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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시인 시집 속 시 한 편

<부산시인 시집 속의 시 한 편(1)> 요즘도 /김성춘

작성일 : 2025.06.09 12:46

<부산시인 시집 속의 시 한 편(1)>

 

요즘도

 

김성춘

 

사람들 무심코 인사치례로 던지는 말

요즘도 시 쓰세요?

그 말

왜 그 말에 가슴이 뜨끔, 해올까

잡문 같은 시 쓰지 말고

당당하고 꿋꿋한

푸른 잎사귀 같은 시 쓰라는 말

 

사는 건 언제나 시행착오의 연속이었고

그래서 시를 썼다

시를 써도 아무것도 해결되는 건 없지만

모래알 같은 흐름 앞에서

살아 있는 햇빛을 사랑하고 또 황홀해 하며

푸른 잎사귀 같은 시, 썼다 또 지웠다

 

, 당당하고 꿋꿋한 시

어디서 한눈팔고 놀고 있는지

오늘도 사람들 무심코 던지는 말

심장 한 쪽이 뜨끔, 해지는

요즘도 시 쓰세요?

 

-김성춘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에서

 

왜 시를 쓰는가?’ 하는 근원적인 시작 태도에 질문을 던진 시

양 왕 용(시인, 부산대 명예교수)

 

김성춘(1942-) 시인이 그의 시선집 피아노를 치는 열 개의 바다(2024,만인사)를 보내왔다. 그는 부산 영도에서 출생하여 1961년 부산사범학교를 졸업하면서 부산을 떠났다. 졸업하던 해 양산 원동초등학교 교사로 부임, 군에 제대해서는 울산 복산초등 그리고 중등음악교사 검정 시험 합격 후에는 울산 중등교육계에 종사하여 정년을 마쳤다. 그의 사범학교 동기 시인은 이미 고인이 된 오규원(1941-2007) 시인, 그리고 부산문화방송에 근무하다 서울 KBS로 옮겨 이미 정년퇴임한 이수익(1942-) 시인 등이 있다. 그 가운데 부산 토박이는 김 시인 뿐이다. 오 시인은 밀양 , 이 시인은 함안이 고향이다. 이 두 시인은 사범학교 졸업 후에도 부산에 잠시 살았다. 그러나 김 시인은 울산에 살다가 정년 후에는 경주로 거처를 옮겼다.

김 시인은 1974년 그 당시 박목월 시인이 주재한 시 전문 월간지 심상바하를 들으며4편으로 첫 번째 등단한 시인이 되었다. 그러나 그는 사범학교 시절 밴드부였다. 뿐만 아니라 중등학교 음악교사가 되었다, 그의 부인 강순아 여사는 그와 결혼 2년 후인 1974<조선일보><매일신문>의 신춘문예에 동화로 데뷔하여 같은 해에 부부 문인이 되었다.

김 성춘 시인은 비록 부산을 떠나 있었으나 항상 부산 시인들과 교류하였다. 1980년 필자를 비롯한 박청륭, 하현식, 진경옥, 박현서, 최휘웅 시인 등이 결성한 절대시동인에 참여하였고 필자가 근무한 부산대학교 교육대학원 국어교육 전공에 입학하여 무의미성 혹은 음악성이 바탕이 되는 순수시를 쓰는 시인 <김종삼시연구>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러한 경력으로 볼 때 그는 몸은 비록 고향을 따났으나 마음은 항상 고향 부산에 있었다. 그는 사범학교 시절 밴드부 체험이나 음악 교사 경력으로 볼 때에 음악적인 특성이 기반이 된 시를 써왔다고 볼 수 있다.

인용한 시 요즈음은 음악성은 두드러지지 않으나 80을 넘긴 김 시인의 일상이 시적 제재가 되어 있다. 그리고 일종의 메타시 즉, 시 혹은 시작에 대한 시이기도 하다. 한편으로는 지나친 음악성에서 오는 시의 애매성도 배제되어 있다. 시적 비유나 긴장감을 유발하는 시적 기법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첫째 연에서처럼 단순히 요즈음도 시 쓰세요?’라는 질문에서 시에 대한 태도 시작에 임하는 자세 등에 도전을 받는다. 그 질문을 잡문 같은 시를 쓰지 말고 당당하고 꿋꿋한 푸른 잎사귀 같은 시를 쓰라는 경고로 받아 드린다. 이 시에서 시적인 의미 즉 애매성을 가진 다층적 의미를 담고 있는 부분은 당당하고 꿋꿋한 푸른 잎사귀 같은 시이다.

물론 일차적 의도로는 요즈음 남발되고 있는 잡문 같은 시는 쓰지 않겠다는 각오를 피력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둘째 연에서 그동안 그의 시를 쓰는 자세와 삶과 사물들을 바라보는 태도가 어느 정도 반영되어 있다. 필자는 이 부분에서 그가 지금까지 시를 쓰는 것은 단순히 사물에 대한 감각적 인식으로서의 시가 아니라 비록 중대한 현실이나 그에 대한 상황의식을 피력을 한 것은 아니지만 그 자신의 굴곡진 삶의 흔적들을 시로 형상화하기를 힘썼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이러한 시작 태도에 대한 고민은 비단 김 시인에게만 부딪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리고 당당하고 꿋꿋한 푸른 잎사귀 같은 시란 순수 서정시의 어느 한 경향만을 대변하는 시는 아니라는 생각도 해 본다. 이 땅의 현역 시인으로 존재 하는 한 계속 고민해야 할 시라는 생각도 해본다. 그래야만 80을 넘긴 나이까지 시를 쓰는 이 땅의 시인들의 보람도 느끼고, 시작의 의미를 재정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