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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백두대간 인문기행

가야산 고려대장경판 비밀 4편

작성일 : 2025.05.12 09:27 작성자 : 김하기

 

가야산 고려대장경판 비밀 4

 

 

무불은 무척 궁금했다. 고려대장경의 내용은 많은 영인본을 통해서, 오자나 탈자하나 없이 북송개보장北宋開寶藏이나 거란장契丹藏 보다 월등히 잘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과연 650년 된 경판이 지금도 완전한 모습으로 보관되어 있다니 그 보관의 비밀에 의문이 갔다.

일본에 있는 영인본들은 고려대장경판의 사진에 불과하다. 그럼 기야산 해인사에 있는 고려대장경판에서는 과연 진공묘유眞空妙有一心의 가피를 느낄 수 있을까?

궁금했던 것을 몸으로 직접 느끼고 확인해보고 싶었다. 무불은 일본의 선조들이 막연히 고려대장경판을 신봉했을 뿐, 실지로 그 누구도 직접 친견하고 가피를 받은 사람이 없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초조대장경初雕大藏經이나 재조대장경 再雕大藏經, 의천義天 교장敎藏까지 고려대장경高麗大藏經내용을 자신 만큼 통달한 사람은 조선에도 없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고 자부심은 대단했다. 무불이 그렇게 확신하는 이유는 고려대장경에 관한 해석서 들이 조선보다 일본에 더 많이 보관되어있기 때문이다.

고려는 부처님의 말씀인 대장경을 온 백성이 한마음 일심으로 16년 동안 판각을 했다. 그러나 시대가 바뀌고 조선 조정은 억불숭유정책으로 고려대장경뿐만 아니라 모든 불교 문화재를 하찮게 여겼다. 이것을 간파하고 있던 일본 왕실과 지식인 승려들이 끊임없이 고려대장경판 갖기를 원했고 거짓으로 탈취 계획까지 세웠던 것이다.

81,352 대장경판을 영인하는 것도 예산이 많이 들고 엄청난 정성과 불심이 깃들여야했다. 그나마 조선에 몇 안 남아있던 초조대장경재조대장경 영인본도 일본 사신들이 이 핑계 저 핑계를 대고 다 일본으로 얻어갔다.

임진왜란을 일으킨 도요토미 히데요시風臣秀吉의 특명을 받은 장수 가토 기오마사加藤淸正는 암암리 정예부대로 해인사를 습격했지만, 가야산 해인사를 둘러싼 의병장 정인홍鄭仁弘 의령의 홍의장군 곽재우郭再祐, 합천의 손인갑孫仁甲 ,고령의 김면金沔, 진주의 조종도趙宗道. 휴정休靜 서산대사西山大師의 문하에 사명당 유정惟政과 소암昭菴 스님이 이끄는 23중의 의병 승병 방어선을 결코 뚫지 못했다. 도요토미 히데요시는 조선 의병과 승병의 단합된 일심을 몰랐고 결국 전쟁에서 패하고 말았던 것이다. 왜장 가토 기오마사는 조선의 사찰에 보관 중이던 고려대장경 영인본을 싹쓸이 해갔고 약탈의 흔적을 없애기 위해 조선의 사찰들을 대부분 불태운 후 일본으로 도망가 버렸다.

 

1907121일 가야산

무불은 그토록 와 보고 싶었던 가야산 해인사海印寺에 들어서면서 설렌다기보다 참 묘한 기분이 들었다. 해인사에 기거하며 수행하는 도반 대통을 자신이 안내하듯 한 걸음 앞장섰다. 뜰의 나무 하나 기왓장 하나 늘 보던 것처럼 낯설지 않았고 친숙했다. 꼭 오랫동안 고향을 떠나 타향살이를 하다 돌아온 기분이었다. 그런 무불을 보고 대통은 말했다.

무불, 꼭 제 집에 온 듯 하구료. 물 만난 고기모양 활기도 넘치시고.”

무불은 해인사 고려대장경판 관리소임을 맡고 있는 법조法照 스님의 안내로 대적광전大寂光殿에서 먼저 삼배를 올렸다. 밖으로 나온 세 사람은 팔만대장경八萬大藏經 보안당普眼堂이란 작은 현판이 걸린 대문을 통과 해 아치형인 수다라장修多羅藏 앞에 섰다.

무불은 두 손을 모으고 수다라장 앞에서니, 마치 사슴동산鹿野苑에서 석가모니 부처님께서 다섯 수행자에게 초전법륜初轉法輪을 설하는 소리가 안에서 들리는 듯했다.

무불은 합장하고 거대한 소용돌이에 빨려 들어가듯 자신도 모르게 수다라장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순간 수다라장 안은 황금빛으로 찬란했고 양쪽 경판꽂이에는 팔만의 나한들이 가부좌를 튼 채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을 기다리고 있는 듯했다. 그리고 분명 무불의 귀에 하늘에서 장엄한 소리가 들렸다.

무불이여, 그대는 반드시 사성제四聖諦, 네 가지 성스러운 진리에 대하여 알아야 하느니라!’

이것은 분명 석가모니 부처님의 목소리였다. 장엄했고 엄숙했으며 한없이 부드러웠다. 듣는 이는 자신도 모르게 머리를 숙이지 않을 수 없었다. 무불은 얼른 머리를 숙여 땅바닥에 엎드렸다.

……!”

석가모니 부처님의 설법은 계속되었다.

무불이여, 첫 번째는 고성제苦聖諦로 괴로움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니라. 삶은 생로병사. 태어나고, 늙고, 병들고, 죽는 고통에서 벗어나지 못하느니라. 사람들은 쾌락을 좇아 이리저리 헤매지만 결과는 고통임을 알게 되느니라. 설사 그것을 얻었다 하더라도 곧 싫증을 느끼게 되니 헛된 일이니라. 영원히 만족하고 평온을 주는 것이란 이 세상에 없다는 것을 알아라.

두 번째로 집성제集聖諦로 괴로움의 원인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니라. 우리의 마음이 욕심과 욕망으로 가득 차 있으면 갖가지 고통이 뒤따르기 마련이니라. 무지와 탐욕은 불만의 씨앗이 되어 마음의 평화를 앗아가는 법이니라.

세 번째는 멸성제滅聖諦로 괴로움의 극복에 관한 성스러운 진리이니라. 우리들 마음속의 무지와 탐욕만 없애면 고통과 불만이 사라지고 마느니라. 고통이 소멸되면 우리는 쾌락이 아닌 진정한 행복과 평화를 누리게 되느니라.

마지막으로, 네 번째는 도성제道聖諦로 괴로움의 극복을 실현하기 위한 성스러운 진리이니라. 이 길은 모든 괴로움을 없애고 깨달음에 이르는 진리이니라. 만일 우리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을 해치지 않고, 마음을 잘 가다듬어 오롯이 집중하면 지혜가 생기느니라. 그러면 우리는 모든 괴로움이 사라진 완전한 행복을 누리게 되느니라.

순간 무불은 가슴속에서부터 환희심이 마구 솟아올랐다. 그리고 자신도 모르게 오체투지를 하고 이렇게 고했다.

, 부처님이시여! 진리를 깨달으신 이여. 저희에게 완전한 지혜와 행복에 이르는 길을 가르쳐 주십시오. 저희들은 부처님의 제자가 되고자 하나이다.”

무불이 부처님께 고하자, 우주의 온갖 정령들과 팔만 나한들도 땅에 엎드려 이렇게 소리쳤다.

, 기쁜 소식이오. 부처님께서 가르침을 펴셨습니다!”

수다라장 바닥에 오체투지로 엎드린 무불은 솟아오르는 환희심에 가슴이 터질 듯 기뻤다.

 

수다라장修多羅藏이나 법보전法寶殿 둘 다 경판의 보관을 목적으로 지었다. 어떤 장식도 없이 소박 단순했다. 건물의 구조는 단순할지라도 바람의 흐름을 원활히 하는데 많은 신경을 쓴 흔적이 역력했다. 바닥은 아무것도 깔지 않은 흙바닥이었고 경판꽂이를 판전의 길이 방향과 같이 설치했다. 무엇보다 적당한 공간을 두어 상하좌우 공기의 흐름을 원활하도록 만들어져있는 듯했다.

건물 바깥벽에 설치한 붙박이 창살도 바람이 나가고 들어오는 흐름을 원활하기위해 만들어졌다는 느낌이 들었다. 아래 위 창의 크기가 다른 것이 유난히 무불의 눈길을 붙잡았다.

무불이 유심히 창을 바라보고 있자, 법조 스님이 다가와 창에 관하여 설명해주었다.

역시 무불거사의 눈은 예리하십니다. 고려대장경판의 보관 비밀은 이 판전에 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인 것이 바로 이 살창이라고 말씀 드릴 수 있습니다. 수다라장 앞면의 살창이 아래 위와 뒷면 살창의 아래 위가 다 다릅니다. 앞면은 아래 창이 위 창보다 약 4배 정도 크고, 뒷면은 위 창이 아래 창보다 1.5배 더 큽니다. 법보전은 앞면의 아래 창이 위 창보다 4배 더 큽니다. 판전의 앞과 뒤 아래와 위 다 다른 것은 선조들의 대단한 지혜가 담겨져 있습니다. 가야산 천체의 바람 흐름에 따라 크기를 판단하였고, 우주의 지수화풍이 고려대장경판을 감싸고 있기 때문입니다. 잠깐 밖으로 나가시죠.“

두 사람은 법조 스님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하늘은 티 없이 맑았고 하늘과 가야산이 반으로 나누어져 있었고 그 중앙에 해인사가 자리 잡고 있었다.

처음엔 눈이 부셨지만 산은 점점 하얀 속살을 다 드러내어 진면목을 낱낱이 보여주었다. 눈 덮인 산마루 아래 등 굽은 소나무가 푸르고 힘차게 솟아 있었다. 어디서 나타났는지 보라매 한 마리가 창공을 가르며 선회하고 있었다.

무불의 눈에 들어온 가야산은 역시 조선의 십성지라 불릴 만했다. 무불은 문득 도선道詵대사가 한 예언이 떠올랐다. 먼 훗날 조선의 미래는 이 가야산伽倻山에서 다시 발원한다고 했던가?

법조 스님은 장삼 자락을 한 손으로 잡고 손을 벋어 가리키며 정성껏 설명했다.

이 판전 건물의 뒤에 보이는 산이 가야산 꼭대기인 두리봉입니다. 그리고 깃대봉, 단지봉, 오봉산이 이렇게 주위를 둘러싸여 있고, 앞에 바로 보이는 산이 비봉산입니다.

이 수다라장 법보전 높이는 주위 봉우리들과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그리고 전체 방향이 서남향으로 약간 기울었습니다. 보시다시피 이 판전은 남향 건물로서 앞쪽보다 뒤쪽의 온도가 낮고 공중 습도가 높은 편입니다. 바람의 흐름은 판전 건물 뒤편의 살창으로 들어와 판전 속을 한 바퀴 돌아 앞으로 나가기 마련입니다. 판전으로 바람이 들어갈 때 습한 공기는 아래에 처져 있으므로, 위 창보다 아래 창을 약간 작게 하여, 습한 공기가 적게 들어가게 지어졌습니다.”

법조 스님은 두 손을 뻗어 수화를 하듯 열심히 설명했다.

바깥 공기는 건물 높이 정도에서는 아래 위 습도 차이가 그렇게 크지 않으므로 살창은 1.5배 정도로 되어있습니다. 판전 속에 들어간 공기는 경판이 지니고 있던 수분을 빼앗아 들어올 때보다 무거워지고 아래로 처집니다. 이런 습한 공기는 앞쪽 살창을 통해 빨리 빠져나가도록 앞쪽 아래 창은 위 창보다 4배 이상 크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안에서 건조해진 위로 올라간 공기는 오랫동안 판전에 머무를 수 있게 앞쪽 위 창은 작게 만들어져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