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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7.16 09:58 수정일 : 2025.07.16 10:00
16) 다시 선미도 등대로
1964년 4월 선미도 등대 등대원(등대 기능직 5등급, 당시 등대장은 기능직 1등급 또는 2등급이며 3등급부터 6등급까지는 등대원임)으로 다시 발령받아 부임하였다.
그해 여름 방학 때 아내는 초등하고 4학년 셋째 아이와 6살짜리 딸아이를 데리고 선미도 등대로 들어왔다. 선미도는 섬은 크지만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은 한정되어(두 길밖에 없음, - 등대에서 동남쪽 마을이 있던 곳으로 가는 길, - 등대에서 북쪽 선착장으로 가는 길)있어, 셋째 아이는 답답해했다. 내가 데리고 낚시라도 가주어야 할 것 같았다.
나도 늘 가보고 싶었던 곳이 있었다. 등탑에서 보면 서쪽으로 썰물이면 들어나는 암초가 있는데 그 암초는 유난히 서쪽으로 길게 돌출되어 있다. 등대에서 출발하면 적어도 2시간은 족히 걸릴 것 같았다. 그런데 그 곳으로는 길이 없었다. 숲속의 비탈길을 내면서 가야 할 것이다.
아이에게 모험심을 자극해 주고 나도 셋째 아이와 가면 심심하지 않을것 같아서 강행해 보기로 했다. 그래서 아이에게 낚시를 가려고 하는데 너도 따라가겠냐고 물어보았다. 셋째 아이는 무척 좋아했다. 아내는 점심으로 찐빵을 쪄서 물과 함께 아이가 들쳐 맬 수 있는 가방에 넣어주었다. 나는 낚시 도구를 챙기고 낫을 들었다.
등탑 뒤의 한번도 가보지 않은 숲속으로 들어가니 낙엽은 부엽토가 되어 무릎까지 쑥- 빠지는 것이었다. 그래서 방향만 잡고 낫으로 길을 내면서 강행했다. 생각보다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이곳은 어쩌면 나와 셋째 아이가 사람으로서는 첫걸음을 하는 곳인지도 모른다. 사람이 다닐 수 없는 곳이기 때문이다. 마을 주민도 서쪽 바다는 길이 험해서 다니지 않는 곳이었다. 두 시간 넘게 걸려 서쪽으로 길게 뻗은 암벽 밑으로 갔다.
도착해 보니 이곳 바위는 바닷물에 침식이 되었는지 둥글둥글하게 감실처럼 파여진 곳이 많았다. 바위는 화강암은 아니었으나 같은 석질인데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만 패인 것이 이상했다.
그러나 자연현상이란 인간의 사고로는 접근할 수 없는 것이라 생각하고 수직의 암벽에 둥글고 깊고 크게 파여진 감실 같은 곳을 골라 가져온 짐은 두고 그 암벽 밑에서 점심으로 가져온 찐빵을 먹었다.
‘아부지, 아부지가 낚시하면 나는 뭘해’
‘옆에서 구경해’
‘나도 낚시 할 까‽’
이젠 긴 성벽처럼 서쪽 바다로 뻗은 암벽을 따라가면 암벽이 끝나는 지점에서 썰물에 밀려난 바닷속 암초가 나온다. 이 바닷속 암초도 상당히 길게 서쪽 바다로 뻗어 있었다. 가 봐야 알 것이지만 아마도 상당히 위험할 것이다.
‘너는 내 옆에서 우럭 낚시 해봐라. 아니면 고둥이나 잡아, 물이 아주 깊은 곳일게다.’
이 녀석은 걸음마를 시작하면서부터 물속으로 들어갔던 녀석이었다.
물에 빠져도 충분히 갯바위 위로 올라올 수 있을 것이다.
나는 길게 드러누운 바닷속 검은 갯바위로 갔다. 입감(미끼)을 잡기 위해 셋째 아이와 물웅덩이를 펐다. 물웅덩이에는 새우와 우럭, 놀래미가 나왔다. 또한 돌틈에는 황금빛 산호와 붉은 산호까지 있었다.
산호는 간혹 낚싯대에 걸려 나올때가 있다. 황금빛 산호는 우리나라 서해 연안에서 나는 산호인데 돌들이 많은 곳에 산다. 맑고 깊은 물밑 돌밭의 황금빛 산호는 손바닥만 하고 나뭇가지처럼 생겼다. 약간 쿠션이 있는 갯솜조직이고 붉은 산호는 암석처럼 딱딱한 석질이다. 보석 가공용으로 쓰이는 산호가 바로 이런 종류이다. 그러나 우리나라 서해안에서 나는 산호는 속이 희기 때문에 보석으로 쓸 수 없을 것이다.
셋째 녀석은 바닷물이 고인 물웅덩이 속에서 물고기와 산호를 잡겠다고 했다. 나는 새우를 입감으로 쓰기 위해 통조림 깡통에 담았다.
서쪽으로 가장 뾰족하게 나올 암반의 부리 끝에서 수십 발의 낚싯줄을 던졌다.
‘뽕-당’ 봉돌이 수면에서 가라앉기 무섭게 입질이 왔다.
줄을 좀 더 빠르게 당겼다. ‘뚜뚝뚜-’ 하는 손끝의 감각이 푸른 핏줄을 타고 심장으로 전달되었다.
나는 두 팔을 열심히 놀려서 바닷속에서 먹이를 찾던 놈을 건져 올렸다. 놈이 몸부림을 치자. 번뜩이는 비늘에서 물방울이 튀었다. 그리고 물방울은 햇살을 굴절시켜서 무지개를 띄웠다.
셋째 아이가 쫓아와서 거들려 했다. 나는 작은 물웅덩이에 번쩍거리는 은백의 푸른 연두빛이 감도는 검은 점박이 녀석을 놓아두었다. 점박이 농어였다. 크기가 80cm 이상 되어 보였다. 1시간 정도 지나니 물웅덩이에 농어가 가득 찼다.
‘아부지 고기가 튀어 나가. 물속으로 달아나는데’
가서 보니 9마리였다. 바위 위 물웅덩이는 물가 바로 옆이어서 한번 튀어 올라 바닷속으로 빠지면 도망칠 수 있었다. 내가 건져 올린 것은 13마리이고 건져 올리다가 도망친 놈이 3마리다. 그러니까 물웅덩이에서 도망친 놈들이 4마리였다.
‘이제 집으로 가자’
‘아부지 어떻게 가져가’
아까부터 그 생각을 하였다. 좀 욕심을 부린 탓이다. 등대 가족들에게 나누어주고 동네 사람들에게도 주려고 했던 것이었는데, 농어가 이렇게 많이 잡힐 줄은 몰랐다. 전부 농어를 잡았으며, 너무나 크다. 한 마리가 5∼6kg 정도 나가는 놈들이다.
50kg 정도를 어떻게 가지고 비탈길을 오르나 했다. 일단 잡은 농어를 해변이 끝나는 바위 밑까지 가져다 놓기로 했다. 2차례 왕복하여 숲으로 들어가는 절벽 밑까지 가져다 놓았으나 별 방법이 없었다.
긴 나뭇가지 하나를 낫으로 자르고 다듬어서 9마리를 전부 매달았다. 셋째 아이가 앞에서 나는 뒤에서 나뭇가지를 메고 산비탈을 올라갔다. 우선 동네가 가까울 것 같았다.
겨우 동네로 올라와서 3마리를 동네에 주고 쉬었다. 아이와 둘이서 바닷가에서 동네에 온 것처럼 목도하여 등대로 갈 수는 없다.
동네에서 등대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그리고 등성이 고개를 두 개 넘어야 한다. 동네에서 지게를 빌리기로 했다.
지금은 동네 선착장에서 등대까지 모노레일이 깔려 있어 쉽게 갈 수 있는 길이지만 그땐 그렇지 않았다. 농어 6마리를 지게에 지고 2시간을 걸어서 등대로 왔다.
그때가 내가 등대 생활을 하면서 농어를 가장 많이 잡은 때였다. 산길 중턱에서 까마귀 한 쌍이 나타나 우리 주위를 맴돌았다. 두 마리의 까마귀는 우리보다 먼저 등대에 와서 등탑 위에 있는 풍향계 양 끝에 앉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