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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4.21 06:19 수정일 : 2025.04.21 06:23
(3) 숲속에서 주어 오는 소라고둥
팔미도는 인천항 쪽의 해변 모래등 백사장은 앞쪽(대부도 쪽)이나 뒤쪽(용유도 쪽)이나 큰 바위가 전혀 없는 모래사장과 아래로 평탄한 갯뻘과 모래밭뿐이다. 앞쪽 해변은 뻘이고 뒤쪽은 모래가 섞인 뻘밭이었다. 팔미도의 형태가 사각형 주머니 형태로 자루가 긴 형태인데 이 모래사장이 자루에 해당한다.
본 섬 앞쪽은 대부도 쪽이요, 인천항으로 들어가는 깊은 물골이 있는 항로지만 용유도 쪽의 해변은 수심이 얕아 썰물에는 1Km 이상이나 되는 긴 모래 등이 나오는 곳이다. 팔미도는 남쪽으로 대부도, 남서쪽으로는 영흥도, 북쪽으로 용유도, 북서쪽으로는 무의도로 둘러 쌓여 있는 바다 중앙에 위치하는 섬이다.
어느 날인가 셋째 아이가 소라 두 개를 들고 왔다. 자기 주먹보다 훨씬 큰 소라고둥이었다. 오늘도 물이 많이 빠지는 사리 때였는데 이상했다. 아이가 소라고둥을 양손에 들고 왔을 때는 썰물이 중간 정도밖에 밀려 나가지 않은 상태였다. 소라고둥을 잡으려면 썰물에 물이 다 빠져나간 간조가 되어야 한다.
“이 소라고둥 어디서 났느냐 ”
“이것 저기 등탑 아래 우물, 그곳에 많아 ”
아이가 등탑 아래 우물이라고 하는 곳은 등탑 아래 해안가에 있는 우물을 말하는 것이다. 그곳은 유독 진달래가 많은 산비탈 아래에 유일하게 있는 샘이 솟는 샘물이다.
1950년대에는 팔미도에는 두 곳에 우물이 있었다.(나중에는 관사 앞에 또 하나의 우물을 만든다. 이 우물은 여과통을 거쳐서 빗물을 받아 사용한다.) 하나는 용유도 쪽 등탑 밑으로 경사면 아래에 있는 자연 샘터이며 또 하나는 북장자서 등표를 바라보는 서쪽 해변 끝에 있는 물탱크이다.
대부분 등대가 있는 섬에는 샘물이 없거나 샘물이 나도 이용하기 어려운 위치에 있어 빗물을 여과하여 쓰고 있다. 여과한 물을 탱크에 보관하여 식수로 쓰거나 기계의 공업용수로 쓴다. 빗물은 관사 지붕의 물받이를 통해 토관을 거쳐서 물탱크에 받는다.
그러나 팔미도등대에서는 관사 지붕에서 받은 빗물을 관을 통해 자연스럽게 여과되는 지하수로 해변 밑까지 내려보낸다. 지하수로 모래와 숲, 자갈 등을 채원 놓은 인공수로이다. 북장자서를 바라보는 서쪽 끝의 해변 벼랑 끝 우물은 콘크리트 물탱크로 흘러들어 오게끔 한 인공적인 우물이다.
“그럼 이 소라고둥은 바닷가에 주은 것 아니냐?”
“등탑 밑 우물 숲에서요”
“숲에서? ”
숲에서 바다생물인 소라고둥을 주었다? 소라고둥은 살아 있었다. 그렇다면 누군가가 밤에 잡아서 그곳에 두었다는 것인가? 그러나 어젯밤에는 등대 가족들이 소라고둥을 잡으러 갔거나 밤낚시를 가지는 않았다. 그리고 팔미도에는 등대 가족 이외에는 사람들이 없었다. 또한 밤에 해변으로 가려면 횃불을 만들어야 한다. 그렇지 않고는 어두워서 썰물에 들어난 해안가를 둘러볼 수가 없다. 횃불 없이는 소라고둥을 잡을 수도 없었다.
“얼마나 되니?”
“아주 많아”
아이는 양팔을 쭈-욱 벌렸다.
나는 등대 가족들에게 물어보았으나 아무도 어제 밤에 바다로 내려가지 않았다는 것을 확인했다. 이상하다?
누가 소라고둥을 잡아다가 숲속에 두었을까? 지금은 오전 시간이기 때문에 괜찮을 것이지만 오후가 되면 소라고둥은 더위에 죽게 될 것이다. 풀 섶의 그늘이 더위를 막아 주겠지만 ·····
아이를 데리고 그곳에 가보았다.
샘터는 해안가에서 10m 정도의 거리 경사면에 있다. 경사면이 가파르지는 않지만 등대사람들은 이 갈대숲 길을 통해서 해변으로 내려가지는 않는다. 길도 좁고 관사에서 해변까지 길이 멀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길은 조개를 잡는 겨울철에는 등대 가족 아주머니들이 이용할 뿐이다.
그리고 물을 길어오기 때문에 샘터까지만 오지, 샘터에서 해변으로는 내려가지 않는다. 그런데 수북 쌓인 소라고둥 무더기는 샘터 바로 아래 갈대숲에 있었다. 소라는 20여개나 되었는데 전부 살아 있었다. 도대체 누가 가져다 놓았을까? 분명한 것은 소라가 제 발로 바다에서 기어 나와 이곳으로 올라오지는 않았다는 것이다.
장마철에 ‘박카지’라는 돌게는 우물가로 올라와 독이 잔뜩 올라서 새빨갛게 풀 속에서 사는 놈이 더러는 있다. 그러나 소라고둥은 나의 사고 반경에서 벗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 이 소라는 사람이 잡아다 놓지 않았다면 불가능한 일이다.’하고 소라를 관사까지 가져가려고 소라를 망태기에 다 주어 담았다. 그런데 소라를 담으면서 생각했다. 사람이 이곳에다가 이 소라를 갖다 놓았다면 망태기 채 두었을 것이다. 소라를 하나씩 주어서 이곳으로 날랐을 리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이 정도의 양이면 장정이 아니면 짊어질 수 없는 무게이다. 소라고둥을 관사로 가져와서 어젯밤 소라를 잡아서 샘가에 놓아둔 사람이 있다면 가져가라고 했다.
그러나 아무도 없었다. 그리고 모두 내 말을 믿지 않는 눈치였다. 내가 어제밤에 혼자 소라를 잡은 사람이 되었다. 속상한 것보다 궁금증이 풀리지 않았다. 그런데 아이는 보름 후 또 그곳에서 소라를 가져왔다고 했다. 이번에는 저번에 있었던 자리에서 더 안쪽으로 들어간 갈대숲 속에 있었다. 이상한 일이 두 번이나 계속되었어도 수수께끼 같은 갈대숲 속의 소라 사건은 이해할 수가 없었다. 그렇다고 도깨비 장난이라고 할 수 없지 않은가?
“여보 시간 되면 샘터에 가보세요”
이번에는 아내가 샘터 절벽 아래로 가보라 했다. 소사나무 밑에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소라고둥 빈 껍질을 보았다는 것이다. 가서 확인해 보았다. 소라고둥은 빈 껍질뿐인데 상당수가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악취가 심했다. 그리고 소라고둥 빈 껍질은 삶은 것이 아니었다. 삶은 소라고둥 껍질과 자연사한 소라고둥 껍질은 색깔이 다르다. 그러니까 소라는 삶아서 죽은 것이 아니라 그냥 자연사한 것이다. 소라는 알맹이만 빠져 있었다. 그렇다고 빠진 알갱이가 소사나무 밑에 있는 것도 아니었다. 알갱이는 전부 사라진 상태였다. 더 없이 소라고둥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드는 것 같다.
그리고 두 달 반 정도 지난 9월 중순쯤이었을 것이다. 9월 사리 때 바닷물은 7월∼8월 사리 때보다 훨씬 많이 밀려 나갔고 하늘은 높아 대지의 물기가 가물어 있을 때였다.
샘터를 정기적으로 청소하는 때가 왔다. 비탈길로 갈지자로 휘어진 내리막길을 타고 샘터로 내려갔을 때였다. 샘은 가물어서 물이 많이 고이지 않았다. 그래서 샘 터 아래 갈대숲에 샘을 하나 더 파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이 귀해지는 겨울철이 다가올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갈대를 베고 샘을 파 터를 잡았다. 그곳은 해안과의 거리가 불과 5m도 안 된다. 그래서 해안가에서 올라오는 길을 더 넓히기로 했다. 낫으로 갈대를 베어 가면서 해안가로 나갔다.
그런데 발바닥에 뽀족하고 딱딱한 것이 밝혔다. 무엇인가 보니 뻘이 잔뜩 묻은 소라고둥이었다.
‘ 이 근처에서 두 번은 소라고둥을 주었고 절벽 아래 소사나무 밑에서는 소라고둥 빈 껍질을 발견했는데, 이번에는 뻘이 묻은 소라고둥’이라니?
훤하게 썰물에 들어난 갯뻘을 보았다. 그곳 해변의 바다 밑으로 개흙은 모래도 자갈도 없는 뻘밭이다. 아마 샘물이 흘러 들어가는 곳이기에 온전하게 뻘만으로 형성되어 있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곳에서 바다 밑으로 갯뻘이 들어나면 커다란 수렁이 있는 곳이다. 뻘 수렁에 빠지면 헤어 나올 수 없는 곳이다.
그래서 등대 사람들은 그곳에서는 뻘 수렁을 빙- 둘러서 다닌다. 바다속 수렁이지만 그곳은 피조개가 나는 곳이기도 하다. 그곳에서 잡히는 피조개는 주먹만 했다. 그리고 조갯살의 체액이 핏빛이다. 그러나 등대 사람들은 위험을 무릎쓰고 그 수렁에서 소라나 조개를 잡지 않는다. 그런데 그 갯뻘 위로 새의 발자국 같은 것이 무수히 나 있었다. 팔미도에는 바다 텃새가 거의 없다. 다만 청둥오리나 낙오된 철새들이 잠시 쉬었다가 가는 섬이다. 그래서 그 발자국에 눈길이 쏠렸다.
쥐떼였다. 그 발자국은 쥐떼 발자국이었다. 10여 마리쯤 되는 쥐들이 일렬로 갯뻘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런데 하나같이 무엇이 달려 있었다. 소라 고둥이였다.
아 - 이제야 그 수수께끼 같은 소라고둥 사건이 풀리는 순간이었다.
몰래 숨어서 보았다. 소라고둥은 쥐꼬리에 매달려 있었으며, 떨어 지지안했다. 쥐가 달리는 바람에 소라고둥이 계속 달가닥거리며 갯뻘에 마찰 되기 때문이었다. 소라고둥의 알맹이가 계속 움추려 속으로 들어가 쥐꼬리에서 소라고둥이 빠지지 않는 것이었다.
섬 쥐는 소라를 달고 숲속으로 모여들었다. 몇 마리씩 모여 주둥이를 맞대고 씰룩씰룩했다. 얼마의 시간이 지나자 섬 쥐는 다시 바다 밑이 들어난 갯뻘로 향했다.
소라는 쥐꼬리에 매달려 흔들이다가 조용해지니까 안전한 줄 알고 껍질 속에서 알맹이 머리를 내밀었을 것이다. 그럴 때 쥐들은 꼬리를 빼냈을 것이다. 섬 쥐가 소라고둥을 꼬리에 매달 때는 소라고둥의 귀가 있는 배설기관 쪽으로 꼬리를 밀어 넣었을 것이다. 소라는 이물질이 들어오니까 알맹이를 껍질 속으로 움추렸을것이고 섬 쥐는 꼬리에 압력을 가해지는 것을 느끼면 숲으로 달려갈 것이다. 그리고 소라고둥이 살아 있을 때에는 알맹이를 빼낼 수 없으니까 소리가 골아서 죽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먹을 것이다. 쥐의 지능이 어느 정도인가? 인간과도 별 차이가 없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