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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6.02 02:56
<회고록 /등대이야기> /조경호
12. 거기 누구 없소
그해 겨울은 유난히도 바다에 얼음장이 많았다. 팔미도와 대부도 사이의 수로에 얼음장의 폭은 수백 미터, 길이는 수십 킬로나 되는 얼음장이 수면을 채웠다. 배들은 얼음에 막히어 오지도 가지도 못했다. 강화도에서 북장자서까지 이르고 있으니 말이다.
한강과 임진강, 예성강에서 흘러나온 얼음장은 인천 앞바다를 메우고 팔미도 앞을 지나 북장자서의 물 길까지 막고 있었다. 이럴 때는 무역선도 들어오지 않는다. 뱃길이 뜨있는 얼음장에 막히어 바다가 올 스톱이다. 영종도와 팔미도 사이는 얕은 물이라 물 흐름이 약해서 이 바다로는 성엣장이 떠밀리지는 않았다. 팔미도 섬 해변에는 얼음장 떼의 띠에서 떨어져 나온 유빙들이 해변으로 밀려든다. 두께도 크기도 상당했다
등대 가족들은 저녁을 먹고 한 7시쯤에 등대장 관사로 마실을 갔다. 북서풍이 매섭게 빨래줄에 달라붙어 앵앵거리던 날 밤이었다. 곽대장은 여름날에 미군에게서 얻은 커피를 어른들에게 대접했고 아이들에게는 초코렛 가루를 타 주었다.
담소가 이어지고 있을 때였다. 창문이 흔들렸다. 바람에 흔들리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번에는 북쪽 창문에서 소리가 났다. 대장님댁에 모인 모든 등대 가족이 소름이 끼치도록 오싹하며 입을 다물었다. 서로 눈만 마주치고 있었다. 추운 겨울 밤중에 등대를 찾아올 사람은 없기 때문이었다. 특히 이런 때에는 모든 선박이 출항 금지가 되어 등대섬으로 올 사람이 없었다.
곽대장의 검지가 계속 다문 입에 십자로 머문 채 아이들을 단속하고 있었다.
침묵만 흘러갔다.
“거∼거기 누구 없소”
떨고 있는 사람의 목소리가 분명 했다.
혹시 간첩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또 한 번의 가늘고 길게 떨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나의 몸에서는 솜털이 다 일어섰다.
“게 누구요”
곽대장의 목소리도 떨렸다. 그러나 내가 만난 사람 중에 담력이 가장 컸던 분이었다. 그런 분도 떨고 있었다. 그런데 와장창하는 소리가 밖에서 들려 왔다. 여닫이 창문이 무엇인가에 의해서 심하게 부딪히는 소리였다. 밖으로 나가 보았다. 왠 사람이 쓰러져 있었다. “누구시오” 대답이 없다. 쓰러진 사람을 만져보니 옷이 물에 젖어 있었던 모양이었다. 얼어서 와짝 와짝 했다.
그 사람을 부엌 안으로 데리고 들어와 보았다. 온몸이 완전히 얼어 있었다.
불씨가 있는 아궁이의 부뚜막에 그를 앉혔다. 그는 힘없이 옆으로 쓰러졌다. 아궁이에 불을 지폈다. 방안에 있던 사람들이 전부 나왔다. 그는 쓰러진 상태에서도 말을 하려는 것 같았다. 곤로 위에 있는 솥에서 숭늉을 떠 먹였다.
“저, 저-기요 선창에 우리 선원 둘이 있어요. 살려주세요”
등대장님과 내자들만 남기고 나와 윤씨, 정씨가 지게를 메고 모래사장 선착장으로 내려갔다. 하얗게 거품을 문 파도는 백사장에 수없이 부서지고 모래는 바람에 날려 얼굴을 콕콕 찍었다.
배는 달빛에 보아도 두 개의 돛이 있는 돛단배였다. 용유도 쪽에 있는 팔미도 해변에서 풍랑으로 좌초하고 있던 것을 선원 세 명이 결사적으로 팔미도 모래 해변까지 몰고 온 것이었다. 그리고 팔미도 해안 30m까지 와서는 배가 절반쯤 물에 잠기자 배를 포기하고 바다에 뛰어들어 해변까지 헤엄쳐 나왔다는 것이었다.
배 주인이 등대로 올라와 도움을 청한 것이었고 두 명은 해안가에 모닥불을 놓으려고 삭정이 검불을 주어 모으고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데리고 나의 관사로 왔다.
그리고 다담이 방 건너편에 있는 온돌방을 내주고 아궁이에 불을 넣었다. 등대장님 댁에 있던 사람도 이곳으로 옮겨서 옷가지를 주고 목욕을 시켰다.
“아∼내일도 온종일 물을 길어 날라야 할 것이다”
팔미도의 우물은 해안가에 있었기 때문에 우물을 길어다가 물통에 가득 채워 놓아야 했다. 그런데 며칠 먹을 물을 목욕용으로 쓰고 나면 다음 날은 온종일 물을 길어 날라야 한다. 인천에서 보급품(등유, 석유 등)이 와도 마찬가지다.
그들은 무의도 사람들이었다. 무의도의 생필품이 떨어져 인천으로 물건 구입을 하려고 가려다가 이 꼴이 되었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