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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3.17 06:41
46. 무인(武人)의 바름이 이롭다, 무망재거(毋忘在莒)
/양선규
고등학교 시절이었습니다. 한 반에서 친하게 지내는 야구부 친구가 있었습니다. 농담으로 한 마디 던졌습니다. “너네들은 밥 먹고 야구만 하면서 걸핏하면 에러냐?”, 그랬더니 그 친구 대답이 이랬습니다. “너네들은 밥 먹고 공부만 하면서 수학 문제 한 문제도 안 틀리냐?”, 옆에 있던 친구들이 다 웃었습니다. 참 착한 친구였는데, 그렇게 다이렉트로 반박을 하는 것을 보니 평소에도 늘 ‘에러에 대한 콤플렉스’에 시달리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무엇이든 공부는 다 어려운 것이구나, 아마 그때 그런 생각을 했던 것 같습니다.
살아 보니 가장 어려운 게 인생공부입니다. 평생을 ‘밥 먹고 사는 게’ 전분데 자타공인의 ‘인생의 달인’이 되는 게 그리 녹녹한 일이 아닙니다. 나이가 들고 조금 위치가 좋아지면 꼭 에러가 납니다. 지금 TV 아침 뉴스에서 "스포츠 분야 종사자 중에 이성이 마비된 사람들이 많은 것 같습니다"는 앵커의 멘트가 나옵니다. 최근에도 훈련비 등 2억 3천만 원을 횡령한 올림픽 메달리스트 출신 모 스포츠 종목의 코치가 경찰 수사로 적발되었다는군요. 앵커는 연전에 대통령이 직접 “스포츠 관련 비리를 엄단하라.”라는 지시까지 내렸음에도 이 모양이다라고 개탄조로 말합니다. 그 과정에서 담당 공무원에게 뇌물도 주었다고 하는군요. 국민의 세금을 ‘임자 없는 돈’으로 생각하는 나쁜 풍조가 스포츠 분야 종사자들에게 만연되어 있다고 비판하고 있습니다.
저도 수십 년 동호인 스포츠 관련 종사자로 살아왔습니다만 그런 소식을 들을 때마다 많이 안쓰럽습니다. 스포츠인 모두가 비이성적인 것은 아닙니다. 지금도 자기 주머니 털어서 제자 키우는 체육 지도자가 많습니다. 수십 년 같이 가는 스포츠 동호인들도 많습니다. 스포츠나 무도(武道)나 무용이나, 몸으로 배우고 몸으로 표현하는 공부는 배우고 익히는 과정이 참 어렵습니다. 비판적 이성(理性)보다는 지도자의 지도(시범)에 순응하는 수용적인 태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굳은 의지가 더 중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히 사고의 회로가 일방통행이 되고 이번에 적발된 것처럼 ‘나쁜 물’이 고일 수가 있습니다(사실 그런 일은 제가 아는 것만 해도 적지 않습니다. 특히 체육특기자 대학 입시에는 공공연하게 돈이 오고 간다는 소문이 한때 무성하기도 했습니다). 한창 인생공부의 기초를 쌓아야 할 때 교양을 쌓을 인문학 공부를 할 수 있는 시간도 많이 부족합니다. 그야말로 밥 먹고 운동만 해야 합니다.
제 생각에는 외부에서 스포츠계 안을 들여다보는 국가적 차원의 제도적 장치가 마련되어야 그런 부작용을 다소나마 막을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작으나 크나 체육 행정을 다루는 조직에는 반드시 ‘운동을 직업으로 삼아 본 적이 없는 사람’이 최고 결정권을 가지도록 해야 합니다. 그냥 두어서는 자체 정화가 무척 힘듭니다. 제가 속한 체육 단체도 거의 무인지경입니다. 최근에 최상위 집행부가 교체되긴 했습니다만 오십보백보입니다. 무엇이 정상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정말 소속원들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몸이 원하는 것을 알려고 하지 않고 머리 편할 생각만 합니다. 그동안 정상 궤도에서 많이 벗어나 있었다는 공감대가 형성되어 집행부가 교체되었는데 ‘머리’는 여전히 그 ‘머리’이고 오히려 든 것은 더 없습니다(누가 동호인 사이트에 그렇게 적은 것을 봤습니다). 특히 ‘법치(法治)’ 개념이 박약해서 소속원들의 불만을 많이 삽니다. 최근에도 승단심사와 관련된 어처구니없는 행정 착오로 동호인 세계가 부글부글 끓고 있습니다. 선의의 피해자가 협회에 항의성 질의를 했더니 “한 번 실순데 그것 하나 그냥 넘어갈 수 없느냐?”라는 차장급 실무자의 대답을 들었답니다. 참 한심합니다. 누가 봐도 아닌데 그래도 “그냥 하던 대로 계속해!”가 지배합니다. 군대만 그런 것이 아니라 몸 공부하는 곳은 다 사기를 먹고 사는 집단인데 공공연하게 사기 저하를 부추기는 일이 너무 많습니다. 이런 일이 쌓이면 언젠가 그들에게도 불행한 일이 닥칠 것인데 왜 모르는지 답답합니다. 예나제나 ‘암흑의 핵심’을 추종하는 이해집단들도 큰 문제입니다. ‘암흑의 핵심’의 카리스마가 사라지고 나면 그동안의 불합리를 한꺼번에 집어삼키는 거대한 블랙홀이 생길 건데 그때 자신들이 어떤 신세가 될지를 아예 모르는 것 같습니다. 천년만년 지속되는 카리스마도 없을뿐더러 부역자들이 그 카리스마를 승계하는 일은 역사적으로 전무하다는 것을 빨리 깨닫고 ‘암흑’에서 하루 속히 빠져나와야 할 것입니다.
「상전」에서 말하기를, 따르는 바람이 손(巽)이니, 군자가 이를 본받아서 명을 펴서 일을 행하느니라. (象曰 隨風巽 君子以申命行事)
초육(初六)은 나아갔다가 물러가니 무인(武人)의 바름이 이로우니라. (初六 進退 利武人之貞) -- 명령하는 처음에 있어서 아직 명령에 복종하지 못하므로 나아갔다가 물러난다. 명을 이루고 삿된 것을 가지런히 바로잡음은 무인보다 잘하는 이가 없으므로 ‘무인지정(武人之貞)’으로써 바로잡음이 이롭다. [왕필(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434쪽]
‘무인지정(武人之貞)’으로써 바로잡음이 이롭다‘, ‘공손함으로 덕을 삼으면 이 때문에 조금 형통한다’라는 것이 주역 쉰일곱 번째 ‘중풍손’(重風巽), 손괘(巽卦)의 경문입니다. 무인지정(武人之貞)으로써 바로잡는 일과 공손함으로 덕을 삼는 것은 현금 우리 스포츠계에서 반드시 실천되어야 할 일입니다. 특히 초육(初六) 효사가 ‘무인지정(武人之貞)으로써 바로잡음이 이롭다’라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자기 자신의 사욕을 채우는 선에서 조금 형통하려다 무인지정으로 바로잡지 못하면 크게 후회를 남길 것이라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역시 “주역 안에 다 있다.”라는 세간의 속설을 다시 한 번 확인할 수 있습니다.
사족 한 마디. 나랏일처럼 큰일은 아니지만, 작으나마 대학의 예산을 다루는 부서의 행정을 맡아본 일이 있었습니다. 각 부서와 관련된 예산을 배분하다 보면 체육 관련 예산들에 대한 청탁과 항의가 많이 들어옵니다. 체면도 없고 염치도 없습니다. 흔히 하는 말로, ‘공돈은 먼저 본 놈이 임자’고 돈을 쓸 때는 가급적 ‘펑펑 쓰자’라는 투로 느껴질 때가 많습니다. 저뿐만 아니라 이 대학 저 대학의 학교 행정을 맡아본 경험이 있는 친구들도 이구동성으로 그 비슷한 경험을 말합니다. 물 먹는 하마라고, 체육계가 늘 골칫덩어리라는 것입니다. 물론 그쪽에서도 할 말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체육시설이나 체육기구라는 것이 본디 다다익선이고, 돈을 들이면 들일수록 수업이나 연습에서 더 좋은 효과를 볼 수 있는 것이므로 ‘한계’를 둘 수 없는 것이 체육 예산이라고 설명을 합니다. 그러나, 그런 사정이 있다 해도, 다른 공부하는 사람들의 수준에서도 이해가 될 수 있도록 좀 더 이성적으로 처신해야 할 필요가 있을 것 같습니다. 바꾸어 생각해 보면 체육인들은 자신들을 늘 주변인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늘 남의 집 곳간에서 살림을 가져다 쓴다는 생각인 것 같습니다. 자기 집 곳간이라면 그렇게 털어먹을 생각을 하지는 않겠지요. 몸을 쓰는 일에 종사하면 종사할수록 머리가 녹슬지 않도록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는 것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열네 살에 처음 몸 쓰는 일에 입문해서 어중이떠중이 몸 사람으로 오십 년을 살아온 한 시골 늙은이의 절실한 소회입니다.
사족 두 마디. 옛말에 ‘무망재거(毋忘在莒)’라는 말이 있습니다. 제가 속한 체육단체의 새 집행부에게 드리고 싶은 말입니다. 간략하게 요점만 추려서 소개하겠습니다.
무망재거(毋忘在莒) : 임금이 된 후에도 임금이 되기 전 어려움에 처했던 때를 잊어버리지 말고 바른 정치를 하라는 뜻의 고사성어다. 중국 춘추시대 제(齊)나라의 환공(桓公)이 그의 형인 양공(襄公)의 부덕한 정치를 피해 거(莒) 땅으로 도망가 온갖 고생을 하였다. 양공이 죽은 뒤 돌아와 임금이 된 환공이 “어떻게 나라를 다스릴까?”라고 묻자, 재상 관중(管仲)이 “거 땅에서 고생한 일을 잊지 마십시오.”라고 했던 고사에서 비롯된 말이다.
사족 세 마디. 참, 서두에서 말씀드린 그 친했던 야구부 친구 이야기입니다. 참 착한 친구였습니다. 얼굴도 잘 생기고 야구도 잘 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는 약하겠습니다만, 체육지도자로 입신한 그 친구도 그런 문제로 크게 한 번 고역을 치른 적이 있었습니다. 멀리서 그 소식을 듣는 제 마음이 무척 안 좋았습니다. 체육이 ‘좋은 사람 만들기’에 기여해야지 ‘좋은 사람 못난 사람 만들기’에 기여해서는 안 될 것입니다. 지금부터라도 하나씩 고쳐 나갈 일입니다.
사족 네 마디. 동호인 사이트에 제가 올린 댓글입니다. 그냥 넘어가려니 양심이 허용치 않는군요.
“이 모든 것이 '심사위원 강습회 참가 횟수 규정' 때문에 발생한 것 같군요. 지나가던 소도 웃을 일입니다. 연수원 건립할 때 모두 십시일반으로 힘을 모았습니다. 그때는 연수원이 각종 '강습회'로 검도인들의 '기합 받는 장소'가 될 줄 아무도 몰랐습니다(강습회 참석해 보신 분들은 공감하실 것입니다). 물론 몇 분은 알고 계셨겠지요. 이번에는 심사위원 자격이 문제가 되었다 하니 그 점만 말씀드리겠습니다. 대학교수의 직급에 전임강사, 조교수, 부교수, (정)교수, 명예교수(무모수) 등이 있습니다. 요즘은 전임강사라는 직급이 유명무실해졌습니다. 초임을 조교수로 하기 때문입니다(내년부턴가 5단부터 사범 자격 심사를 볼 수 있게 한다는 말이 생각나는군요). 검도의 단에 비유해 보자면 전임강사는 4단, 조교수는 5단, 부교수는 6단, (정)교수는 7단, 보직교수나 원로교수는 8단, 명예교수는 9단에 비견되겠습니다. 조교수에서 부교수, 부교수에서 (정)교수로 승진할 때 엄격한 심사를 받습니다. 논문심사도 받고 근무 평점도 매겨집니다. 인사위원회에서 통과도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일단 자격을 얻으면 그 직급 내에서는 다시 심사를 받지 않습니다. 물론 강습회도 없고요. 5년이면 5년, 10년이면 10년, 조교수나 부교수 자격을 인정받습니다. 그 안에 승진 못하면 그만 두어야 하고요(계약을 그렇게 합니다). (정)교수가 되면 정년이 보장되기 때문에 어떤 사람이나 기관으로부터도 재차 심사를 받지 않습니다. 자기 직무 범위 안에서 재량껏 박사논문도 심사하고 각종 자격 이수 과정에 필요한 교과목의 학점도 줄 수 있습니다. 교육부(혹은 대학협의회)에서 실시하는 교수 연수회에 몇 번 이상 참여하지 않으면 자격 몰수한다는 것도 없습니다. 왜 대한검도회에서만 그런 이상한 제도를 만들어서 여러 사람을 불편하게 할가요? 4단이 되면 사범으로서 갖추어야 할 제반 지식과 태도에 대해서 강습을 하고 수료자에게 수료증만 주면 됩니다(4단이면 사범이라는 것은 오래 전부터 내려오는 일종의 관습적 헌법 같은 것입니다). 그 정도는 수련생들에 대한 예의로 그렇게 할 수 있습니다. 그것도 각 지역 검도회 별로 실시하면 됩니다. 지금은 각 지역마다 기라성 같은 7, 8단 선생님들이 많습니다(7단 중에도 굉장한 선생님들이 많습니다). 사범자격 시험, 지도자 강습회, 심사위원 자격시험 모두 폐지해야 합니다. 그만큼 배워서 어렵게 4단, 5단, 6단, 7단 땄는데 왜 연수원에 모여서(새벽에 밥도 못 먹고 가서) 새로 또 배워야 합니까? 가면 매번 똑같은 것만 가르치는데 말씀입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검도인 모두가 새롭게 각성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회원들을 위한 검도회로 거듭 나야 합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