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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2.16 08:05
44. 사냥하여 삼품(三品)을, 유종지미(有終之美 )
/양선규
요즘 자주 듣는 말이 있습니다. “퇴직 후에 하실 일은 마련되어 있나요?”라는 말입니다. 어제도 두 번 그런 질문을 받았습니다. 한 번은 “아무 것도 준비된 것이 없습니다.”라고 대답했고, 한 번은 “일흔 살에 쓴 작품으로 노벨문학상을 받은 사람이 되고 싶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왜 그렇게 다른 대답을 했는지 제가 생각해도 잘 모르겠습니다. 언젠가는 “집에다 논술교실을 차려서 개인과외교습자로 소일하고 싶습니다.”라는 대답을 했던 적도 있었거든요. 오늘 아침 생각해 보니 그 모든 대답들이 “아무런 계획도 준비도 되어 있지 않습니다.”의 여러 다른 버전인 것 같습니다. 코로나 사태가 오기 전까지는 검도교실을 유지하는 것이 상수(常數)로 존재했었지만 현재로는 그것은 아예 고려 대상도 되지 못하고 있습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뿐입니다. 집안에서 이 방 저 방 옮겨다니며 출퇴근을 꾀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일종의 자가 심리요법이겠지요. 어제도 그 비슷한 심리요법을 하나 제안했습니다. 주요 보직을 맡고 있는 후배 교수들과 점심식사를 함께 하고 나서 학교로 들어올 때 한 말입니다. 마침 캠퍼스와 인접하고 있는 지역에 대규모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모두들 그 아파트 단지가 들어서면서 생긴 변화와 불편에 대해서 한 마디씩 했습니다. 특히 그 고층 아파트들 때문에 전망이 가려진 연구동 사람들의 불만이 많이 전달되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제가 예의 그 ‘심리요법’에 대해서 한 마디 했습니다. “이 아파트에 살면서 캠퍼스를 내려다보고 있으면 퇴직 후의 상실감을 조금은 달랠 수가 있겠네요. 수십 년 직장생활을 한 곳을 매일같이 보고 있노라면 무의식이 한 번씩 속아줄 수도 있지 않겠어요? 아직도 직장생활 중이라고.” 아무도 제 말에 반응을 보이지 않았습니다. 개중에는 퇴직 후 고향으로 돌아갈 사람도 있겠고 자식이 있는 서울로 이사 갈 계획을 지닌 사람도 있겠지요. 퇴직한 선배 교수들의 경우를 보면 그랬으니까요. 어쨌든 제 말은 허공을 맴돌다 그냥 사라졌습니다.
아침마다 주역을 읽는 일이 제게 어떤 의미인지 확실히 모르겠습니다. 일종의 자가 심리요법인 것은 틀림없는 것 같습니다. 주역에 나오는 오래된 ‘의미가 부착된 이미지’, 혹은 ‘관념을 생성하는 이미지’들이 알게 모르게 저의 심사를 편안케 한다는 느낌이 자주 듭니다. 이런 게 칼 융이 말한 ‘상징의 매개적 작용’인가? 그런 생각도 듭니다. 주역의 상징들이 때맞추어서 제 안의 어떤 불편한 것들에게 위로와 격려의 질문과 대답을 보내주고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안에는 수천 년 묵은 그런 아키타이프(원형)들이 존재한다는 융의 이야기가 점점 실감이 나고 있습니다. 일생일대의 영혼의 위기를 목전에 둔 상태라 더 그런 같습니다. 좀 더 지켜볼 일입니다.
주역에 나오는 한자 단어들은 십중팔구 한글 컴퓨터 자전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실생활에서는 한 번도 접할 수 없었던 상구(上九)나 육오(六五) 같은 단어들이 컴퓨터 자전에 등장하는 것이 처음에는 참 신기했습니다. 누군가가 그 말들을 한 자 한 자 공들여 입력해 두었다는 뜻입니다. 주역 언어가 동양인의 언어생활에 그만큼 깊이 스며들어와 있다는 뜻인가? 그런 생각도 했습니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그 기원에 대해서 생각하지 않고 자연스럽게 일상에서 자주 쓰는 말들 중에는 그 기원이 사서삼경(四書三經, 사서는 『논어』, 『맹자』, 『대학』, 『중용』을 말하고, 삼경은 『시경』, 『서경』, 『역경(주역)』을 말한다)에 닿아 있는 것들이 많았습니다. 오늘 주역읽기의 주역인 삼품(三品)이라는 단어도 그렇습니다. 그저 중화요리의 삼품(三品)냉채 오품(五品)냉채에서나 쓰이는 말인 줄 알고 있었는데 예부터 격조 있게 사용되던 말이었습니다. 그 뜻은 첫째는 제사를 위한 공품(供品)이고, 둘째는 빈객을 접대하기 위한 음식이며, 셋째는 천자와 제후가 먹을 음식입니다. “사로잡아 이익이 되는 것으로는 삼품보다 좋은 것이 없으므로 <후회가 없어지니 사냥하여 삼품을 얻도다(悔亡田獲三品)>라고 하였다.”라고 주역 쉰일곱 번째 ‘중풍손’(重風巽) 손괘(巽卦) 육사(六四) 효사 주석에 적혀 있습니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36쪽]
“늙으면 고집이 세진다.”라는 말을 자주 듣습니다. “사람은 (좋게는) 안 변한다.”라는 말도 그렇고요. 어제도 누가 그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아무래도 어제가 제겐 원형이 활발하게 작용했던 ‘원형적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 바쁜 와중에도 그동안 차일피일 미루고만 있었던 대형 분갈이를 서너 개 해치웠습니다). 자신과 가까이 지내던 이 하나가 갑자기 주변과의 소통을 스스로 차단한 것을 두고 하는 말인 것 같았습니다. 그런 돌출행동이 어떤 원인에서 비롯된 것인지에 대해서는 화자의 별다른 해설이 없었습니다. 아마 말하기 거북한 어떤 원인이 있었으리라 짐작해 봅니다. 나이 들면 “이 나이에 눈치 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라는 독불장군 마인드가 안에서 꿈틀대는 것을 누구나 경험합니다. 보통은 젊어서부터 표나지 않게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온 사람들에게 많이 도지는 ‘나이 병’입니다. 드러내놓고 젊어서부터 초지일관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살아오던 이들이 늙어서 여러 가지 욕망 충족의 기회가 사라지면서 갑자기 삶의 의의를 찾을 길이 막연해지니 그런 막가파식 사고를 하게 됩니다. 남 보기에 돌출행동이 되는 짓을 하게 됩니다. 가족 생각도 않고, 친구들 생각도 않고, 자기가 속한 조직의 체면도 고려하지 않고 막된 행동에 나섭니다. 살아오면서 심심찮게 그런 사람들을 보아왔습니다. 한 번씩은 저 스스로도 그런 부류가 아닌가 반성을 할 때도 있었습니다. 저 자신도 평생을 자신만(가족 포함) 생각하며 살아왔습니다. 저 자신과 제 가족의 안위에만 집중하며 살아온 ‘내로남불’ 인생이었습니다. 그래서 뜬금없는 말들을 내뱉었습니다. “늙으면 희생을 알아야 한다.”, “버려서 얻는 것도 생각해야 한다.”, “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면 두고두고 후회한다.”라고 말했던 것 같습니다. 행여 같이 있던 후배 교수들이 제가 섭섭한 감정을 토로한 것으로(외로운 독거노인을 잘 챙기지 않는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오늘은 유난히 횡설수설이군요.
주역에서 말하는 삼품의 첫째가 ‘제사를 위한 공품’이듯이 늙은이의 첫째 의무는 공동체 전체와 그것을 이어나갈 후속 세대를 위한 희생일 것입니다. 그걸 모르고 나이 먹어서 “이 나이에 눈치 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라며 뒤에서 남들에게 욕이나 먹고 다니면 인생 헛산 것입니다. 오해는 마시기 바랍니다. 이 글도 ‘뒤에서 남 욕하는’ 것이 될까봐 저어됩니다. 오직 제 살아온 행실에 대한 반성일 뿐입니다.
....구오(九五)는 바르면 길해서 후회가 없어지고 이롭지 않음이 없으니, 처음은 없고 마침은 있느니라. 사흘 전에 미리 명령을 펴며, 다시 사흘 후에 명령을 펴면 길하리라. -- 양으로 양의 자리에 거하니 겸손에는 손해가 되나, 중정(中正)을 잡아 그 명령을 펴면 사람들이 어길 수 없으므로 ‘정길회망무불리(鄭吉悔亡无不利)’라 하였다. 점차적으로 교화하지 않고 갑자기 강직하게 대하므로 처음엔 다 기뻐하지 않는다. 중정에서 마치니 삿된 도는 사라지므로 마침이 있다. 명령을 펴는 것을 경(庚)이라 이른다. 바름으로 사람들을 가지런히 함엔 갑자기 해서는 안 된다. 백성의 미혹됨이 진실로 오래되었으니 바로 펼칠 수가 없다. 그러므로 먼저 사흘을 펴서 명령을 드러내게 한 후에 다시 사흘을 편 후에 죄를 물어야 허물이나 원망이 없다. 갑(甲)과 경(庚)은 다 명령을 폄을 말한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37쪽]
‘삼품(三品)’의 뜻을 새기며, 나이 들어서 세상과의 교통을 완전히 거두고 싶다는 유혹(미혹, 미욱)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스스로 주의를 기울입니다. “이 나이에 눈치 볼 일이 무엇 있겠는가?”며 밖과의 교통을 끊고 스스로 고립을 자초해서는 유종의 미를 거둘 수가 없습니다. 최소한 아침마다 페이스북에 글 한 편 올리는 정도로라도 정하게 세상과 통하는 창을 열어두는 것도 늙어서의 고립을 면하는 한 방책일 것이라 생각합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