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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8.04 01:01
19).바다에서 쏟아진 전어 떼
/조경호
1964년 8월 2일 ∼ 3일 태풍 ‘헤렌’이 제주도를 거쳐 목포에서 중국 라오뚱 반도로 상륙한다. ‘헤렌’이 선미도 바다를 딛고 달렸을 때 모든 바다의 물이랑이 훌러덩 뒤엎어 버렸다.
물기둥은 하늘로 높이 치솟고 바다는 온통 하얗게 날 선 작두를 들고 일어선 것 같았다. 해변의 암벽과 바위 위로는 수 미터나 되는 물기둥이 연신 쓰러졌다. 바람은 온 숲속을 다 샅샅이 헤집고 다녔다.
붙어 있는 모든 것이 비명을 질렀다. 숲속에서 들려오는 아성 소리와 바다에서 절규하는 포효소리는 섬 전체를 집어삼키는 듯했다.
나는 등대 앞 선착장에 유류 드럼통을 보관하는 창고를 들러보아야 할 것 같았다. 빈 드럼통은 다음 보급선이 오면 반납하기 때문에 창고에 보관한다. 이 큰 왕바람에 선창의 간이 창고가 부셔져 빈 드럼통을 잃어버리면 낭패한 일을 당하기 때문이었다.
밧줄을 가지고 내려갔다. 나는 간이 창고를 밧줄로 더 동여맬 심산으로 등대 앞 선창으로 내려간 것이다. 앞 선창까지 내려가는 시간은 25분 정도였지만 올라오는 시간은 40분 정도 걸린다. 섬의 중턱까지는 돌로 쌓은 층계로 되어있기 때문에 걸음이 힘들다. 아마 그 당시의 등대원들이 기피하는 등대섬 중에 1∼2위였다. 선미도 등대는 선착장에서 유류를 20L용 작은 스페어 통에 담아 지게로 등대 유류 창고로 옮기는 일 때문이다.
앞 선착장 가의 바닷물은 온통 하얀색으로 변하였고 암벽에 부딪히는 물기둥은 바위에서 쏟아지는 거품으로 변해서 줄줄거렸으나 창고는 무사했다.
나무판으로 되어있는 창고를 밧줄로 더 동여맸다. 그런데 무엇인가가 내 머리를 ‘탁’하고 치는 것이었다.
내 머리를 치고 떨어진 놈은 은색에 밴댕이 같은 놈이었다. 팔딱거렸다. 그런데 콘크리트 바닥에 ‘뚝득, 뚝득’하고 그런 물고기가 떨어지고 있었다.
건너편 바위 위에서도 쏟아 붓는 물줄기 속에서도 반짝거리는 것이 있었다. 밴댕이 같았다. 바위 암벽에 거대한 파도의 물기둥이 내려 덮치면 물기둥이 부서져 하얗게 물거품이 일어나고 물거품 속에서 파닥거리는 손바닥보다 작은 고기떼가 쏟아졌다. 전어 새끼들이었다. 바위틈 사이마다 가득가득 들어차 쌓여 있었으며, 물때는 썰물이었다.
물이 빠지자 선미도 해변의 바위틈 사이에는 하얀 물고기들로 가득했다. 아마 전어 떼가 해변 근처를 지날 때 태풍이 바닷속을 갈아엎으면서 전어 떼를 해변으로 밀어 놓은 것 같았다. 아니면 저 남쪽 바다에서부터 전어 떼를 태풍이 몰고 왔을지도 모른다. 이런 일은 내가 등대 생활 37년 중 딱 두 번 겪는 일이었다.
퍼내도 퍼내도 바위틈 속에 전어는 줄지 않았으며, 이곳뿐이 아니고 선미도 동쪽 해변이 다 이런 것 같았다. 그러나 그다음 날에는 바다에서 쏟아진 전어 떼를 바다가 다시 전부 회수해 갔다. 그래도 태풍 ‘헤렌’은 등대 가족에게 전어구이를 수일 동안 맛보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