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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십령
작성일 : 2025.08.31 11:06 작성자 : 김하기
백두대간 인문기행
육십령
꼬불꼬불 고갯길을 넘어가는 구름아
민초의 애환 서린 험한 준령 고개여
장수 육십리 함안 육십리
굽이굽이 육십령
야속한 이 세월도 쉬어가자
육십령 고개 -정동원의 육십령-
한반도 영호남을 연결하는 백두대간 육십령은 덕유산과 지리산을 잇는 고개로 높이가 무려 어지간한 산마루만 한 734m다. 조령(643m), 죽령(689m)과 함께 영남의 3대 고개로 통한다.
옛날 영남에서 한양으로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갈 때 낮고 안전한 추풍령과 죽령은 피해 육십령을 넘었다는데, “추풍령으로 가면 추풍낙엽처럼 과거에 떨어지고, 죽령으로 가면 죽죽 미끄러진다는 속설 때문이다." 높고 험한 육십령을 넘어 전라도 땅을 거쳐 한양으로 갔다는 경상도 선비들의 애틋한 과거 장원의 열망을 헤아릴 수 있는 고갯길이다.
육십현 · 육복치라고도 불렸든 육십령 명칭에는 통상 세 가지 설이 전해지고 있다. 첫 번째는 함양군의 안의면과 장수군의 읍치에서 고개까지 거리가 60리 (약 23㎞)라는 설이고, 두 번째는 60개의 작은 굽이를 넘고 또 넘어야 육십령에 이른다는 뜻에서 유래하였다는 말이다. 세 번째는 예로부터 밤낮으로 도적 떼가 들끓어서 장정 60여 명이 함께 무리를 지어 고개를 넘어가야 도적의 출범을 막을 수 있기 때문에 육십령이라 불렀다는 이야기다.
예로부터 육십령 일대는 원래 가야 주조마국走漕馬國이란 작은 나라가 있었다. 주조마국은 백제와도 가깝고 사이가 좋아, 육십령을 통해 백제와 교류하며 평화롭게 산 듯 여겨진다. 그러나 신라 진흥왕이 영토 확장으로 주조마국을 점령 합병하자, 육십령은 졸지에 백제와 신라의 국경선이 되고 말았다. 백제와 신라가 사이가 좋을 때는 문제가 없는데, 사이가 나빠지면 육십령 일대는 도적들이 고개를 오가는 사람들을 약탈하는 일이 자주 발생했다. 백제가 멸망하고 통일신라가 들어선 이후에도 험한 고갯길을 오가는 사람을 상대로 약탈하는 도적 떼가 들끓는 악명높은 고개가 되고 말았다.
육십령 일대의 도적은 나라가 안정된 고려 시대 들어서 좀 나아지는 듯했으나, 몽골의 침략으로 백성들의 삶이 궁핍해지면서 이 일대에서 또다시 도적들이 기승을 부렸다. 조선 시대에 들어와서도 임진왜란 등 변란이 일어나면 도적들이 호구지책으로 설치기 시작했다.
동족상잔 6.25 전쟁, UN군이 인천상륙작전으로 인민군의 퇴로를 끊자, 인민군이 북으로 퇴각하면서 우익인사 300여 명을 북으로 강제 압송하다, 전세가 불리해지자 고갯마루에서 사살한 곳이다.
지리산 · 백운산 · 덕유산 · 회문산 · 불갑산 일대의 험준한 산악지대에 거점을 둔 남부군 빨치산들은 중공군이 참전하자, 다시 6·25전쟁 초기의 남침과 민족 해방이란 명분으로 산간지방 주민을 회유했고 국군과 유엔군의 후방을 교란했다. 국군은 육십령을 사이에 두고 지리산 덕유산 남부군 빨치산 토벌작전을 대대적으로 소탕했다. 육군 제5사단의 지리산지구 빨치산 토벌작전에서 밀려온 남부근 이현상 부대와 덕유산에서 넘어온 빨치산들과 일대 교전을 벌여, 육군 신창석 소령 등 55명이 전사했다.
아, 동족상잔 6.25 누구를 위한 전쟁이었나?
삼가 순국선열과 이름 모를 민간인 그리고 빨치산의 무모한 죽음에 애도를 표한다.
육십령은 한반도 백두대간 마루금 본줄기에 있다. 백두대간은 함양군 서쪽의 경계를 이루며 남북방향으로 이어지고 있는데 육십령을 기준으로 북쪽으로는 산줄기가 할미봉을 지나 남덕유산으로 이어지고 남쪽으로는 다시 구시봉을 지나 영취산과 장안산으로 이어져 지리산에 다다른다.
한반도 백두대간을 종주하는 산악인에게 쉼터이자 필요한 에너지와 식량을 보충하는 요충지이기도 하다. 필자의 경험으로 한반도의 악산은 다 올라서 봤지만, 육십령을 넘어 삼도봉으로 가는 길이 만만치 않았다는 기억이 남아 있다.
한반도 백두대간과 13정맥은 산은 물을 가르지 않고 물은 산을 넘지 않는다는 대원칙에 따라, 육십령 마루금은 남덕유산(1,507m)과 그 남쪽의 백운산(1,279m)과 연결된다. 육십령 서쪽으로는 평지천을 거쳐 명덕천으로 연결되어 금강의 최상류 계곡으로 흐른다. 동쪽으로는 지천인 화림동계곡을 거쳐 낙동강의 지류인 남강南江으로 흘러 들어간다.
그럼, 화림동 계곡의 농월정弄月亭에서 잠시 쉬었다 가자, 농월정은 조선 선조 때 관찰사와 예조참판을 지낸 지족당 박명부가 은퇴한 뒤 낙향하여 지은 정자다.
박명부는 광해군 때 영창대군의 죽음과 인목대비의 유배에 대한 부당함을 직간하다 파직되었다.
농월정이라는 이름은 넓은 너럭바위 위에서 ‘달을 희롱한다’는 뜻으로 밤이면 달빛이 물 아래로 흘러 장관이다. 농월정 정자 앞에 넓게 자리하고 있는 반석을 달바위라고 부르고, 바위 둘레가 정자를 중심으로 1,000여 평이나 된다.
박명부는 말년에는 임금이 불러도 벼슬길에 나가지 않고 농월정에서 후학을 가르치며 유유자적했다.
농월정 정자 앞 오른쪽 암반에 박명부가 지팡이를 짚고 노닐던 곳이라는 뜻의 지족당장구지소知足堂杖屨之所라는 글자를 후손들이 박명부의 뜻을 기리며 힘있게 새겨 놓았다.
달 밝은 고요한 암반 위의 냇물에 비친 달빛은 한 잔의 술로 달을 희롱한다는 선비들의 풍류와 멋을 함축하고 있다.
육십령 고갯길에는 한 많은 임진왜란 의기 논개論介의 묘가 금당리 앞산에 있다.
조선의 국운 기울던 1898년 가을, 매천 황현黃玹은 육십령 고개를 넘어 논개의 비석 앞에서 이렇게 울분을 토했다.
신내 마루는 냇물이 지금도 향기로워
깨끗이 세수하고 의낭에게 절하네
향초 같은 몸으로 어찌 적장을 죽였을까
낭군이 이미 항오에 들기했기 때문이다
장계의 노인들은 제 고향 출신임을 자랑하고
촉석루 단청에는 나라위한 죽음을 제사하네
생각해 보면 선조 때에는 인물이 많았는 지라
기적에도 한 줄기 빛이 천추에 발하였네
이번엔 만해 한용운의 ”논개의 애인이 되어“라고 외침을 한번 들어보자.
날과 밤으로 흐르고 흐르는 남강은 가지 않습니다.
바람과 비에 우두커니 섰는 촉석루는 살 같은 광음을 따라서 달음질칩니다.
논개여, 나에게 울음과 웃음을 동시에 주는 사랑하는 논개여.
그대는 조선의 무덤 가운데 피었던 좋은 꽃의 하나이다. 그래서 그 향기는 썩지 않는다.
나는 시인으로 그대의 애인이 되었노라.
그대는 어디 있느뇨. 죽지 않은 그대가 이 세상에는 없고나.
나는 황금의 칼에 베어진 꽃과 같이 향기롭고 애처로운 그대의 당년當年을 회상回想한다.
술 향기에 목맺힌 고요한 노래는 옥獄에 묻힌 썩은 칼을 울렸다.
춤추는 소매를 안고 도는 무서운 찬바람은 귀신 나라의 꽃수풀을 거쳐서 떨어지는 해를 얼렸다.
가냘핀 그대의 마음은 비록 침착하였지만 떨리는 것보다도 더욱 무서웠다.
아름답고 무독無毒한 그대의 눈은 비록 웃었지만 우는 것보다도 더욱 슬펐다.
붉은 듯하다가 푸르고 푸른 듯하다가 희어지며 가늘게 떨리는 그대의 입술은 웃음의 조운朝雲이냐 울음의 모우暮雨이냐 새벽달의 비밀이냐 이슬꽃의 상징象徵이냐.
삐비 같은 그대의 손에 꺾이우지 못한 낙화대落花臺의 남은 꽃은 부끄럼에 취醉하여 얼굴이 붉었다.
옥같은 그대의 발꿈치에 밟히운 강 언덕의 묵은 이끼는 교긍驕矜에 넘쳐서 푸른 사롱 紗籠으로 자기의 제명題名을 가리었다.
아아, 나는 그대도 없는 빈 무덤 같은 집을 그대의 집이라고 부릅니다.
만일 이름뿐이나마 그대의 집도 없으면 그대의 이름을 불러 볼 기회가 없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피어 있는 꽃을 꺾으려면 나의 창자가 먼저 꺾어지는 까닭입니다.
나는 꽃을 사랑합니다마는 그대의 집에 꽃을 심을 수는 없습니다.
그대의 집에 꽃을 심으려면 나의 가슴에 가시가 먼저 심어지는 까닭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금석(金石)같은 굳은 언약을 저버린 것은 그대가 아니요 나입니다.
서하여요 논개여, 쓸쓸하고 호젓한 잠자리에 외로이 누워서 끼친 한恨에 울고 있는 것은 내가 아니요 그대입니다.
나의 가슴에 '사랑'의 글자를 황금으로 새겨서 그대의 사당에 기념비를 세운들 그대에게 무슨 위로가 되오리까.
나의 노래에 '눈물'의 곡조를 낙인으로 찍어서 그대의 사당에 제종을 울린대도 나에게 무슨 속죄가 되오리까.
나는 다만 그대의 유언대로 그대에게 다하지 못한 사랑을 영원히 다른 여자에게 주지 아니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대의 얼굴과 같이 잊을 수가 없는 맹세입니다.
용서하여요 논개여, 그대가 용서하면 나의 죄는 신에게 참회를 아니한대도 사라지겠습니다.
천추에 죽지 않는 논개여,
하루도 살 수 없는 논개여,
그대를 사랑하는 나의 마음이 얼마나 즐거우며 얼마나 슬프겠는가.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