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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시인들

<부산의 시인들> 1. 노석 박영환

작성일 : 2025.10.07 03:33

부산의 시인

 

奴石 박영환

 

평생 일면식도 없던 사람의 상주 노릇, 좀 희한한 일이었다. 1995년 아나키스트 박노석 시인이 타계했을 때다. 당시 문협 김상훈 회장은 집행부와 상의해 부산문인협회장으로 장례를 치른다고 의견을 모았다. 그런데 문제는 문상객을 맞을 상주가 없는 거였다. 외동딸은 미국에 거주하고 있어 당시로는 어려운 항공 사정 때문에 장례 날까지 올 수가 없었고, 연세가 많은 사모님은 거동이 불편해 거처에만 계실 수 있었다. 할 수 없이 회장의 지시로 문협 사무국장이던 필자가 직장까지 휴가 내고 사흘을 꼬박 빈소를 지킬 수밖에 없었다.

고인의 빈소에는 노석 시인의 타계 소식을 들은 경향 각지의 아나키즘으로 활동하던 학자들과 문인들이 다녀가기도 했는데 특히 구상 시인과 경북대 하기락 교수는 거의 사흘을 필자와 함께 빈소를 지켰다. 얼떨결에 맡은 상주 자리였지만 장례를 치른 후에는 어떤 보람이 느껴지기도 했다. 내 조그만 희생으로 큰 시인을 보내드리는데 일조했다는 안도감과 문단 초년병으로는 과분하게 이름난 문인들을 많이 접할 수 있었다는 뿌듯함이었다. 장례가 끝난 며칠 후에는 정말 수고했다는 편지와 저서 5권을 넣은 구상 시인의 소포를 받고 그 보람이 더 배가 되는 것 같았다.

박노석 시인(1913-1995)은 경남 함양군 안의면 출신으로 일제말 조선일보 함양지국장을 지내다 해방기 부산으로 내려와 자유민보 창간멤버로 논설위원을 지냈다. 이후로 진주와 부산 등지에서 언론과 문단 활동을 하며 본인의 소신이었던 아나키즘 운동에 헌신한다. 하기락 교수 등과의 교분도 이 지역에서는 드물게 아나키스트로서 활동 때문이었다. 김준오 교수는 그의 아나키스트로서의 면모를 이렇게 설명한다.

“50년대부터 시작된 그의 시 일부에 무정부주의적인 요소인 투쟁과 거부의 요소가 간혹 나타나긴 하지만 60년대에 들어서면서 전통 서정시를 통해 마음의 평화를 추구함으로써 (무정부주의의 본질인) 자유와 평등의 세계가 시의 세계임을 드러내고 있다. 이는 시적 정신의 추구가 사상적 추구의 궁극과 잘 결합되는 한 양상으로 특기할 만하다.”

시인은 1978년부터 작고할 때까지 갈숲동인으로 활동하면서 김상훈, 조순 등 여러 부산의 시인들과 어울리기도 했다. 특히 83년에는 白雲山 뻐꾸기(태화출판사)를 발간했는데 이 시 제목이 그의 별명이 되기도 했다. 양왕용 교수는 시인은 작고할 때까지 기장군 백운면 백운공원묘지 옆 2평 남직한 스레이트집을 백운산장이라 이름하며 부인 이경옥 여사와 더불어 외동딸로 미국에서 살고 있는 박은아 여사와 그 일가족을 그리워하며 고고로운 시혼만 벗삼아 지냈다.”고 회상한다.

그 스레이트집은 묘지를 찾는 이들에게 꽃과 간단한 제물을 파는 곳인데 지금도 박노석 시인의 조카 되는 분이 그곳에 거주하면서 그 일을 하고 있다. 부산 최초의 공원묘지인 이 묘지는 오래전부터 더 이상 자리가 없어 분양하지는 않지만 몇 년 전 김상훈 회장이 작고하자 우여곡절 끝에 자리를 하나 만들어 거기에 모실 수 있었다. 우연인지 김상훈 회장 장례와 묘자리 정하는 것도 필자가 거의 관여를 했는데 필자와 두 분 관계를 생각해 보면 정말 아이러니라 아니 할 수 없다.

<박홍배/ 문학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