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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 연재> 20. 서해에서 참고래의 행방 /조경호

작성일 : 2025.08.11 01:01

 

20) 서해에서 참고래의 행방

 

참고래(긴수염고래)는 수명이 100년 이상이요, 성체의 길이는 25m를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서해에서 고래잡이가 종식했을 때는 일제강점기였다. 일본인들은 대청도에 포경선을 상주시켜 포경사업을 했다. 그러나 마지막으로 참고래를 잡았다는 기록은 대청도 도지(島誌)의 사진과 기록을 보면 1932년에 30m 정도의 참고래를 잡은 것이 마지막이었다.

 

그런데 1964년이었을 것이다. 인천에서 온 저인망 어선에 참고래가 걸려들어 인천항 하인천 수협 공판장에서 25m 크기의 참고래 해체 작업을 한 적이 있다. 아마 그 당시 일간지에도 기사화되었으며, 그해 선미도 부근 해안에도 참고래 한 마리가 떠밀린 것이었다. 아마 태풍 헤렌의 짓일 것이다.

 

무척 고약한 냄새가 서풍이 불면 솔솔 서쪽 바닷가에서 풍겨왔다. 그럴 때마다 까마귀가 등탑 위에서 -악 까-거렸다. 까마귀가 자꾸 울어대면 이 선미도에 무슨 일이 일어났다는 것을 암시한다.

 

그래서 그 정체를 확인하기 위하여 등대장 김득주씨와 함께 그 해안가를 둘러보러 갔다. 그 해안가로 가기 위해서는 동네로 가야 했으며, 동네 사람들에게 서풍이 불면 썩은 악취가 나지 않냐고 물어보았다. 그러나 동네에서는 그런 냄새를 맡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래서 등대 쪽에서는 동네 서쪽 해변에서 심하게 냄새가 풍겨와 동네 서쪽 해변을 둘러보러 왔다고 했다.

 

이때 서쪽 해변으로 노씨가 안내하겠다고 자청해서 나섰다. 동네는 동쪽 해변으로 오목하게 파인 분지 형태여서 서쪽에서 풍겨오는 냄새를 맡지 못하였을 것이라 생각했다.

 

노씨가 안내하는 서쪽 해변으로 발길을 옮겼다. 셋째 아이와 낚시를 한 서쪽은 등성이 하나를 더 넘어야 했다. 서쪽 해변으로 내려와서 북쪽으로 바위 사이를 헤집고 한참을 북쪽으로 발걸음을 옮겨 더 전진하니 악취가 풍겨왔다.

 

마음이 급해졌다. 무엇일까? 잰걸음으로 발걸음을 옮기기 시작했다. 긴 담벼락 같은 암벽을 돌아 들어가니까 한 30m 정도 될 것 같은 몽돌 해안에 등이 시커먼 것이 꽉 들어차 있었다.

쇠파리, 날파리, 등애 등 온갖 날 벌래들이 들끌었다. , 이 냄새, 고약한 정도가 아니라 정신을 잃을 것 같고 눈에서는 눈물이 다 났다.

 

참고래였다. 아마 이번 태풍에 떠밀렸던 것 같았다. 발견자는 노씨였다.

처음에는 살아 있다고 했으나 너무 커서 어떻게 해볼 수도 없고 해서 그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점점 물이 들어오는 물때를 만나서 밀물에 밀려 나가지 않고 자갈밭에 걸려 있다가 이 모양이 되었다고 했다.

 

내 생각에 큰 사리 때의 밀물을 기다려 보아야 할것 같았다. 큰 사리의 밀물에 떠내려가면 다행이고 그렇지 못하면 내년 여름까지 썩은 냄새로 고생할 것 같았다. 그리고 9월달 큰사리의 밀물에 참고래의 사체가 떠내려갔다.

 

인간의 욕심이 지나치면 재앙이 된다는 말은 이런 것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선미도 동네에는 덕적도로 노를 저어가는 나룻배가 있었다. 그 나룻배를 두 사람이 열심히 저으면 30분 후면 덕적도 북리 선착장에 닿을 수 있다.

 

아마 발견 즉시 덕적도 어촌계에 신고하였으면 동네 사람들은 고래를 경매에 넘길 수 있었을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태풍의 너울이 잠잠해지길 기다려야 했을 것이다. 어쨌든 이 참고래 이후 서해에서 참고래를 발견했다는 이야기를 들어보지 못했다.

 

선미도는 바람도 쉬었다 가야 하는 바람재이다. 바람뿐만이 아니라 바다도 가로 막고 있는 바다 장벽 같은 섬이다. 그래서 바닷속은 온갖 물고기들로, 민어의 산란장을 제공했고 숲은 천년을 간직해온 원시림으로 구렁이의 둥지요 각종 나방들의 전시관 같은 곳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