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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6.09 12:53
13. 격렬비도 등대에서 3개월/ 조경호
1960년 9월, 10월, 11월 3개월은 격렬비도 등대장(황춘기)이 직무 교육을 받기 위해 인천지방해운국 표지과로 나가기 때문에 결원을 채우기 위해 격렬비도 등대로 조근 발령받아 근무하게 되었다. 거기서 박상섭씨를 만나 좋은 친구를 얻게 되었다. 그는 후에 팔미도등대에서 같이 근무하게 된다.
그가 하는 말 중에는 격렬비도에도 물범이 산다는 것이다. 그의 말이 이해되는 것이 있었다. 팔미도에서는 팔미도 남쪽 해상으로 강치 떼(물개와 같은 바다에 사는 포유류의 통칭)가 일제히 바다 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하면서 한 줄로 바다를 헤엄쳐 나가는 장면을 보면 서해안에는 상당수의 물범이 서식하고 있지 않나 생각하게 된다.
곽대장의 말로는 강치 떼가 일렬로 바다 수면을 들락거리며 헤엄치면 다음 날은 틀림없이 비가 내린다고 했다. 이런 말은 섬에 사는 사람들의 통계에 의한 것일 게다. 그리고 팔미도에서 몇 차례 확인한 결과 틀림없는 사실이었다. 강치류가 저런 행동을 하는 것은 아마 기압과 밀접한 연관 관계가 있을 것이라고 생각된다.
격렬비도에서 그날도 20여 마리의 강치 떼가 한 줄로 일제히 머리가 나오고 머리가 들어가면서 등허리가 보이는 형태로 헤엄쳐 지나갔다. 화창한 날 노을이 지는 저녁 무렵이었다.
“앗, 내일 비가 오겠는데 ?”
“ 조형 무슨 소리 하는 거야, 하늘 좀 봐”
“저 강치 떼가 저렇게 수면 위로 나오는 것을 보면 틀림없다네”
“조형 내기할까?”
“내일 비가 올 것이니까. 우선 발전실과 충전실의 환기창을 닫고, 배수로, 발전실로 들어온 물홈통의 밸브를 막아놓는 것이 좋을것 같은데, 보니까 물탱크 수위가 너무 높아, 오늘 당직이 자네이니까 잘 확인 해 보게”
“ 하∼ 도사 났네, 내일 비가 오면 내가 농어탕 끓여 줄게.”
“술도 없는데 농어탕은 무슨 농어탕:
”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겠지만 만약 내일 비가 온다면 회도 뜨고 탕도 끓여 놓겠네“
”농어탕이나 농어회는 격렬비도에서 던졌다 하면 건져 올리는 것이 농어 아닌가? 이것이 무슨 대수라고
“그래 그럼 내가 쫄다구 노릇하지”
저녁을 혼자 해 먹고 등대 불빛을 확인하려고 밖으로 나왔다. 등탑 옆에 풍향계를 보니, 풍향계가 북서쪽을 가리켰다. 그리고 저녁때까지 움직이지 않던 풍향계 밑에 있는 풍속계가 빙글빙글 돌기 시작했다.
속으로 웃음이 나왔다. 비는 내일 저녁때쯤 오려니 했다.
그리고 북격렬비도에 있는 등대에는 등대장이 자리를 비워 잠시 대체 근무를 위해 와 있기 때문에 아내와 셋째 아이는 인천으로 내보내고 나 혼자 등대에 왔다. 아이들 학교 문제도 생각하고 시골에 계신 부모님을 인천으로 모셔오려는 생각과 아이들 교육도 도시에서 해야 할 것 같아서다. 인천에는 표지과 소속 등대 자녀합숙소(인천지방해운국 표지과 직원 관사와 합숙소는 중구 전동 자유공원 기상대 아래에 있음)를 운영하고 있었기에 그것도 알아볼 겸 해서이다.
“조형 -!”
다급하게 나를 부르고,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잠에서 깼다. 박씨가 새벽에 나를 찾아온 것이다. 박씨는 비를 흠뻑 맞고 있었다.
“발전실 물탱크 물이 넘쳐서 충전실 바닥으로 들어갈 것 같은데 발전실 밖에 있는 물 필터와 저수조 밸브가 고장났어-!”
“그럼 발전실로 들어오는 물홈통을 차단 시켜-!”
“어떻게”
“지붕 밖에서 들어오는 필터와 저수조 위에서 물 홈통을 분리하시오”
“ 알았어, 우비를 입고 천천히 오시오”
급한데 우비를 언제 챙겨 입으랴.
그때는 어느 등대건 발전실과 충전실의 지붕(함석조)에서 받은 빗물을 홈통을 통해 발전실 지하 물탱크 안에 저장하게 되어 있었다.
발전실의 저장된 물은 발동 발전기를 가동시켰을 때 발동기를 냉각시키는 냉각수인데 등대에서는 물이 귀한 관계로 가을이 되면 비가 뜸하게 내릴 것을 대비하여 발전실 지하 물탱크에 물을 가득 채원 놓은 상태였다.
충전실과 발전실은 여닫이문으로 닫혀 있었는데 여닫이문 턱이 낮아 발전실의 바닥에 물이 차서 넘치게 되면 물은 문턱을 넘을 것이다. 충전실은 황산액을 넣은 52개의 유리 전조의 축전지가 설치되어 있다. 충전실이란 발전실에서 발전시킨 전기를 황산액 속의 납 판과 아연판으로 된 전극을 통해서 전기를 저장하는 축전지가 성치된 공간이다. 그리고 이것은 습도가 높으면 전기 스파크가 발생하거나 누전될 수가 있다. 그래서 모든 시설의 전기를 사용할 수 없는 상태에 놓이게 된다.
“박형 물 홈통은?”
“분리했소“
빗물을 지붕에서 받아 추녀의 홈통으로 유도하여 집수정으로 모으는 빗물 필터가 있는 저수조는 발전실 밖에 있었다. 박씨가 그 빗물 유도관(토관)을 분리하여 필터 저수조의 뚜껑 위로 빗물을 쏟아지게 한 것이다. 발전실의 물은 발목까지 찼다.
”충전실은 ?“
”그 기도 물이 들어찼소“
’에라 ∼이,”
박씨는 그 사건 이후 내 말이라면 팥으로 메주를 띄운다 해도 믿게 되었다. 박씨는 뭐가 그렇게 미안했는지, 잠도 자지 않고 아침 물때에 맞추어 5kg짜리(등대에 5kg 작은 저울이 있었다.)농어 두 마리를 잡아 왔다.
술 없이 먹는 농어회 맛이 어떻겠는가.
우리는 이때부터 된장으로 회를 먹었다. 곡식이 없어 곡식을 아끼느라 회로 배를 채우는 방법이다. 회를 맛으로 먹는 것이 아니라 배를 채우기 위해 먹는 것이니 맛도 없고 배도 부르지 않다.
격렬비도는 낚시가 잘 되었으나, 식량 구하기가 어려웠다. 육지와 거리(태안까지 약 57km)가 멀기 때문이다. 그리고 누가 이곳에 오겠는가, 이런 조건이 격렬비도의 천연자연이 파괴되지 않은 결과일 것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우리나라 서해 연안에는 많은 수의 물개나 물범이 살고 있었다다. 결렬비도 열도는 동서로 늘어진 10여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졌으며, 그중 비교적 큰섬은 3개로 가장 서쪽에 서격렬비도를 위시해서 섬의 우치에 따라 동격렬비도, 북격렬비도(등대 위치하는 섬)가 있으며, 태안반도 관장곶 가의도에서 서쪽으로 약 55km 해상, 우리나라 최서단에 위치하는 무인도들이다.
3개의 섬 중 가장 면적이 넓은 동격렬비도에서 각각의 섬까지 거리는 약 1.8km이며, 항로상에서 중요한 위치하는 섬들이며, 한반도 서쪽 중앙을 최전방에서 방어할 수 있는 섬이다.
격렬비도등대는 해수면에서 등대까지 표고는 약 97.5m이다. 1909년 6월에 신설 점등하였으며, 등탑 (백색 6각 철조 높이 9.4m)과 제3등급 푸레넬식 프리즘렌즈 중추 회전식 등명기에 석유 백열등으로 불을 밝혀 광달거리 26마일, 등질은 백색 30초에 3섬광으로 불빛을 비춘다.
이곳은 바닷새들의 낙원이다.
격렬비도는 괭이갈매기의 번식지이며, 동백꽃과 유채꽃이 매우 아름답다. 아직도 사람
들의 손때가 묻지 않은 비경을 간직한 섬으로 매가 서식하고 칼새, 가마우지, 찌르레기 등 이동 기착지가 격렬비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