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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 연재 >10. 폭발사고와 함께 찾아온 등대원의 피앙새 /조경호

작성일 : 2025.05.16 11:42

(5) 폭발사고와 함께 찾아온 등대원의 피앙새

 

1959년 가을

917일은 사라호 태풍이 남해안 통영에 상륙하여 포항으로 빠져나갔다. 팔미도등대의 피해도 심했다. 아름드리 산벗나무와 사무실 아래에 있던 깃대가 부서지고 관사의 유리창이 깨졌다. 1급 태풍의 위력을 그때 알았다. 바다가 온통 하얀 피를 토했고 숲에서 온종일 곡소리가 났다. 산천초목뿐이 아니고 바다가 울부짖는 모습은 포세이돈이라 할지라도 그렇게 하지 못하리라. 그리고 사라호의 휴우증은 팔미도에도 찾아왔다.

 

10월 중순부터 11월 중순까지는 자월도에서 굴을 따러 팔미도에 오는 사람들이 있었다. 30여명 쯤 오는데 전부 아가씨들이었고 리더 한 사람만이 중년의 남자였다. 그들은 일제가 지어 놓은 화약 창고(인천 쪽 해안가에서 등대 올라오는 길 중간쯤 위치)에서 합동으로 숙식했다.

 

노총각인 윤중길씨의 인기는 대단했다. 그 당시 등대원이라는 직업은 도시에서는 기피하고 인기 없는 국가공무원이었지만 섬마을에서는 최고의 직업이었다. 일단 하얀 색깔의 관사(섬마을에서 볼수 없었던 일본식 양옥) 에 대한 매력과 전기 사용의 편리, 육체노동을 하지 않아도 될 것이라는 여성들의 편견은 총각 등대원을 설레게 했다. 굴 따러 온 아가씨들이 윤씨를 좋아했다.

 

자월도에서 온 가장 예쁜 아가씨는 굴을 따러 가지도 않고 하늬바람에 한들거리는 억새 언덕에서 윤씨와 함께 있었으며, 그녀는 한 달 보름 뒤에도 돌아가지 안했다. 자월도에서 온 그 아가씨는 윤씨의 안방을 그렇게 차지했다.

 

행운은 여러 사람에게 나누어 주지 않는 모양이었다. 윤씨와 짝이 된 아가씨는 남편을 얻는 행운뿐이 아니었다. 서리가 내려서 자월도의 아가씨들이 돌아갈 때가 되었을 때였다. 여러 사람이 등대의 관사로 우르르 몰려왔다. 윤중길을 찾고 등대장을 찾고 난리가 다시 난 것 같았다.

 

사고였다. 등대원들에게 빨리 바닷가로 가보자고 하는 것이었다. 모래사장에는 피투성이가 된 4명의 아가씨가 쓰러져 있었다. 그들은 윤씨의 짝이 된 아가씨와 같은 마을에서 온 아가씨들로 언니 동생 하는 사이들이었다. 또한 윤씨를 놓고 경쟁을 했던 사이이기도 했다. 사항을 살펴보니 나무상자의 폭발물이 터진 것이었다.

 

상자는 두 개였는데 상자를 바닷가에서 주어와 모래사장에서 열어본 모양이었다. 폭탄이 줄로 연결되어 있었고 처음 보는 물건인지라 굴 따는 쪼새기로 폭탄을 찍어본 것이었다. 폭탄이 터지자 상자를 가지고 와서 열어본 4사람만이 중상인 것이 그나마 다행이라고 생각했다. 주위에 구경한다고 여러 사람이 모였다고 한다면 크나큰 피해가 있었을 것이다.

 

윤씨의 내자가 된 그 아가씨도 그때 윤씨와 연애 중이 아니었으면 그들과 같은 운명에 처하게 되었으리라.

 

네 명의 아가씨들은 아직 목숨은 붙어 있었다. 인천 병원으로 호송하려면 배가 있어야 했는데 배가 없었다. 그들이 따 놓은 굴을 가지러 오는 배는 어제 왔다 갔으니 6일은 더 있어야 했다. 나는 콤푸레샤 발동기를 돌렸다. 무신호 나팔 소리를 내기 위해서였다. 그리고 윤씨는 깃대에 국제신호기를 올렸다. 무신호는(음파 표지) 소리로 섬의 위치를 알리는 것인데 안개가 끼지 않는 날에 무신호 소리가 나면 등대에 무슨 일이 발생했나 하고 지나가던 선박들이 들러보았다.

 

다행히 어선 한 척이 선착장으로 다가와 사정을 이야기하여 부상자들을 인천으로 후송하였으나 후에 들은 소식은 두 사람은 끝내 숨졌다고 했으며, 그다음 날로 자월도에서 굴 따로 온 아가씨들은 철수하였다. 폭탄이 들어 있는 상자는 어디 소유였는지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사라호의 태풍으로 저장되었던 폭탄 상자가 유실되어 팔미도 섬까지 떠밀리게 되었으리라.

 

등대섬에는 해류를 타고 각가지 물건들이 밀려온다. 중국의 물건도 북한의 물건도 미군 부대에서 버린 물건도 심지어는 대만에서 버린 물건도 섬으로 밀려들었다. 뱀들도 장마철에는 나무나 볏짚에 모여서 해류를 타고 이리저리 떠돌다가 이 섬 저 섬으로 정착하게 된다.

 

그러나 사랑의 정착만큼 아름다운 것이 어디 있겠는가 ? 윤씨의 사랑은 이러한 사연으로 정착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