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작성일 : 2025.09.15 08:17
광복 80주년에 보는 일본이 기록한 등대년보에 의한 등대 역사에 대한 고찰
김민철(공학박사, 항로표지 전공) / 석영국(등대 역사가)
2. 외교 문서 등으로 본 조선의 등대 설치 에정지 조사 측량 배경
4) 일본과 조선의 외교문서 등으로 본 등대 측량 배경
1895년 3월 16일 일본의 외무대신이 조선에 있는 특명전권공사에게 전달한 문서에 의하면 ” 朝鮮 연안에는 종래 燈臺의 건설이 거의 없었고 釜⼭에 1개소가 있으나 그 유지 관리가 불충분하고 겨우 點⽕나 할 정도에 지나지 않은형편이어서 조선 연안을 항해하는 데 큰 위협을 느끼고 있습니다. 그러나 잘 아시는 바와 같이 조선정부에서는 이미 외래의 선박에 대하여 噸稅를 부과하고 있으니 이에 따른 당연한 책임으로서 등대를 건설하여 이를 유지 관리해야 할 것이나 이 나라 현재의 형편으로는 도저히 이의 실행을 바랄수가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므로 차제에 우리나라에서 조선정부를 위해 그 연안을 측량하고 등대를 건설할 장소를 지정하여 동 정부에 편의를 제공하기로 결정하였으며 당장 조선 西岸 및 南岸에서 등대를 건설할 예정지를 측량하기 위해 금 1만4,800여원을 군사비에서 지출토록 결재가 났다고 海軍⼤⾂으로부터 통지가 있었으니 본건에 대해 조선정부와 적절히 의논을 시작해주시기 바랍니다.
단위 측량비 지출의 건은 前述한 바와 같이 조선국 재정상의 곤란을 참작하여 그들을 도와주려는 데 불과한 것입니다. 따라서 측량이 완성되면 신속히 등대 건설 계획이 진행되기 바람은 물론입니다만, 이 점에서도 조선 정부가 다시 자금이 부족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그때에 가서 혹 임기응변의 편법도 생길 것이니 어쨌든 건설할 장소를 미리 정하는 것이 필요하므로 우선 沿海 측량의 건을 협정해주시기 바라며, 동시에 등대 건설이 진행되게 되면 우리나라 사람을 고용하여 종사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또 유지관리에 있어서도 현재와 같이 점화도 제대로 못한대서야 위험을 면치 못할 것이니 이 일에도 역시 우리나라 사람을 고용하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이상 유념하시고 미리 협정을 맺어 주시기 바라며 이에 말씀드립니다.“라고 문서를 보냈습니다.
즉, 위 문서를 보면, 한국 연안의 등대의 측량 및 조사는 일본이 군사적 목적에서 해군의 군사비 예산으로 실행되었으며, 등대의 건설과 유지관리를 위한 인력도 일본사람을 고용하도록 계획하였음을 알 수 있다.
당시 예산액 1만4,800여원은 1895년 1월 12일 조선 측량에 관한 전시 예비비 지출 관련 내부 결재 문서에서도 확인 할 수 있으며, 측정선박 명치환의 운영 예산은 14,875앤 44전이며, 이시바시는 지도료 60엔, 일당 2엔 30전, 식대 1엔 20전이며, 2명의 보조원(야마자키와 야마나카)은 지도료 30엔, 일당 1원 30전, 식대 90전이며, 명치환의 선장과 1등기관수에게는 3엔, 사관에게는 1엔 50전, 水夫와 火夫에게는 30전을 회료급(賄料給)이라는 명목으로 지급 계획임을 확인하였다.
이 일본 외교문서에서 조선에 1895년 이전에 부산에 등화가 있는 등대가 최소 1개소가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으며, 문서에 명기된 1개의 등대가 아니고 이미 1887년 4월 9일 항해고시에 의하면 도등 1조와 초량항 방파제에 설치된 등대 등 2개소의 등대에 등화가 설치되어 운영된 사항을 1개 등대만이 운영된 것으로 잘못 알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참고로, 1890년대의 1엔의 가치는 당시의 금 시세와 현재 금 시세로 변환하여 계산해 보면 대략 1앤은 25,000만원 정도인 것으로, 조선의 항로표지 설치 예정지 조사 경비로만 현재의 돈으로 환산하면 약 37억원 정도가 소요된 것으로 보여진다.‘
일본 외무대신으로부터 일본 특명전권공사는 조선의 등대 건설 예정지 측량에 관한여 조선정부와 의논 한 결과 현재 조선 정부의 재정 형편으로 등대 건설 예정지를 측량 한 뒤에 등대 건설은 어렵다고 일본 외무대신에 답신을 주었으나, 1895년 4월 15일 재차 특명전권대사에게 다음과 같이 측량이라도 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전문을 보내왔다.
”지난번 말씀드린 朝鮮國 西南 兩岸의 등대 예정지를 帝國政府에서 측량하는건에 관하여 이달 1일자로 그 예정지를 측정한 뒤에 조선 정부로 하여금 등대를 건설케 하는 일은 현재 同國 정부의 재정 형편으로는 지극히 어려운 일에속할 것이라는 회답을 주셔서 잘 알았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말씀하신 대로 同國의 재정이 곤란하다는 것을 제국 정부도 충분히 인정하고 있던 바이었으며 이번에 제국정부의 비용으로 측량을 하려하는 것도 필경 그 곤란한 사정을 양지하고 있기 때문인바 機密送 제14호로 말씀드린 그대로입니다.
따라서 측량이 끝났다고 하여 바로 그것을 빌미로 삼아 등대 건설을 강청하는 것과 같은 일은 없을것입니다. 또한 등대를 건설한 후 이를 유지하는 데에 곤란한 점이 있을 것도 충분히 예상되는바 그럴 경우에는 피차를 위해 방법을 찾아야 할 필요도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그러나 어쨌든 어느 곳에 등대를 건설해야 할 것인지 또 그 비용도 얼마를 필요로 할 것인지 이 부분에 대해서도 분명치 않은바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언제 등대가 건설될 것인지 도저히 예측할 수가 없어 항해자들의 위험이 클 것입니다.
따라서 실제 건설하는 일은 잠시 다음 단계로 미루고 우선 우리의 호의로 측량하는 일만은 선행시키고자 하오니,機密送 제14호로 말씀드린 요지를 깊이 명심하셔서 되도록 빨리 회담을 시작하시기 바랍니다“ 라고 재차 측량을 독촉하는 문서를 송신하였습니다.
조선에서 재정 형편상 등대의 측량과 등대건설에 즉답을 하지 않으니, 일본에서는 그 들의 군사 작전 계획대로 시급한 등대 건설이 되지 않으니, 측량 후 등대 건설을 독촉하지 아니할 테니 우선 측량이라도 하게 해달라고 요청을 한 사항이나, 측량 이후 게속적으로 등대 건설을 요청한 내용을 볼 때 일본의 군함이 조선에 통항하기 위한 군사적인 목적이 분명함을 알수 있는 내용이다.
이러한 일본의 거듭된 요청 문서에 대하여 조선의 외부대신인 김윤식은 1895년 6월 3일 일본 임시대리공사에게 보낸 답서에서 일본이 문서에서 표현한 ”특별한 우의로써 우리 정부를 대신하여 조선의 해안을 측량하고 등대 설치에 타당한 구역을 선택함으로써 조선 정부의 앞으로의 등대 건설 사업을 편안하게 하려는 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답신하였다.
일본 외무대신으로부터 온 서신을 받아 보니 일본 체신대신이 조선 연안에 건설할 등대 위치를 대신해서 측량하고 결정하는 문제는 현재 순조롭게 의논이 되어 체신성에서 輪船 明治丸을 특파, 측량선으로 충당하여 이달 하순에 먼저 빨리가서 일을 시작하도록 하였으니, 조선 정부에 조회해서 정부로부터 신임할 만한 관원 한명을 선발·파견하도록 하게 하고 明治丸이 인천항으로 운항하여 도착할 때까지 기다리게 하여 그 관원으로 하여금 배를 같이 타고 함께 가게 해서 연안의 지방관들과 조회를 주고받게 하여 모든 일을 주선하게 함이 공적으로 편할 것이다 라는 요청에 따라
일본 서리공사는 일본 외무대신의 공한을 접한 후 明治丸이 일간 인천항에 도착하게 된 것을 알게 되었으므로 이에 따라 공문으로 ”번거로우시겠지만 조선 정부에서 관원을 선발 파견하여 그 배를 타게 하도록 주선해 주고 가능한한 빨리 답서를 보내주면 좋겠다는 문서를 보내 답신을 요청한 사항에 대하여
’연안에 등대를 건설하는 일은 商務에 관계되므로 진작 우리 農商⼯部에 조회로 알렸던바 그 후 우리 농상공부에서 답변해 오기를,이달 8일 특별히 본부국장송헌빈과 참서관 김낙준을 미리 인천에 가게 해서 그 측량선이 항구에 도착하는 것을 기다렸다가 함께 연안을 순회하면서 협의해서 적절한 측량을 할 수 있도록 하였으며 아울러 각 지방관들에게도 적절한 주선을 하라고 훈령했다.”
라고 알려주어서 일본의 조선 연안 등대 설치 에정지 측량작업이 시작되게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