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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4.21 06:46
‘장미 대선’이라고 부르지 말자
/윤일현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 대표
요즘은 친한 사람끼리도 정치 이야기는 삼가는 경향이 있다. 이야기하더라도 끝에는 대개 정치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행복 지수가 높아진다는 말로 마무리한다. 우리가 정말 정치에 완전히 무관심한 채 살 수 있을까. 그렇지 않다고 본다. 대화 중 힘주어 말하는 ‘무관심’이란 현실 정치에 대한 실망감의 극단적 표현이라는 사실은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
토머스 모어는 유머와 풍자로 당대 사회를 비판한 인문주의자였다. 그는 영국 헨리 8세의 이혼과 관련해 왕권에 맞서고 교황 편을 든 죄로 1535년에 처형됐다. 그가 쓴 ‘유토피아’의 원제목은 ‘최상의 공화국과 새로운 섬 유토피아에 관하여’이다. ‘유토피아’는 어원상 ‘존재하지 않는 곳’을 의미한다. 그가 현실에 얼마나 절망하고 좌절했으면 ‘유토피아’를 썼을까 싶다. 1, 2부로 된 이 책은 당대의 사회 참상을 고발하면서 유토피아의 생활 방식과 사회 제도에 관해 들려준다. “도둑들이 법을 만들고, 그 법을 어기는 자를 도둑이라고 부른다. 정작 진짜 도둑은 법을 만든 그들이다.” 1516년에 발표된 ‘유토피아’에 나오는 이 말이 오백 년도 더 지난 오늘 우리에게 그대로 적용될 수 있다는 사실이 놀랍다. 이런 구절도 있다 “어떤 국가에서는 부자들이 자신들의 탐욕과 이익을 위해 온갖 술수를 부려 법을 만들고, 마치 그것이 공공의 이익인 양 포장한다. 그러나 이는 도둑들이 모여 자신들의 범죄를 정당화하는 법률을 만든 것과 다름없다.” ‘유토피아’는 이상사회를 위한 설계도가 아니고, 당시 영국 정치와 사회 모순을 풍자하는 거울이며, 권력이 어떻게 자신을 정당화하는지를 폭로하는 풍자극이라 할 수 있다. 모어는 “법은 언제나 강자의 편에 서서, 그들이 가진 것을 지키기 위한 방패로 기능한다.”라고 했다. 그는 ‘유토피아’라는 이상 사회를 묘사하면서, 끝없는 탐욕과 정의롭지 못한 권력이 서로 결탁하여 국민을 압박하는 현실을 통렬하게 비판했다.
정의와 공정이 자주 언급되는 곳일수록 정의와 공정은 먼 곳에 있는 경우가 많다. 정의를 자주 말하는 사람일수록 그의 삶 전체가 불의로 가득할 가능성이 높다. 현실 정치의 실망스러운 모습을 일상적으로 접하다 보니, 사람들은 ‘누가 돼도 똑같아, 우리가 한두 번 속나’라고 자조적인 말을 내뱉는다. 그렇게 말하면서도 마음속으로는 토머스 모어의 말처럼 “어떤 자를 지도자로 뽑는가에 따라. 나라의 운명이 결정된다.”는 생각을 떨치지 못하고 있다. 나쁜 지도자는 국민의 무관심과 냄비 근성에 기대 국민을 괴롭힌다는 사실 또한 경험으로 잘 알고 있다.
6·3 선거를 ‘장미 대선’이라고 부른다. 투표 날이 장미가 만발하는 시기이기 때문이다. 이름만 들으면 낭만적인 느낌을 준다. 그 이름이 우리가 처한 상황의 심각함을 희석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한 치 앞을 내다보기 어려운 트럼프 발 관세 문제와 한반도를 둘러싼 주변 정세는 유권자의 현명한 선택을 요구하고 있다. 대선 결과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칠 수 있다고 생각하면 등골이 오싹해진다. 국민이 두 눈을 부릅뜨고 선거판을 지켜보며 현명한 선택을 할 수 있도록, ‘장미 대선’이라는 말 대신 다소 길지만, ‘국가와 민족, 당신과 당신 자녀의 미래를 결정할 선거’라는 이름으로 바꾸면 어떨까 싶다.
법이 없어서가 아니고 그 법을 지키지 않고 악용하는 사람들에 의해 국가와 국민이 어려움에 부닥치는 경우가 많다. “완벽한 국가에서는 완벽한 법을 제정하는 일보다는 완벽한 법의 집행을 최상의 사람들에게 맡기는 일에 전력을 기울이지요”라는 ‘유토피아’ 구절을 되씹어 본다. 모어는 “만일 백성이 무지하거나, 혹은 권력자의 거짓말에 속아 잘못된 사람을 지도자로 뽑는다면, 그 나라 전체가 그 어리석음의 값을 치르게 된다.”라고 말했다, 어느 시대나 현실 정치가 감동과 재미를 주기는 어렵다. 결정적으로 중요한 순간에 정치적 무관심을 조장하는 것은 특정 세력의 음모일 수도 있다. “좋은 지도자를 뽑지 않은 죄는, 나쁜 지도자를 견뎌야 하는 고통으로 되돌아온다.”라고 한 오백 년 전의 ‘유토피아’의 경고에 우리 모두 귀 기울여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