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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7.07 01:29 수정일 : 2025.07.07 01:32
15. 긴장
썰물이 다 나간 간조 시간, 목덕도 해안가에서 작업하고 있는 작은 발동선이 있었다. 망원경으로 보니 머구리선(잠수부가 작업하는 선박)이 었다. 머구리는 ‘개구리의 옛말’이라고도 하고 일본어의 잠수하다는 뜻인 ‘모그리’라는 발음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는 설도 있다. 또한 제주도에서는 남자 전문 잠수부를 ‘머구리’라 한다.
물속에 들어가서 작업하는 머구리가 입는 작업복은 우주복과 같이 생긴 잠수복
이다. 1840년 독일인 ‘시베’가 발명하여 전 세계적으로 애용되고 있다고 한다.
머구리의 헬멧은 놋쇠 주물이며, 앞면에는 유리로 된 창이 있다. 그 유리창을 통해서 바닷속 시야를 확보한다. 아래위가 붙어 있는 우주복같이 생긴 옷은 면사의 천에 고무를 입혀 방수가 되는 옷이다. 등에는 두 개의 호수가 있어 잠수복으로 공기를 주입시킬 수 있으며, 허리에는 납 판을 차서 깊숙이 잠수할 수 있게 무게를 조정하고 허리에 끈을 묶어 물 위의 선박에서 잠수하는 머구리의 위치를 확인한다. 위급한 상황이 발생되면 끈으로 알리는 것이다.
머구리선은 대체로 침몰 된 난파선에서 구리나 놋쇠 등의 비철금속을 건져 올렸는데 지금의 고가인 전복이나 키조개를 건져 올린다. 그리고 작업의 위험성과 장비의 발달로 극히 제한된 수만이 머구리 작업을 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
머구리선은 금방 알 수 있다. 선미에는 머구리가 선박으로 오르고 내려갈 수 있도록 사다리가 달려 있다. 등대섬으로 머구리 배가 접근하면 등대원은 그 배가 떠날 때까지 관찰한다. 선박의 안전을 확인하는 것도 임무요, 등대의 시설물을 지키는 것도 임무이기 때문이다.
머구리는 머리에 쓰는 놋쇠 헬멧을 선미에 있는 사다리를 타서 쓰고 바닷속으로 가슴까지 들어가서 헬멧을 나사로 된 틀에 돌려서 맞추어 쓴다. 헬멧과 접합되는 목 아래의 놋쇠 틀에는 고무박킹을 덧대 방수가 된다.
그런데 머구리선이 등대 선착장으로 다가오는 것이다. 선착장 창고에는 아직 등대 동력실에 있는 유류 창고로 운반하지 못한 경유가 있다. 혹시 저들이 경유를 본 것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품기 시작했다.
선창으로 내려갔다. 그런데 머구리선에서 3명이 하선하여 등대로 올라오고 있었다. 그 우주 헬멧 같은 놋쇠 덩어리를 들고 오는 것이었다. 일단 안심이 되었다. 남을 의심한 것은 자신의 일에 충실하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저기 등대에 계시는 분들인가요’
‘그렇소 만은····· 어떻게 오시었소’
‘여기 등대에 용접기 있나 해서요’
용접기는 인천에 나가 선박을 수리하는 항구에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등대에는 발동 발전기와 축전지 등 전원 생산 시설과 등명기, 무신호용 공기압축기 등의 대형 기계 시설이 있기 때문에 소 수리는 등대에서 직접 해야 한다.
그래서 신주 용접봉과 산소용접기가 있었다.
‘왜 그러시나요’?
그들은 놋쇠로 된 잠수용 헬멧을 보라듯이 두 손으로 들고 올라오던 자가 자신의 턱으로 헬멧을 가리켰다. 놋쇠 헬멧은 생각했던 것보다 상당히 컸다. 그런데 그 두꺼운 놋쇠 주물로 된 헬멧 상단부가 찌그러지고 앞 유리판이 깨져 있었다.
‘어쩌다가 그렇게 된 것이요’
‘상어란 놈이 그랬소’
상어’‽ 얼마만큼 큰 상어이기에 저 큰 잠수용 헬멧을 물을 수가 있는가‽ 그리고 저 두꺼운 놋쇠 주물이 찌그러진다는 말인가‽ 나는 앞면 유리판을 끼우는 떨어져 있는 헬멧 앞 창틀 쇠를 신주 용접봉으로 산소 용접을 해 주면서 물었다.
‘찌그러진 신주 헬멧은 펼 수가 없소 그런데 얼마만한 놈이었소’
‘찌그러진 것은 펼 필요 없어요’
머구리는 난파선에서 프로펠러 샤우드를 분리하고 있었는데, 어마어마한 상어가 나타났다고 했다. 하도 커서 바위틈에 몸을 숨겼는데, 놋쇠 헬멧이 바위틈에 끼어서 헬멧을 쓴 머리만 바위틈에 내놓게 되었다는 것이다. 꼼짝하지 않고 있으면 다른 상어들처럼 그냥 지나갈 줄 알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 상어는 자신의 머리 위에서 한번 선회하더니 내려와서 자신의 머리에 쓰고 있던 놋쇠 헬멧을 슬쩍 물어보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앞면 유리가 깨지고 잠수복에 물이 들어왔지만 움직이지 못하고 상어가 사라지기를 기다렸다고 했다. 그리고 급하게 허리 줄을 당겨서 구사일생으로 살아 나왔다고 했다.
머구리와 선원들은 그들만의 방식으로 바닷속의 끈으로 신호하는 방법이 있다. 공기를 호스로 많이 집어넣으면 공기가 잠수복에 가득 차게 된다. 그렇게 되면 머구리는 빨리 물 위로 뜨게 되는 것이다.
머구리는 그 순간 얼마나 당황하였을까‽ 머구리는 물속에 있는 동안은 한순간도 죽음이라는 생사의 문제를 잊고 작업하지는 않으리라.
‘상어라는 놈도 영악하기는 사람 못지않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머구리 일행은 나에게 정말 감사하다고 몇 번씩 하는 말에 잠시나마 그들에게 품었던 의구심이 미안 감으로 바뀌었다. 나는 선착장에 있는 경유 드럼통을 가져가려고 하는 것 아닌가 하고 한순간 의심했기 때문이다.
나의 용접 솜씨는 아주 좋았던 모양이다. 그들은 여유분으로 가지고 있던 사각 유리를 놋쇠 헬멧의 앞면 창틀에 끼우고 접착제로 붙였다. 그들은 이제 물이 새지 않을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목덕도 주변 바닷속을 샅샅이 알고 있다고 하면서 고마움의 표시로 물고기가 많이 살고 있는 곳을 알려 주었다.
며칠 후 간조 때였을 것이다. 머구리가 알려 준 홍합이 많이 붙어 있는 섬의 남쪽 갈매기 바위 쪽으로 갔다. 이제 물때는 들 물이 되었다. 나무판에 감겨 있던 낚싯줄을 50m 정도 둥글게 설기설기 풀어서 좀 편편한 바위에 설려 놓았다.
머구리가 말하던 바닷속에 있는 암초 바로 옆으로 봉돌을 떨어뜨려야 한다. 봉돌에서 1.5m 정도의 낚싯줄을 늘려 잡고 머리 위로 윙-윙 소리가 나도록 원을 돌려서 50m 정도 거리에 있는 바닷속 암초 옆에다 던져야 했다.
낚싯줄을 서서히 당겼다. 느리게 낚싯줄을 당기면 봉돌은 밑바닥으로 가라앉아서 바위 밑에 있는 갯 우럭이 따라 올라올 것이고 수면 위에서 물속으로 2∼3m
내외로 봉돌을 띄우게 되면 점박이 농어나 삼치가 걸릴 것이다.
농어는 우럭처럼 덥석 무는 놈이 아니다. 봉돌 납 속에 박힌 낚시 바늘의 미끼를 쫓아오다가 내가 서 있는 갯바위에서 5∼6m를 남기고 물 것이다.
그리고 옆으로 살짝 물고 물속으로 들어가는데 이때 느껴지는 전율을 잊을 수가 없다. 온몸에 나 있는 땀구멍은 털이란 털을 다 들고 일어선다. 십여 미터를 남겼을 때였다. 봉돌에 달린 미끼를 따라오는 놈을 발견했다. 물속에서 더 시커멓게 보인다. 그리고 작은 암초 위로 넘어서 자 미끼를 덥석 물었다.
순간 가볍게 당기면 끌려오던 낚싯줄이 내 오른쪽 검지손가락에서 브레이크가 걸렸다. 낚싯줄은 나의 검지손가락을 파고 들어갔다. 따끔하면서도 쓰리고 아팠다. 붉은 피까지 났는데 놈은 내가 당겨서 끌어올릴 수가 있는 놈이 아니었다.
요즘처럼 뜰채나 물레가 달린 낚싯대를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놈과 팽팽하게 맞섰다. 30분쯤 흐른 것 같다. 바닷물이 밀려 들어와 자꾸 뒤로 후퇴하면서 10여 발을 더 풀어 주었다. 이제 느낌이 낚시가 바위에 걸렸는지 꿈쩍하지도 안하여 낚싯줄을 끊어 버릴까 생각했다.
손이 아파서 이제는 더 당길 수가 없었다. 낚싯줄을 감던 나무판에 낚싯줄을 감았다. 그리고 팽팽한 낚싯줄을 폭이 15cm 정도 되는 나무판을 당겨 가면서 돌려 감았다. 한 십여 차례 그렇게 했더니 놈도 지쳤는지 쉽게 끌려왔다.
그런데 문제가 있었다. 그동안 물이 많이 들어와서 나는 수면의 높은 바위 위에 있었다.수면에서 암벽의 높이는 40cm 정도는 되어 보였다. 들어 올리려면 놈의 아가미에 손가락을 넣어야 할 것이다.
낚싯줄을 나무판에 바짝 감았다. 그리고 무릎을 꿇고 몸을 굽혔더니 놈도 수면 위로 쑤-우 머리를 내밀었다. 놈을 보는 순간이었다. 번쩍하면서 놈의 은비늘이 햇살에 번들거렸다.
놈이 몸부림을 치면서 물 수면을 박차고 뛰어오른 것이다. 그리고 놈은 물에 떨어지면서 힘 있게 몸을 튕겼다. ‘뚜-’하는 느낌이 있었다. 손에서 힘이 쭉- 빠졌다. 봉돌에 붙은 낚시바늘이 부러진 것이었다. 놈과는 그렇게 첫 대면을 하고 나는 바다에서 빈손으로 올라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