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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3.02 03:44
45. 나무를 타고 험난한 곳을, 천재일우(千載一遇)
한 평생 살다 보면 주변의 절실한 도움이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곤란에 들면 주위가 캄캄해지고 내 몸이 마치 끝도 없는 심연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듭니다. 생각도 몸도 지쳐서 아무런 시도를 할 수가 없습니다. 혼자서는 꼼짝도 하지 못합니다. 그야말로 조난(遭難) 당한 느낌입니다. 그럴 때 내가 사지(四肢)를 의탁할 수 있는 존재를 만난다는 것은 큰 행운입니다. 위기의 강(江)이나 내(川)를 건널 수 있도록 긴 가지 하나를 내뻗는 나무 한 그루의 존재는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귀한 것이 됩니다. 험한 인생행로에 한줄기 밝은 빛을 비추어줍니다. 그런 결정적인 도움을 얻는 일이 누구에게나 한두 번씩은 있기 마련입니다. 제 경우를 돌이켜 보면 고비 고비 때마다 천재일우(千載一遇)로 승목(乘木)의 기회를 얻어 험난한 세파를 건널 수 있었습니다.
중학교 입학을 앞두고 등록금이 없어서 납부기일을 넘기고 속수무책, 그저 낙담만 하고 있을 때였습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그저 막막한 심정으로 있었습니다만 때마침 지역의 라이언즈 장학금이 신설되어 (그 사정을 알고 있던 교장선생님의 도움으로) 그 혜택을 입어서 무사히 학교를 다닐 수 있게 되었고, 고등학교 입학 때 역시 비슷한 사정이었는데 종친회 장학생이 신설되어 (그 사실을 우연한 기회에 지난 신문에서 발견하여) 그 수혜를 입어 학업을 이어갈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 두 번의 인연은 지금 생각해도 불가사의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천재일우(千載一遇, 천 년에 한 번 만남)라는 말에 딱 들어맞는 경우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런 일은 대학교 때도 있었습니다. 어찌어찌 1학년은 무사히 마쳤는데 갑자기 앞뒤가 딱 막혀서 오도 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학업을 포기하고 군에 입대할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되었는데 아무래도 제가 생각하고 있었던 장래를 위해선 그 난관을 뚫고 나가야 할 것 같았습니다. 그때 한 친구가 도움을 주었습니다. 한 학기 등록금을 빌려주었습니다. 늘 형 같은 너그러움으로 저를 대해 주던 친구입니다. (얼마 전에 “그때 빌려 간 돈 안 갚나?”라고 빛 독촉을 한 번 했습니다) 덕분에 아르바이트 자리도 구하고 공부를 계속해서 대학원도 가고 군 복무를 사관학교 교관으로 마칠 수 있게 되고, 소설가로 등단도 하고, 대학교수도 되고, 그럭저럭 지금의 제가 있게 되었습니다.
학창 시절을 마치고 나서도 여러 분들의 도움을 받았습니다. 학창 시절의 은사님들의 보살핌을 많이 받았습니다. 부모 복이 없는 대신에 선생님 복은 많은 모양이다라는 생각도 많이 했습니다. 결혼해서는 어려울 때마다 아내가 나무 역할을 많이 해주었습니다. 궂은일도 마다하지 않고 흔들림 없이 제 옆을 지켜주었기에(가정사라 자세한 사정은 약합니다) 지금의 제가 있을 수 있었습니다. 중년기 이후에는 직장 동료들과 검우(劍友)들이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주었습니다. 스승, 동학, 제자로 저를 많이 이끌어주었습니다. 현재 저에게는 그분들이 가장 소중한 이웃입니다. 가까이 있는 가장 큰 우주입니다.
마지막으로는 페이스북이 있겠습니다. 중년기에 인생의 위기가 찾아왔습니다. 인간에 대한 절망으로 굉장히 어려웠습니다. 못난 놈, 이상한 놈, 야비한 놈, 비겁한 놈, 차도살인(借刀殺人)하는 놈, 면종복배하는 놈, 온갖 ‘놈, 놈, 놈’들이 주는 스트레스에 정신은 물론이고 몸까지 힘들었습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저 역시 그런 ‘놈, 놈, 놈’ 중의 하나였겠지요. 그때 페이스북을 만났습니다. 마침 제 방에 놀러온 동료가 있어 그에게 말했습니다. “앞으로 나는 이곳에서 ‘자기실현’을 해야겠다. 글도 쓰고, 책도 내고, 좋은 사람들도 만나고, 늦은 감이 있지만 예전처럼 사람답게 살겠다.”라고 말했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습니다. 얼마 전, 그 동료에게 <인문학수프>를 선물했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하셨군요.” 책을 받으며 그가 그렇게 저를 격려해주었습니다. 생각해 보니 그 동료분도 나무였습니다. 그렇게 제 말을 들어준 그가 있었기에 더 힘을 내어 무사히 ‘나무를 타고’ 험한 물을 건널 수 있었습니다. (그 분에게는 나름 보답을 했습니다. 직장 일이라 자세한 시정을 고하지는 않겠습니다)
요즈음에는 저 또한 누군가의 나무가 되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오해는 말아주시기 바랍니다. 그저 나무일 뿐입니다. 그 이상은 언감생심입니다. 물을 건너고 나서도 타고 건넌 물에 젖은 나무를 등에 지고 먼 길을 가는 사람은 없습니다. 나무는 오로지 내를 건너는 도구일 뿐입니다.
...나무를 타고 험난한 곳을 건넌다. 나무라는 것은 오로지 내를 건너는 도구이다. 험난한 곳을 건너는 데 항상 환(渙, 흩어지다)의 도를 쓰면 반드시 공이 있다. (乘木, 卽涉難也. 木者, 專所以涉川也. 涉難而常用渙道, 必有功也.)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45쪽]
주역 쉰아홉 번째 ‘풍수환’(風水渙), 환괘(渙卦)는 험난한 세파에 맞닥뜨려 어떻게 슬기롭게 ‘도움을 얻어’ 난관을 넘을 수 있을 지에 대해서 말합니다. 육삼(六三)의 효사가 환괘의 본질을 잘 드러냅니다.
...육삼(六三)은 자신을 흩어버리니 후회가 없느니라. (六三 渙其躬 无悔) - 환(渙)의 의의는 안은 험하고 밖은 편안한 것이다. 자신을 흩어버리고 밖에 뜻을 두어서(공영달에 의하면 육삼 자신은 안에 있지만 밖의 상구(上九)에 응함을 말한다), 굳게 지키지 않고 강한 것과 뜻을 합하므로 후회가 없어질 수 있다.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47쪽]
저에게는 이 대목이 ‘자신을 흩어버리고’ 밖에 있는 강한 것(대의와 명분)과 뜻을 합하면 ‘나무’를 만날 수 있다는 말씀으로 읽힙니다. 모든 ‘건너는 일’의 앞에 ‘자신을 흩어버리는 일’이 있어야 합니다(諸法無我). 때가 이르렀는데도 끝내 안에 매여 있어서는 그 어떤 도움도 받을 수가 없습니다. 버둥거리다 결국은 비참하게 몰락합니다. 육십 평생을 뒤돌아보니 만년(晩年)에 얻고 있는 요즈음의 페이스북 도움이 그 중 가장 큰 나무인 것 같습니다. 아무쪼록 오래토록 이 큰 나무에서 떨어지지 않기를 바랄 뿐입니다. 풍수환!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