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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9.08 02:21
24) 자연에 적응하는 동물과 인간에 적응하는 동물
/조경호
1970년 가을, 다시 선미도 등대장을 발령이 났다. 등대 직원들은 2∼ 3년에 한 번씩 이동하여 근무하는 것에 익숙해 있다. 선미도에서는 그동안에 변화가 일어났다. 우선 신조와 같았던 까마귀는 사라졌다. 선미도의 터줏대감인 한 쌍의 까마귀가 사라지자, 선미도 땅의 주인들이 바뀌기 시작한 것이다. 등대 부지 2,000평은 그대로인데, 동네의 땅은 개인 소유가 되어있었다.
동네 주민은 2가구만이 한정된 기한을 약정한 채 남아 있었고 염소목장이 들어와 동네에서 염소와 멧돼지를 기르고 있었다.
염소는 방목했는데 염소가 거의 야생(당시 등대에도 염소 몇 마리를 방목하여 키웠음)이 되다시피 했다. 대장 염소를 잘 관리하지 못한 탓일 것이다. 염소도 주인과 소통은 안 되는 동물 중 돼지와 쌍벽을 이룬다. 염소는 일단 놈이 무엇을 요구하는지, 심리상태가 어떤지를 알 수가 없다. 염소의 눈을 보면 노란 눈동자가 일그러져 있어 이놈이 공포를 느끼는지, 어디가 아픈지, 상태가 좋은지, 소통을 거부하는 놈이다. 사람의 인식으로 놈을 보면 늘 사람을 비웃고 있는 눈동자를 가졌다.
염소는 사람의 손길을 싫어한다. 개나 고양이, 소나 돼지들은 만져주거나 나뭇가지로 등을 긁어주면 아주 좋아한다. 시원한 느낌도 좋겠지만 애정으로 보살피는 것으로 느껴지는지, 주인에게 안심하고 자신을 맡긴다. 그러나 염소는 인간의 정성이라든가 애정 같은 것을 거부하는 놈이다. 이놈을 사람이 가까이 유인하는 방법은 소금뿐이다. 소금이 주인에게 있기에 주인 곁을 떠나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은 방목하는 염소를 우리에 불러들일 수 있다. 소금이 담긴 그릇이 우리 안에 있기 때문이다. 염소도 두 개의 발가락을 가진 초식동물이기 때문에 먹이를 옮겨놓지 못하고 싸돌아 다니면서 먹는다. 돼지는 계속해서 먹이를 찾고 뱀도 잡아먹는 잡식성이기 때문에 먹이로 우리에 붙잡아 두기가 어렵다. 그러나 염소는 초식동물로서 염분을 섭취하기 위해서는 꼭 소금을 핥아야 한다. 그래서 주인이 염소를 방목해도 우리에 소금을 놓아두면 염소는 제 우리를 떠나도 다시 찾아온다.
대장 염소가 무리를 이끌고 있어 대장 염소가 주인을 떠나지 않는다면 염소를 잃어버리지 않는다. 그래서 주인은 대장 염소 관리를 잘해야 한다. 특별히 소금을 직접 손으로 먹여주는 것도 한 방법이다. 그런데 선미도는 섬이다. 섬은 바닷가의 바위에서 염분을 충분히 섭취할 수 있다. 또한 선미도는 가파른 바위 벼랑과 절벽 아래 깊이를 알 수 없는 넘실되는 바다 물결이라서 염소가 가출하기에는 안성맞춤이다.
선미도의 염소가 가출하여 야생에 있으면, 사람이 염소를 몰아 우리에 넣어야 했다. 그러나 선미도 등대에는 야생이 된 염소와 우리에서 기르는 염소, 두 가지 무리가 있다. 우리에서 기르는 염소도 대장 염소가 탈출하면 너도나도 죄다 탈출하려고 한다.
염소 우리 울타리는 나무 기둥을 세우고 나무줄기를 가로로 걸쳐 놓은 담장을 높이 쌓은 것이다. 그래서 대장 염소가 이 울타리 안이 마음에 들지 않으면 우리에서 탈출한다. 무리로 움직이는 초식동물은 무리 전부가 대장을 따라간다. 어느 날은 우리 안의 염소가 한 마리도 없을 때가 있다. 이런 기회에 야생하는 염소까지 잡아 드린다.
목장 주인은 등대에 와서 등대에 기르는 개를 빌린다. 등대에 개 3마리와 목장 주인이 기르는 양치기 개인 ’호리‘ 한 쌍, 목장 주인이 기르는 이름 모르는 개 4마리 등 9마리가 숲속의 벼랑 끝에 있는 염소 떼를 몰기 시작한다. 그런데 등대에서 기르는 똥개들이나 목장의 잡견들은 이때가 되면, 아주 용감무쌍한 맹견이 된다. 한 쌍의 ’호리견’이 리더 하는 데로 열심히 달린다.
개들은 놀이가 필요한 동물이다. 이놈들은 이때가 제일 신나는 모양이다. 개는 돼지와 달리 먹이에는 죽을 둥 살둥 하지 않는다. 개들이 죽을 둥 말둥하는 것은 놀이이다. 한번은 염소 떼를 개들이 쫓아가고 있었는데 염소들이 V자형 암벽의 계곡을 건너뛰고 있었다. V자형 암벽 밑은 바닷물이 넘실거렸다. 나는 그 광경을 등탑에 올라가 보고 있었다. 절벽 아래 바다로 ‘우르륵’하고 암벽의 잔돌들이 떨어지고 염소 떼는 한 번의 점프로 V자형 계곡의 절벽을 건너뛰었다.
‘호리견’ 한 쌍이 선두에서 달리는 그대로의 탄력으로 건너뛰었다. 그 뒤로 우르르 몰려온 개들도 망설임 없이 ‘호리견’을 따라 건너뛰었다. 그러나 개 한 마리가 바닷속으로 떨어지고 말았다. 그곳은 사람의 발로는 다가갈 수가 없는 곳이다. 망설임 없이 뛰어드는 개들의 맹종은 죽음을 불사한다. 그 개는 바닷속에서 뭍으로 기어오르지 못할 것이다. 수직의 암벽으로 수면에서 높이가 족히 40m는 되는 곳이다.
대장 염소를 몰아서 우리에 가두고 대장 염소를 묶어 놓으면 그놈을 따르던 무리의 염소들이 야생하던 무리에서 이탈된 염소가 우리로 들어온다. 개의 보상은 후에 이루어진다.
목장 주인은 염소 한 마리를 끌고 와서 등대 앞 우물가에서 바비큐를 한다. 염소 바비큐 냄새에 개들이 다 모여든다. 고기를 구울 때 개들의 학습된 훈련 정도가 나타난다. ‘호리견’은 앞다리를 꼿꼿이 세우고 주인이 먹이를 줄 때까지 기다린다. 그런데 계통을 알 수 없고 학습이 되지 않은 개들은 싸우거나 놀이할 때는 용감했지만 좋은 먹잇감 앞에서는 주인의 심정은 아랑곳하지 않는다. 빨리 달라고 응응대고 왈왈대면서 왔다 갔다, 발광을 떠는 놈도 있다. 지들 동료가 물속에 수장되어 사라진 것도 아랑곳하지 않는다. 두 마리가 있다가 한 마리가 없어지면, 애타게 찾는 놈도 있지만 여러 마리가 있을 땐 지금 당장 놀이할 수 있는 동료가 있고 냄새 좋은 먹잇감이 있으면 그만이다.
놈들은 ‘고스래’할 시간의 틈도 주지 않는다. 그래서 제일 먼저 염소 바비큐 맛을 개시하는 놈들은 여러 잡종의 피가 뒤섞여 생존 본능이 우수한 놈들이다. 그리고 개들은 주인만을 섬기지, 자기들 세계에서 대장은 없다. 먹이 앞에서 먼저 차지하는 놈이 왕이다. 개는 먹이를 사람이 줄 때는 먼저 먹이를 차지한 놈이 힘이 약한 놈일지라도 뺏으려 들지 않는다. 영리한 놈들이다. 사람은 고루 분배할 것이라고 알고 있기 때문이다. 굳이 아웅다웅 싸울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안다. 그리고 먹이 앞에서 껄떡거리지 않는 잡견은 어딘가 몸이 아픈 놈이다. 이 놈들은 맛이 있을 거라고 생각되는 먹이 앞에서는 독약 냄새가 나도 먹이를 삼킨다. 그래서 개 훈련은 주는 것 외에는 먹지 않는 것을 학습시키는 일이다.
목장 주인의 말로는 ‘호리견’은 호주산 개로 훈련을 시키지 않은 개라고 했다. 그리고 ‘호리견’은 개고기를 삶거나 굽는다 해도 종족인 개고기는 먹지 않는다는 것이다. 염소를 잡을 때, 개도 잡아서 염소 고기와 개고기를 주어 보니 다른 개들은 개고기를 먹는데 ‘호리견’만은 개고기를 먹지 않더라는 것이다. 그러한 본능은 유전적으로 물려받은 것으로 생각된다.
오늘과 같이 등대 가족들이나 개들 모두가 만찬을 즐길 때는 주인은 자신의 개보다 다른 사람의 개에게 더 많은 먹이를 주게 된다. 왜냐하면, 개들이 주인에게 더 달라고 하면 혼내기 때문이다. 영악한 놈들이다. 그래서 자기 주인보다는 나의 신발 끈을 물어뜯는 놈, 바짓가랑이를 끄는 놈, 앉아 있을 때는 턱으로 내 허벅지를 꾹꾹 누르는 놈도 있다. 더 달라는 표현이다. 평소에는 하지 않는 표현이다. 그런 놈들에게는 먹이 겸 놀이를 할 수 있는 큰 뼈다귀를 던져주면 된다.
놈들은 그것을 뺏기지 않으려고 멀찌감치 떨어져 콘크리트 바닥에 침을 흥건히 적신다. 하지만 혼자 할 수 있는 먹잇감과의 놀이에 열중한다. 개들은 야행성을 잃어서 놀이감을 찾는다. 주인이 같이 놀아주는 것을 제일 좋아하지만, 자기들끼리 모이면 오합지졸이다. 그래서 말이 생겨났는지 모른다. 대장이 없다. 그런데 ‘호리’는 이런 오합지졸을 데리고 벼랑 위에 있는 염소를 몰아온다. 아마 다른 개들의 놀이 욕구를 충족시켜 주는 것 때문이라 생각한다.
여름에 개를 데리고 바닷가를 내려오면 주인이 바닷물 속으로 들어가도 처음에는 따라 들어오지 않는다. 그런 놈을 덥석 안아서 물속으로 들어가면 놈은 불안해서 바둥거린다. 그런 놈을 깊은 물 속으로 던져 놓으면, 기겁하고 앞 두 다리를 모아서 달려가는 자세로 세차게 물살을 헤치고 나온다. 그리고 해변으로 올라와 연신 털 속에 묻은 물기를 털어 낸다. 개의 털에서 떨어져 나온 물방울들은 빛 보라를 일으키며, 여름 한 철 지상 가장 가까이에서 일어나는 무지개를 띄우게 되는 것이다. 몇 번 더 같은 방법으로 학습을 시키면 놈도 무더위를 씻기 위해 다음부터는 먼저 물속으로 들어간다. 그리고 물속에서 걷는 것처럼 네 다리를 유유히 움직이며 헤엄을 친다.
개와는 달리 염소는 분위기가 상당히 다르다. 놈의 눈은 노랗게 일그러져 늘 사람을 비웃고 있는 상이다. 놈의 심증을 알 수가 없다. 염소는 사람과 불통되어 주인을 따르지 않는다고 해도 별문제는 없다. 수놈인 대장하고만 소통되면 그만이다. 대장 염소의 무리는 모두 대장 염소를 따르기 때문이다. 대장 염소는 덩치와 뿔이 휘어 돌아간 정도를 금세 알 수 있다. 그러나 색깔과 덩치가 비슷한 놈도 있어 대장 염소에게는 표시를 해두는 방법이 좋다. 나는 방울을 달지 않고 수실을 꼬아 목걸이를 해준다.
정년 퇴임을 소청도에서 맞게되었는데 염소가 계속 새끼를 치면서 10마리 정도로 늘어나 있을 때였다. 아내와 나는 휴가로 인천에 나와서 며칠 동안 등대를 비운 적이 있었다. 염소는 아침에 산등성이로 가서 풀을 뜯고 저녁이면 염소의 울타리로 돌아온다. 대장 염소가 염소 무리를 이끌고 다니기 때문에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먹이가 풍족한 여름철이기에 별걱정 없이 우리 부부는 인천으로 나왔다.
그런데 며칠 후 소청도 등대에 들어갔더니 등대에서 기르는 염소가 한 마리도 남지 않고 사라졌다. 같이 근무하던 이씨가 아마 동네 염소들과 함께 있는 것 같다고 했다. 이씨는 대장 염소를 모르기 때문에 내가 들어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작은 동네인 노화동 등성이 쪽으로 가보았다. 30여 마리나 되는 염소 무리가 풀을 뜯고 있었다. 작은 동네 염소 주인을 찾아 갔다.
‘강형 동네 염소와 등대 염소가 섞여 있어 등대 염소를 찾아가야 겠소’
‘구분이 되겠소. 재주 있으면 찾아가 보시오’
강씨의 말투가 괘씸했다. 자기는 모르겠으니 어디 재주껏 찾아가라는 것이다.
‘알았소 그럼 내가 분리할 것이니 강씨가 와서 보시구려’
강씨는 마지못해 따라왔다. 나는 아내와 함께 등대의 대장 염소를 찾아보았다.
그런데 대장 염소에게 표시해 주었던 붉은색 수실 목걸이가 없어진 것이다. 그리고 다른 목걸이로 채워져 있었다. 등대의 대장 염소는 나를 알아보았다. 내가 목걸이를 잡자 순순히 따라왔다.
‘강형. 자- 이 염소가 대장 염소요, 내가 뿔 안쪽에다 ’등대‘라고 새겨진 이 글씨를 보시오’
소청도 등대는 동네가 있는 큰 섬이고 동네에서도 염소를 많이 기르고 있어 대장 염소에게만 특별히 휘어진 뿔 안쪽으로 “등대‘라고 줄 톱으로 새겨 놓았다.
’염소는 자기의 대장을 따라간다고 들었소‘
”이 염소가 등대의 대장 염소요“ 하고 대장 염소를 작은 나뭇가지에 매어 두었다. 그러자 14마리가 등대 대장 염소 주위로 모여들었다. 염소의 두 무리가 분명히 구분되었다. 동네 강씨는 아무말도 하지 못했다. 그렇게 아내와 저녁놀이 지는 산등성이를 검은 염소들과 함께 걸어온 적이 있었다.
염소는 무리의 우두머리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가축이다. 주인은 그다음이다. 개는 주인을 대장으로 섬기고 복종한다. 개에는 놀잇감을 주어야 좋아하나, 돼지는 먹이만 잘 주면, 만사형통이라 놀이가 필요 없으나. 틈만 생기면 도망가려 한다.
그리고 돼지 눈초리는 욕심으로 가득 차 이글거린다. 새끼 때는 다들 귀엽다. 그러나 욕심 많은 심보가 그 눈초리에 나타날 때부터는 사람과 소통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