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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광복 80주년에 보는 일본이 기록한 등대 역사> 3. 이시바시의 조선 해안 항로표지 조사/김민철

작성일 : 2025.09.23 11:55 수정일 : 2025.09.23 01:00

 

 

3. 이시바시의 조선 해안 항로표지 조사

김민철(공학박사, 항로표지 전공) / 석영국(등대 역사가)

 

등대국 제1년보에서 기록된 바와 같이 이시바시 하야히코(石橋絢彦)2명의 보조원과 함께 메이지마루(明治丸)를 이용하여 조선 연안에서 항로표지를 건설해야 할 위치 및 설계 개요 등을 조사한 내용은 1897926일 일본국 체신대신이 해군대신에게 조선국 연안 항로 측량 실시건에 대하여 보고한 문서에 의하면 조선 연안에서 측량 작업을 다음과 같이 실시하였다.

 

1897. 6. 19

요코하마 출항, 30일 부산 부근에 도착 예정 항해

1897. 6. 30

오기지마(男木島)에 정박

71

오기지마 출발, 같은 날 모지(門司) 도착

73

헤사키(部崎) 등대를 시찰한 후 모지 도착

74

석탄 적재

76

부산 도착 영사 가토 씨 면회

77

조선 감리서에서 등대 위치 측량에 편리를 제공해달라는 지방관에게 보내는 문서를 받아서 부산에서 출항

78

구침암(九針岩)에 도착하여 등반하고, 수덕도(水徳嶋)를 측량하고 소안도(所安嶋)에 정박.

79

교맥도(蕎麥島, 현재 매물도) 측량

710

인천 도착. 영사 야마자 다케시와 협의하고, 이어서 농상공부 상공국장 송헌빈과 참서관 김낙준과 만나서, 11, 12일 함께 체재.

713

, 김 양씨가 본선에 승선하여 인천항을 출발하여 팔미도, 북장자서, 남장자서에서 측량 작업을 하고 부도에 정박

714

백암도와 피도를 측량 후 만조에 암초를 측량 후 승황도 정박

715

강풍과 짙은 안개로 변산만에 정박

716

위도(蔚嶋)에 정박

717

안암(鞍岩, 백팔암) 측량 후 야간 항해

 

 

 

718

소청도(小青島) 측량 후 장산곶(長山串) 백운동에서 정박

719

소유독각(小乳纛角) 측량 후 냉정기(冷井崎) 정박

720

냉정기 해상 기상 맑음, 흑암(黒岩岬), 자매도(姊妹嶋) 측량 후 석도(席島) 정박

721

자매도 측량, 석도 상륙, 진남포(鎭南浦) 정박 7. 22까지

723

기진포(棋津浦)측량, 진남포에서 정박

724

가리도(旭里島)측량, 어혜동 정박

725

북도 (정을도) 측량, 야간 운항

726

동백도 측량, 몽도(夢嶋)에서 정박

727

덕적군도에 도착하여 측량 후 농무가 심하여 인천으로가서 정박

728

인천에서 송국장과 함께 육로로 경성에 가서 29일까지 공사관에 머물면서 농상공부 대신 김가진(金嘉鎭)과 면회하고, 이 날부터 큰비로 도로가 범람되어 31일까지 경성에 체제

81

경성을 출발하여 용산에서 기선을 타고 인천으로 귀환

82

월미도 측량 후 3일까지 인천에서 체재

84

흑암 남측의 3척 정도의 암초를 측량하고 짙은 안개가 끼어 덕적군도에 정박.

85

덕적 군도에서 측량 후 짙은 안개로 장안서 부근으로 이동하여 투묘

86

장안서 측량, 하사리섬(ハサリ)측량 후 가의도(賈誼島) 정박

87

옹도 및 어청도 측량, 야간 운항

88

흑산도에 상륙 후 가사도 측량하고 조도(イーグル)에 정박.

89

사자도(獅子嶼)를 측량하고, 그 수로의 북동쪽 안도(鞍嶼)도 측량. 진도 남측 서동에 정박,10일에도 폭풍으로 인해 같은 곳에 정박.

811

맹골군도의 서거차도를 측량하고, 보을막도(甫乙幕嶼) 정박

812

하추자도에 상륙, 다시 남쪽 무명의 작은 섬을 측량하고, 소안도(所安嶼)에 정박.

813

당사도(항문도, 자지도) 측량, 거문도(巨文島)에 정박.

814

거문도 삼각봉 등을 측량한 후, 나가사키(長崎)로 출항.

815

1881년 설치된 카게노오시마(尾島)등대 견학을 하고 나가사키에서 석탄과 물자를 적재하고 17일 출항

818

국도 측량, 통영 정박.

819

통영 출발 강풍으로 처음보는 섬(アタラニ )에 상륙하여 조사한 후 부산에 들어가 정박

820

부산항 제뢰(鵜瀨)에서 일직선 상으로 보이는 도등 위치를 측량.

821

절영도에서 남측에 솟아 있는 암반인 태종대를 측량

822

동래감사 지석영과 면회

823

대암갑(大岩岬) 측량 후 강풍으로 울산항 투묘, 25일까지 바람과 비로 같은 위치에 정박

826

용도(用嶼) 및 대왕암(대암갑,大岩岬) 측량, 영일만 정박

827

동외곳에 상륙하여 부근을 측량하고 영일만에 정박

828

영일만에서 원산을 향해 출발 중 전일에 본선 승조원 야소단젠(八十田善)이 뇌막염으로 병사

829

원산에 도착, 30일까지 우천으로 체재

831

갈마단 측량 후 귀선, 조선관리 송헌빈 육로로 경성으로 귀경,오후에 여도(麗島) 측량 후 야간 운항

91

갈마진과 용두단 측량, 여기서 원산까지 약 140, 포염(浦塩)까지 약 200리 이르러 야간항해를 계속함.

92

수원단 측량 후 장전동 묘박지로 들어가 등대 위치인 치비봉(雉飛峰) 측량하고 야간 운항

93

죽변단(竹邊湍) 측량 후 야간 항해

94

부산에 도착. 조선 관리 김낙준 씨 하선함.

95

부산에서 출발, 6일 시모노세키(馬關)에 도착

910

요코하마(横濱)로 귀항.

 

 

 

동 보고서를 보면 일본의 조선 연안 등대설치예정지 측량은 1897. 6. 19일 요코하마에서 출항하여 9. 10일 요코하마로 귀항한 때까지 총 74일간이 거렷으며, 기간 중 1회 일존의 나가사키에서 석탄과 물자를 중간 보급 받았으며, 항해 중 승조원 1명이 사망하였다.

 

일본과 조선이 미리 협의 한 대로 조사 측량 작업 기간 중 도움을 주기 위하여 7. 10. 인천에서 조선의 농상공부의 국장 1인과 참서관 1인이 승선하여 부산에서 일본으로 출항하기 전까지 조사 측량에 도움을 주었으며, 작업 기간 중에 이시바시는 농상공부 대신 김가진과 동래감사 지석영 등을 면회 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조선 연안의 등대 측량은 1895415일 일본공사가 문서로 요청한 조선국 서남 양안(西南 兩岸)연안의 등대 예정지를 일본 정부에서 측량하겠다는 약속과 달리 조선 전 연안을 측량한 점과 등대 설치 예정지를 측량한다면서 실제로 섬에 상륙하여 설치 예정지를 조사한 것 보다는 암초들이 모여있는 군도 등과 항행 위험 해역등 을 자세히 측량한 점을 볼 때는 일본의 해군 함정들이 조선 연안을 자유롭게 항행 하기 위한 연안 수로조사 적 성격이 강한 것으로 보여진다.

 

또한, 이 보고서에도 분명히 부산의 전·후도등이 설치되어 있어, 1897. 8. 20에 도등의 위치를 측량한 내용은 우리나라 최초의 등대는 1887. 4. 9에 고시된 부산항 도등이 최초 등대임을 간접적으로 다시 한번 분명하게 확인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