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광복80주년에 보는 등대 역사
작성일 : 2025.09.08 02:36
광복 80주년에 보는 일본이 기록한 등대년보에 의한 등대 역사에 대한 고찰(1)
김민철(공학박사, 항로표지 전공) / 석영국(등대 역사가)
1) 들어가며
일본은 1905. 11. 17. 대한제국과 을사조약을 체결한 이후 등대 설치에 관한 권한을 대한제국으로부터 실질적으로 찬탈하여 대한제국의 예산으로 일본의 선박들이 대한제국을 자유롭게 운항하고, 중국과 러시아와의 전쟁에서 지리적으로 유리한 위치를 선정하여 일본이 원하는 장소에 등대를 설치하고, 그 기록을 「한국세관공사부 등대국제1년보(1907년)」과 「한국세관공사부 등대국제2년보(1908년)」 및 「한국세관공사부 등대국제3년보(1909년)」로 편찬하였다.
한국세관공사부 등대국 연보는 일본이 등대를 설치한 배경과 목적을 일본의 논리로 철저히 기술하여, 문자대로 해석하는 경우에는 실체적 진실과 궤를 달리할 수 있어 세관공사국등대보를 역사적 사실과 비교하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등대국 연보의 표지에 나타난 연호의 사용
첫 번째 발간된 등대국제1년보의 표지에는 “명치39년에 있어서 한국세관 공사부 등대국 주관 사항의 중요 사항을 모아 등대국 제1집 연보로 이에 진달 함. 명치40년 1월 23일”이라고 일왕의 연호를 표기한데 비해 등대국제2년보에는 “ 등대국제3년보에는 대한제국 순종의 연호인 융희원년에 〜 융희2년 2월 1일로 표기하였다.
일본은 을사조약 이후 대한제국의 외교권을 강탈하여 통감부를 설치하였으나 대한제국은 존속하였는데에도 불구하고 대한제국 황제의 권위를 무시하고 일본의 지배권을 과시하기 위해 일왕의 연호를 공문서 등에서 사용하였다.
1907년 고종의 강제 퇴위와 순종 즉위 이후, 헤이그 밀사 파견 사건 등으로 국제사회에서 일본의 ‘조선 합병 의도’가 드러나는 것에 대한 외교적 부담이 커짐에 따라 일본은 국제사회 비판을 완화하고 조선 내부의 반발을 무마하기 위하여 외견상 대한제국 황제(순종)의 권위를 존중하는 것처럼 보일 필요가 있어 대한제국 내부문서에서는 대한제국 황제의 연호(융희 등)를 쓰도록 하고, 일본 정부와 통감부 대외문서에서는 여전히 일본 천황의 연호를 병행 사용하도록 한 흐름이 등대국 연보에서도 나타나 있음을 볼 수 있다.
3). 등대보 연보에 나타난 등대사업을 추진한 배경에 관하여
등대국제1년보에는 등대사업의 추진 배경으로 ”등대 사업은 메이지 27년 28년 청일전쟁에 즈음하여 군함의 통항 상 그 설비가 없음을 이유로 그 필요를 느껴 한국 전 연안에 있어서 개략적인 등대 건설 위치 및 설비해야 할 등대의 종류 등에 관해 그 측량 및 설계의 조사에 착수, 일본 정부로부터 참모총장과 체신대신이 상의하여, 체신기사 공학박사 이시바시 하야히코(石橋絢彦)를 한국에 파견을 명하여 동 기사는 보조원 야마자키 엔조(山崎園藏), 야마나카 츠토무(山中勤) 두 사람을 거느리고 메이지 28년 6월부터 9월에 이르기까지 4개월간 기선 메이지마루(明治丸)를 이용하여 한국 전 연안에 있어서의 항로 표지 건설해야 할 위치 및 설계 개요 등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라고 기술하였다.
즉, 조선에서의 등대사업의 추진 배경은 중국, 러시아와의 전쟁에 대비하여 군함의 통항에 등대가 필요하기 때문에 등대를 설치하는 것임을 분명히 알 수 있으며, 한국 연안에서의 등대 건설 위치와 설게 개요 조사를 등대 설치와 관련하여 일본의 참모총장이 체신대신과 상의하고 참모총장 또는 해군대신의 명령으로 출장을 명한 것을 비추어 볼 때 전략적 목적임을 분명히 알 수 있다.
전략적 목적이 분명함에도 제1년보의 「제1장 세관 공사부 창립 이래 등대 건설 계획」에서는 ”유래 한국 연안의 길이는 약 1,800해리이며 서안 및 남안은 무수한 섬과 암초가 흩어져 있고, 동안은 지세가 비교적 평탄하며 현저한 산 정상이나 곶이 적다. 더하여 해조의 간만은 동양에서 그 비할 데 없을 정도로 심한 차이가 있으며, 특히 해류가 급격하고 해무가 잦은 이유로 인해 늘 항해자들이 어려움을 느끼는 곳이므로 왕왕 해난을 당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 지금 한국은 일본제국의 보호 아래 통상 무역이 발달함에 따라 선박의 교통이 날로 빈번해지고 있다. 그러므로 그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는 장차 요충지에 다수의 등대 건설이 가장 급무인 사업이다.“ 라고 기술하였다.
마치, 대한제국이 일본이 보호하여 통상무역이 발전하여 늘어나는 선박교통량으로 대한제국 선박의 안전을 위하여 일본의 돈으로 등대를 설치하는 것처럼 오해를 일으킬 수 있도록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