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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8.18 02:19
21) 도깨비 섬 부도 등대
/조경호
1968년 3월 부도 등대 등대장으로 발령을 받아 부임하였다. 부도 등대는 인천광역시 옹진군 영흥면 외리 산 263번지에 물오리 형상으로 떠 있는 무인도에 위치하는 유인 등대이다. 그래서 ‘오리’ 부(鳧)자를 쓴 것이다. 섬 정상은 표고 26m 밖에 되지 않고 면적도 아주 작은 섬이다.
1904년 4월 건립 점등한 등탑은 백색 원형 석조(화강암), 높이 12m이며, 제4등급 푸레넬식 프리즘 렌즈 중추 회전식 등명기, 석유 백열등으로 불을 밝히고 등질은 백색 40초에 4섬광, 광달거리는 17마일이다. 건립 초기부터 등대원이 상주 근무하는 중요한 등대로 현존하는 우리나라 유인등대 중 화강암으로 등탑을 건립한 유일한 등대이다. ( 무인등대는 1903년 : 북장서 등표, 백암등표 1909년 군산항 갑호 등표 등이 석조로 건축) 콘크리트는 수명이 100년 정도여서 국내의 다른 등대는 등탑을 새로 건축하고 있다. 부도 등대만은 100년이 넘은 상태에서도 조금도 기울지 않고 온전하게 원형을 보존하여 운영되고 있다.
부도 등대 부근은 조류가 세기로 유명한 해역으로 인천항을 입항하는 선박은 부도 등대를 깃 점으로 침로를 바꾸어 동수도로 진입하여야 하는 운항에 어려운 지점이며, 특히 등대 서북쪽은 항로가 협소하고 대형 선박에 위험이 되는 암초가 있으며, 이를 피하기 위하여 조류의 방향과 속도를 확인하지 못하고 부도 쪽으로 붙여 운항하다가 섬에 좌초하는 사고가 가끔 발생하기도 한다.
부도 해안에는 모래가 없고 자갈만 있다. 모래가 없다는 것은 조류나 해류가 얼마나 세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섬의 북쪽 선착장 부근의 몽돌은 아주 크고 둥근 돌밭을 이루고 남서쪽은 암벽이 직각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서쪽 절벽 밑으로 해식 동굴이 있다. 현재 조류신호 전광표지판(2005년 우리나라 최초 설치)이 세워진 바로 밑이다.
부도 등대섬 동쪽으로는 무인도인 작은 섬들이 있고 동남쪽으로 영흥도가 있으며, 북서쪽으로 승봉도가 있다. 승봉도에서 작은 거룻배로 물 때를 따라 노를 저어 오면 1시간 정도 걸린다. 남쪽으로는 풍도가 있다. 영흥도, 승봉도, 풍도는 오래전부터 사람들이 살아온 섬들이며, 풍도가 유명해진 것은 청일전쟁(1894년 6월 ∼ 1895년 4월) 때일 것이다. 청나라 유군 병력을 싣고 우리나라로 들어오던 청나라 함선을 일본 함선이 풍도 앞바다에서 공격해 청나라 군사 1,200여명을 익사 시켰다고 한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부도라는 섬이 도깨비섬이라 불렸다는 점이다. 아직 등대가 설립되지 않았을 당시에 이 섬을 그렇게 부르기도 했고 피염도(血鹽島)라는 이름으로 불렀다는 것이 이상하다. 무엇인가 호기심을 자극하는 부분이다.
작은 섬 등대가 세워지지 않았을 땐 누구 하나 발길을 주지 않았을 암초 같은 섬에 범상치 않은 이름이 붙어 있는 것은 뭘까‽
부도에서 가장 가까운 승봉도 사람들은 이 섬을 도깨비섬이라 불렀으며, 언제부터인지는 모르겠다. 피염도라는 뜻은 많은 도깨비를 쫓아내기 위해 도깨비가 제일 싫어하는 ‘피’와 ‘소금’을 섞는다는 의미로 ‘피염도’라 불렀다는 것이다.
이 작은 섬에는 물도 나지 않고 해산물도 나지 않는다. 작물도 가꿀 만한 땅이 없는 섬이다. 그래서 부도를 ‘피염도’니 도깨비섬이니 했던 것은 청일전쟁과 관계가 있지 않을까 생각한다.
청일전쟁에서 격침된 청나라 함선은 곧바로 침몰 된 것이 아닌 것 같다. 나의 아버님의 얘기로는 물에 흠뻑 젖은 청나라 군인들이 줄지어 나의 고향인 충남 태안군 원북면 이공리에 있던 아버님 집 앞을 지나갔다는 것이다. 그러니까 풍도 해상 전투 중 격침되는 함선에서 작은 선박으로 탈출을 시도했거나 피격받은 청나라 함선에서 탈출한 청나라 군인이 있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풍도에서 가장 가까운 부도에도 탈출한 청나라 군인들이 상륙했을 가능성이 크다.
어쨌거나 승봉도 사람들도 이 부도에서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이야기를 들었다는 것이다. 아마 그들도 선대들로부터 들은 이야기일 것이다.
이 섬에서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는 것이 사실이라면 개연성은 청일전쟁 당시에 이 섬으로 숨어들어 온 청나라 군인들밖에 없을 것이다. 사람이 살지 못하는 작은 무인도에서 많은 사람이 죽을 까닭이 없기 때문이다.
일본인들은 격침된 청나라 함선에서 탈출을 시도한 청나라 군인들에 대한 수색작업을 펼쳤을 것이다. 부도가 풍도에서 가장 가까운 섬이고 해류 또한 풍도에서 부도 쪽으로 흐르기 때문이다. 이 섬에 청나라 군인들이 있었다면, 일본군에게 발각되었을 것이다. 이 섬에는 숨을 곳이 전혀없다. 다만 있다면 서쪽 절벽 밑에 있는 해식 동굴이다. 그러나 만약 이곳으로 숨었다면 몰살당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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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직으로 된 절벽 밑으로 길게 홈처럼 패인 암벽, 길이는 약 20m, 폭 3m 정도이다. 암벽의 골은 수도처럼 물이 들어오는 깊숙하게 패인 직벽이기 때문이다. 임 암벽의 골에 물이 빠지면 바닥이 들어나며, 물이 들어오면 두 암벽 사이에 폭 3m 정도의 골짜기에 물이 차서 넘실거린다. 그 골짜기는 섬 중앙으로 파고 들어 와서 섬 중앙을 직선으로 뚫린 동굴이 있다. 이 동굴은 깊이 5m, 처정 높이 3m 정도이다. 그리고 밑으로는 자갈과 모래로 채워져 있어 더 이상 동굴이 뚫린 것을 확인할 수 없으나, 밀물 때는 이 동굴 아래로 바닷물이 들어가는 소리가 난다. 동굴에 바닷물이 들어와 찰 때는 자갈로 메워진 구멍 속으로 바닷물 들어가는 소리가 요란하다.
묘한 것은 이 동굴이 도깨비굴이라는 것이다. 추측해보면 혹시 청나라 군인들이 이곳에 숨어 있다가 수장되었는지, 이 섬에 있다가 일본군에게 잡혀 몰살당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다만 전해오는 이야기와 이 섬에 와서 섬을 관찰해보면 내 생각이 개연성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것이다.
내가 부도 등대 등대장으로 부임 직전에 인천 해운국에는 부도 등대 등대원들의 청원서가 접수되었으며, 청원서는 등대원들이 쓴 것이다. 청원서의 내용은 “부도 등대에 귀신이 출몰하니 대책을 세워달라, 이상한 허상이 보여서 등대에 근무하기가 어렵다. 다른 등대로 보내주던지 굿이라도 해 달라”는 귀신과 관련된 내용들이다. 물론 거절되었다.
그러나 전임자들의 청원서에 구체적인 정황으로는 “부도 등대에서는 해만 떨어지면 등대원들은 각자 숙소로 들어가 해 뜨는 아침까지 나오지 않는다. 부도 등대는 면적이 작은 섬으로 섬의 어디 있든 크게 소리 내어 부르면 다 들린다. 섬이 작아 빗물을 여과해서 받아 놓는 물탱크가 다른 등대보다 많으며, 등대장 숙소에는 두 개의 물탱크가 흰 담장 안에 있다. 잠을 자려고 불을 끄면 물탱크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서 부엌문을 열고 물통에다 밤새 길어 나르는 물소리와 발자국 소리, 부엌문을 여는 소리, 우물에서 두레박으로 물을 퍼내는 소리 등이 요란하다”는 것 등이다.
또 한 사례는 이 섬에는 낮에도 귀신이 나온다고 했다. 등대 앞 선착장 부근에서 등대장 부인이 굴을 따고 있는데 자갈을 밟고 오는 소리가 있어 굴을 따다 말고 누군가 보려고 고개를 돌리려 했다는 것이다. 그때 남색 치마가 자신의 몸을 슬쩍 스치고 지나가는 모르는 여자가 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혹시 배가 왔나 하고 선착장 콘크리트를 보니 배는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녀의 얼굴을 보려고 빠른 걸음으로 쫓아가니까 그녀도 걸음이 빨라지면서 절벽 밑으로 돌아 들어가면서 고개를 돌려 자신을 보며, 씨-익하고 웃더라는 것이다. 그곳은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곳이기에 관사로 올라와서 배가 접안 했었냐고 등대 가족들에게 물어보니 그런 일이 없었다고 했다.
이러한 여러 이상한 이유에서 부도 등대에 어떤 조치를 취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런 일 말고도 부도 등대는 1903년 공사 중 공사감독으로 부도에 와 있던 일본인이 사망(병사)하여 선착장에서 등대 오르는 초입에 묻었다고(현재도 등대 표지석 뒤에 묘가 있음) 하며, 등대원과 가족 3명이 자살했고, 1명은 병사, 두 가족은 치정에 얽혀 부부 싸움으로 이혼하며 등대를 떠났다고 한다. 그리고 그들이 살던 관사(등대 입구 계단 왼쪽에 떨어져 있는 독립가옥)는 흉가로 남아 있다.
내가 이러한 부도 등대로 받았다고 하니 어머니가 걱정하면서 아끼던 은가락지를 주면서 몸에 지니라고 했다. 은붙이는 벽사의 의미가 있기 때문이었다. 4월에 등대로 부임하나 나와 동갑인 김영식씨가 이곳에 잘 오셨다면서 이곳의 귀신을 어떻게 좀 없애 보자는 것이었다. 그는 서울 태생으로 덕수상고를 나온 인재였다. 울릉도 등대에 근무하다가 인천 해운국 관내 등대로 발령받아 온 사람이다.
그는 자신도 그런 미신을 믿지는 않는데, 이곳에 오니 정말 이상하다고 하면서, 귀신이 나온다는 많은 사례를 이야기했다.
“아니 알 만큼 아는 사람이 그런 것을 믿소”
“아니요, 내 눈으로 보았다니까”
“그러면, 그 귀신이 등댓불을 끄거나, 당신을 어떻게 헤코지 하던가”
“어떻게 하지는 않지”
“그럼 됐지 뭘”
“혼자 있어 보시오, 잠이 오는가”
물론 잠이 오겠는가. 그런데 좀 이상한 것은 있었다. 바람이 전혀 없는 날인데, 밤 12시 가까이 되니 창문을 두드리거나 흔드는 소리가 났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서쪽 창문에서만 그런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물 푸는 소리나, 부엌문을 여는 소리는 나지 않았다.
정말 귀신이 있다면, 나를 만나러 올 것이 아니겠는가. 그리고 나는 밤에도 숙소 밖으로 나가 등댓불도 관찰하고 부도 앞 바다에서 반짝이는 백암등표도 관찰했다. 내가 부임해서 밤에도 사무실로 나가서 일도 보고 밖에 나와 바닷바람을 쐬고 있으면, 김씨나 이씨도 밖으로 나와 이야기를 나누고 밤늦게 잠자리에 들게 되었다.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귀신 이야기는 사라졌다. 나는 부도 등대에서 3년 3개월 근무하였지만, 귀신이나 도깨비를 보지 못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