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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 22.머무는 노을 속에서

작성일 : 2025.08.25 05:23

22) 머무는 노을 속에서

/조경호

 

내가 부도 등대에 들어오기 전, 인천에 있을 때, 나의 전임자인 장 등대장(장천홍)이 나에게 몇 번 부탁한 것이 있었다. 그는 부도 등대장을 끝으로 등대 생활을 그만두기로 한 사람이다. 자신의 아들과 아들 친구들이 여름 방학 때 부도 등대로 놀러 가려고 한다는 것이다.

 

오래전부터 계획해 놓은 것이기에 자신은 퇴임하지만 아들의 부탁을 들어주고 싶다는 것이다. 차마 거절할 수 없어 승낙하고 말았는데, 그들이 여름 방학 때 들어닥친 것이다. 승봉도로 오는 여객선을 타고 와서 승봉도에서 발동기 어선을 타고 이곳으로 왔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작은 섬에 너무 많이 온 것이다. 스무대여섯 살이나 되는 남녀가 18명이나 되었다.

 

속으로 전임자를 원망했다. 자신도 이곳에 근무하여 보아 잘 알 것인데 이렇게 많은 사람들을 보낸 것인가. 물도 부족하고, 잠자리도 부족하다. 그리고 여름철이면 등대 가족들은 늘어난다. 아이들이 방학하여 아내와 함께 등대로 찾아오기 때문이다.

 

부도에는 흉가로 비워있는 관사가 있었다. 문은 다 떼어 냈지만, 이슬은 피할 수 있고 화장실은 사용할 수 있어 그곳과 사무실을 그들의 숙소로 내주었다.

 

젊은 사내들이니 통제 불능이었다. 그래서 장 대장 아들을 불러 단단히 주의 주면서 부탁을 했으나 일이 터지고 말았다. 아이들이 술을 먹고 바닷물 속으로 뛰어들다가 강한 조류에 휘말린 것이다.

 

그것을 장 대장 아들이 구하겠다고 강한 조류가 흐르는 바다로 들어간 것이다. 그는 경기도 수영 대표선수였다. 그러나 부도 등대 앞 바다의 조류 속도는 약 5 놋트 정도 된다. 이런 조류에 휘말리면, 인간의 수영 실력으로는 도저히 헤쳐 나올 수 없다. 셋째 아이가 급히 달려와 이런 사실을 알려주었다.

 

나는 올 것이 왔구나했다. 등대장으로 부임하자마자, ‘인명사고가 나겠구나도깨비장난인가 하는 생각도 들었다.

 

급히 사무실에 나와 바다를 보았다. 그들은 거센 조류 속에 빠져 있는 것이다. 그들은 조류 속을 빠져나오지 못할 것이다. 물때는 사리 때이고 밀물이었다.

그리고 조류의 물골은 서쪽에 들어오는 조류가 부도 남쪽의 바위 절벽에 부딪히면 휘돌아서 백암 등표 쪽으로 해서 자월도 쪽으로 빠지는 물길이다.

 

그리고 두 녀석들은 부도에 너무 멀리 떨어져 나가 있었다. 한 녀석은 이미 보이지 않고 장 대장 아들은 조류 속에 떠 있는 것이 콩알만 하게 보였다. 눈에 보이지 않는 녀석은 큰 타이어 투뷰를 타고 있었다는 것이었고, 장 대장 아들은 그 녀석을 구할려고 물속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이다.

 

튜브를 탄 녀석은 튜브만 놓치지 않으면 살 수 있을 것이다. 장 대장 아들이 문제였다. 제아무리 수영선수에 도사급을 더 붙여도 바다의 물살에는 천하장사가 없다. 여름이라고 하지만 당장의 문제는 물속에서 체온이 떨어져 저체온증으로 사망할 수가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 문제는 구해낼 희망이 없었다는 것이다. 망망한 바다에는 배라곤 볼 수 없다.

 

그러나 이때 풍도에서 배 한 척이 바다로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러나 거리가 너무 멀었으나, 희망을 걸 수밖에 없어 무신호를 불기 시작했다.

 

하늘이 저들의 목숨을 구하려 한다면 이 무신호 소리를 듣고 등대 쪽으로 뱃머리를 돌릴 것이라, 생각했다. 하지만 배가 도착한다고 해도 족히 1시간은 걸릴 거리였다. 등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은 그 배에 희망을 걸고 있었다.

 

런데 셋째 아이가 이런 이야기를 했다.

아부지 공기베개를 물 위로 띄워 보낼까

 

일리가 있었다. 이 녀석은 어느새 지가 베고 자던 하얀색 공기베개를 가지고 왔다.’ 녀석이 튜브 꼭지에 입을 대고 튜브를 불기 시작했다. 통통하게 공기가 들어간 것을 급하게 조류 속으로 띄웠다. 베개 튜브는 바람에 밀리면서 조류를 타고 장 대장 아들이 떠 있는 곳까지 쉽게 갈 것 같았다. 그런 데 문제가 있었다. 해가 떨어지는 것이었다. 무신호는 벌건 석양 속에서 계속 빵-- 거리며 울어댔다.

 

-환호성을 지르며 여자아이들이 손뼉을 치고 있었다. 횐 베개 튜부가 장 대장 아들 쪽으로 거의 접근하고 있고 풍도에서 나타난 배도 우리 등대를 향해 오고 있기 때문이었다. ‘장 대장 아들이 사력을 다해 저 튜브를 잡기만 한다면 물속에서 몇 시간은 더 버틸 수 있으리라이런 생각을 하고 있는데 풍도에서 부도로 오지 않고 흰 베개가 떠가는 쪽으로 뱃머리를 돌리고 있었다. 참 다행이라 생각했다. 이 섬에 도착해서 다시 장 대장 아들이 빠져 있는 바다로 향했다면 해가 떨어져 어둠 속에서 물 위에 머리만 내놓고 있는 사람을 찾기란 불가능 할 것이다.

 

흰 튜브 쪽으로 가던 배가 장 대장 아들을 발견한 모양이었다. 조금 후 장 대장 아들을 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배는 부도로 오지 않고 곧장 그 물길을 따라가는 것을 보니 장 대장 아들이 아직 정신을 잃지 않고 있었구나하는 생각을 했다. 타이어 튜브를 타고 떠내려간 녀석을 건지러 가는 것 같았다. 문제는 어둠이었다. 이제 해는 넘어가고 붉은 노을만 남아 있었다. 저 노을이 다 가시기전에 그 녀석을 구해야 하는데·····, 기도 하는 수밖에 없었다.

 

풍도에서 온 배는 두 녀석을 구해서 부도로 왔다. 아내가 담요를 가지 와 새파랗게 질려서 와들와들 떨고 있는 녀석들을 감싸서 관사 안방 아랫목에 누이고 불을 때 주었다. 그 녀석들은 2시간 반 만에 일어났으며, 살려 준 은혜를 잊지 않겠다는 말을 연신 쏟아냈다. 그러나 뱃사람들에게는 그들만의 룰이 따로 있었다.

 

어선의 선장은 처음에는 안개도 끼지 않은 날 등대에서 무신호를 불어 무슨 일이 있나 하고 들리려 했는데, 오다 보니 흰 튜브가 떠 있어 등대에서 이것을 건져 오라고 하는 것인가 하고 흰 튜브 쪽으로 가보니 사람이 있어 구조를 하였다고 한다.

 

고기잡이배가 바다에 빠진 사람을 구하게 되면 그 해는 흉어라고 했다. 전혀 고기가 잡히지 않는다는 것이다. 그래서 구조된 사람은 한 해 잡을 고기값을 물어야 한다는 것이다.

 

장 대장 아들과 친구들은 자신들의 연락처를 주고 정말 올해 고기가 안 잡히면 자신들이 고기값을 물겠다고 약속을 했었다. 그리고 이듬해 봄, 풍도의 고기잡이배가 부도에 왔다. 정말 작년에는 고기를 전혀 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런일은 도깨비나 귀신의 장난이 아니라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