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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9.15 02:27
정치가 닫히면 발전도 멈춘다
/윤일현
사회 발전을 위해서는 정치적 대립 집단 간의 균형이 필요하다. 모두가 진보적이거나 보수적이어서는 안 된다. 새가 좌우 날개로 균형을 잡고 날 듯이, 정치도 진보와 보수가 서로 견제하고 보완할 때 비로소 건강한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다. 진보와 보수가 모두 필요한 이유는 단순한 다양성의 문제가 아니다. 서로 다른 관점이 조화를 이룰 때 전통과 안정, 변화와 혁신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보수는 전통적 가치를 중시하고 점진적 발전을 선호한다. 영국 철학자 에드먼드 버크는 “보수는 경험의 축적을 중시하며 사회는 점진적으로 개선돼야 한다.”라고 했다. 반면, 진보는 기존 질서를 비판하고 새로운 사회 정의를 추구한다. 미국 교육 철학자 존 듀이는 진보를 “민주주의적 삶의 질 향상을 위한 사회 제도 개선 움직임”으로 설명했다. 이 두 이념은 어느 하나도 배제되어서는 안 된다. 한쪽이 극단으로 흐르면 상대를 부정하고 소통은 단절된다.
최근 한국 정치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진보·보수의 이념 대립보다 ‘정치 팬덤’이 전면에 나서고 있다는 점이다. 정치 팬덤은 특정 정당이나 정치인을 감정과 정체성에 기반해 지지하는 현상이다. 이들은 정책보다 소속과 충성심을 우선시하며, 비판은 곧 배신으로 간주한다. 그 결과 정책 경쟁은 사라지고, 갈등은 심화하며, 정치인은 책임을 회피하게 된다. 이러한 흐름이 지속되면 대중의 정치적 판단력은 흐려지고, 민주주의는 근본부터 위협받게 된다.
팬덤 정치의 악영향은 일부 지역에서 더욱 뚜렷하게 나타난다. 영호남에서는 무투표 당선자까지 나오는 실정이다. 이는 선거라는 민주주의의 꽃이 시들게 만드는 일이다. 특정 정당에 대한 지속적인 일방적 지지는 정치적 다양성과 합리적 선택을 제한하며, 지역 발전의 걸림돌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맥락에서 호남뿐만 아니라 대구·경북의 정치 편향성도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한다. 대구는 해방 직후 한때 진보 성향이 강했던 지역이다. 그러나 1987년 직선제 도입 이후 보수 중심 지역으로 정치 성향이 고착되면서, 최근 총선과 지방선거에서는 특정 정당의 깃발만 꽂으면 당선되는 일이 반복되고 있다.
보수 성향 자체는 문제가 아니다. 안보를 중시하고 자유시장 경제를 수호하는 보수 이념은 국가 운영에 필수적이다. 문제는 특정 정당의 공천 여부가 투표 결과에 절대적인 영향을 미치는 정치 구조다. 정당의 간판이 후보자의 능력보다 우선시되는 구조는 유권자와 지역 모두에 손해다. 이러한 구조 속에서 정치인은 지역을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위한 도구로만 활용하고, 유권자는 선거 이후 외면당한다. 유능한 후보도 특정 정당 소속이라는 이유로 배제되고, 실질적 경쟁이 사라진 대구는 중앙 정치의 전달 통로로 전락한다. 지역에는 실질적인 이익이 돌아오지 않고, 인프라는 뒤처지며, 주민 숙원 사업은 외면받는다.
대구·경북이 보수 성향을 유지하더라도 이제는 실속 있는 전략적 보수가 돼야 한다. 다른 지역 사례에서도 교훈을 얻어야 한다. 서울·경기 유권자들은 정치 성향뿐 아니라 후보자의 능력과 정책도 함께 평가한다. 선거 결과를 예측하기 어려운 지역이기에, 정치권도 늘 긴장하고 치열하게 경쟁한다. 대구·경북 유권자도 후보자의 공약, 의정 활동, 정책 실현 가능성 등을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 예산 확보 능력과 실적 역시 중요한 판단 기준이 돼야 한다.
지역 언론은 특정 정당의 대변인이 아니다. 언론은 권력을 감시하고 유권자에게 정확한 정보를 제공해야 할 책무가 있다. 그 역할을 외면하면 시민은 사실이 아닌 프레임에 갇히고, 정치인은 견제받지 않은 채 권력을 휘두르게 된다. 이는 결국 지역 민주주의의 붕괴로 이어진다. 대구·경북 시도민 또한 진영 논리에 갇혀선 안 된다. 정당이 아니라 지역의 미래를 기준으로 후보를 판단해야 한다. 유능한 인물이라면 정당을 넘어 선택할 수 있는 정치적 유연성과 실용적 판단력이 요구된다. 그래야 지역사회는 정체에서 벗어나 실질적인 변화를 이룰 수 있다.
거듭 강조하지만, 지역 발전은 정치인만의 책임이 아니다. 유권자의 전략적 안목이 지역의 미래를 결정한다. 이제는 이념이 아니라 실속을, 충성심이 아니라 성과와 비전을 기준으로 선택해야 한다. 진정한 변화는 정치권이 아닌 깨어 있는 유권자에게서 시작된다. 선거가 임박해서가 아니라, 지금, 이 시점부터 문제를 직시하고 공론화해야 한다. 더는 미룰 수 없다. 지지하는 정당이 아닌, 지역 발전을 위해, 유권자가 행동할 때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