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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유화상
작성일 : 2025.04.16 10:45 작성자 : 김하기
49, 백두대간 인문기행
장유화상
울안 모퉁이 작은 꽃 부처였네
구르는 돌 날으는 새 모두 부처님 얼굴
아주 예쁜 부처 였네
길섶 저만치 풀 꽃 한송이 부처였네
구르는 돌 날으는 새 모두 부처님 얼굴
아주 예쁜 부처 였네 - 범능 열린 눈-
기록에 따르면 한반도 북방불교는 고구려 소수림왕 2년 372년, 아도阿道 와 순도順道가 전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역사의 진실은 누가 뭐라고 해도 이보다 324년 앞서 한반도 들머리 가락국에 처음 남방 초전 불교를 전한 사람이다. 지금 김해시 장유長遊 신도시란 이름을 남긴 허황옥의 오빠인 보옥선인寶玉仙人 장유화상長遊和尙이다.
한반도는 기원전 2457년(上元 甲子)10월3일 환인의 서자 환웅천왕이 천부인天符印 세 개를 가지고 삼위태백산三危太伯山 신단수에 내려와 홍익인간 재세이화로 일대 북방문화의 대혁명을 일으켰고, 그로부터 2500년 후 백두대간 48화에서 언급했다시피 허황옥과 오빠 장유화상이 서기 48년 7월27일 아유타국에서 배를 타고 한반도 들머리 김해로 들어올 때 파사석탑을 싣고 온 장본인들이다. 파사석탑을 싣고 왔다는 것은 종교 불교와 인도의 남방문화를 가지고 왔다는 일대 대혁신이 아닐 수 없다.
홍익인간을 표방하는 북방문화는 자비의 종교 불교와 접화군생한 곳이 바로 한반도 백두대간이다. 한반도 어느 산에도 다 절이 있고, 각 사찰에는 부처와 우리 고유의 토속신인 삼성三聖. 환인桓因 · 환웅桓雄 · 환검桓儉을 모시고 있다. 가야의 대표적 산인 가야산에는 가야산신 정견모주正見母主와 법보 팔만대장경 해인사가 있다.
신라 최치원의 석리정전釋利貞傳에, 정견모주는 가야산 여신으로 대가야의 이진아시왕과 금관가야의 수로왕을 낳았단다.
48화에서 거론했다시피, 허황옥은 수로왕과 사이에 모두 10명의 왕자와 영안 공주를 두었는데. 그중 큰아들 거등居登은 태자로 왕위를 계승하고, 둘째 허석許錫과 셋째 허명許明는 어머니 허황옥 성을 따라 허씨의 시조가 된다. 나머지 일곱 왕자는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불모산을 거쳐 가야산으로 들어가 3년간 불법을 닦았다.
허왕후는 아들들이 보고 싶어 자주 불모산과 가야산을 찾자, 이번엔 장유화상은 일곱 왕자의 수행에 방해가 된다는 이유로 왕자들을 데리고 더 멀리 지리산 깊은 산중으로 들어가 버렸다.
얼마 후 장유화상에게 일곱 왕자가 모두 성불했다는 소식을 들은 수로왕 부부는 한걸음에 지리산으로 달려갔다. 수로왕과 허왕후가 지리산 범왕리凡王里에 도착하자 하늘에서 오색 무지개가 뜨고 신령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어머니, 아버지. 연못 속을 보면 저희들의 모습을 볼 수 있나이다!”
놀란 수로왕과 허왕후는 두 손을 모으고 연못 속을 보니 황금빛 가사를 걸친 금왕광불金王光佛 · 금왕상불金王相佛 · 금왕행불金王行佛 · 금왕향불金王香佛 · 금왕성불金王性佛 · 금왕공불金王空佛 일곱 생불이 영지에서 나와 무지개를 타고 성스럽게 하늘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수로왕은 크게 기뻐하며 일곱 왕자가 수행하던 곳에 칠불사란 절을 세웠다.
허황옥의 오빠 허보옥은 동생의 험한 바닷길과 조카인 일곱 왕자를 데리고 산을 떠나지 않았다고(장유부반長遊不返)하여, 사람들은 장유화상長遊和尙이라 불렀다. 본명은 보옥선인寶玉仙人이다.
장유화상은 2천 년 전, 인도에서 배를 타고 건너와 한반도에 초전 불법과 남방문화를 전한 선지식 위대한 인물이지만, 보다 객관적인 역사가 남아있지 않다는 이유로 오늘날 제대로 평가받지 못하는 안타까운 상황이다.
백두대간 인문기행에서는 역사의 사실도 중요하지만, 역사의 진실을 찾아가는데 그 목적을 두고 있다. 아마 700년 전 일연선사도 필자와 같은 심정으로 삼국유사를 남겼다고 생각한다. 그나마 금의 바다 김해에서 장유란 지명을 잘 보존한 것을 큰 다행으로 생각한다.
그럼, 당나라 현장의 그 유명한 대당서역기大唐西域記를 한번 보자, 천축 아유타국은 벼농사가 풍성해 살기 좋은 땅이며 사람들이 어질어 복 짓기를 좋아하고 학예에 능했다고 한다. 100여 곳의 가람과 3,000여 명의 승려가 대 · 소승불교를 함께 배웠고, 대승경전의 꽃이라 할 수 있는 승만경을 만든 나라라고 말했다.
천축의 아유타국 공주인 허황옥과 오빠 장유화상은 불교와 함께 벼농사 기술을 갖고, 바다 건너 한반도 들머리 김해(金海 금의 바다)에 안착해 불교를 전파하고 남방문화와 보다 선진화된 벼농사 기술도 황산강 유역 김해평야를 부국으로 만들었다. 물론 1만 5천 년 전 이 땅에 우리 고유의 벼농사를 지었다는 증거는 청주 소로리 볍씨에서 확인된 바 있다.
부처님의 가르침은 낙남정맥 신의 고기 신어산을 타고 올라가, 백두대간 마루금을 타고 북방에서 내려온 북방문화와 접화군생하여 한반도 풍류의 꽃을 피워 나갔다.
우리는 좀 더 객관적인 남방불교의 사찰과 역사 유물을 찾아볼 필요가 있다. 장유화상이 창건했다고 전하는 장유사長遊寺와 은하사銀河寺, 허황옥이 바다의 파도를 잠재우고 무사하게 가락국에 도착해 감사하는 뜻으로 세운, ‘바다의 은혜를 기리는 절’이라는 이름을 붙인 해은사海恩寺, 허황옥이 천축 아유타국에 계신 어머니 은혜에 감사하고 그리는 뜻의 모은암母恩庵, 수로왕의 극락왕생을 기려 창건한 성조암聖祖庵, 수로왕이 허황옥을 맞이하여 혼인했다는 흥국사, 금관가야인들이 불교를 잘 몰라 신봉하지 않자, 교화하기 위해서 제8대 질지왕 2년(452)에 세운 호계사와 왕후사王后寺, 앞에서 여러번 언급한 수로왕이 독룡과 다섯 나찰녀의 훼방으로 흉년이 들자 부처님을 청하여 설법을 하여 동해의 용과 고기가 돌로 변했다는 전설이 전해오는 밀양 만어사, 수로왕과 허황후 사이에 난 일곱 왕자가 도를 닦아 성불했다는 지리산 칠불암 등 20여 개가 넘는 사찰이 지금도 현존한다는 사실.
또 장유, 선암, 별포, 능현, 기출변, 범왕리, 대비촌, 불모산, 칠왕소 등의 지명도 남방불교 전래와 관련 있으며 천축에서 위대한 신으로 숭배하는 시바 신앙에 나오는 요니와 링감 유물이 김해지역 사찰에 유독 많이 나오는 것도 인도 불교 전래설을 뒷받침하고 있다.
장유사는 48년에 인도 아유타국 왕자이자 승려인 장유화상이 가락국 김수로왕의 왕후가 된 누이 허황옥을 따라 가락국에 와서 최초로 창건한 사찰로 전해온다.
1915년 허식이 지은 ‘가락국사장유화상기적비駕洛國師長遊和尙紀蹟碑’에 따르면 스님은 왕후의 친족이었으나 부귀를 뜬구름같이 보고, 티끌 같은 세상을 초연하여 불모산으로 들어가 은거하며 나오지 않았다 하여 사람들이 장유長遊화상이라 불렀다.
일곱 왕자가 외삼촌인 장유화상을 따라 처음 수도한 곳도 이 곳이다. 장유암이 자리한 산은 부처님의 산, 즉 성불한 일곱 왕자의 어머니 허황옥을 기리는 어머니의 산 낙남정맥 불모산佛母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