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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 연재 >11. 검은 겨울바다 /조경호

작성일 : 2025.05.27 02:01

 

(6) 검은 겨울 바다

 

1959년 겨울 등대의 겨울은 더없이 삭막하고 쓸쓸하다.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다. 하늘에서 바다에 칠해지는 색채도 다채롭지만 겨울바다의 색은 검은 회색이다. 19501960년대까지만 해도 바다에 떠다니는 돛단배를 흔히 볼 수 있었던 시절이었다.

 

답답하기 그지없는 더디기만 한 목선이지만 그래도 돛을 세 개나 펼치고 바다에 떠 있는 거대한 목선을 보면 바다 위에 무엇인가 있다는 것이 위안이 되곤 했던 시절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그림 같은 풍경도 겨울이 되면 그마저 보이지 않는다. 겨울의 모진 추위와 바람 때문이다. 간혹 배 위에서 불이 날 때도 있다. 그래서 바다 위에서 전소될 때도 있다. 또한 풍선(돛단배)으로는 섬 인근에서 고기를 잡을 수가 없기 때문이다. 물고기 잡고 싶은 바다로 사라지기 때문이다.

 

60년대에는 데구리선이라고 하는 철선이 겨울 바다를 헤치고 나타났다. 새로 등장한 쌍둥이 선이라는 어선은 2척이 꼭 쌍으로 붙어 다닌다. 그래서 그 어선들을 쌍끌이 어선이라 부른 것이다. 두 척이 그물 양 끝을 잡고 바다 밑을 샅샅이 훝고 다닌다. 작은 새우 새끼 하나도 빠져나가지 못한다. 바다 지옥의 그물과 같은 것이다.

 

고기잡이 선박으로는 일대의 혁신을 이룬 방법이었지만, 그 당시 서해의 바다 고기 씨가 말라가고 어군 탐지기가 등장하면서 회류하는 물고기 떼가 서해 길목에서 사라지게 된 것이다. 연평도의 조기는 그래서 산란지를 바꾼 것 일 게다.

 

5060년대는 일본이 그랬고 6070년대는 우리가 그랬다. 지금은 어마어마한 쌍끌이 어선으로 중국이 우리 바다를 공략하고 있다. 강도짓은 도시에서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서도 일어나고 있다. 물고기는 국경선이 없다. 우리 바다로 들어오면 우리 것이요 우리 바다에서 나가면 우리 것이 아니다. 우리 땅 근해의 바다가 청정해지면서 많은 고기떼가 우리 근해로 몰려들 것이다. 우리의 문화가 발달하고 경제성이 높아지면서 우리 도시가 세계화된 것처럼 우리의 바다도 우리가 지키지 못하고 오가는 바다의 항로를 인도하지 못한다면 바다에서 고립되는 황량한 바다의 사막에 불과할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쌍끌이 어선이 사라지게 된 것은 석유 가격이 등급했던 1차 석유파동을 맞으면서다. 또 하나는 그나마 풍부했던 어류가 마구잡이식이 되어 사라졌기에 원거리 조업을 해야 했기 때문이며, 우리의 식생활의 변화 때문이다. 우리가 즐겨 먹는 생선은 이제 활어다. 중국인들의 쌍끌이 어선이 사라지게 하는 방법은 활어회를 먹게 하는 방법일 것이다. 그들은 날것을 먹지 않는 식습관을 바꾸기가 어려울 것이다. 부산이나 제주도에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도 활어회 시장이 한산하다. 그들에게 길들려 질 활어회의 맛을 개발해 볼 필요가 있다. 내 생각에는 중국 국가 주석을 활어회 미식가로 만들면 될 것이다. 하지만 누가 방울을 달 것인가?

 

잡다한 이야기가 되었지만 1959년 겨울을 잊을 수가 없다.

초겨울에 바다의 공기는 기온 층이 큰 차이를 보이면 영락없이 바다 안개인 해무가 낀다. 바다 안개의 문제는 바다 위의 상공 30m쯤에 쌓이는 것이 문제였다. 무신호의 사이렌 소리가 바다를 향해 밤낮없이 외쳐도 등대섬 바로 밑으로 접근되는 선박은 섬 정상에서 울어되는 사이렌 소리가 그저 은은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소리는 공기 중에 분포하고 있는 수분의 밀도와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섬 정상은 대기가 아주 맑아 시야 수 Km를 확보할 수는 있지만 수분이 적어 공기의 밀도가 적다. 섬 아래 바다의 바로 위에는 공기층은 밀도가 아주 높아서(안개의 물방울 때문에) 등대 무신호 사이렌 소리가 안개층에서 반사된다. 또한 선박 자체의 엔진소리가 안개층에서 더 크게 증폭되기 때문에 등대의 무신호 소리를 상쇄시킨다.

그러나 안개층이 광범위하게 넓고 높게 분포하고 있을 때는 맑은 날 보다 사이렌 소리가 훨씬 멀리 퍼진다는 것은 상식적인 일이다.

 

그래서 등대의 정상에 있는 무신호 사이렌 나팔은 사방을 향해 4기가 있으며, 정상 항로에서 선박이 잘 들을 수 있도록 등대의 사이렌 나팔이 철탑 위에 고정되어 있다. 그래서 흐린 날에 섬 정상 아래로 깔리는 해무가 발생 되면 아주 난처하다. 섬 중턱쯤에서 선박의 엔진소리를 관찰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아침에 남쪽 해안으로 접근하는 선박의 엔진소리를 들었다. 소리로 보아서는 몇 마력짜리 작은 발동선이 아니었다. 디젤 엔진소리였다. 적어도 500톤급 중형 선박이리라. 싸이렌 소리는 멀리 퍼지지만 근접해 있으면 소리의 파장이 짧은 고음의 종소리가 더 났나 싶었다. 나와 윤씨가 귀마개를 하고 청동의 종을 교대로 두들겼다. 곽대장과 정씨는 남쪽 뽀족 바위와 암초가 있는 해안을 내려가 있었다.

 

이 조형 큰일 났네

 

정씨가 헐떡거리며 싸이렌 소리와 종소리가 번갈아 울리는 등탑이 있는 정상까지 올라왔다.

 

조형, 큰일 났네 배가 걸었어

어디에다가 걸었나요?”

뾰족여야 뾰족 여

 

라는 말은 바다 속 암초를 말한다. 뾰족여라고 하면 정씨가 거주하는 남쪽 창고 관사의 뒷길로 난 가파른 작은 길을 택하여 내려가야 한다. 뾰족여는 팔미도 해안에서 직선거리 100m 안에 있는 암초를 말한다. 암초의 높이는 타원의 둥근 밑 바위와 고구마처럼 뾰족하게 밑 바위에 얹힌 바위 끝까지 한 5m 정도는 될 것이고 뾰족 바위의 직경은 약 2m 정도는 될 것이다. 그 바위 남쪽 밑은 수심이 아주 깊은 곳이다. 이 뾰족한 암초에 배가 걸었다는 것이다.

 

나와 윤씨는 남쪽 뾰족 바위 해안으로 내려갔다. 안개가 걷히고 있어 해안에서도 100m 정도의 시야는 확보되고 있었다. 500톤급 기중기 (물건을 들어 올리는 기중기)선박이었다. 선박은 디젤 엔진을 역회전시키고 있었지만 배는 꿈적 하지도 안했다.

 

큰일인데, 만조가 30분 지난 썰물 때야. 배가 중앙이 얹히어져 이대로 가면 두 동강 날 것인데

 

섬 해변에서 뾰족 암초까지의 물살은 세지 않았다. 거리는 한 70m, 난 수영에 자신은 없었지만 윤씨와는 동갑으로 가장 젊었다. 윤씨와 난 말없이 신발과 바지, 윗옷을 벗었다. 양말과 내복 그리고 면장갑을 낀 채 초겨울 바다로 풍덩 했다. 기중기선 보호용 타이어를 붙잡고 배에 매달렸다.

 

이 밑이 암초인데, 긴 쇠 파이프나 지렛대가 있으면 주시오

 

내 말에 선원이 긴 쇠 파이프를 내게 주었다. 쇠 파이프를 배 밑에 끼어 보았다. 다행히 암초와 배 밑창에 쇠 파이프가 잘 걸린 것 같았다. 나는 선원들에게 로프로 고리를 만들어서 달라고 했다. 로프의 고리를 파이프에 걸었다. 선원들은 무슨 뜻인지 말을 하지 않아도 알아들었다. 그들은 로프를 기중기에다가 걸어 매고 당길 심산인 모양이었다. 커다란 파이프 렌지를 나에게 주었다. 나와 윤씨는 로프를 걸고 쇠 파이프에서 로프가 빠져 나가지 못하게 파이프 렌지를 쇠 파이프 끝에 채웠다.

 

배가 까르랑 거리면서 기중기를 들어 올리자 배가 빙글 돌면서 한쪽으로 기울러졌다. 나와 윤씨는 그 자리를 급히 떠났다. 선박의 프로펠라의 힘에 말려들어갈지 몰라서였다. 조금 있더니 기중기선이 푹-하고 절반쯤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왔다.

 

고맙소 언제 한번 찾아 뵙겠수다

 

선박의 엔진소리를 들으면서 해안을 향해 죽을 힘을다 했다. 이제 내가 살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윤씨는 나보다 앞에 있었다. 몸이 반대로 가지 못하고 물살에 떠밀리고 있었다. 이대로 가면 송장이 떠밀린 곳에 도착할 것인데 하는 생각이 떠올랐다. 죽을힘, 있는힘 하다못해 젖 먹던 힘까지 다 했다. 나는 팔미도 남쪽 길로 올라가는 바위 끝 부리를 겨우 잡았다. 정씨와 등대장이 내 팔을 붙잡고 끌어 당겼다. 아내가 담요를 가지고 서 있었다. 물속에 있을때 보다 물에서 나오니까 몸이 굳기 시작했다. 아래턱이 덜덜거려서 말하지 못했다.

 

목욕탕은 팔미도에서 유일하게 내가 사는 관사에 붙어 있었다. 탕 속으로 나와 윤씨는 함께 들어갔다. “ , , 내일은 또 온종일 물을 길어야 하는구나탕 속에서 잠이 들었다.

 

어퍼컷, 뒤로, , , 어퍼컷

조형 왜-그래, 어디 아파-”

 

윤씨가 나를 깨웠다. 내가 힘들 때마다 링 위에서 헉헉거리는 꿈을 꾸고 있었다. 사명감은 무엇 때문에?“라는 질문에 답 할 필요가 없다.

 

책임자인 등대장과 정씨가 욕탕의 물 온도를 살피면서 아궁이에 검불을 지필 수 있다는 것에 족할 뿐이다. 행복이라는 것도 셋째 아이가 욕탕 물 위로 내밀 내 얼굴을 보려고 자주 미닫이를 열고 들랑거릴 때마다 찾아왔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림입니다.

원본 그림의 이름: CLP00003f1c7da7.bmp

원본 그림의 크기: 가로 327pixel, 세로 352pixel