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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은 소설> 나는 비둘기가 무섭다 /박명호

작성일 : 2025.04.22 03:23

나는 비둘기가 무섭다

/박명호

 

놈은 어디에도 있었다. 집을 나서면서부터 집에 다시 들어올 때까지 한순간 방심하면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바람에 여간 신경이 쓰이는 존재가 아니다. 나는 놈이 무섭다. 내가 세상을 살아가면서 어떤 특정 대상에 대해 이렇듯 무서워한 적은 없었다. 호랑이 무서워 산에 가지 못한다는 말은 들어봤지만 하찮은 미물, 그것도 사람 가까이서 정서적인 위안을 주면서 사람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아 평화의 상징이 된 비둘기를 그렇듯 무서워하는 것은 누가 봐도 웃을 노릇이다. 내가 놈을 두려워하는 것은 대수롭지 않게 시작되었다.

 

공원길을 한가하게 산책하고 있었다. 햇살이 좋았고 주변에 벚꽃들이 활짝 피어 바람마저 향기로운 오후였다. 그런데 느닷없이 마치 폭탄이 날아와 폭발하는 것처럼 수십 마리 비둘기들이 내 쪽을 덮쳤다. 순간 뿌연 먼지가 돌개바람처럼 내 몸을 휘감았고 나는 얼굴을 감싸며 비명을 질렀다. 그리곤 황급하게 비둘기 떼 속을 벗어났지만 꼭 테러당한 느낌이었다. 머리카락은 헝클어지고 그 가운데 몇 마리가 갈긴 흰 물똥이 내 옷 여기저기 떨어져 있었다. 산책하는 내 앞으로 공원 노숙자가 비둘기들의 먹이를 뿌린 모양이었다.

 

찝찝한 기분은 여러 날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았다. 알고 보니 비둘기는 주변 환경을 오염시키고 병까지 전염시키는 유해 동물이었다. 더욱 찜찜해졌다. 처음에는 그냥 놈을 피하면 그만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거리를 다니다 놈이 보이면 피해 다녔다. 그런데 피하면서 다니기에는 우리 생활 곳곳에 놈들은 너무 흔해 빠졌다. 아니 흔하다기보다는 놈을 인식하기 시작하니 온통 세상은 놈들의 세상이었다. 놈들은 이미 공원이라는 공원은 자기들 구역으로 다 차지해 진지를 구축했고, 역이나 소방서 학교 같은 관공서 건물들로 진출하더니 하나 둘 허술한 민가로 침입해 와 요즘은 아예 그 번잡한 시장바닥까지 점령해 버렸다. 간혹 뒤늦게 뛰어든 까마귀마저 놈들의 텃세에 밀려 쫓겨나기 일쑤였다.

 

그 무렵 남쪽의 어느 항구에서 비둘기 떼가 경찰서를 습격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부두에 있던 비둘기들은 항구에 하역 작업이 줄어들면서 먹이감이 부족해지자 인근에 있는 경찰서로 몰려든 것이다. 평화의 상징인 비둘기가 평화를 지키는 경찰서를 습격한 아이러니였다. 아이러니는 언어도단이다. 평화를 상징하는 새가 아니라 실은 평화를 파괴하는 새가 되어 버린 것이다. 놈은 신체적인 폐만 끼치는 것이 아니라 정신적 폐도 만만찮게 끼치고 있었다.

 

점점 비둘기가 무서워지기 시작했다. 무서워지니 놈들은 더 자주 내 앞에 나타났다. 기차역에도 버스 정류장에도 시장 길목이나 도시 곳곳에 놈들은 있었다. 나는 놈들 때문에 늘 걷던 공원 산책을 포기하고 뒷산 길을 택했고, 거의 매일 지나치는 시장길도 먼 길을 돌아 우회하는 수고를 감수했다.

 

젊은 시절 경찰서 앞에 구호처럼 걸려 있는 정의구현이란 말이 무척 섬뜩했었다. 장발 단속이 심했던 그 시절 나는 늘 경찰서나 파출소를 피해 돌아서 다녔고 어쩔 수 없이 그 옆을 지나칠 때도 그 정의구현이란 글씨가 그렇게 두려울 수가 없었다. ‘민주자유니 하는 용어를 쓰는 단체들도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대체로 반대이거나 구호로 활용되는 경우가 많았다.

부자라는 여자 이름은 집안이 너무 가난해서 붙여진 이름일 것이고 대한민국의 큰 대자는 나라가 작은 것에 대한 열등감의 표시일 것이고... 그러고 보니 세상 곳곳에는 놈처럼 이율배반적인 존재들이 너무 많았다.

이렇듯 부조리한 세상에 대한 괴로움은 놈을 만날 때마다 하나씩 둘씩 튀어나와 나를 괴롭혔다. 조만간 놈은 거대한 모순 덩어리로 내게 다가올 것이고 나는 매일 저 시지프스처럼 그 무거운 바위를 산 위로 산 위로 밀어 올리는 무의미한 작업을 계속해야 할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