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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 23.돼지

작성일 : 2025.09.01 02:25

23. 돼지

/조경호

 

 

장 대장 아들 친구들은 그 사건 이후 부도 등대에서 곧 떠났다.

8월 초 아주 맑은 날 아침 일찍, 조금 때가 되자 승봉도에서 거룻배 한 척이 왔다. 승봉도에서 온 거룻배는 67인이 탈 수 있는 작은 목선이었다. 그 거룻배는 혼자 노를 저어 온 것이다. 그러면서 좋은 돼지 나왔으니 돼지 한 마리를 사라고 하는 것이다.

 

김영식씨 말로는 부도 등대에서는 매년 이맘때쯤 승봉도에서 돼지를 한 마리 사 준다는 것이다. 부도 등대는 가장 가까이 있는 큰 섬과 교류도 필요하고 등대 가족과 아이들이 여름 방학을 맞으면 부도로 들어오기 때문이었다. 가족들의 부식 때문이고, 한때는 고사를 지낸 관계로 승봉도에서는 부도 등대에서 매년 산 돼지로 고사를 지내는 줄 안다는 것이다.

 

등대장님 이번 기회에 승봉도와 교류도 강화할 겸 한번 가 봅시다.

그럽시다. 부식도 없는데, 잘 되었군요. 그럼, 이씨가 당직이니 나와 김형이 갔다 옵시다.‘

 

승봉도에서 거룻배로 노를 저어 온 사람은 새로 오신 등대장님을 이장님이 한번 뵙고 싶다는 것이었다. 나는 인천에서 아내가 들어올 때 가지고 온 소주 3병과 돼지 값(등대원 3사람이 각출한 것이다)을 가지고 배에 올랐다. 셋째 아이도 따라가겠다고 하여, 이 녀석도 승봉도의 여객선을 타고 부도로 들어오는 방법을 알려주기 위해 데리고 가기로 했다.

 

거룻배는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온다. 배를 탄 사람은 배 안으로 새어 들어오는 물을 퍼내야 한다. 그래서 거룻배의 바닥에는 항시 빈 깡통이 있다.

바닷속에서도 강물처럼 흐르는 해류가 있고 산과 계곡이 있다. 그래서 물의 흐름이나 색깔과 수온이 각기 다르다. 거룻배가 노를 저을 때 힘에 의해 기우뚱거리며, 새파란 바다를 가로질러 승봉도로 향하고 있었다.

 

거룻배를 타고 가는 맛은 거룻배의 난간에서 손을 뻗어 새파란 거울 같은 바다 수면의 물을 만져 볼 수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섬의 귀퉁이를 돌아가면 서서히 전개되는 풍경이 마치 슬로우 비디오를 보는 느낌이다.

 

승봉도의 백사장은 활처럼 횐 원호였는데, 거대한 비행장 활주로를 연상케 했다. 승봉도 초등학교 운동장으로 사용하고 있다고 했다. 유난히 흰 모래였으며, 승봉도 백사장 중앙쯤 되는 곳에 화강암으로 다듬은 거대한 맷돌 아래짝이 있었다.

이 맷돌은 황소가 돌렸음 직했다. 사용하지 않은 지가 천년 이상 되었으리라, 지름 1m가 넘는 화강암 맷돌은 모래사장이 시작되는 곳에 있었다. 비스듬한 모래사장과 풀 섶 언덕을 넘나들며 황소가 맷돌을 돌리지는 못한다. 그렇다고 아랫돌만 있는 맷돌을 이곳으로 옮길 이유도 없다. 그 맷돌이 그 자리에 있었던 것이라면, 오랜 세월 들판이 모래사장으로 침식 작용이 일어났다는 증거이다.

 

즉 이곳의 백사장은 오랜 세월 침식 작용이 빚어낸 결과일 것이다. 그렇다면 이 맷돌 아래짝이 있는 자리까지 모래사장이 되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려야 했을 것이다.

 

이러한 유물로 보면 승봉도에 사람이 들어와 살게 된 것은 꽤 오래되었을 것이다. 또 이곳은 서북으로 대이작도와 소이작도에 이어 덕적도, 선미도로 이어지는 섬들이 띠처럼 드리워져 있다. 그런데 백령도, 덕적도는 선사시대 유물이 나오는 섬이다. 그리고 이 섬들에는 선사시대에 인류가 살았다는 것이 학계의 정론이다.

 

고대인들의 한반도 유입설은 북방 유목민의 유입설과 남방 미곡 농경인 유입설이 있다. 북방계는 압록강을 건너 한반도로 들어왔고, 남방계는 바다를 통해 남해안으로 유입되었다는 것이다.

 

한반도에서는 북방계와 남방계가 충돌한 혼열의 장이라는 것이 있다. 이 학설은 정설로 되어있다. 그러나 경기만 일원의 섬에서 나오는 유적을 보면 서쪽 대륙에서 경기만에 있는 섬들을 거쳐 한반도로 들어온 서해 유입설도 입증되어야 할 것이다.

 

한반도에서 벼농사를 가장 일찍 시작한 곳이 김포라는 학설도 있다. 이 학설도 정설로 인증되고 있는 것을 보면 농경사회 일부가 서해의 섬들을 거쳐 유입되었을 것이라는 가설도 가능하다. 김포 땅에서 나온 탄 미의 탄소 측정 연대가 가장 오래되었다는 것을 참조해 보면 아열대 식물인 벼가 한반도 남쪽도 아니고 갑자기 중부의 땅에서 농사를 지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리스의 문명도 나일강의 예급 문명에서 지중해의 작은 섬들의 문화인에게 문명을 거쳐 전파되었듯이 우리나라 쌀 문화권은 남쪽보다도 서쪽에서 먼저 유입된 듯싶다.

 

승봉도의 주 농사는 쌀농사였다. 우리가 도착하였을 땐 벼 이삭에 황금의 색이 감돌고 있었다. 승봉도는 아주 넓은 섬이었다. 광활하게 펼쳐지는 논과 그 넘어 멀리 보이는 산들은 마치 한적한 농촌에 와 있는 것 같았다. 신작로 개울가에 쓰르라미가 우는 미루 나무하며, 벼가 익어가는 벼 이삭 위에서 유유히 날아다니는 잠자리 하며, 나의 고향을 연상케 했다.

 

이장네 돼지를 보았다. 토종 흑돼지로 90kg은 될 것 같았다. 어떻게 싣고 가냐고 물었다.

 

등대장님 걱정 마시오. 우리가 다 알아서 할 테니

싣고 가다가 거룻배가 뒤집혀 지지 않도록 잘 해주시오. 돼지가 날뛰면 큰일 아닙니까

걱정은 닻줄에 매어 두시오

승봉도에서는 쌀농사를 언제부터 지셨소

나도 모르고. 눈 떠보니, 할아버지가 짓고 계셨소

다른 섬 같지 않고 승봉도에는 벼농사가 잘되는 것 같군요

잘 되지요, 그런데 섬에는 쥐가 없어야 한다오

 

갑자기, , 쥐 이야긴가 했다. 섬에는 쥐가 많아 남아나는 것이 없다고 한다. 승봉도에서 영흥도 중간 지점에는 아주 작은 섬의 군집이 있는데 그 곳에는 갈매기 배설물이 삭혀져서 농작물이 아주 잘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워낙 쥐가 많아서 농작물이 안되어 감자고 땅콩이 남아나는 것이 하나도 없다고 했다. 물도 나지 않고 나무도 없는 작은 무인도에는 주변 유인도인 자월도나 승봉도 사람들이 농작물의 씨를 뿌리고 간혹 들러보다가 가을걷이하는 섬들이다.

 

승봉도 이장이 한번은 동수도 근처에 있는 섬에 가서 땅콩을 심었는데 아주 잘 되더라는 것이었다. 늦여름에 땅콩을 캐서 말리려고 가서 보니까. 땅콩 줄기와 잎이 다 말라서 배배 비틀려 시들어 있었다는 것이었다. 마른 땅콩의 잎줄기를 뽑아보니 그냥 들려 올라오고 땅콩 알이 하나도 붙어 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 섬에 심은 땅콩은 전부 그 모양이었다고 했다.

 

그리고 옥수수 몇 대를 심었는데, 옥수수 대에 붙어 있는 옥수수 알갱이가 하나도 붙어 있지 않고 하얗게 마른 대궁이뿐이라 했다. 그 섬은 쥐들의 너무 번식해서 바닷가의 조개나 소라, 고둥도 남아나지 않는단다. 이제 호시탐탐 다른 섬으로 이주할 기회를 찾고 있어 승봉도 사람들과 사승봉도 사람들에게는 그 섬에 가지 말라고 알렸다는 것이다. 섬에 도착해서 사람이 내리고 거룻배를 빗줄로 매어 두면 쥐들은 밧줄을 타고 기어오르더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혹시 그 섬에 들릴 때는 쥐들이 배에 올라오지 못하게 모래사장에서 멀찌감치 바다에 띄워 놓고 닻을 내리라는 것이었다. 그런 방법으로도 쥐 떼의 이동을 막지는 못할 것이다. 섬에 사는 쥐들은 웬만한 해변의 물가에서는 헤엄도 잘치고 수직의 밧줄도 잘 타고 오르내릴 수 있다.

 

팔미도에도 역시 뱀이 없었기에 쥐들이 설쳐대는 섬이다. 얼마나 영리한지 소라를 숲에 모아두고 썩혀서 먹는 방법을 아는 놈들이고 쌀을 찧기 위해 다라(물을 담는 큰 그릇)에 쌀을 담가두면 다라의 테를 뒷다리의 두 발로 딛고 서서 두 앞발을 모아 쌀을 건져 먹는 놈들이다.

 

쥐의 앞 발가락은 4개요, 뒷 발가락은 5개이기 때문에 12 궁지에 배속된 동물 중 첫 번째로 놓인 자시(子時 : 2301)에 쥐라는 동물이 점지되었다.

그 이유가 앞 발가락은 4개인 음수이고 뒷 발가락은 5개로 양수이기 때문에 하루의 음양이 갈라지는 자시에 배속되었다고 한다. 그 쥐는 앞 발가락과 뒷발가락의 짝수가 틀린다. 쥐의 앞 발가락은 첫째 발가락이 퇴화되어 있다.

 

승봉도 이장은 그 일이 있은 후, 고양이 암수 한 쌍을 그 섬에 갖다 놓았다는 것이다. 이장은 암수 한 쌍의 고양이는 무인도의 섬 쥐를 잡아먹으면서 스스로 번식할것이라 생각했으며, 그리고 두달 후 가을에 섬에 가보니 고양이 한 마리는 죽어 머리와 뼈 털가죽이 말라붙어 있었다고 했다. 그 고양이 사채가 고양이 집 앞에 있으며, 살아있는 고양이는 바짝 말라서 아사 직전에 있었다고 했다.

 

죽은 고양이 주검은 살아 있는 고양이 짓이라는 것이다. 동족을 살해하는 것은 동물이 가지고 있는 본성인가 보다. 그러나 고양이가 그 많은 쥐를 잡아먹지 못하고 동족을 잡아먹었다는 것은 이해할 수가 없다. 고양이가 사람 손에 길들어지면 야성을 잃은 탓이라 생각한다.

 

팔미도는 쥐가 많은 섬이라 아내가 고양이를 기른 적이 있었다. 아내가 기르던 고양이는 아주 커지니까 팔미도의 제왕 노릇을 했다. 그리고 집을 나가 야성으로 생활하는 놈이었다. 빨랫줄에 참새들이 앉아 있으면, 2m 정도는 능히 점프하여 입으로 물어 잡는 놈이다.

 

그놈은 아내가 섬으로 들어와 있을 때만 집으로 찾아온다. 그리고 아내와 해후할 때는 아내의 다리 사이를 돌면서 자기의 몸을 부벼된다. 그런데 그놈은 하도 커서 내가 잡기가 겁이 나는 놈이다. 혹 물릴까 두려워서 망설여진다.

 

어느날 나무 창고에 어마어마하게 큰 쥐가 들어와 있었다. 내가 들어가도 도망갈 생각을 않고 있었다. 아마 그놈은 나무 창고를 자신의 안식처로 삼은 모양이다. 창고 문을 열고 쫓으려 해도 놈은 나가지 않는 것이었다.

 

섬에는 간혹 인간과 야생동물 간에 터전을 가지고 쟁탈전을 벌리는 수가 있다. 서로의 영역을 침범하면 사생결단을 내야 한다. 하는 수 없이 아내와 해후하느라고 아내의 다리 사이에 몸을 비비며 들락거리는 놈을 번쩍 안아서 나무 창고 안으로 던지고 창고 문을 닫았다.

 

--’ 고양이 소리인지, 섬 쥐 소리인지 창고 안에서 우탕탕거리며, 30초 정도 싸우는 소리가 났다. 창문으로 보니까, 섬 쥐가 도망 다니다가 코너에 몰렸다.

그러자 쥐가 고양이에게 달려들었다. 그러나 천적은 천적이었다. 고양이는 달려드는 쥐의 목을 단번에 물었다.

 

뭍에 사는 동물들뿐 아니라 바다에 사는 동물도 마찬가지다. 자신의 영역을 지키려 하는 것에 목숨을 건다. 인간이나 동물이나 다 같다. 그것은 인간도 동물도 삶의 터전으로 연결되기 때문이다. 바닷속 암초의 영역에 사는 놈, 미역 다시마 같이 바다 숲에 사는 놈, 갯벌에 사는 놈, 모래밭에 사는 놈, 각양각색이다.

 

암초 속의 공간은 자신의 몸집에 알맞은 공간이면 그 공간을 서로 차지하려고 치열하게 싸운다. 갯바위에서 낚시하는 사람은 바닷속 암초를 잘 살펴본다. 암초와 바닥 사이가 들떠 있어 물고기가 숨을 만한 공간이 확보된 곳이라면, 그 앞에다가 미끼를 낀 낚싯대를 드리우면 틀림없이 우럭이 문다.

 

놀래미도 우럭과 같이 영역을 지키며 사는 텃고기 인데 놀래미는 미역이나 다시마 같은 물속의 숲에 사는 놈이다. 그래서 그런지 놈은 잡아서 물웅덩이 놓아두면 금방 황천행이다. 그러나 우럭 같은 놈은 물속 바위 밑에서 웅크리고 들어앉아서 사는 놈이라서 인지 힘과 성질은 불같아도 인내심이 강한 물고기다. 잡아서 물웅덩이에 놓아두면 오래 버틴다. 그래서 우럭은 양식을 할 수 있어도 놀래미는 양식이 어렵다고 들었다.

 

날 짐승도 마찬가지다. 청둥오리는 잎줄기의 포기가 짧은 잡초 사이에 검불로 둥지를 튼다. 참매는 바위 절벽을 택하고, 슴새는 절벽 바위틈이나 깊숙이 굴을 뚫어서 둥지를 삼는다. 까치의 둥지는 나뭇가지 위에 둥근 원형으로 짓는데, 가장 높은 나무를 선택한다. 까마귀의 둥지는 둥근 원형이 아니라 위가 없는 펑퍼짐하게 나뭇가지로 짓는다. 까치나 까마귀는 반짝이는 것을 좋아하여 둥지에는 사금파리나 병뚜껑, 거울 조각 같은 것이 장식되어 있다. 간혹 까치집이나 까마귀 집에서는 은가락지나 금가락지가 생긴다는 말은 반짝이를 좋아하다 보니 그것을 물어다 놓는 습성 때문일 것이다.

 

등대장님 와서 보시오

 

돼지는 양다리의 앞 발목과 뒷 발목을 묶어 놓았고 주둥이도 묶어 놓았는데, 집 돼지의 주둥이는 짧아서 한 겹으로 묶여 있었다. 영 시원치 않았으나, 놈은 양다리가 묶인 채 꼼짝하지 못했다. 주둥이가 풀려 진다 해도 큰 지장이 없을 것 같았다. 두 다리의 발목이 묶여 있는 놈이 어찌하랴.

 

이렇게 주둥이를 묶어 놓아야 시끄럽게 굴지 않소

거룻배까지 저 돼지를 운반하여 주어야 할 텐데요

당연하지요

 

이장은 돼지를 수레에 실어 끌어다 거룻배에 실어주었다. 거룻배 사공은 아침에 왔던 자가 또 자청했다. 넘실거리는 창파를 헤치고 승봉도와 부도 중간쯤 왔을 때이다. 돼지가 꿈쩍하더니 주둥이에 묶었던 끈이 풀렸다. 놈이 소리 지르기 시작했다. 살려달라고 소리 지르는 놈이 사람들의 사정을 봐주겠는가. 바다 한가운데서 꽥- - 대며 울려 퍼지는 돼지의 울음소리. 정말 시끄러웠다. 그러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김씨가 물을 푸던 깡통으로 놈의 머리통을 내리쳤다. 그러나 놈은 더 소리를 질렀다.

에고 에고놈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질러도 소용이 없었다. 나는 여러 짐승을 길러 보았지만 돼지처럼 소통이 되지 않는 짐승은 처음 본다. 돼지는 옛날부터 도망을 잘 치는 짐승이라고 알려져 있다.

 

돼지는 울타리가 조금만 허술해도 그곳을 뚫고 잘도 도망간다. 그래서 울타리가 든든해야 한다는 말은 돼지우리 울타리를 두고 하는 말이다. 돼지는 자기가 있던 우리를 나가면 다시 자기의 우리로 돌아오지 않는다. 그리고 돼지는 먹지 않으면 잠만 잔다. 우리 안에 누어 있다가도 인기척 소리만 나면 벌떡 일어나 밥통에 와서 울타리 나무 난간에 앞다리를 올려놓고 꿀꿀거린다. 사람이 돼지우리에 가는 것은 먹이를 주기 위해서다. 간혹 우리 안을 청소할 때도 있다. 하지만 돼지와 놀기 위해서 돼지우리를 찾자는 않는다.

 

내가 돼지를 길러보니까, 돼지에게 밥을 주러 가는 것이, 가장 곤혹스러웠다. 돼지라는 놈은 울타리만 아니면 나를 받아 놓고 흩어진 먹이를 먹을 것 같았다. 내가 먹이를 먹이통에 쏟으려 해도 놈은 자기의 커다란 배로 가려진 먹이를 비켜주지 않는다. 하는 수 없이 놈의 등짝을 두둘겨 패거나, 등짝 위에 먹이를 쏟아야 한다. 그때도 놈은 먹이가 등짝으로 쏟아지거나 말거나 먹이통에 머리를 박고 먹이를 먹는다. 자기의 등짝이 익거나 말거나 등위에서 뜨거운 먹이 국물에서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피어올라도 말이다.

 

그런데 거룻배 안에 누워서 꽥- 꽥 소리 지른 놈이 벌떡 일어나 앉았다. 앞 다리에 묶였던 끈이 풀린 것이다.

놈이 거룻배에서 뛰어내리려고 했다. 그러나 아직 뒷발이 묶여 있어서인지 맘대로 뛰어내리지 못했다. 그러나 놈은 더욱 몸부림치니 거룻배가 기우뚱거리면서 전복될 것 같았다. 놈은 바다 한가운데 있거나 말거나 상관이 없는 듯 그대로 바다에 뛰어들었다. 김씨나 나나 어떻게 해볼 도리가 없었다.

 

- 돼지는 뒷다리가 묶인 채 바닷속으로 빠졌다. 놈은 잡힐까 봐서인지 거룻배와 간격을 더욱 넓혀 갔다. 놈을 따라 잡을 수가 없었다. 놈은 거룻배보다 더 빠르게 헤엄치고 있었다. 그리고 놈을 붙잡는다고 해도 거룻배에 올릴 수는 없다. 우리는 그놈을 다시 붙잡는것을 포기했다. 그렇게 허망할 줄이야. 돼지라는 놈도 바다의 무서움을 아는 놈이라 생각한 것이 잘못이었다. 그놈은 승봉도라는 섬마을에 살았어도 바다를 한번도 볼 수 없는 마을 깊숙한 곳에 살았던 것이다.

 

그날 이후로 돼지는 잘 도망가는 짐승이라는 것이 확인되었다. 헤엄은 모든 짐승들은 다 잘했다. , 돼지, , 고양이, , 쥐 그러나 염소는 헤엄을 전혀 하지 못했다. 물속으로 들어가면 그냥 가라앉았다. 그리고 쥐나 뱀은 큰물을 건널 수 없는 단거리 선수들이다. 뱀은 물에서 무척 빠르다. 돼지나 소는 그 자체의 몸집 부피로 물에서 충분히 뜰 수 있는 짐승이다.

 

이 돼지가 어디에 뜨있는지, 아니면 물속에 가라앉았는지, 전혀 보이지 않았다. 여름 방학 중 등대에 찾아온 등대 가족들에게 여름 부식으로 장만하기 위하여 가지고 오다가 실종되어 가족들에게는 미안했다. 돼지를 판 사람에게 책임을 물을 수도 없다. ’승봉도에서 잡아 올 것을 생각하며 후회했다.‘

 

부도는 섬이 작아 돼지를 기를 수가 없었다. 돼지우리에서 나는 냄새를 관사에 사는 사람들이 맡아야 하기 때문이다. 또 섬이 너무 작아 돼지 먹이를 생산할 수도 없고 등대는 항상 청결을 유지해야 하는데 작은 섬에서는 가능치 않은 일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돼지를 등대에서 잡으려고 했던 것은 돼지 피를 뿌리기 위한 부도 등대의 전통적인 의식이기 때문이었다. 벽사의 의미로 자구책 같은 것이었다. 그것은 내가 부임하기 전부터 내려온 전통이라 했으나 전통이고 뭐고 간에 김씨의 말을 들은 것이 잘못이라 생각했다. 그렇게 된 이상 후회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나는 물고기의 회는 떠도 발 달린 짐승의 도살은 작은 병아리도 잡지 못한다. 그런데 김씨와 이씨가 돼지의 도살은 해봐서 자신 있다고 한 것이다. 그래서 살아있는 돼지를 사오던 것인데 이 모양이 됐다. 나룻배 사공은 더 미안해했다. 모든 잘못이 자기에게 있는 것처럼 생각되는 모양이었다. 교대하지 못하고 혼자서 노를 저어 부도 등대에 거의 다 도착하였다. 이제 섬 귀퉁이를 돌아서 선착장인 몽돌 자갈밭으로 가면 된다.

 

아부지 저기 돼지 있어

-‘

 

돼지는 거룻배보다 훨씬 먼저 부도 등대에 도착해 있었나 보다. 바닷물이 철썩거리는 몽돌 자갈밭에서 한잠 주무시고 계셨다. 놈도 지칠 대로 지친 모양이었다.

 

승봉도와 부도 사이에 흐르는 거센 해류에 쓸려가지 않고 어떻게····, 그것도 쉽게 물속에서 나올 수 있는 선착장 해변을 찾아왔을까뒷다리도 묶여 있는데·····

놈은 태어나서 처음 바닷속에서 헤엄쳤을 것이다. 그리고 바다에서 가장 오랫동안 헤엄쳐 섬에 오른 집 돼지일 것이다.

 

돼지가 빠진 곳은 무역선이 다니는 항로로 인근 바다 중 가장 깊은 해역이었다. 미스터리였으며, 도깨비 장난 같았다. 놈은 자갈밭에 누워 있었다. 그런데 뒷다리에 묶인 밧줄은 풀려진 모양이다. 묶였던 끈이 보이지 않았다.

 

우리가 자갈밭에 내려서 그놈한테 다가가도 놈은 꿈쩍 않고 있었다. 기진맥진해 있는 모양이다. 놈은 운이 없었고 도깨비는 뜨거운 피 맛을 보았을 것이다.

 

등대에는 냉장고가 없었다. 도시의 가정마다 냉장고가 거의 다 보급되었을 때만 해도 냉장고를 두지 못하였으며, 등대는 전기가 제일 먼전 보급된 도서지만 전기량이 부족해서 그러한 가전제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육지의 여러 도회지보다 한참 후의 일이었다. 누군가가 전기제품을 희사한다고 해도 마음 놓고 쓸형편이 못되었다. 그래서 돼지고기를 보관하는 것이 문제 되었다. 등대에서 가장 온도가 낮은 곳이 물탱크다. 두레박줄을 이용해야 했다. 다라의 네 군데에 구멍을 뚫어 각도를 맞춘 구멍에 줄을 꿰어서 우물 속에 매달았다.

 

지금도 가끔은 부도 등대 아래 해식 동굴 속으로 밀물 때는 소리가 들린다. 그 소리는 어찌 들으면 악마가 코를 고는 소리라 해야 할지. 마녀의 가래 끓는 해수 기침 소리라 해야 할지. 아무튼 형언하기 어려운 영적인 존재가 처량한 바다 한복판에서 외로움에 몸서리치는 것 같았다.

 

바닷물이 들어오는 밀물에 그 해식 동굴에서 26m 위의 돌담에 기대어 석양을 바라보면, 청일전쟁 당시 일본군에 쫓기는 길게 따 늘인 편발 머리의 청나라 젊은들의 절규하는 소리가 들리는 것 같다. 그러나 자연의 이치가 빚어내는 현장을 인간이 이해하지 못할 때는 오해가 일어난다. 귀신들 생기고, 도깨비도 등장하고, 악마도 등장하는 것이라 생각한다.

 

자연현상을 완전하게 이해하지는 못해도 자연에 순응하면 별 탈 없다는 것이 부도 등대에서 생각이다.

 

1972년 늦여름 팔미도 앞 바다에서 용오름 현상을 보았는데 우리가 기상 현상을 이해하지 못했던 시절에는 정말 용이 하늘로 승천하는 것이라고 할 수 밖에 없는 현상이었다. 환했던 날씨가 갑자기 깜깜해지면서 광풍이 몰아치고 하늘에 번개가 번쩍거렸다. 연이어 팔미도 딴 섬 부리 앞 500m 지점에서 하얀 물안개가 피어오르더니 휘말리기 시작했다. 그 회오리는 이내 새카만 하늘의 먹장구름과 맞닿았다. 곧 회오리 안으로 물기둥이 세워지고 바닷속에 있는 모든 것을 빨아 올리는 듯했다. 물론 시커먼 갯벌까지 다 빨아올렸다. 그런 현상은 30분 정도 후에 그쳤다. 그리고 언제 그런 현상이 있었느냐는 듯이 먹구름에 가려졌던 태양과 파란 하늘이 내 비추었다. 이러한 거대한 여러 현상이 삽시간에 일어났다가 사라지는 것을 본 옛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사람들이 자신이 학습한 지식으로 모든 것을 이해하려 한다. 아마 지금과 같은 기상 과학의 지식이 없다면 상상력을 동원하여 가정을 세울 것이다. 지금 생각하닌 미국의 폴리리다주나 앨리배마주에서 일어나는 토네이도와 같은 현상인 것 같다. 모든 형태의 기상이변이나 자연현상은 인간이 이해하지 못하는 곳에서 상상하고 창작되는 것일 게다. 부도 등대의 귀신 현상이나 도깨비 현상이라는 것도 이러한 기이한 자연현상을 사람들이 이해 부족으로 생겨난 것이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