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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현대문학의 어제와 오늘> <부문 3-6> 시의 기본을 잘 지킨 몇 편의 작품들 -2020년대 부산 시인들(3)

작성일 : 2025.04.21 06:43

 

<부문 3-6>

 

시의 기본을 잘 지킨 몇 편의 작품들

-2020년대 부산 시인들(3)

 

 

 

요즈음 시인이 급증하고 있다. 그 까닭은 문학지의 발간이 예전에 비하여 쉬워졌기 때문이다. 문화체육부에 허가를 받아야 하는 시절에는 그 등록절차가 까다로웠다. 그러다가 그 업무가 광역지자체로 다시 기초 자치단체로 이관되어 이제는 신고만 하면 문예지를 만들 수 있게 되었다. 문예지가 많아지자 문예지마다 신인을 배출하며 심지어 신인 배출을 통하여 잡지 운영비와 발간비를 충당하는 웃지 못 할 사태까지 벌어지고 말았다. 이러한 비정상이 정상으로 인식되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현실이 안타깝기만 하다. 물론 신인이 많아지는 것 자체가 잘 못된 것은 아니다. 신인을 등장 시키는 매체나 심사위원이나 추천인이 엄격한 기준으로 일정한 수준에 이르는 사람들만 등장시킨다면야 어떻게 이 시태를 비난할 수 있겠는가?

그리고 또 다른 현상의 하나는 시인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수필가를 겸하거나 다른 장르까지 신인 등용문을 통과하여 이중적 혹은 삼중적 글쓰기를 하는 경우가 많다. 필자가 아는 어느 수필가는 환갑을 넘기면서 몇 십 년 쓴 수필로 표현할 수 없었던 것이 있어서 시 쓰기를 시작했다고 했다. 그래서인지 그의 시는 시의 기본을 충실히 지키고 있었다.

그렇다면 시와 수필 혹은 산문쓰기는 어떠한 차이가 있는가를 생각해 보기로 한다. 잘 알다시피 모든 문학 장르는 시에서 시작되었다. 그러다가 소설이 생기고 수필이 생겼다. 모든 장르를 표괄했을 때의 시의 세계는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상적인 대화나 글쓰기와 차이가 났는데 이러한 시적 발상은 우뇌가 가지고 있는 상상력과 창의력에 의해 창작되기 때문에 논리적으로 언제든지 창작하고 싶다고 하여 되는 것이 아니라 영감이 떠올라야 창작되었다. 그런 까닭으로 시인 각자의 기질에 따라 음악적인 취향의 사람은 리듬을 중시하고 회화적인 취향의 사람은 비유(여기서 비유는 비유부터 상징까지를 포괄한 것임)와 거기에서 나오는 이미지 중심의 시를 창작하였다. 이러한 시 창작의 기본에 반하여 수필이나 소설 혹은 비평 같은 글쓰기는 논리적 사고를 동반한다. 말하자면 좌뇌의 작용이 우뇌의 작용보다 훨씬 많다는 것이다. 그리고 수필의 자아의 직접적이고 솔직한 고백, 소설의 인물과 스토리를 통한 문학성의 구현은 두뇌 속에서 다른 과정을 거친다. 필자의 경우도 시 쓰기와 산문 쓰기를 겸하여 왔다, 그럴 때마다 좌뇌와 우뇌의 이질적 작동에 고민하였고 지금도 고민하고 있다.

앞의 논의를 요약하면 시의 기본은 리듬과 비유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행과 연 구분은 시에서 리듬을 구현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따라서 그 구분의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서정적 산문 혹은 수필이 행과 연을 구분했다고 해서 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특히 시와 수필 쓰기를 겸하고 있는 문인들은 지금까지의 글쓰기에 이런 과오를 범한 적은 없는지를 되돌아 볼 필요가 있다. 비유는 시는 직접적으로 감정이나 관념을 드러내어서는 안 되기 때문에 감정이나 정서 혹은 관념이나 형이상학적 가치를 객관화하는 하나의 방편이다.

이상과 같은 입장에서 문학도시20228-9월호의 작품 가운데 시의 기본을 잘 지킨 몇 편을 살펴보기로 한다.

<양왕용/ 시인/ 부산대명예교수>

잿빛으로 물든 공단 화단에는

하얀 종들이

바람결에 노니는 꽃댕강나무 꽃 잔치로

향기로움이 가득하다

 

하늘 향해 솟은 가지가

댕강 잘려 나가도

늘 변함없이 그 자리에 서서

아름다운 작은 종을 소리 없이 울리고

오가는 이들에게

향기로운 내음을 선물하는 꽃댕강나무

 

오롯이 살아가는 꽃댕강나무 향기에 취해

나의 하루도 늘 향기롭기를

오늘도 변함없이

창을 두드리는 햇살에게 진심으로 빌어 본다

- 김동석 꽃댕강나무전문(문학도시2022.8)

 

김동석 시인의 시꽃댕강나무는 우리나라 중부이남에서 정원수와 관상목으로 활용되고 있는 꽃댕강나무가 시적 제재로 등장하고 있다. 이 나무는 원산지가 중국인데 우리나라에는 1930년대에 유입되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일제에 의하여 우리나라에 정원에 유입된 것이다. 그러나 중부이남에서는 초겨울에도 종모양의 꽃을 피우고 있어서 인기 있는 수종이다.

김 시인이 주목하고 있는 것은 길 가나 정원의 꽃댕강나무가 아니고 잿빛 공단 화단이라는 상징적인 공간에 존재하는 꽃댕강나무이다. 상징적 공간을 시의 배경으로 하는 것은 김 시인이 가지고 있는 시적 역량에서 왔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소 평범한 비유이지만 댕강나무 꽃을 종으로 비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시의 근본을 지키고 있다. 그런데 둘째 연의 경우는 언어유희(pun)까지 등장한다. 댕강나무댕강의 동음이어인 댕강 잘려나간다는 데에서 댕강나무의 강인함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또한 종소리에서 나오는 청각적 이미지까지 등장하여 꽃향기와 어울어진 공감각적인 이미지를 형상화 하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 시적화자인 김 시인의 감정이 직접적으로 진술되어 다소 긴장감이 떨어지고 있으나 둘째 연의 형상화 능력으로 인하여 이 시는 어느 정도 성공한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 달리 말하면 마지막 연의 표현에 더욱 정성을 쏟았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앞으로 김 시인은 이러한 점에 유의해야 할 것이다.

 

벽의 궤적에는 공식이 있다

도시가 시작되는 복선 철로 길

소음을 차단하는 방음벽이 생겨났다

방전된 모니터처럼 햇살이 가려진 벽

세상의 모든 소리들을 껴안는

출입구의 경계가

애매한 바람막이로 서 있다

저 곡선을 질주하는

기적소리의 길을 따라

가파른 공간에서 서로가 만나는 바람

나무의 등뼈 사이 경계가 그어지고

각도가 다른 선로에

숨길을 연결하는 나무 사이

하나의 길이 생겨나면 또 다른 길이 사라지는

뺄샘도 없는 도시의 소망

도로는

다가가지 못하는 차단막의 뒤편에

철로를 지나는 소리로 뻗어난다

허물지 못하는 허공으로 울려 퍼지며

진동음은 울림을 분산한다

가파른 세상의 속도를 제한하는

도심의 풍경이 달리고 있다

-전성희벽의 기하학전문(문학도시2022.8)

 

전성희 시인의 벽의 기하학은 우선 제목부터 다소 현학적이다. ‘기하학이라는 학문적 용어가 그것이다. Topology라는 영어로 알려진 기하학은 일명 위상수학이라는 용어로 사용되어 수학 가운데 공간, 장소 등을 다루는 학문으로 건축학, 사회학, 심리학, 지리학 등의 분야에서 응용되고 영화, 문학. 미술 등과도 연관되어 결과적으로 다양한 인문학과 연결된다. 전 시인의 이 시에서는 이라는 공간을 차단하는 사물을 등장시켜 그에 대한 사유를 하고 있는 점에서 적절하고 상징적 내포를 가진 제목이라고 볼 수 있다.사실 은 무신론적 실존주의 문학가 사르트르(1905-1980)의 단편소설 제목으로 사용될 정도로 상징적이다. 그리고 다양한 공간을 닫히게 하는 것 자체에서 많은 상징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전 시인의 시적제재는 가운데 도심을 통과하는 철로변의 소음을 방지하기 위한 방음벽이다. ,‘방음벽으로부터 상상력을 시작한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는 이러한 방음벽에 대하여 무심하다. 그러나 철로변에 사는 사람들에게는 필요악이라 볼 수 있다. 소리는 차단하지만 풍경이나 전망을 가린다는 점에서는 안타까운 현실이다. 이러한 방음벽의 안타까움을 직접적으로 인식하지 않고 지극히 기하학적 사유, 즉 경계, 곡선, 각도, 공간 등의 용어를 통한 사유뿐만 아니라 기차가 질주하는 속도와 그로 인한 소음과 바람 등을 등장시켜 도시적 상상력을 하고 있으며 독자들도 그러한 분위기에 빠지게 만든다.

전 시인의 시를 지배하고 있는 비유는 다분히 상징적이라 볼 수 있다. 그러나 상징적이라는 특성이 가지고 있는 답답함은 시 전반을 지배하고 있는 다이나믹한 청각적 이미지로 청산된다. 그리고 도시에서의 분주하여 여유없는 삶을 비판하고 있는 점에서 문명비판적 태도도 가지고 있다. 다만 그것이 적극적이 아니라는 점에서는 다소 아쉽다.

바람이 바람을 데리고 스커트를 들춘다

 

왕대나무에 내려앉은 허공이 구름의 속옷 같다

 

심심한 날이면 허영의 전봇대가 허영을 부추긴다

 

첫사랑 소식이 궁금한 것은 오로지 바람 탓이다

- 김경연 바람전문(문학도시2022.9)

 

김경연 시인의 시 바람은 시인들의 시에 자주 등장하는 바람이 제목이자 시적 제재이다. 사실 바람이라는 사물은 눈에 보이지 않는다. 단지 기상현상으로 두 장소 사이에서 기압 차이로 일어나는 공기의 이동이다. 그러나 이 이동이 커기에 따라 태풍이 되고 그것이 인간에게 큰 재앙을 가져다주기도 한다.

김 시인의 시에 등장하는 바람은 그러한 바람이 아니다. 바람이 여자의 스커트를 들추는 것으로 바람의 존재를 인식하게 만드는 일상적인 것이다. 어떤 면에서는 다소 관능적인 바람이기도 하다. 따라서 지극히 인간적인 바람이다. 둘째 행에서 보이고 있는 허공에 대한 비유도 복합적이다. 허공과 연결되어 등장하는 왕대나무는 다소 한국화적 분위기를 보여주고 있다. 그러면서 구름 사이로 보이는 허공을 속옷이라는 보조관념으로 비유하면서 다시 인간적인 인식이 등장한다. 셋째 행에 등장하는 허영의 전봇대는 다소 엉뚱한 느낌이 들기는 한다. 그래서 시적 내포를 제대로 해석하기는 힘들다. 심심한 날이면 옛날의 화려했던 시절이 생각난다는 정도로 해석 하면 마지막 행과 유기적인 해석이 가능할 것 같다. 바람의 이중적 의미인 심리상태의 동요를 생각하면서 바람 부는 날에는 첫 사랑이 생각난다는 과거의 기억으로 돌아가게 된다는 점을 진술한다.

김 시인의 짧은 4행시에서 긴 시보다 더 많은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바람 부는 정경에 대한 정서가 단순하지 않고 복합적으로 이입되어 있다. 말하자면 응축된 정서가 많은 내포를 간직하고 있으며 바람은 보이지 않으나 시 속에서 전개되고 있는 정경으로 인하여 구체적 상상이 전개될 여지를 충분히 가지고 있다.

 

지구가 철조망에 엉켜있다

아이들이 지구를 굴리며

술래놀이를 하고 있다

구멍 뚫린 행성에서 녹물이 흘러나와

아이들의 발을 적시고 있다.

지구의 경도와 위도 사이

붉은 십자가가 꽂혀있고

갈라진 틈 사이마다

미라의 손이 튀어나와 있다

행성 속으로 뚫린 블랙홀 안으로

미사 복을 입은 사람들이

줄을 지어 올라간다.

형체 없는 얼굴이 굴러다니는 시멘트 바닥,

아이는 미라가 된 낙타를 타고

눈알을 밟고 간다.

아이의 머리에서 고목이 자라고 있다

페트병에 눈망울을 주워 담는 아이가

블랙홀로 들어가자

귀에 송신기를 꽂은 외계인이

피가 흐르는 우주를 두 손에 받쳐 들고

뒤를 따라간다.

 

아이의 눈동자에서

노란 싹이 돋아나고 있다

-김금아 깨어진 우주전문(문학도시2022.9)

 

김금아 시인의 깨어진 우주는 일종의 해체시 혹은 하이퍼시라고 볼 수 있다. 이 시에 등장하는 사물들과 그 사물들이 전개하는 풍경은 마치 초현실주의 화가들의 그림을 보는 것 같다. 말하자면 환상적이고 몽환적인 이미지가 등장한다. 그러나 깨어진 우주라는 제목에서 기후 변화에 대한 위기의식이나 문명비판적 태도를 감지할 수 있다. 이런 입장에서 이 시를 읽어 가면 어느 정도는 문맥에서 풍기는 정서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경향의 시를 읽는 방법은 사물이나 그 사물들이 하고 있는 개별적인 동작이나 행위에다 특정 관념을 부여할 필요는 없다. 다만 서술되거나 묘사된 그대로 파악하여 전체적 분위기를 느끼면 된다.

김 시인의 이 작품에서 그려지는 그림은 전체적으로는 해체되어 있으나 등장하는 사물 하나는 그 존재감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그로테스크한 그림에 등장하는 사물들에 의하여 상식적인 동영상들과는 다른 동영상들이 그려진다. 마치 외계인들에 의하여 피습된 지구인들의 우왕좌왕하는 지구 종말의 날을 보는 것 같다. 앞으로 김 시인의 시에는 이러한 절망적인 동영상보다 아름답고 행복한 꿈을 꾸는 동영상을 기대한다. 왜냐하면 해체되거나 몽환적인 이미지에서도 아름답고 따뜻한 정서를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한 이미지로 가득찬 화가를 한 사람 꼽으라면 시인들의 시에도 자주 등장하는 러시아 태생의 화가 마르크 샤갈(1887-1985)을 들 수 있을 것이다.

 

네가 태어나는 날 닭이 울울창창 울어

네 이름을 어둠을 지우는 새벽이라고 지었다

네가 태어나는 날 장미 만발하여

네 이름을 꽃이 웃는 한낮이라고 지었다

네가 태어나는 날 서쪽하늘이 하도 밝아

네 이름을 달빛 흐르는 저녁이라고 지었다

네가 태어나는 날 먼 산에 새 울어

네 이름을 뻐꾸기 노래하는 밤이라고 지었다

 

네 이름은 여러 개다

네가 함부로 희로애락에 빠져

길을 잘못 들거나 허둥거릴 때

이름 하나씩 뽑아

네 이름을 네가 불러라

 

삶이 그다지 험하지 않을 거다

군데군데 앉을 의자와

머물고 싶은 풍경이 기다리고 있으리니

너는 여러 개의 이름으로

하루를 기꺼이 살아라

 

하루가 한 생이다

-신덕엽인디언 이름으로전문(문학도시2022.9)

 

신덕엽 시인의 시 인디언 이름으로는 아메리카 인디언의 이름 짓는 습관이라는 문화를 이해해야 시에 접근할 수 있다. 19913월 국내에서 개봉된(202130년만에 재개봉되었음) 화제작 케빈 코스터너가 감독과 주연을 겸한 영화 늑대와 춤을(63<1991>미국 아카데미 영화상 작품상, 감독상 등 7개 부문 수상작)이라는 영화를 보면 이 영화 제목은 케빈 코스터너(주인공 존 던바 중위 역)가 늑대와 춤추는 모습을 본 인디언들이 지은 케빈 코스터너의 이름이다. 그 외 여러 인물들의 인디언식 이름 주먹쥐고 일어서’, ‘하얀 양말’, ‘머리 속의 바람등의 이름이 등장한다. 이러한 인디언 식 이름 명명방법을 신 시인은 차용하여 시적 청자 에게 새벽의 닭울음에서 연상한 어두움을 지우는 새벽을 비롯한 네 개의 인디언 식 이름을 부여한다.

신 시인이 다양한 이름을 부여한 까닭은 의 삶의 역정에 위기가 닥칠 때마다 적절한 대비로 잘 헤쳐가라는 교훈이라고 볼 수 있다. 따라서 이 시는 시적 청자 가 자녀이던 손자이던 아니면 신 시인이 교직에 있었던 점을 감암한 제자이던 사랑하는 그에게 교훈을 주는 방법으로 우의적인 알레고리(allegory)를 택했다 그러나 고시조나 다른 문학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방법을 택하였다는 점에서는 문제작이다.

 

가까운 산에서

뻐꾸기 운다

뻐꾹- 뻑뻑꾹- 뻐꾹- 운다

 

가까운 산에서도

뻐꾸기 울자

숲이 짙푸르고

얕은 계곡 깊어진다

 

가까운 산

뻐꾸기 울음에

아득한 그리움

메아리로 밀려온다

-장동범 뻐꾸기전문(문학도시2022.9)

 

장동범 시인의 시 뻐꾸기는 시의 기본 가운데 리듬에 의한 발상을 하는 시이다.

그리고 전원지향적인 시적공간으로 볼 때 전통적인 서정시를 쓰고 있는 것 같다. 물론 이 한편으로 판단할 것은 아니지만 만약 그렇다면 도시문명에 찌든 현대인에게는 하나의 청량제가 될 수 있는 시를 많이 창작하여 한 권의 시집으로 엮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는 생각도 해본다.

시의 기본 가운데 하나인 리듬은 첫째 연 셋째 행에서 뻐꾸기의 울음을 묘사하는 의성어에서 그 효과를 본다. 그리고 이 여운이 이 시의 전편을 지배하고 있다. 둘째 연의 경우 뻐꾸기 울음에다 시간의 흐름이라는 의미를 부여한다. 그로 인하여 숲은 푸르러 가고 내린 비로 계곡 물이 깊어진다는 인과관계를 설정한다. 마지막 셋째 연에서는 뻐꾸기 울음으로 인하여 아득한 그리움이 메아리로 밀려온다고 하여 그리움의 정서를 이입시키고 있다. 말하자면 반복되어 들리는 뻐꾸기 소리에서 이 시는 유장한 세월의 흐름을 인지하는 셈이다.

장 시인은 이렇게 짧은 시에다 리듬과 반복을 통하여 긴 시간을 이입시켜 독자들로 하여금 음미하면서 오랫동안 생각하게 하는 시를 쓴다. 장 시인의 인용하지 않은 작품 부재에서도 시 속에 등장하는 인물의 단순한 행위와 동작 뒤의 침묵으로 인하여 시 속에는 나타나지 않는 고독의 정서를 유발한다.

 

지금까지 문학도시202228월호 24명의 48 , 20229월호 25명의 49(1인만 1) 96편의 작품들 가운데 시의 기본인 리듬과 비유의 효과를 적절하게 살린 시 6편에 대하여 살펴보았다. 1-2인 시인의 작품에 대한 언급을 더 할까 망설이기는 했으나 다른 작품들은 치명적인 약점 즉, 비시적 진술이 보여 다음의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사실 시작행위를 한다는 자체가 매타버스 운운하는 AI 시대에 과연 어울리는가 하는 점에서 회의적인 시각을 가진 의견들이 많다. 그리고 AI가 시도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한다. 이런 시대 사항을 시인들은 어떻게 대비해야 하는가 하는 질문을 심각하게 던져본다. 필자는 아무리 AI가 시를 쓴다고 해도 치열한 상상력을 바탕으로 시 쓰기의 기본을 지키는 시인들의 작품은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라 보고 있다. 따라서 시인이 시라는 장르의 위상 확립을 위해 창작하고 발표하는 한 편 한 편이 비록 그 수고만큼 물질적 보상을 받지 못해도 프로 정신에 입각하여 어느 때보다 제 나름의 시작법을 확립하는 뼈를 깎는 아픔의 결과물이 돼야 할 것이라는 생각하고 다음 호에는 보다 많은 작품을 언급하게 되기를 소망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