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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2.16 08:01
죽은 자는 묻고, 산 자는 치유하자
/윤일현
1755년 11월 1일 전대미문의 대지진이 리스본을 강타했다. 오늘의 리히터 지진계로 추정할 때 8.5~9.0에 달하는 강진이었다. 약 5분간 지속된 최초의 진동과 이후 발생한 여진과 쓰나미, 화재 등으로 리스본 건물의 약 85%가 파괴됐다. 자료마다 차이는 있지만 20 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리스본 시민 중 1만~10만 명이 희생되었고, 모로코 해안 등지에서도 해일로 많은 사람이 죽었다. 그날은 모든 성인의 대축일인 만성절이어서 성당은 신자들로 발 디딜 틈이 없었다. 축제 분위기에 들떠 있던 성당과 도시 전체는 삽시간에 아비규환의 지옥으로 바뀌었다. 그 당시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력이 한풀 꺾인 상황이었지만, 포르투갈의 심장 리스본은 그 상징적 중요성과 내부적 영화로 그 위세가 여전히 대단했다.
참혹한 대재앙이 발생하면 많은 성직자와 신자들은 인간이 지은 죄로 인한 징벌이라며 신 앞에 더욱 겸손하고 바르게 살아야 한다고 말한다. 리스본은 경건하고 정결한 삶을 살기 위해 노력하는 성직자와 종교인이 가득했고 수도원과 성당이 빼곡한 도시였다. 사람들은 절규했지만, 신은 침묵했다. 리스본에서 재난을 피한 유일한 구역은 가장 타락한 곳으로 지탄받던 집창촌 알파마였다. 그곳은 높은 건물이 별로 없고 도심을 벗어나 있어 2차 피해인 화재와 해일 등을 피할 수 있었다. 일부 사람들은 신을 부정하고 조롱하는 근거로 이를 언급하기도 한다. 리스본의 대형 교회 대부분이 파괴되었다. 그 결과 교회와 그 후원자인 국가의 권위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었다. 묵시록적인 폐허를 보며 생존자들은 물리적 손실을 넘어 형언할 수 없는 정신적 충격을 받았다. 평소 상대를 이단이라고 비난하며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던 다른 종파의 성직자들도 서로 얼싸안고 눈물을 쏟으며 함께 기도했다. 리스본 대주교는 “이번 재난과 하느님의 섭리 사이에는 관계가 없다.”라는 말로 당혹감을 표현했다.
개인적인 일로 잠시 리스본을 비워 화를 피할 수 있었던 국왕 주제 1세는 범죄와 약탈로 무법천지가 된 리스본을 바라보며 실의에 빠졌다. 국왕은 외무대신 카르발류(제1대 폼발 후작)를 총리로 임명하고 전권을 맡겼다. 카르발류는 “죽은 자를 묻고, 산 자를 치유하자”는 모토를 내걸고 재건사업에 매진했다. 그는 날뛰는 범죄자를 잡아 강력하게 처벌하여 사회 기강을 바로잡았다. 대주교와 면담 후 모든 장례미사를 생략하고 시신을 속히 수습하기로 했다. 빠른 시신 수습이 전염병의 창궐을 막았다. 카르발류는 식량 배급소를 열고 생존자를 불러 모았다. 군인들이 지켜보는 자리에서 공평하게 식량을 배분했다. 역사상 최악의 재난을 겪은 리스본은 재난 관리에 모범적인 선례를 남기며 거듭났다. 그는 재난 대비 시스템을 구축하고 전국규모의 지진 관련 설문지로 얻은 데이터를 분석하여 체계적이고 과학적인 지진 연구의 토대를 마련했다. 리스본 지진은 유럽의 문화·철학사에서도 중요한 전환점이 되었다. 칸트는 재앙을 신의 뜻으로 해석하려는 당대 사람들을 비판하며 지진의 원인을 과학적으로 탐구하는 글을 썼고 조잡하지만, 지진학의 초석이 되는 이론도 내놓았다. 리스본 지진 이후 유럽은 프랑스 혁명 등을 거치며 계몽주의적 사고가 확산했으며 점차 그리스도교적 세계관에서 벗어나 본격적인 과학의 시대를 맞이하게 된다.
튀르키예와 시리아 대지진을 바라보면서 목하의 참상을 말과 글로 표현하는 것이 너무 고통스러워 리스본 대지진 이야기를 했다. 현재 그곳의 절망과 탄식, 혼돈과 무질서는 리스본 대지진 이후와 비슷하다. 카르발류의 대처법은 오늘의 대재앙을 수습하고 재건하는데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할 수 있다. 인류는 항상 가혹한 난관에 직면했지만, 매번 그 위기를 극복하고 눈부신 발전을 거듭했다. 콜드스프링하버 연구소 매트 리들리 교수는 아이디어들이 서로 만나 융합하는 ‘집단지능’을 인류 미래에 대한 낙관론의 근거로 제시한다. 생물이 다양한 교잡을 통해 진화하듯이 인류 문명이 폭발적으로 진화하기 위해서는 아이디어의 융합, 이른바 집단지능이 필요하다. 인류는 우크라이나 전쟁, 각종 내전과 테러, 계속되는 인재와 천재를 냉정하게 직시해야 한다. 이념과 진영, 국가와 종교를 넘어 집단 지능을 발휘하지 않으면 모두가 공멸할 수 있다는 위기감을 가져야 한다. 전 지구적인 유대와 협력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한 시점이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