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부산 시인 시집 속 시 한 편
작성일 : 2025.07.13 10:07
<부산시인 시집 속의 시 한편(4)>
고향 가는 길
김 경 희
고향 하늘은 아직도 멀다
창가로 스치는 들녘은 을씨년스럽고 삭막하다
새파랗게 자라던 벼들은 모두 가버리고
메마르고 길라진 땅바닥에 줄 선만 그려진다
신혼 시절 낙동강 건너 산소에 묘사 갔을 때
잠깐 남편 등 빌려 업혔을 때
낙동강 깊은 물은 원망하지 않고
엊그제 시집온 질부만 타박하던 야속한 당숙모 또한
이제는 추억 속 제목이 되어
고향 가는 길이 외롭지 않다
남편은 여기서 유년 시절을 보냈기에
어릴 적 얘기들을 간간이 한다
묘사 지내러 어머니와 형님이랑 눈밭을 가르고
낙동강 물줄기도 가르고 언 손으로 제사 지내던 일들을
문을 닫아도 눈을 감아도 그때의 기억은 감기질 않는다고
지난 시간 말아 올린 그 때의
손짓에 헤진 내 마음에 불 지피면서
환승역 저 너머에 서 있는 어머니를 본다
모질게 불어오는 동짓달 찬바람에도
어머니는 뿌리 들린 보리를 꼭꼭 밟으시며
고향길 그 길에 서 계신다
-김경희 시집『머무르고 싶은 순간들』(2025)에서
AI가 쓸 수 없는 시 쓰기로서의 시
양 왕 용
요즈음 한참 등장하는 화두가 AI가 문학행위를 하는 것이다. 필자는 몇 년 전 이미 AI가 쓴 시집을 읽은 바 있다. 그 때만 해도 챗GPT가 사용되지 않았다. 그러나 요즈음은 상용화 되고 있다. 필자의 시 한 편도 챗GPT를 사용하여 개작한 것을 보니 필자의 의도와는 전혀 다른 시가 되어 있어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국제문학상 후보로 오른 모 여류 시인은 AI는 결코 인간이 쓰는 문학작품 가능성을 갖출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몇 해 전에 필자가 본 AI가 쓴 시집을 읽으면서 시인들못 지 않은 세련된 시를 쓰고 있다는 인상을 받았다.
그렇다면 AI가 쓸 수 없는 시 즉 시인 개개인만 쓸 수 있는 시는 어떤 것인가를 생각해 보지 않을 수 없었다. 필자는 지극히 시인 개인적인 일이나 체험은 아무리 정교하게 AI에게 명령해도 그대로 쓸 수 없을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김경희 시인은 대학에서 성악을 전공한 성악가이다. 그리고 선박회사를 경영하는 CEO이며 최근에는 젊은 날부터 가졌던 기독교 신앙에 심취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시세계는 음악적 특성과 신앙적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그것보다 더욱 개성적인 작품들은 유년 시절의 체험을 시적 제제로 활용한 것들이다. 필자는 이미 그러한 시에 대하여 다른 곳에서 언급한 바 있다. 이번의 시집 『머무르고 싶은 순간들』(2025)에도 그러한 특성을 가진 시들도 있으나 최근의 일상생활이 시적 제재가 된 시들이 많다. 김 시인뿐만 아니라 모든 시인들의 유년기의 체험이나 일상사는 AI가 정확하게 읽어낼 수 없는 영역이다. 그런 점에서 시 「고향 가는 길」은 AI가 쓸 수 없는 시인 셈이다.
이 작품 속의 고향은 김 시인 자신의 고향이 아니다. 왜냐하면 김 시인은 부산 토박이이기 때문이다. 시가 전개되는 과정으로 볼 때 김 시인 남편의 고향인 경상북도 예천 가는 길이라고 짐작된다. 첫째 연은 구체적인 공간이 아니기 때문에 AI도 쓸 수 있겠으나 둘째 연에서는 낙동강을 끼고 있는 김 시인 남편의 고향 즉 시댁에서 신혼시절의 체험 즉 젊은 날의 추억이 등장하기 때문에 AI로서는 불가능한 극도로 개인적인 체험의 공간이다. 셋째 연은 남편의 유년시절이 등장한다. 이것 역시 AI가 쓰기는 힘든 부분이다. 마지막 넷째 연에서 김 시인은 다소 환상적인 이미지를 등장시킨다. 이미 이 세상 사람이 아닌 시어머니의 젊은 날의 모습을 발견하는 것이다. 그런데 그 공간을 ‘환승역 저 너머’라는 시적비유를 가져와 표현하고 있다. 아마 남편으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시적 제재로 활용한 것이라고 짐작되는데 이 부분으로 인하여 이 시는 시적 긴장감을 보여주고 있다. 신혼시절부터 시댁을 오간 추억들은 시골을 시댁으로 가진 여인들에게는 충분히 공감될 수 있다. 물론 꼭 같은 체험은 아니겠지만 유사한 추억들을 떠올릴 수 있을 것이다.
AI가 시를 쓰는 시대이라도 그가 읽어 내지 못하는 지극히 개인 적인 체험의 시들로
인하여 독자들도 지극히 개인적인 체험을 떠올리면서 공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한 시들이 바로 AI 시대에 시인들이 즐겨 써야 할 시들이라는 생각을 하게 하는 시가 바로 김 시인의 「고향 가는 길」 이다. 그리고 남편의 고향을 자신의 고향으로 여기고 있는 김 시인의 남편 사랑을 발견할 수 있는 것도 이 시를 읽는 또 다른 보람이다.
<양왕용/ 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