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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90.같은 사건, 서로 다른 시선

작성일 : 2023.02.05 07:30

같은 사건, 서로 다른 시선

/윤일현

 

사회 현상이나 사건을 설명할 때 목적에 무게를 두면 매우 그럴듯한 이론이나 진술을 끌어낼 수 있다. 그 경우 목적론의 함정에 빠질 위험이 있다. 남경태의 개념어 사전은 목적론의 위험을 이렇게 설명한다. 목적은 사건의 시간 순서로 보면 맨 마지막에 위치하기 때문에 중간 과정의 모든 것을 설명하기가 편하다. 문제는 바로 거기에 있다. 목적에 비추어 설명할 경우 이론은 깔끔해지지만, 실상은 아무것도 제대로 설명하지 못한다. 그런데도 목적이 전가의 보도처럼 자주 남용된다.

 

어느 노숙자가 빵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 남의 자전거를 훔쳐 팔다가 잡혔다라는 기사를 생각해 보자. 이 사건에서 노숙자행위의 주체이고, ‘자전거를 훔쳐 판 것행위의 방법이고, ‘빵 살 돈을 마련하기 위해행위의 목적이다. 범죄의 목적에 맞춰 쓴 기사다. 이 기사에는 절도 행위의 목적은 있는데 원인에 관한 언급이 없다. 심지어 이 기사는 빵 살 돈이 없었기 때문에 절도했다라고 목적을 원인으로 바꿔 쓸 수도 있다. 범죄의 목적과 원인을 뒤바꾸거나 동일시하면 범죄 예방을 위한 근본적이고 생산적인 대책을 세울 수가 없다. 절도 행위의 원인을 곰곰이 따져보자. 자전거를 훔치는 것과 같은 생계형 범죄를 막기 위해서는 노숙자들을 위한 재활교육과 직업 교육을 통해 그들이 자립할 수 있는 여건과 계기를 마련해 주어야 한다. 그런 사회적 안전장치가 없는 것이 범죄의 근본적인 원인이다.

 

야당 대표의 검찰 수사로 온 나라가 시끄럽고 여론이 양분되고 있다. ‘대선 패자니 기소하기 위해 오라 한다’ ‘범죄 혐의가 있으니 범죄 사실을 밝히기 위해 오라 한다검찰 소환의 원인과 목적에 대한 입장이 근본적으로 이렇게 다르다. 보도하는 언론사도 검찰 조사의 원인과 목적을 서로 다른 관점에서 바라보며 어느 한쪽을 직간접적으로 편들고 있다. 옳고 그름을 따지고 싶은 의지도 판단력도 없는 열성 지지자들은 파란 깃발과 붉은 깃발을 들고 상대를 향해 욕설과 비난, 섬뜩한 저주와 혐오의 막말을 내뱉으며 사생결단의 싸움을 벌이고 있다. ‘법치국가에서는 누구라도 범죄 혐의가 있으면 일단 조사받고 법원의 판단을 기다려야 한다는 지극히 상식적인 말도 이제 어느 한쪽을 편드는 말이 되고 말았다. 이런 사태가 일어난 근본 원인은 검찰이 그동안 너무 권력 지향적이었고, 권력을 잡은 집단은 무소불위의 권한 남용과 정치 보복으로 상대를 괴롭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예일대 철학과 교수 제이슨 스탠리는 우리와 그들의 정치에서 사람들이 어떻게 속임수에 넘어가고 민주주의는 왜 무너지는가에 관해 기술하고 있다. 그는 지금 우리 사회에 파시즘이 부활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한다. 파시스트 사회에서 국가 지도자는 전통적 가부장제의 아버지와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지도자는 국가의 아버지이며 그의 힘과 권력이 법적 권위의 원천이다. 여당이 당 대표 선출 과정에서 보여주고 있는 비상식적이고 비민주적인 윤심팔이와 특정 후보를 향한 이지메, 야당이 당 대표 사법 리스크에 대응하는 방식 모두 권위적인 가부장제에서나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파시스트 사회에서는 정치적 목적 달성을 위해 조작된 프로파간다로 이상을 왜곡한다. 파시스트들은 순종적인 시민을 만들기 위해 공적 담론의 기반을 무너뜨리려고 다양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한다. 언론과 표현의 자유를 악용해 음모론과 가짜뉴스로 현실을 왜곡한다. 우리가 당하고 있다는 피해 의식을 이용하기도 한다. 같은 행동을 두고도 그들은 범죄이고 우리는 실수라고 한다. 파시스트의 정치 전략은 다원주의와 관용을 거부하며 철저하게 사람들을 우리 대 그들로 갈라치기 한다.

 

팬덤과 편 가르기는 사회 분열을 해소할 공동 숙의의 가능성을 근본적으로 차단한다. 상대방의 동의 없이 상대방을 다스릴 만큼 잘난 사람은 없다. 여야 모두 링컨이 행한 연설의 한 대목을 읽어보길 권한다. “얼마간은 모든 사람을 속일 수 있다. 그리고 얼마간의 사람은 언제나 속일 수 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을 항상 속일 수는 없다.” 우리는 모두 결함이 있고, 우리의 생각과 경험, 이해는 부분적이고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기 쉽다. 양심적인 지식인, 사태를 냉정한 시선으로 지켜보는 국민, 어떤 사건이든 객관적으로 보도·논평하려는 깨어있는 언론이 그래서 필요하다.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