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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4.29 02:28
(4) 송이로 위장한 독버섯
1958년 8월 말쯤 여름방학 때 등대에 왔던 큰아이와 둘째 아이가 개학 때가 되어 인천으로 돌아갔다. 정인근씨 아주머니는 시골 분이다. 그래서 산에서 나는 나물들을 너무 잘 알고 있었다. 정씨 아주머니가 송이버섯을 많이 땄다고 해서 등대 전 가족에게 한 소쿠리씩 돌렸다. 나는 송이를 알지 못했다. 그러나 아내는 처녀 시절 충북 괴산과 충남 태안 소근진에서 살아봐서 산과 바다에서 나는 생물들을 잘 알고 있었다.
아내는 송이가 나는 시기는 좀 더 있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팔미도는 소나무들은 많이 자라지만 송이는 나지 않더라고 등대장님 아주머니께서 이야기하셨다는 것이다. 그러나 아내의 말은 팔미도의 버섯 종류는 워낙 많다고 했다. 그래서‘버섯 종류를 잘 알고 있는 정씨네 아주머니가 송이가 나는 장소를 발견했구나’하고 아내는 저녁 찬으로 버섯국을 끓었다는 것이다. 아내도 송이버섯을 잘 알고 있었기에 그랬을 것이다.
그러나 나는 원래 먹는 것에는 의심이 많은 사람이다. 섬에서 아내가 따온 버섯이라 해도 나는 먹지 않는다. “여보 당신은 의심이 많아요, 먹어보세요, 향기가 좀 다른데, 아리지는 않는 것을 보니 독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요”다섯 살짜리 아이가 나를 보더니 버섯국에 숟가락을 대지 않았다. 그러나 아내가 권하니까 아이는 버섯 대궁을 건져서 먹고 있었다. 나는 아이한테 먹지 말라고 한 것인데 아내가 권하니까 하는 수 없이 먹는 것을 보니 화가 치밀었다. 내가 숟가락을 딱 - 내려놓고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아이의 반응이 더 빨랐다.
“엄마 속이 메스 꺼려”
“ 그럼 나가서 바람 좀 쐬렴”
아이가 방문을 열고 바깥 여닫이문을 열자마자 구역질하면서 토했다. 나는 아차- 했다. 아내는 벌써 많이 먹었다. 나는 아내에게 어서 구토하라고 했다.
그리고 바로 아랫집 정씨네를 가 보았다. 정씨 내외는 멀쩡했다. 버섯국을 드셨냐고 물어보았다. 그날 농어를 잡은 것이 있어 농어 찌개만 먹고 버섯국은 해 먹지 않았다는 것이었다. 내가 우리 집 정황을 정씨에게 이야기했다. 그 버섯을 등대장 댁과 윤씨에게도 전부 다 드렸기 때문에 어서 가보자고 했다.
곽대장님 관사 앞에 서자 창문이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곽대장과 아주머니가 밥상을 엎어놓고 다듬이 방망이가 획- 날아가더니 여닫이 방문이 와장창했다. 아이들은 울고 있었고 옆집 윤중기씨는 웃통을 벗고 들었다. 그리고 장작을 손에 쥐고 눈을 휘 번뜩거렸다. 아내가 이곳까지 쫒아 왔다. 아이는 괜찮다고 했다. 그러면서 먹은 것을 어서 토하게 하여야 한다고 했다. 아내도 입에 손을 넣어 토했더니 괜찮다는 것이다. 그런데 윤중길씨는 힘이 좋아서 제압하기 힘들 것 같았다. 그리고 윤씨는 장작을 가지고 창고 문을 두들기면서 모두 다 죽여 버리겠다고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우선 윤씨는 놓아두고 곽대장을 나와 정씨가 잡고 아내가 곽대장의 입에 손가락을 넣어 토하게 했다. 그리고 아주머니도 같은 방법으로 구토를 하게했다. 정씨는 윤씨를 잡아서 등탑 아래 발전기실로 올라갔다.
한참 후에 정씨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 왔다.
“조형, 조형, 어서 충전실로 올라 와 - ”
곽대장과 아주머니는 조용했다. 다행이라 생각하고 아내에게 좀 살펴보라 했다. 다행히 아이들은 버섯국을 먹지 않은 것 같았다. 아내가 곽대장의 아이들을 달래고 집 안을 정리하는 것을 보고 윤중길씨가 사는 관사 뒷계단을 통해서 급하게 충전실로 올라갔다.
오르막길에서 보니까 윤씨는 지렛대를 들고 정씨를 내려치고 있었고 정씨는 피하느라고 애를 쓰고 있었다. 정씨가 하는 수 없이 윤씨에게 달려들어 허리를 끌어안고 쓰러트렸다. 내가 달려들어 두 사람을 떼어 놓았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윤씨가 나를 알아보았다. 그러면서 정씨를 보고 저 괴물을 없애야 한다고 했다. 윤씨는 정씨를 알아보지 못했다. 나는 정씨에게 어서 대장님 댁으로 가보라 했다.
“조형, 어째서 그 괴물을 대장님 댁으로 가라고 한 거지”
“윤형 아까 그분은 정인근씨야-”
“정인근씨가 누군데, 그 괴물을 어서 찾읍시다”
윤씨는 허상을 보고 있었다. 어떤 것은 논리적이고 올바른데 어떤 것은 마구 엉키어 있는 것 같았다. 윤씨를 따라 내려갔다. 대장님 댁으로 갔다. 곽대장은 눈을 감은채 누어있고 아주머니는 앉아 있었지만 말이 없었다. 그런데 윤씨가 정씨를 보는 순간 또 허상에 사로잡혀 있었다. 눈이 휘- 번득해지더니 손에 잡을 물건을 찾고 있는 것 같았다.
윤씨가 장롱 구석에 끼어 놓은 다듬이 방망이를 꺼내 들었다. 나는 정씨에게 등명기 불을 확인하여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곳은 우리 부부가 수습해 보겠다고 했다. 내가 윤씨를 데리고 윤씨가 기거하는 방으로 갔다.
그와 난 단둘이 앉아 이야기하기 시작했다. 정신이 나간 사람은 졸음도 오지 않나보다. 분노가 치밀어 오르면 억제가 안 되는 모양이다. 몇 번이고 뛰쳐나가려는 것을 가까스로 눌러 앉혔다. 아내도 이 시간 잠을 못자고 있었을 것이다. 날이 밝았으나 윤씨는 정신이 깨어나지 못하고 오락가락했다.
“조형 어제 내가 당직인데 어째서 내가 방에 있지요?”
“지난밤 기억나시오”
“내가 왜 웃통을 벗고 있습니까?”
윤씨는 지난밤의 일이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 모양이었다. 곽대장님은 정신이 돌아 왔지만 아주머니는 아직 제정신이 아니었다.
윤씨를 재우고 무신호실에서 발동 발전기를 돌려 한나절 정도 무신호 나팔을 빵- 빵- 부니 보트 한 척이 도착했다. 그 보트에서 사람들이 등대로 올라왔다. 보트는 인천 항로를 안내하는 화물선의 도선사들의 배였다. 그들의 도움으로 세 사람을 싣고 인천으로 나가 도립병원에서 진찰받은 결과 독버섯으로 인한 환각 증세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병원에 도착해 보니 윤씨나 대장님이나 아주머니나 모두 정상으로 돌아온 것같이 보였다. 안정제만 처방받아서 다시 도선사의 보트를 타고 팔미도로 돌아왔다. 저녁때가 되니 언제 그런 소란이 있었느냐 싶게 붉은 노을이 북장자서의 등표를 붉게 물들이고 있었다.
윤씨가 내 곁으로 다가왔다.
“조형 오늘은 내가 당직 설 께”
“아직 회복되지 않은 몸인데, 그 호의는 다음에 쓰기로 하지”
이 사건은 자칫 어긋났으면 큰 사건으로 남을 뻔한 일이었다.
그러나 모두가 무사했고 큰 사고가 없었기에 조용히 덮고 갔다. 무인도에서 생활은 이런 것이 문제였다. 이러한 일은 기록으로 남겨서 같은 일이 반복되지 않돌고 하여야 한다. 이 사건이 일어난 지 3년 후였다. 팔미도에서는 그날과 똑같은 사건이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