는 것은 조약에 의거하여 응당 행해야 할 사안입니다. 근래에 상선(商船)이 납부한 톤세가 해관에 저치되어 있으므로 이를 가져다 쓰게할 것이니, 어찌 일시적인 바쁨으로 항로에 방해가 되게 하겠습니까. 이에 귀 조회에 의거하여 총세무사(總兌務司)에게 신칙하여 등탑(燈塔), 지표(指表)를 신속히 기공하여 조약의 뜻을 밝히게끔 하였습니다.” 라는 내용을 받은 것이 서류에 있습니다.

 

지금 벌써 1개년이나 경과되었는데도 해당 사건은 착수를 보지 못하였을 뿐만 아니라 여태껏 조처가 없습니다. 본 공사가 아는 바이기에 거듭 문구를 갖추어 조회를 보내니 귀 대신께서는 이 사안의 긴급함을 잘 살피시어 조속히 기공하여 약속했던 취지에 따라주시고 또한 실시할 방책을 소상히 알려주십시오.라는 내용의 문서를 발송한 것을 보니, 그간 러시아에서도 수차에 걸쳐 등대 건설을 요청한 바가 있었다는 것을 알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