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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5.25 12:15
<부문 3-10>
문학이 어떻게 < 오고 싶은 도시 해운대>에 기여할까?
(1) 들머리
부산문인협회 회원은 2022년10월 현재 1501명인데 그 가운데 해운대구에 주소를 두고 있는 회원이 215명으로 추정된다. 2022년 초 발행된 회원 수첩 자료를 분석한 바에 의하면 수록된 1489명 회원 가운데 1300명이 부산에 거주하는데 그 가운데 해운대 거주 회원이 213명이고 두 번째로 많은 구가 남구와 부산진구로 135명이다. 다른 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많다. 그 외 문협에 가입하지 않고 타 단체에서 활동하는 문인이나 전혀 단체에 가입하지 않고 문단에 데뷔한 문인들까지 추산하면 300명에 가까운 문인들이 해운대에 거주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이러한 현상은 미술이나 음악 혹은 무용과 같은 다른 단체도 마찬가지라고 볼 수 있다. 이렇게 많은 예술인이 거주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운대의 경우 다른 예술과의 연합체가 없다. 그래서 연합체가 있는 타지역보다 문화예술활동이 저조하다. 특히 문협 회원 35명인이웃 기장군에 비해서도 저조한 편이다. 기장군의 경우 소설가 오영수의 작품 「갯마을」의 무대라고 하여 <갯마을 축제>라는 문화예술 축제를 1996년부터 개최하고 있으며 그것을 기장문인협회에서 주관하고 협회에서 내는 기관지 《기장문학》의 경우 부산의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회원들의 작품에 고료를 지원하는 몇 안 되는 기관지이다.
해운대의 경우 해운대문인협회는 해마다 <동백시화전>과 기관지 《해운대문학》을 발간하고 있지만 해운대구청 당국으로 지원 받는 재정은 열악한 실정이다. 말하자면 전국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 나 있고 부산에서도 여러 면에서 삶의 질이 선두에 있는 것에 비하여 문학을 포함한 문화예술 특히 고급문화라는 순수예술에 대한 지원은 미미하다. 다른 구에 비하여 시설이 빈약하기 짝이 없는 <해운대문화예술회관>을 보아도 그 동안의 기초자치단체장들과 기초의원들의 문화의식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그리고 해운대에서 개최되는 국제적 예술행사도 여럿 있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부산광역시의 행사이지 해운대라는 기초자치단체 그것도 대한민국에서 살기 좋은 곳으로 소문난 <해운대>라는 이름을 걸고 하는 행사는 전무하다.
그러면 과연 이런 행사를 개최할 수 있는 여건과 콘텐츠는 없는가? 아니다 분명히 있는데 그것을 자치단체 당국의 무관심과 문화예술인들의 단결된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것으로 인하여 외면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래서 필자는 여기서 필자가 체험한 영국의 사례를 살펴보고 그 발전적 방향을 제시하여 보기로 한다.
(2) 영국의 경우
필자는 한국문인협회 부이사장을 맡고 있던 2018년 5월30일부터 6월8일까지 8박 10일 한국문인협회 제27회 해외문학심포지엄 및 문학탐방단의 책임자로 영국을 방문한 바 있다. 애초에는 아일랜드까지 포함하여 10박 12일의 계획을 세웠으나 여행경비가 너무 많아 영국만 한정하기로 하였다. 영국의 경우 세계문학사에 남은 문호들이 많고 그 기념관들이 많아 8박으로 어떤 문호들의 유적들을 찾을까 고민이 많았다. 그래서 5월 30일 런던에 도착 즉시 해외문학심포지엄과 해외문학상 시상식을 마치고 호텔에 투숙하였다.
영국문학탐방에 나선 첫날인 5월31일에는 바이런과 워즈워드의 모교인 캠브리지 대학을 방문하고 리즈라는 도시에서 잠을 잤다. 6월1일 오전에는 리즈의 조각가 헨리무어 등의 작품이 소장된 아트갤러리 관람 후 에밀리 브론테와 샬롯 브론테 자매의 도시 하워스를 탐방 후 브레드포드라는 도시에서 점심을 먹고 오후에는 스코틀랜드 에딘버러로 이동하였으며 6월 2일에는 하루 종일 월트 스콧, 코난 도일 유적과 헤리포터를 탄생시킨 카페 엘리펀트 하우스, 작가박물관 등을 탐방하였다. 6월 3일에는 내려오면서 영국의 작가와 예술가들이 영감을 얻었다는 호수지방 윈더미어 호수 크루즈와 윌리엄 워즈워드의 유적이 있는 글래스미어를 거쳤다. 6월 4일에는 셰익스피어의 고향 스트랫퍼드 어폰 에이번을 들려 제인 오스틴이 몇 년 머문 목욕탕의 도시 바스에서 일박하였다. 6월 5일 오전에는 스톤헨지를 거쳤다. 그리고 난 뒤에 토마스 하디의 생가와 박물관이 있는 로체스터로 이동할 예정이었으나 도저히 그곳을 갔다가 런던으로 돌아가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하여 제인 오스틴이 만년에 머물었고 무덤이 있는 윈체스터를 거쳐 런던으로 돌아왔다. 마지막 날인 6월6일에는 런던 시내 관광으로 대영박물관, 찰스 디킨스 박물관,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찰스 디킨스. 토마스 하디. T·S 엘리엇 등의 묘소를 참배하였다. 이렇게 주마간산격이긴 하나 여러 작가, 시인들의 유적을 둘러보았다.
여기서는 문호들의 유적이나 기념관의 운영 프로그램이나 시설과 규모에 대한 언급보다 각 도시의 축제에 대해서 살펴보기로 한다. 에밀리 브론테 생가와 셰익스피어 생가에 대한 안내는 한글판도 있었다. 사실 이 행사를 기획하면서 축제 기간에 방문할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으나 그럴 경우 많은 작가들의 유적 탐방이 어려울 것 같고 여행경비의 부담도 더하여질 것 같아 피했다. 그러나 축제에 대해 살펴볼 수 있는 까닭은 각 도시마다 축제를 홍보하는 책자들이 각종 기념관이나 식당마다 다양하게 비치되어 있었다. 특히 에딘베러의 8월 3일부터 27일까지 개최되는 음악과 각종 공연 중심의 인터내셔널 페스티벌은 우리가 알고 있는 다양성을 초월한 것이었다. 보드스 북 페스티벌은 6 월 14일부터 17일까지 개최되는 것으로 나와 있었다. 비록 짧은 기간이나 15분 혹은 30분 단위로 작가들이 소개되고 있었다. 제인 오스틴이 묻혀 있는 윈체스터 대성당에서는 제인 오스틴 전시회가 열리고 있었으며 그 도시 역시 윈체스터 페스티벌이라는 축제를 7월 6일에서 14일까지 개최하고 있었다. 음악 공연중심의 이 축제에는 많은 교회가 직접 참여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었다.
이상의 유명한 도시의 축제보다 필자가 주목하고자 하는 도시의 축제는 우리나라에는 크게 알려진 도시가 아닌 6월1일 에딘버러로 올라가기 전 점심을 먹은 브래드포드라는 도시의 축제이다. 브레드포드는 이웃에 있는 조각가 헨리 뮤어의 도시 리즈 근교의 리즈·브래드포드 공항을 같이 쓰는데 근처의 에밀리 브론테의 고향 하워스로 갈려면 반드시 들리는 도시이다. 그러나 국내에서는 생소한 지명이다. 요크셔 햄버에 위치한 영국의 5대 도시에 들어가는 도시 인구 54만, 광역권 230만의 도시이다. 공업이 발달하여 노동자가 많아 노동당이 우세 지역이나 보수당 지지세도 만만찮다고 한다. 2019년 국회의원 선거에서 3:2로 접전을 벌린 곳이다. 그리고 브래드포드대학교도 옆 도시 리즈대학교만큼 유명하지는 않으나 명문 대학이다. 또한 내셔날 사이언스 앤드 미디어 뮤지엄이 있는 도시이다. 말하자면 공업과 그에 관련된 과학 기술이 발달한 도시이다. 이 도시에서 점심을 먹으면서 2018년 6-7월의 홍보책자인 <the Bradford Review>를 입수하게 되었다. 36개 이슈가 수록되어 있었는데 책자 뒷 표지에 2018년 6월 29일부터 7월8일까지 10일 동안 개최되는 <BRADFORD LITERATURE FESTIVAL>에 눈이 뻔쩍 뜨일 수밖에 없었다. 이 도시에 문학축제가 개최되는 것이 의아했다. 금융그룹 PFG가 후원하는 행사였다. 400 작가의 참여로 300 개의 이벤트가 벌어지는 행사였다. 물론 이 도시도 100년 역사의 영화제, 과학 및 미디어 축제, 음악제 등 다양한 축제를 가지고 있었다. 그런데 다른 도시와 달리 문학축제를 한다는 데서 감동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앞에서 언급한 유명작가들의 기념관이 있는 도시에서는 상시로 행사가 벌어지고 셰익스피어의 고향에서는 상시 공연이 있었으며 생가에서의 행사도 다양했다. 특히 제인 오스틴의 경우 가 보지는 못했으나 고향 스티번턴, 잠시 머물었던 도시 바스, 앞에서 살핀 만년에 머문 도시 윈체스터와 묘지가 있는 그곳의 성당 등 곳곳에서 그 나름대로 특특한 행사가 벌어진다고 한다. 그런데 작가들과는 전혀 인연이 없는 도시 브래드포드에서 문학이라는 이름을 걸고 축제를 하는 것이다.
사실 영국을 속속들이 탐방하기 위해서는 8일은 턱 없이 시간이 부족했다. 좀 더 긴 시간을 갖고 제임스 조이스의 도시 더블린이 있는 아일랜드를 포함한 가보지 못한 토마스 하디, T. H. 로렌스 등 다른 작가의 유적지를 놓친 것을 아쉬워하며 돌아올 수밖에 없었다. 그러면 이제 우리가 살고 있는 해운대에 문학적으로 기념할 만한 곳 없는가에 대하여 살펴보기로 한다.
(3) 해운대의 경우-동백섬 최치원(857-908?) 유적지의 활용
해운대라는 지명의 유래에 대해서는 아마 모두 알고 있을 것이다. 그러나 다시 한 번 상기시켜 보기로 한다.
신라 말 당나라에서 과거에 장원을 하였으나 소외되었고 신라에서도 골품제도에 막혀 제대로 중용되지 않던 석학 고운 최치원 선생이 벼슬을 버리고 가야산으로 가던 중 자신의 호이기도 한 海雲에 적합한 절경을 보고 해운대라 이름 짓고 동백섬 남쪽 바위에다 海雲臺라는 글자를 몸소 새겼다고 전해온다. 그 글자가 동백섬 등대 왼쪽 아래 바위에 있으며 1997년 부산광역시 문화재 제 45호로 지정되어 <해운대석각>이라는 이름으로 잘 보존되고 있다. 말하자면 해운대라는 지명을 최치원 선생이 작명한 셈이다. 동백섬도 이 때에 석각에 이어 부산광역시 문화재 제46호로 지정되었다.
전국에 최치원의 유적지는 출생지 경주시와 우리 고장 해운대를 비롯한 12 곳에 이른다. 그 가운데 전북 정읍군과 경남 함양군 충남 서산군 세 군데는 지방 행정의 책임자인 태수를 했던 곳이고 의성군의 경우 고운사라는 절에 누각을 지었다고 한다. 나머지는 주로 최치원 선생이 다녀갔다는 곳의 지명과 누각 등에서 연유한 유적인데 각 지역마다 경주 최씨 후손들이 주도하여 시설물도 짓고 기념사업을 한다. 전국의 유적 중에 지명에 최치원 선생의 호가 들어 있고 친필이라 알려진 기념물이 있는 곳은 해운대뿐이다. 이러한 연유로 그 동안 부산의 경주 최씨 후손들은 타 지역보다 적극적으로 유적 보존 운동을 벌렸다.
1963년 남해 출신 운수사업자 최금공(1911-1973) 선생을 초대 회장으로 종친회가 결성되어 문창후 고운 최치원 선생 해운대 유적비를 1965년 11월24일 건립하였다. 1969년에는 교육자이자 국회의원인 최두고(1921-2007)의원을 초대 이사장으로 < 사단법인 고운 최치원 선생 해운대유족보존회>가 설립되었다. 그리고 이 단체가 주도하여 1971년 4월17일 동백섬 정상에 최치원 선생 동상을 건립하였는데 이 날을 기념하여 매년 춘향례春享禮를 지내고 있다. 1984년 9월20일에는 해운정을 건립하여 동백섬이 국방부 관할이라 1985년 8월 국방부에 기부채납을 했는데 지금은 부산시에 이관되어 있다. 1971년 1월31일는 석각과 동백섬이 부산시 기념물로 지정되었는데 이를 기념하여 한시 백일장과 학술대회도 개최하였다. 최근에는 2022년 10월 15일 동백섬 최치원광장에서 추향례秋享禮를 지냈다. 그 동안 활발하게 전개되던 기념사업이 2000년대 들어와서 타지지체에 비하여 침체기를 맞게 되었다.
배덕광 구청장 시절 최치원 유적 지자체 12개 시군협의체를 구성하면서 문광부의 대대적 지원 사업이 전개되었는데 해운대구가 분담금 출연에 불참하면서 국가의 지원을 받지 못하게 된 것이다. 그 때에 적극적으로 참여한 경북 의성군의 경우 <최치원문학관>을 지어 지금까지 전국에서 가장 활발한 문학 진흥 활동을 전개하고 있다. 경남 함양군도 최근에 <최치원역사공원>을 조성하고 기념관, 역사관, 상림관, 고운류 등을 규모 있게 지어 여러 문화행사를 하고 있다. 만약 그 때 해운대구가 적극적으로 참여하였으면 해운대의 문학 발전은 물론이고 다른 분야에까지 그 파급효과가 컸을 것이다. 지금도 해운대구는 참여하고 있지는 않지만 그 협의체는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선생이 관리를 지낸 중국의 강소성 양주시에도 최치원기념관이 건립되어 있고 매년 10월15일 제향祭享을 지낸다. 박근혜 정부 시절 한중 정상들이 최치원 선생의 시로 서로 화답한 사례도 있다. 지난 홍순원 구청장 시절 해운정을 증축하는 형식의 기념관 건립사업을 시도 했으나 부산시의 거부 특히 동백섬의 훼손이라는 자연보호 차원에서 문화재위원들의 반대로 좌절되었다고 한다.
해운대의 최치원 유적 보존과 최치원 사상의 학술적 접근과 최치원 문학정신, 즉 당나라에서 <격황소서檄黃巢書>를 지어 황소의 난 평정에 기여하고 신라의 헌강왕에게 <계원필경桂苑筆耕>을 엮어 바친 등의 실적과 기득권 세력에 의하여 펼치고자 한 개혁사상의 좌절로 인한 소외와 그로 인하여 은거하며 산수를 소요하면서 남긴 시문들의 연구와 최치원사상의 연구는 비단 경주최씨 종친회만의 일이라고 볼 수 없다. 앞에서도 언급했지만 전국 유일의 지명 속에 존재하는 최치원 정신과 석각과 같은 유물들은 충분히 현대화 혹은 국제화 할 수 있는 관광 콘텐츠이자 문화유산이다. 창원의 경남대학교에서는 최치원연구소가 있어 해마다 국제학술 세미나를 한다고 한다. 코로나 이전에는 4월 17일 춘향례에는 전국의 최씨 종친들이 몰려와 해운대에서 숙박하며 머물었다고 한다. 그리고 해운대문화원에서 주최한 전국 한시백일장에는 600명의 애호가들이 몰려들었다고 한다.
이에 필자는 해운대구청 당국과 해운대 문인협회에 우선 4월17일 전후하여 <최치원문학제>를 제안하는 바이다. 그 내용은 최치원 정신이 바탕이 된 문학상 공모와 한글 백일장이 될 것이고 이를 바탕으로 학술제 혹은 최치원 선생을 소재로 한 미술제 혹은 음악제 등이 가미된다면 여름에 해수욕장에 피서객만 몰려드는 해운대가 아니라 최치원 선생을 존경하고 그 정신이 충만한 봄 관광객이 몰려와 해운대의 품격을 한층 더 올릴 것이다.
(4) 마무리
필자는 해운대문화회관을 지을 무렵인 2002년부터 해운대로 이사해서 신성아파트에 살았다.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다. 그 때 우리 지역구의 신모 시의원과 협소한 문화회관 시설을 확장할 방안을 두고 이야기를 나는 바 있다. 부산시에서 가장 많은 예술가들을 보유하고 있는 해운대구로서 그들이 활동할 공간이 필요하다는 취지에서 마침 그 때 대동의 실현이라는 실험적인 해운대 신시가지가 결국 4개동으로 나누어 질 무렵이니까 문화회관과 붙어 있는 좌동사무소를 문화회관 부대시설로 활용하면 어떻겠는가 하는 필자의 제안에 신모 의원도 동감이라고 했다. 서로 벽만 일부 터 문화회관과 연결하면 될 것이고 거기가 각 예술단체의 활동공간이 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그곳은 결국 죄1동 사무소가 되고 말았다. 좌동은 4개동으로 나누어져 동마다 전개되는 각종 프로그램들은 그만그만해지고 말았다. 최근 좌1동우체국 옆 문화원 부지는 청소년문화시설 부지로 바꾸어졌는데 그것이 완공되면 해운대예술인들이 청소년 예술활동 지원 요원으로 참여할 방법은 없는지도 생각해본다. 해운대 신시가지도 그린시티로 이름이 바뀌었고 리모델링 열풍으로 들떠 있지만 이렇게 많은 예술인들이 활동할 공간과 프로그램이 반드시 있어야 삶의 질이 높아지고 명품도시의 위상이 지속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부산의 경우도 문화예술회관의 규모가 있는 곳은 문화예술회관을 중심으로 주민들의 활발한 예술활동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해운대에 거주하는 예술가들 집단을 유용하게 활용하면 주민들의 문화예술에 접근하고 싶은 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을 것이다. 현재 산발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활동들을 보다 체계화하여 해운대 구립 문화예술대학, 구립 극단, 구립 오케스트라 등을 구성하거나 지원할 인재는 충분히 있다. 이렇게 주민들과 함께하는 예술활동들이 많아질 때 <해운대구>가 <살고 싶은 도시>가 되고 4계절 각종 축제들이 개최된다면 진정으로 <오고 싶은 도시>가 될 것이다.
다른 콘텐츠도 언급하고 싶지만 우선 이 지면에서는 동백섬 최치원 선생 유적지 활용방안만 제시한다. 우리 구는 최치원 선생이라는 위대한 학자요 사상가이자 시인이고 국제적인 명망이 있는 인물의 유적지를 가지고 있다는 자부심으로 그 활용방안을 행정 당국이나 문인협회 회원들 그리고 경주최씨종친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것이다.
현 구청장 선거가 한창일 때에 필자는 당선자인 현 구청장 선거 캠퍼를 개인적으로 방문하여 명함을 제시하면서 예술인협의체와 그 활동공간 마련과 활용방안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 당시 핵심참모가 충분히 고려해보겠다고 했는데 아직 소식이 없다. 그 참모의 답변이 아직도 유효한지 궁금하다
<양왕용/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