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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2.03 11:12 수정일 : 2023.02.03 11:17
43. 같은 무리를 버리고, 천화동인(天火同人)
최근에 고맙게 들은 이야기가 둘 있습니다. 모두 허물없이 가까이 지내는 이들에게서 들은 이야기입니다. 하나는 “나이 들면 친구를 재구성해야 한다.”라는 말이고 다른 하나는 “욕할 사람들이 많아지면 반드시 자신을 뒤돌아봐야 한다.”라는 말입니다. 앞의 말은 오랜만에 만난 어릴 적 친구가 한 말이고, 뒤의 말은 한 직장 후배가 친한 선배가 한 말이라며 제게 들려준 것입니다. 제게는 이 두 ‘말씀’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한 두 가지 ‘해명’으로 들렸습니다. 중년 이후의 교우관계는 전적으로 ‘노력’에 의존할 때가 많습니다. 좋은 친구가 되려는 노력이 동반되지 않을 때에는 삶의 활력보다는 삶의 피로가 되는 경우가 더 많습니다. 그런 경우를 심심찮게 겪으면서 관성에 매몰되어서, 혹은 옛정에 얽매여서, 교우관계를 방치하는 일이 있어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을 최근 들어 저도 많이 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차에 들은 말이어서 그 두 ‘말씀’이 제게는 ‘뼈를 때리는 충고나 권유’로 들렸습니다. 인생을 마무리하는 단계에서 온전하게 남은 생활을 그나마 유지하려면 첫째는 안으로는 자기를 성찰하는 일을 게을리 하지 않고(가급적 영혼을 순하게 가지도록 노력하고) 밖으로는 동병상련할 수 있는 뜻이 통하는 친구를 구하는 일에 소홀하지 않아야겠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중이었습니다. 나름대로의 실천 방안으로 우선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미련 없는 이별’을 연습하고 있기도 했습니다(최근에는 수십 년 다니던 치과를 떠나서 새 치과를 찾아가기도 했습니다). 소설가 김훈 선생은 매일매일 한 보따리씩 갖다버리며 살고 있다고 어느 글에선가 적고 있었습니다만 저 역시 마음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매일매일 버리는 생활을 몸에 붙이려고 애쓰는 중입니다. 어쨌든 소장품이든, 습관이든, 친구든, 과감히 버리는 게 핵심이지 싶습니다(물론 꼭 필요한 것은 새로 사들이기도 합니다). 버릴 것을 못 버리고, 집착이나 체면, 혹은 관행이나 관습에 연연하다 보면 때를 놓치고 허둥지둥 말년을 보내기가 십상입니다. 늙어서 몸에 힘이 다 빠진 상태에서 마음까지 허둥댄다면 그야말로 ‘살아 있으나 죽어 있는 상태’와 진배없을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버려서 새로 얻는 일'에 정성을 다해야 할 것 같습니다. 어쨌든 마지막 순간까지 “열심히 살았노라”라고 자평할 수만 있었으면 충분히 좋겠습니다. 오늘 아침 읽은 주역에서도 그 그런 권고를 또 듣습니다.
....육삼(六三)은 적을 만나 혹 두드리고 혹 그치고 혹 울고 혹 노래하도다.(六三 得敵 或鼓或罷或泣或歌)-「상전」에서 말하기를 ‘혹고혹파或鼓或罷’는 자리가 부당하기 때문이라.
육사(六四)는 달이 거의 보름이니 말의 짝이 없어지면 허물이 없으리라.(六四 月幾亡 馬匹亡无咎)-「상전」에서 말하기를 ‘마필망馬匹亡’은 같은 무리를 버리고 위로 오름이라.
구오(九五)는 미더움에 매여야 허물이 없으리라.(九五 有孚攣如 无咎)-「상전」에서 말하기를 ‘유부연여有孚攣如’는 자리가 정당하기 때문이라.
상구(上九)는 높이 나는 소리가 하늘에까지 오르니 바르더라도 흉하니라.(上九 翰音登于天貞凶)-「상전」에서 말하기를 ‘한음등우천翰音登于天’이니 어찌 가히 오래 가리오.[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60~462쪽]
주역 예순한 번째 ‘풍택중부’(風澤中孚), 중부괘(中孚卦)는 전반부의 길함과 후반부의 흉함으로 나뉩니다. 초구(初九)와 구이(九二)의 효사는 속이 미덥고 바른 군자가 하늘에 응하여 길하게 되는 상황에 대해서 말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위의 인용에서 보는 것처럼 ‘익숙한 것들과의 작별’입니다. 마지막 상구에서는 아예 ‘높이 날지 마라’고 타이릅니다. ‘한(翰)은 높이 나는 것이다. 나는 소리라는 것은 소리만 날되 실은 좇지 않음을 말한다. 괘의 위에서 믿음의 끝에 거하니 믿음이 끝나면 쇠하게 되고, 충실함은 안에서 잃고 화려함은 밖으로 드날리므로 한음등우천翰音登于天이라 하였다. 높이 나는 소리가 하늘에까지 이르니 바르더라도 또한 사라진다’고 부연 설명합니다.
요즈음 나라 안팎으로 ‘소리만 높이 나는’ 형국이 자주 보입니다. ‘미더움에 매여 있지’ 못하고, ‘무리를 버리’지 못하고, ‘진정한 위’로 오르지 못하고, 흉하게 버려질 운명을 자초하는 형세가 자주 펼쳐집니다. 나라와 나라 사이를 조정한다는 이들이나 한 나라를 운영한다는 이들이 한음등우천翰音登于天, 소리만 높았지 바름을 얻지 못합니다. 아마 늘 비슷한 동류들과 어울리기 때문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그렇게 맹목으로 살아야 ‘무리’ 속에 들어갈 수 있는 일이 가능한지도 모르겠습니다. 내일이면 우주의 먼지로 돌아갈(김훈 선생의 말로는 ‘한 되 반’ 정도의 뼛가루 무게라고 합니다. 그 무게감으로 삶은 무겁고 죽음은 가볍다라는 평소 지론을 다시 한 번 확인한다고 말합니다) 부박한 인생을 그렇게 막살아가는 소이를 모르겠습니다. 마필망(馬匹亡)은 절류(絶類)하여 위로 오르는 것(上)이라는 주역의 말씀이 아침부터 ‘산다는 것의 깊고 깊은 의미’를 되새기게 합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