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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두대간 인문기행 75화 덕유산 개똥벌레

개똥벌레

작성일 : 2025.08.31 11:09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75

덕유산 개똥벌레

 

 

아무리 우겨 봐도 어쩔 수 없네

저기 개똥 무덤이 내 집인걸

가슴을 내밀어도 친구가 없네

노래하던 새들도 멀리 날아가네

가지 마라 가지 마라 가지 말아라

나를 위해 한 번만 노래를 해 주렴

아아 외로운 밤 쓰라린 가슴 안고

오늘 밤도 그렇게 울다 잠이 든다 -신형원-

 

백두대간 덕유산은 개똥벌레 반딧불이의 메카다.

가수 신형원이 어느 날, 흔한 개똥벌레라는 노랫말로 곡을 붙여 노래를 불렀다. 이 노래로 신형원은 ‘MBC 아름다운 노래 금상을 받았고, 한국문인협회로부터 한국가요 좋은 노랫말 대상의 영예를 안았다.

신형원은 민주화를 열망하던 1980년대에 개똥벌레 같은 민중들에게 청아한 목소리로 노래를 불러 심금을 울렸다.

 

요즘 들어 여름이 시작되는 유월이 오면 무주는 반딧불이를 보러 오는 사람들로 불야성을 이룬다.

형설지공雪螢之功으로 우리에게 친숙한 반딧불이는 사람들에게 정서적 안정을 가져다주며 요즘 환경지표를 가늠하는 곤충으로 제일 먼저 떠오른다. 우리나라에서는 반딧불이를 흔히 반디, 반딧불, 개똥벌레라고 부른다.

 

반딧불이 개똥벌레가 빛을 내는 이유는 사랑을 찾아서다. 암컷은 짝을 찾기 위해 불빛을 발하고 수컷은 그 불빛을 보고 짝을 찾아 사랑을 나눈다. 뿐만 아니라 반딧불이의 불빛은 자신을 방어하고 적에게 위험을 가하는 무기이기도 하다.

한반도 백두대간에는 6월 초순부터 일찍 활동하는 운문산반딧불이그다음으로 나타나는 애반딧불이’, 한반도에서 가장 큰 종으로 늦게 나타나는 89월경 날이 어두워지면 빛을 발광하는 늦반딧불이3종을 많이 볼 수 있다.

 

개똥벌레라 불리는 반딧불이는 예전에 지천으로 널려있는 흔한 곤충이라 개똥에 이름을 붙여 흔하디흔한 벌레로 불리었다. 원래 우리말 이름은 예쁜 반디다.

개똥벌레의 고향인 전북 무주와 장수, 경북 거창과 함양에 걸쳐 있는 덕유산德裕山(1,614m)은 우리나라에서 한라산과 지리산, 설악산 다음으로, 4번째로 높은 산으로 넓고 큰 산이란 뜻으로 불렸다.

아무래도 덕유산을 제대로 즐기려면 다리품 팔아 육십령에서 백두대간을 따라 올라야 하지만, 덕유산 역시 산길은 사방 어디에서도 열려있다. 구천동 계곡을 거슬러 백련사를 지나 중봉이나 향적봉으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중봉을 거치지 않고 향적봉으로 바로 올라가도 최소 5시간 이상 걸리는 일반인들에게는 힘든 길이다.

노약자들도 정상인 향적봉 바로 아래 있는 설천봉까지는 무주리조트에서 곤돌라를 타고 올라갈 수 있다. 곤돌라를 타고 올라와 30여 분만 걸으면 힘들이지 않고 최고봉 향적봉(1,614m)에 오른다.

향적봉에서 두 팔 벌리고 사방을 둘러보면 온통 끝없는 산과 산뿐이다. 맑은 날에는 남쪽으로 백두대간을 따라 약 60km 떨어진 지리산 마루금이 희미하게 금을 긋고, 고개를 돌리면 북쪽으로 끝없는 백두대간이 소백산 태백산 넘어 아스라하다.

지리산 · 소백산 마루금과 마찬가지로 고위평탄면이 정겹다. 특히 동엽령과 향적봉 사이에 있는 덕유평전은 백두대간의 풍류를 느낄 수 있고, 걷고 있어도 걷고 싶은 길이다. 드문드문 마루금을 따라 장성처럼 서 있는 살아 천년 죽어 천년을 간다는 고사목은 덕유산 지킴이다. 겨울이면 천년을 의연하게 눈을 받치고 선 고사목들, 주목은 비틀어지고 꺾어지고 때로는 속이 모두 썩어 텅텅 비워진 몸체이지만 살아서 천년 죽어서 천년을 간다는 백두대간의 산신령을 닮은 영물이다.

여름 개똥벌레가 잠을 자는 겨울이면 덕유산은 설국이 된다. 향적봉 지킴이 고사목에 핀 눈꽃, 끝도 없이 펼쳐진 설국의 파노라마. 사방 눈 쌓인 산들이 겹치고 겹쳐 한 폭의 수묵화가 펼쳐져 있다. 향적봉에서 마루금을 따라 1.3km 떨어져 있는 중봉까지의 눈꽃산책길은 나뭇가지에 만발한 눈꽃이 하얀 사슴뿔처럼 엉키어 겨울 천상의 세계에 들어선 듯하다.

첩첩이 산과 눈 덮인 산이 파노라마를 이루고, 산들이 앞다투어 수십 겹이나 늘어서 있다. 높고 낮은 산마루가 어깨를 겯고 뻗어나간 산세가 엄숙하다 못해 장엄하다.

 

향이 쌓인 봉우리라는 뜻의 향적봉香積峰(1,614m)은 봉우리 부근에 군락을 이룬 향나무의 향기로 인해 붙여진 이름이다.

향적봉 향나무에는 · 백단白檀 · 침향沈香나무 ·정향丁香나무 등 나무에서 자연 발생하는 향내를 예로부터 부정을 제거하고 정신을 맑게 하여 하늘과 통한다고 여겼다. 우리 조상들은 제천의식 등 모든 제사 의식의 맨 먼저 향불을 피웠는데, 이것을 분향焚香이라고 하며 지금도 행한다.

환웅이 신단수 아래서 처음 제사를 올릴 때 풍백 우사 운사 삼신이 쑥을 태워 잡귀를 쫓고 정신을 맑게 한 것에서도 볼 수 있다.

옛사람들은 심신수양의 방법으로 방 안에 향불을 피우기도 하여, ‘분향묵좌焚香默坐하기도 했다.

불가에서는 계향戒香· 정향定香· 혜향慧香· 해탈향解脫香· 해탈지견향解脫知見香 오분향으로 시작하는 예불을 먼저 올린다.

향적봉 향내를 덕유산 개똥벌레가 먼저 맡고 모여 자리를 잡은 듯하다.

 

옛날 신라와 백제를 구분 짓는 나제통문에서 덕유산 허리춤에 있는 백련사까지 70(28km)리의 굽어진 계곡 일대를 구천동九千洞이라 부른다. 구천동이라는 이름의 유래에 대해서는 성인군자 구천 인이 모여 살아, 구천인의 둔지라는 뜻에서 구천둔九千屯이라 하였다가 구천동으로 개칭됐단다.

얼마 전까지 덕유산 무주 구천동이라면 심산유곡의 대명사로 여겨진 적이 있다. 그만큼 구천동 골짜기가 구불구불한 것을 두고 빗대어 한 말이다. 장장 70리에 걸쳐 유유히 흐르는 계곡물은 곳곳에서 기암에 부딪히고 암반을 미끄러지는가 하면 어느 때는 폭포가 되고, 빨리 치닫다가 고요한 담에 모이기도 했다.

구천동 70리 계곡물은 여름에도 손이 시릴 정도로 차다. 걸터앉기 좋은 너른 바위가 많고 물이 차가워 탁족을 즐기기에 그만이다. 보는 사람이 없다면 얼른 홀랑 벗고 알탕이라도 하고 싶은 마음이 꿀떡 같지만, 철없는 꼬맹이도 아니고. 그냥 발만 담근다.

 

나제통문에서 시작해 마지막 덕유산 향적봉 정상까지 이어지는 구천동 33경은 숱한 전설과 지명의 유래가 한여름 밤 그 옛날 할아버지께서 해 주시든 전설 따라 삼천리를 듣는 듯하다.

나제통문을 지나 올라가면 구천동 3대 절경 수성대를 맞이한다. 서벽정 서쪽에 우뚝 솟은 기암이 배의 돛대 모양을 한 절경으로 구한말의 학자 연제 송병선이 이곳에 은거하며 서벽정을 지어 호를 동방일사東方一士라 하고 푸른 바위의 깨끗함과 의젓함을 들어 일사대라 이름 지었다고 한다.

칠불산七佛山 호랑이가 산신령 심부름을 가다가 구천동 계곡 경치에 반해 한눈을 팔다 미끄러져 낙상했다는 전설이 내려오는 호탄암에는 가끔 호랑이 우는 소리가 들리는 듯해 귀를 세워 본다.

급류가 바위를 감싸고 돌아 소가 되고 깎이고 둥근 산신령 모습을 한 큰 바위 위에 늙은 소나무 하나가 천년을 버티고 섰다. 바위 이름은 천송암으로 신라시대의 일지 대사가 흙이라고는 없는 바위 위에 소나무 가지를 꽂은 것이 지금까지 초연하게 살아 구천동을 벗하고 있다.

속세와 인연을 끊는다는 이속대를 지나면 고찰 백련사가 나온다. 통일신라 신문왕 때 백련 스님이 초막을 짓고 수도하던 중 흰 연꽃이 솟아 나온 곳에 절을 지었다고 한다.

합장하고 관세음보살을 외우며 지극정성으로 백련사 계단을 7번 오르내리면 한가지 소원을 이룬다고 한다.

구천동 계곡에는 예전에 십여 개의 사찰이 있었다고 하나 모두 없어지고 지금은 오직 백련사만이 남아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