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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7.22 04:58 수정일 : 2025.07.22 09:37
17) 한 쌍의 까마귀
내가 선미도 등대에 첫 부임(1961년 4월) 하였을 때, 선미도의 까마귀에 대해서 동네 사람들로부터 많은 이야기를 들었다. 무척이나 영리한 새라는 것이다. 까마귀는 텃새다. 그래서 동네 사람들이 섬에 까마귀가 산다는 것이 재수 없을것이라 생각하여 잡으려고 했던 모양이다. 동네 사람들은 묘수를 짜내면서 까마귀를 잡으려 했지만 잡을 수 없는 새라는 것이었다. 덕적도에서 포수가 오면 모습을 나타내지 않는다. 동네 사람들은 까마귀를 누가 먼저 잡나 경쟁하면서 올가미를 치거나 덫을 놓아도 허사였다. 그래서 선미도의 영물로 생각하고 잡을려고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
까마귀의 둥지는 등대 관사 아래 비탈진 숲에 가장 오래된 붉은 소나무인 해송 나뭇가지에 틀었다. 관사 앞으로 나오면 까마귀 둥지가 잘 보였다. 그리고 한 쌍의 까마귀가 등대를 관망하는 장소는 선미도에서 가장 높은 등탑 위였다. 그것도 등탑의 등롱 지붕 위 피뢰침 봉대가 있고 그 봉대에 풍향계가 가로 놓인 N자와 S자가 붙는 놋쇠봉에 나란히 앉아 있는 것이다.
수놈과 암놈 중 어느 놈이 N봉대와 S봉대에 앉아 잇는지는 모르겠다. 하여튼 다행이라 생각하는 것은 한 쌍의 까마귀가 그곳에서는 배설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등롱 지붕에 배설물이 쌓이면 누가 치워야 하겠는가‽ 등대원들이 고생 할 것이다. 그리고 그 한 쌍의 까마귀는 등대원들과 상당히 우호적인 관계였다. 우선 아침에 등탑 위에서 울면 그날은 틀림없이 등대 보급선이 오는 날이다.
그 당시 선미도 등대에는 등대장 김득주, 등대원 낭승준이 같이 근무하였다. 내가 셋째 아이와 농어를 잡아 온 날 이었다. 관사의 우물은 동력실과 무신호실 등과 같이 관사의 지붕에서 받은 빗물을 여과하여 두 곳의 물탱크에 저장한 여과된 빗물이다. 이 쌍 우물 바로 아래에 유류 드럼통을 보관하는 창고가 있었다.
등대원이 물고기를 잡아 오는 날은 귀신같이 까마귀가 알고 있었다. 항상 낚시로 물고기를 잡은 사람보다 먼저 와서 등탑의 풍향계 양극을 가르키는 봉대에 앉아 있었다. 내가 농어를 잡아 오자 까마귀는 등탑 위에 있었고 등대 가족들 모두가 나와서 잡은 농어를 보고 있었다. 농어의 배를 가르고 내장을 발라내기 위해 우물가로 모인 것이다.
우물가에서 횟감도 만들고 매운탕 거리도 만드는데 창자는 까마귀를 주기 위해서 우물 아래 창고 기와지붕에 던져 놓는다. 그러면 한 마리씩 번갈아 가면서 지붕의 물고기 창잘르 가지고 간다. 가지고 간 창자는 둥지가 있는 소나무 위로가서 먹는다. 까마귀 둥지는 창고가 있는 곳에서 더 아래쪽에 있엇다. 까마귀는 먹이를 둥지 튼 나뭇가지에서 먹고 다시 등탑 위로 오른다.
어느 날 이었다.
낭승준씨가 까마귀의 영리함을 시험하기 위해서 복어를 잡아 왔다. 낭씨는 우럭과 삼치의 배를 가르고 전과 같이 창자를 창고 지붕 위로 던졌다. 그리고 중간에 복어 창자를 지붕 위로 던졌다. 까마귀 한 마리가 날아가면서 지붕 위에 있던 복어 창자를 낚아채 갔다. 그런데 둥지로 내려가던 까마귀가 다시 돌아오는 것이었다. 그리고 까마귀는 물고기 배를 가르고 있던 낭씨 앞에다가 그 복어 창자를 떨어트리고 등탑 위로 날아가는 것이었다.
어떻게 독이 있는 물고기 창자라는 것을 알았을까‽ 혀의 느낌으로 안 것이라고
해도 다시 물고 와서 낭씨 앞에 떨어트리는 것은 무엇일까‽
앞으로 이런 장난을 치지 말라는 경고일까‽ 이후로 낭씨가 잡아 온 물고기는 누가 알려준 것도 아닌데 귀신처럼 잘 알고 있었다. 낭씨가 배를 째서 담장 위에 말린 물고기 중 가장 큰 것 한 마리만 없어졌다. 까마귀 짓일 거라고 짐작은 했지만 지금까지 그런 일이 없었기에 증거를 잡지 못하고 있었다. 까마귀도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 사람이 있는 곳에서는 그런 짓을 하지 않는 것 같았다.
낭씨가 낚시하고 와서 물고기를 담장 위에 널어 말렸다. 그리고 모두가 관사로 들어가 담장 위의 물고기를 관찰해 보기로 했다. 역시 까마귀의 보복이었다. 돌담 위에서 가장 크게 버려진 우럭 한 마리를 낚아채어서 숲속에다가 버리는 것이었다. 말리고 있는 무고기 중 가장 큰 것 한 마리만, 그리고 먹지 않고 숲에다가 버리는 것은 분명 보복 행위였다. 그래서 난 선미도 까마귀의 행동을 보고 가장 영리한 새는 까마귀라고 단언하게 되었다.
까마귀는 사람들의 지위도 구별할 줄도 알았다. 등대장에게는 장난을 걸지 않지만, 여자에게는 장난도 쳤다. 놀이를 한다는 것은 매우 영리하다는 증거다. 그것도 사람을 대상으로 한다는 것은 지적 수준이 있다는 것이고 지적 수준이 엇비슷할 때는 웃음이 나고 때로는 쾌재를 부르게 된다. 그런데 그놈이 걸어오는 놀이에 인간 고통스럽고 그놈은 쾌재를 부르니까 까마귀는 늘 즐거운 놀이가 되는 셈이지만, 우리는 고생스럽다.
아내가 우물에서 빨래하고 있으니, 까마귀가 아내의 뒤로 살금살금 다가오더라는 것이다. 그냥 모르는 척했더니 녀석이 빨랫비누를 가지고 날아가면서 창고 지붕위에 떨어뜨렸다는 것이다. 까마귀 녀석 때문에 투덜거리며, 나는 창고 지붕 위를 오르고 내려야 했다.
그런데 녀석들이 선미도에서 오랫동안 살았다면 새끼들은 어디 있는가‽
그리고 이곳에서는 까치들이 없었다. 옛말에 불효하는 자식들을 보고 ‘까마귀만도 못한 놈들아’ 하는 말이 있었다. 사실 나는 그 말뜻이 왜 나왔는지 몰랐다.
옛사람들은 새끼 까마귀가 늙은 까마귀에게 먹이를 물어다 주며, 봉양을 한다고 했다.
나는 선미도에서 실제로 보았다. 까마귀는 봄에 산란하고 둥지는 계속 같은 둥지를 수리하면서 생활했다. 그리고 새끼는 3마리 정도를 키었는데 새끼 까마귀가 다 자라면 어미 까마귀가 새끼 대신 둥지에 들어앉아서 ‘까 –악 까-악’ 거렸다.
새끼들 보고 먹이를 물고 오라는 것이었다. 먹이를 물고 오지 않으면 새끼들을 가만두지 않고 머리통을 쪼아주면서 ‘까-악 까-악’ 거렸다. 그런 짓이 학습일지 모른다. 먹이를 찾는 방법 중 가장 확실하게 훈련 시킬 수 있는 방법일 것이다.
그렇게 십여일 받아먹더니 새끼를 한 마리씩 선택해서는 암수가 협심해서 새끼를 쫓아가면서 계속 쪼아대기 시작한다. 새끼 까마귀와 어미 까마귀가 섬 주위를 그렇게 몇 바퀴 돌다가 새끼는 덕적도로 쫓겨간다. 그리고 또 한 마리를 선택해서 그렇게 쫓아버린다.
선미도 등대에는 어미 까마귀 한 쌍뿐이었다. 그러니까 새끼들이 스스로 어미 까마귀를 봉양하는 선은 아니었다. 새끼들에게 스스로 먹이를 찾을수 있도로 학습시키는 과정일 것이다.
그렇게 영특한 선미도의 까마귀가 1970년 9월에 선미도 등대를 찾았을 땐 까마귀가 보이지 않았다. 후에 들은 이야기는 까마귀가 영특한 것을 알고 동네 사람들이 그 까마귀를 계속 시험해 보았던 모양이다. 그리고 동네에서는 물고기 창자를 까마귀에게 주지 않고 거름으로 밭에다 묻었던 모양이다.
까마귀가 먹을 것이 귀해져서인지(어미가 새끼들을 덕적도로 내보내는 것도 선미도에서는 여러 마리의 까마귀들이 살 수 없었기 때문일 수도 있다.) 동네 노씨가 놓아둔 덫에 암컷이 걸려들었다는 것이었다. 수컷이 그 옆에서 ‘까-악 까-악’ 구슬프게 울고 있어 노씨는 할 수 없이 암컷을 덫에서 풀어 주었다고 했다. 그 이후 선미도에서 까마귀가 사라졌다고 했다. 아쉬웠다. 그 영리한 새를 다시 볼 수 없기 때문이다.
사람의 운명은 대상과의 만남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사람을 만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달라지기 때문이다. 나는 그 까마귀와 만남으로 인해서 많은 것을 배웠다. 침착하게 행동하는 것, 삶에는 즐길줄 아는 놀이가 있어야 한다는 것, 자식을 부양하고 교육한다는 것은 자식들이 독립적으로 살아가는 방법을 가르친다는 것 등이다.
영리한 까마귀가 어째서 덫에 걸려들어을까‽
동네 사람들은 암수를 구별했는데 몸집이 좀 더 큰 것이 수컷이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팔미도로 전근된 이후에 일이 더 발생했다는 것이었다. 노씨와 까마귀는 덫 사건 말고도 더 있었던 모양이다. 노씨가 휘두른 낫 끝에 암컷 까마귀의 눈 밑이 찢어지면서 흉터가 남았다는 것이다. 수컷은 그런 암컷을 쫓아내고 다른 암컷을 데리고 왔다는 것이다. 그 암컷은 경험 부족이었는지 노씨가 놓은 덫에 걸렸다고 했다. 아마 수컷 까마귀가 조강지처를 버린 것에 대한 벌일지도 모르겠다. \
공수래 공수거(空手來 空手去), 까마귀는 빈손이었고, 빈손으로 섬을 떠났다. 나도 등대섬에 빈손으로 왔으니 빈손으로 섬을 떠난 것이 당연하다. 아, 이제 그런 까마귀를 다시 볼수 있는 기회는 없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