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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수프/ 재미로 보는 주역> 47. 알록달록 여우 구슬, 천문지리(天文地理)

작성일 : 2023.04.02 09:10

47. 알록달록 여우 구슬, 천문지리(天文地理)

/양선규

 

옛글을 읽다 보면 역사에 이름이 남은 사람들의 인물평 같은 곳에 천문지리(天文地理)’라는 말이 심심찮게 등장합니다. “천문지리에 능통했다.”는 식으로 한 인물의 능력과 자질을 뭉뚱그려서 고평(高評)하는 것이 하나의 패턴을 이루고 있습니다. 그동안 시시때때로 그 말을 접해오면서 그 구체적인 의미에 대해서는 별로 생각을 해 보지 못했습니다. 따로 배운 적도 없고, 그쪽으로(천문학, 지리학) 별 관심도 없어서 큰 궁금증이 일지 않았습니다. 그저 두루두루 많이 아는 것을 뜻하겠거니 생각해 왔습니다. 어디서 들었는지도 모르겠지만, 거기다 인사(人事)’까지 포함해서 천문, 지리, 인사에 통달하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을 것이라는 말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를테면 훈민정음의 창제원리로 널리 알려진 천지인 3(三才)라는 개념처럼, 견문과 식견을 두루 갖춘 사람을 수식하는 말이 바로 천문과 지리와 인사에 두루 통한다.”일 것이라고 막연하게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런 막연한 인생살이의 한 단면을 보여주는 것이 이번 황순원 소설 산골아이와 관련된 저의 잘못된 기억입니다. 그 소설의 내용과 관련해서 저의 기억이 보여준 사단은 다음과 같습니다. 산골 아이는 황순원이 서른다섯 살이 되던 해인 1949, 민성이라는 잡지에 발표한 작품입니다. 제가 쓴 황순원 소설에 관한 논문에서는 이런 유의 옛이야기소설들은 거의 다루어지지 않았습니다. 분석 대상으로 오르지 않았습니다. 작가의 창작심리, 혹은 텍스트의 무의식에 관심이 있었던 저에게는 이런 고리타분한 옛이야기들의 반복재생은 아예 관심 밖이었습니다. 지금 생각해 보니 그들을 너무 박대한 것 같습니다. 옛이야기의 전통을 잇는 이 구수한 입담들은 황순원 소설의 이런저런 에로티즘(비상식적이고 예외적인)이 너무 앞으로 튀어나가지 않도록 뒤에서 잡아주는 일종의 균형추가 되고 있는 소설들이었습니다. 성숙된 자기를 지향하는 작가의 문학적 상상은 그런 식의 자기 조절 장치를 애용합니다. 한쪽으로 쏠리지 않습니다. 상반된 소재들이 얼핏 보면 지그재그를 그리지만 자세히 보면 한 곳을 향해 원운동을 하고 있습니다. 굳이 말하자면 그렇게 내 안에서 완전한 형상을 찾습니다. 일종의 만다라를 그려나갑니다.

그때는 미처 황순원 소설의 그런 무늬와 이치를 알지 못했습니다. 아직 많이 어렸던 탓입니다. 여우와 호랑이가 등장하는 산골아이는 할머니가 손자에게 들려주는 옛이야기입니다. 가난한 산골에 사는 아이는 도토리를 먹으며 할머니의 옛이야기를 듣습니다. 할머니는 여우고개 얘기부터 꺼냅니다.

 

어느 마을의 총각아이가 고개를 넘어서 글방엘 다녔습니다. 총기 있고 글 잘하는 총각아이였습니다. 하루는 고개를 넘는 데 꽃 같이 예쁜 색시가 나타났습니다. 넋을 잃고 있는 총각아이에게 색시는 육체의 에로티즘을 가르칩니다. 색시는 총각아이의 귀를 잡고 입을 맞추고는 제 입에 물었던 알록달록한 고운 구슬을 총각아이의 입에다 넣어줍니다. 그리고는 또 자기 입으로 가져갑니다. 그러기를 열두 번 하고 사라집니다. 날마다 그 짓을 반복했습니다. 그런 일이 날마다 되풀이되니 아이가 무사할 리가 없었습니다. 날로 몸이 수척해지고 공부에 전혀 진척이 없었습니다. 괴이히 여긴 훈장이 어디 몸이 아프냐고 물었지만 총각아이는 아무 일 없다고 잡아뗐습니다. 보다 못한 글방 훈장이 총각아이의 뒤를 밟았습니다. 문제의 그 장면을 목격한 훈장은 다음날 총각아이에게 색시의 구슬을 삼켜버리지 않으면 죽을 것이라고 단단히 일렀습니다. 몇 번의 실패를 겪고 총각아이는 드디어 구슬을 삼킵니다. 그러자 색시가 커다란 구미호가 되어 죽어 넘어졌습니다. 총각아이가 넘나들던 고개가 여우고개란 이름을 갖게 된 것이 바로 그런 사연 때문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 이야기를 다 듣고 난 아이는 입에 문 도토리가 구슬이나 되는 것처럼 뱉어냅니다. [황순원, 산골아이, 줄거리 요약]

 

저는 이 이야기 속의 구슬이야기를 여태 다르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구슬을 문 채 하늘을 보고, 또 땅을 본 뒤, 마지막으로 색시(사람)를 향해 뱉어라.”라고 훈장이 당부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총각아이는 하늘과 땅을 보는 일까지는 성공했지만 끝내 두려움을 극복하지 못하고 색시의 얼굴을 향해 구슬을 내뱉지 못한 채 그냥 구슬을 삼키고 말았습니다. 그 바람에 그는 천문과 지리에는 능통할 수 있었지만 인사(人事)에는 통달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 결핍이 결국 훗날의 화를 부르고 맙니다. 그렇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마 또 다른 여우 구슬이야기와 혼선을 빚은 모양입니다. 두 이야기를 접목해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아니면 제가 멋대로 지어낸 것일 수도 있고요. 오늘 주역을 읽다가 천문지리가 나오기에 그와 관련해 산골아이의 줄거리를 확인하면서 그 부분이 저의 기억의 왜곡이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아마 예쁜 색시가 물려주는 그 알록달록 화려하고 달콤한 여우 구슬하나도 없이, 그저 막연하게, 평생을 꿋꿋하게 버틴 시골 필부(匹夫)먹은 마음이 그렇게 순박한 옛날이야기에까지 마수를 뻗쳤던 것 같습니다.

 

우러러서 하늘의 무늬를 보고 구부려서 땅의 이치를 살피는지라, 이러므로 보이지 않는 것과 보이는 것의 연고를 알며, 처음을 미루어 살피고 끝을 돌이켜 보느니라. 그러므로 죽고 사는 원리를 아느니라. (仰以觀於天文 俯以察於地理 是故 知幽明之故 原始反終 故 知死生之說) [왕필(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498]

 

주역 계사전에서 만난 천문지리하늘의 무늬와 땅의 이치였습니다. 하늘의 무늬는 상()이고 땅의 이치는 형()이랍니다. 배움의 깊이가 없는 저로서는 그 깊은 의미를 알 길이 없습니다. 하나는 추상화고 하나는 구상화인가? 고작 생각하는 게 그 정도입니다. 하나는 보고() 다른 하나는 살펴야() 합니다.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것들의 연고와 시작과 끝의 기승전결을 알려면 무늬와 이치를 동시에 보고 살필수 있어야 한다는 뜻인데 그 구체적인 방법을 논하는 일은 제 소관 밖의 일입니다. 다만, 천과 지가 다른 것만큼, 그것들을 보고 살피는 방법도 각각 다를 것이라는 추측만 해볼 뿐입니다. 그리고 땅에 붙어살면서 땅에 속하는 인간이 하늘의 무늬를 보고 땅의 이치를 살핀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 일일까라는 회의도 짙게 듭니다. 하늘의 무늬는 내 것이 아님으로 해서 알아보기 어렵고 땅의 이치는 내가 개입된 것이므로 해서, 그것 밖에서 살필 위치를 따로 잡을 길이 없으므로 해서, 처음부터 살필 수 없는 일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렇게 생각하니 인간이 무엇을 보고 살피는 것 자체가 난망인지도 모르겠다는 염이 듭니다. 그런데도 거기다가 말도 되지 않는 것을 하나 더 보태서 천문, 지리, 인사가 어떻고 3재가 어떻다고 떠드는 것은 그야말로 바보들의 기하학이 아닐 수 없겠습니다. 오직 하나, 자기 하나만 유심히 들여다보는 일에라도 전심하면 될 일일 터인데 그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지 모르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생각으로 이 나이 들도록 꾸역꾸역 살아온 것인지 모르겠습니다. 저에게도 글방 총각아이 시절이 있었기는 한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알록달록 그 흔한 여우 구슬하나 삼키지 못하고 살아온 백면서생 처지가 불쌍하고 또 불쌍할 뿐입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