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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야의 소리 가야금
작성일 : 2025.04.16 10:50 작성자 : 김하기
가야의 소리 가야금
휘영청 달 밝은 제 창 열고 홀로 앉다
품에 가득 국화 향기 외로움이 병이어라
푸른 담배 연기 하늘에 바람 차고
붉은 술그림자 두 뺨이 더워온다
천지가 괴괴한데 찾아올 이 하나 없다
우주가 망망해도 옛 생각은 새로워라
달 아래 쓰러지니 깊은 밤은 바다런 듯
창망한 물결 소리 초옥이 떠나간다 -조지훈의 가야금-
백두대간의 소리
태초에 마고는 하늘의 음양音響으로 두 딸을 낳고, 이들에게 각각 궁희와 소희란 이름을 붙여주었다. 마고 엄마가 우주의 조화로운 음율로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며, 딸 궁희와 소희에게 오음칠조五音七調를 맡아보게 하였다. 그 일은 마고성 중앙에서 관管을 쌓고 자연의 소리音를 듣고 전響하는 일이었다.
이처럼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진 백두대간의 소리는 우리의 마음 본성에서 나오는 소리를 그대로 담고 있다. 우리의 악기는 백두대간 산을 닮아 투박하면서도 자연에서 얻을 수 있는 재료를 모아 악기를 만들었고 그를 8음八音(돌 대나무 가죽 흙 쇠 명주실 박 나무)이라 했다.
가야금은 대나무 쌍골죽 대금과 더불어 백두대간의 전통 현악기로 거문고와 비슷하다. 다른 말로 가야의 가야고 혹은 가얏고라고 부른다.
가야금과 거문고의 구별은 가야금은 12줄, 거문고 6줄. 줄 굵기는 거문고가 굵다. 거문고는 고구려에서 유래해 백두대간을 타고 내려온, 전통 현악기로 현학금玄鶴琴. 검은 학이 날아들었다고 현학금이라 부르다가, ‘검은 학 고’, ‘거문고’로 불렸다.
북방문화의 거문고가 악기 특성상 투박하고 묵직한 베이스이라면, 가야금은 남방문화의 섬세하고 여린 기타와 비슷하다. 주법에서도 거문고는 힘있게 연주하고 가야금은 부드럽게 연주한다. 가야금이 여자라면 거문고는 남자라고 비유하거나 한반도의 남부와 북부를 대표하는 현악기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의 가야금은 악기로서 기능뿐 아니라 인간이 하늘과 땅의 조화를 이루는 접화군생의 소리였다. 가야금 윗판이 둥근 것은 하늘을 상징하고 밑판이 평평한 것은 땅을 상징한다. 가운데가 빈 것은 천지 사방을 나타내고 12줄은 12달을 상징한다. 가야금은 우주 만물의 상징이다.
가야금 줄은 가장 좋은 누에고치를 사용한다. 제일 굵은 1현은 80줄이고 제일 가는 12현은 30가닥 정도이다. 몸통인 안족은 산벗나무 대추나무 배나무 박달나무, 현침은 산벗나무 살구나무 오동나무 등 모두 산의 소리다.
가야금은 악기의 몸통과 12현을 지탱하는 안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가야금을 연주할 때 오른 손이 놓이는 좌단 현침 돌괘 등이 있고, 오른쪽에 줄을 그는 부들과 학슬이있다. 정악에서 부들을 매는 부분을 양의 귀를 닮았다고 양이두라고 한다. 산조가야금에서는 봉황의 꼬리 같다고 봉미라고 한다. 가야금 뒷면에 소리 울림이있는데 정악가야금은 크고 산조가야금은는 작다.
악성 우륵
우륵于勒은 대가야의 악사였다.
혹자는 가야 가실왕 때에 중국 악기를 보고 만들었다고 말하지만, 그 이전 변한· 진한· 신라에 가야금과 비슷한 악기가 있었다는 기록이 있는 것으로 미루어 '고'라는 이름을 가진 악기가 가야금 원형으로 고조선 때부터 한반도에 있었다.
가실왕이 열두 달의 음률을 본떠 십이현금十二弦琴을 만들고, 우륵에게 명하여, 1. 하가라도下加羅都 2. 상가라도上加羅都 3. 보기寶伎 4. 달이達已 5. 사물思勿 6. 물혜勿慧 7. 하기물下奇物 8. 사자기師子伎 9. 거열居烈 10. 사팔혜沙八兮 11. 이혁爾혁 12. 상기물上奇物 12곡을 짓게 했다.
이 중 10곡의 곡명이 낙동강 주변의 옛 가야 지방의 명칭이다.
하가라도는 신라 법흥왕 때의 아라가야(아시랑국) 지역으로 현재의 경남 함안이고, 상가라도는 신라 진흥왕 때 멸망하여 대가야군이 있었던 지역으로 현재의 경북 고령군. 우륵이 가야금을 만들고 연주한 성열현은 고령에 있다.
달기는 경북 예천 다인현으로 본래는 달기현 또는 다기라 불리던 곳이고, 사물은 사수현 또는 사물현으로 지금의 경남 사천이다.
물혜는 경남 함양군 이안으로 이안현 또는 마리현이었던 곳이고, 하기물은 옛 감문소국이 있던 곳으로 금물현 또는 음달이라 불렸으며, 지금의 경북 금릉 아랫개경 쯤 된다. 상기물은 경북 금릉의 웃개령이고, 거열은 거열군이라 불리던 경남 거창이다. 사팔혜는 팔혜현· 초팔혜현· 초혜현으로 불리던 경남 합천군 초계 지방의 옛 지명이고, 이사는 지금의 경남 의령군 부림면 일대이다.
이렇게 널리 분포되어 있던 가야는 지역마다 전통과 문화가 달랐고, 독자적으로 세력을 구성했다.
대가야의 가실왕은 가야를 하나로 통합시키는 방법으로 음악을 선택했다. 우륵으로 하여금 가야금을 만들고, 각 지역색을 담은 12곡을 작곡하게 한 것이다.
삼국사기 기록에 따르면 대가야의 정세가 매우 불안정해지자, 우륵은 가야금을 들고 신라에 귀순하여 진흥왕에게 갔다. 악성 우륵뿐만 아니고 대가야의 태자 월광태자(도설지)도 신라의 장군으로 백제와의 공산성 전투에 참전해 대가야는 나라가 유명무실한 상태가 되어버렸다.
신라 조정 대신들은 모두 입을 모았다.
“폐하, 가야의 음악은 망국지음으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음악이 옵니다. 이 땅에 받아들이면 아니되옵니다.”
하고 극구 반대했으나, 진흥왕은 말하기를,
"가야가 쇠한 것은 가야 왕이 음란해서 그렇지, 음악 때문이 아니다.“
라고 말하며 우륵에게 집과 땅까지 주어 편히 살게 해주었다고 한다. 그 후 법지와 계고 · 만덕을 보내서 우륵의 제자가 되게 하였다. 그들은 우륵의 가야금곡 12곡을, "음악이 번잡하고 음탕하다."라고 말하면서 5곡으로 뜯어 고치는 하극상을 저질렀다. 처음 우륵은 화를 냈지만 다 듣고는, "즐겁지만 난잡하지 않고(樂而不流) 슬프지만 비통하지 않다(哀而不悲)." 하면서 칭찬했다고 한다.
그 후, 1200년 전 신라의 가야금이 일본으로 건너가, 일본의 보물창고 동대사東大寺(도다이지) 쇼소인에 현재 보관되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가야의 우륵· 고구려의 왕산악· 조선의 박연을 한반도 3대 악성으로 꼽는다.
고령읍 북쪽에 있는 괘빈리 금곡琴曲은 우륵이 공인을 인솔하여 가야금을 연습한 곳이다. 금곡은 다른 이름으로는 정정곡丁丁谷 이라고도 한다.
충주의 탄금대도 그와 관계된 지명으로 그가 이곳에서 가야금을 탄 것에서 따 왔다.
대가야의 가실왕은 누구인가?
가실왕은 우륵과 신라 진흥왕(신라 제24대 왕(534~576) 법흥왕(신라 제23대 왕(514-540)과 비슷한 시기 대가야의 왕이였다.
분열되어 가는 가야를 음악 12곡으로 통합하고자 노력했던 성군이였다.
혹자는 금미달을 떠나 아사달에 돌아가 산신이 되었다는 마지막 단군이 가야국 가실왕 (加耶國嘉悉王) 이라고 주장한다.
항간에는 고려 가요 가시리의 주인공이 대가야국 가실왕이다는 이야기도 있다.
조각배 노 젓듯이 가얏고를 앞에 놓고
열두 줄 고른 다음 벽에 기대 말이 없다
눈 스르르 감고 나니 흥이 먼저 앞서노라
춤추는 열 손가락 제대로 맡길랏다
구름끝 드높은 길 외기러기 울고 가네
은하 맑은 물에 뭇별이 잠기다니
내 무슨 한이 있어 흥망도 꿈속으로
잊은 듯 되살아서 임 이름 부르는고
풍류 가얏고에 이는 꿈이 가이 없다
열두 줄 다 끊어도 울리고 말 이 심사라
줄줄이 고로 눌러 맺힌 시름 풀이랏다
머리를 끄덕이고 손을 잠깐 쓸쩍 들어
뚱뚱 뚱 두두 뚱뚱 흥흥 응 두두뚱 뚱
조격을 다 잊으니 손끝에 피맺힌다
구름은 왜 안 가고 달빛은 무삼일 저리 흰고
높아가는 물소리에 청산이 무너진다 -조지훈의 가야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