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부산 시인 시집 속 시 한 편
작성일 : 2025.06.23 01:54
<부산시인 시집 속의 시 한편(3)>
망양로의 아이러니
김 수 봉
아침 햇살에 반짝이는
윤슬의 문안에 눈을 뜨고
황홀한 저녁놀과
갈매기 날갯짓을 보며
하루를 접던 망양로 윗마을
살기 위해 어쩔 수 없어
모여들어 산 높은 곳으로
밀리기만 하며 살던 사람들
해양의 멋진 풍광을
남의 일로만 알다가
풍광이 눈에 들어오자
벌써 하나둘 이웃은 떠나고
빈집의 문짝만 깃발처럼
펄럭이는 망양로 윗마을
해양의 풍광이 아름다울수록
외려 쓸쓸하고 고독하다
-김수봉 제14시집 『실마리』(2025)에서
쉽게 읽히는 시 속의 아이러니와 비애
양 왕 용(시인, 부산대학교 명예교수)
김수봉 시인은 고등학교 국어교사로 몇해 전에 정년했으나 젊은 교사 시절부터 공부하기를 즐겨하여 필자와는 교육대학원 석사 시절 필수과목 한 과목을 수강한 사제지간이다. 왜냐하면 전공이 현대문학이 아니고 고전문학 그것도 고소설 분야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의 공부는 단순한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고 부산대학교 일반대학원 박사과정을 진학하여 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되었다.
김 시인은 시인이 되기 전에 고소설연구서도 내고 한글필사본 고소설 주해서는 30여권 내었다. 그러던 그가 부산 지역의 유일한 월간지 《문학도시》에 2017년에는 수필가로 2018년에는 시인으로 등단한 후에 두 권의 수필집을 내고는 본격적으로 시를 쓰는 시인으로 나섰다. 그의 지론에 의하면 하루 한 편씩 시를 쓰기로 작정하여 한 달에 30 편 가까운 시르 쓰고 어떤 경우에는 50 편을 쓰기도 한다고 한다. 그래서 벌서 시집 14권을 엮었다. 그는 시집을 낼 때마다 평론가의 해설은 받지 않고 <발跋>이라는 ‘작가의 변’만 덧붙인다. 그의 주장은 자기의 시는 난해하지도 않기 때문에 굳이 해설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한다. 그의 주장 속의 내포를 필자 나름으로 해석하면 독자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난해시를 못마땅해 하는 측면이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필자도 아무리 난해한 시라도 해석이 가능해야 하고 시인들의 시작태도와 삶이나 사물에 대한 세계관이 반영되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의 난해한 시들은 도무지 해석이 불가능하고 시인의 시작태도와 세계관이 도대체 무엇인지를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이 많다. 이러한 시들은 문학이 독자들로부터 소외되고 있는 요즈음 지양해야 할 경향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독자 회복 차원에서 쉽게 읽힐 수 있는 시들도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러한 관점에서 김 시인의 시 「망양로의 아이러니」를 읽어 보기로 한다.
‘망양로’는 부산의 도시 지형상 평지기 많지 못해 6.25전쟁 당시 폭발적인 피란민들 때문에 산 중턱에 자리 잡은 서민들의 주거지에 접근하기 위한 도로 즉, 산복도로를 일컫는 말이다. 산복도로의 대부분이 부산항이나 부산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기 때문에 명명된 것으로 바다를 바라보는 전망 때문에 요즈음은 부산의 명소로 자리 잡아가고 있으며 곳곳에다 스토리텔링을 입혀 낭만적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망양로 윗 동네 즉 산복도로 마을에는 주민들 가운데 그 동안의 부지런히 노력하여 주택 구입자금을 마련한 사람들이 곳곳에 세워진 아파트로 옮겨 가 빈 집들이 많아지고 있다. 김 시인이 이러한 점을 착안하여 시를 쓴 작품이 바로 「망양로의 아이러니」이다. 이 시는 김 시인의 작품 가운데는 직설적 표현이 드물고 곳곳에 시적 긴장감을 느낄 수 있는 표현들도 보이는 작품이다. 첫째 연과 둘째 연의 아침과 저녁 풍경은 아름답다는 느낌이 들 정도이다. 그러나 셋째 연부터 산복도로 주민들의 신산한 삶이 등장하면서 그동안 삶에 분주하여 앞 바다의 아름다운 모습도 못보고 있다가 막상 바라볼 여유가 생기자 많은 사람들이 떠나 빈집이 생기고 그것 자체가 쓸쓸하다는 점을 역설적으로 표현하기 위하여 ‘깃발’이라는 보조관념까지 등장하고 있다. 그러다가 마지막 연에서 아름다움과 쓸슬함과 고독을 대비시켜 아이러니의 효과를 거두면서 비애를 느끼게 한다. 즉 망양로라는 이름과 그곳 마을의 부조화를 표현한 시가 바로 이 작품이다.
이 시의 단점을 굳이 지적하면 제목 속에 ‘아이러니’라는 주제가 노출되어 있는 점이다. 그냥 ‘망양로 풍경’이라 했으면 ‘아이러니’의 효과 극대화 되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