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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4.13 12:54
<부문3-4>
부산 시인들은 코로나 19를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2020년대 부산 시인들(1)
2019년 12월에 중국에서 발생한 코로나19는 2년이 지난 현재에도 온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 2년 동안 망가진 경제 특히 소상공인들의 생계가 위협을 당할 지경이 되어 백신 접종율이 높다는 것을 명분으로 11월부터 우리나라도 위드코로나 상태로 접어들어 일상을 회복할 준비를 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발병환자들은 크게 줄어들지 않아 누적 환자가 40만 명에 가까워지고 위중증환자들도 많아져 사망자도 3000명을 넘었다. 《문학도시⟫10월호와 11월호의 작품들 가운데 이러한 위기 상황을 대응하고 있는 부산 시인들의 작품을 많이 만날 수 있었다. 어떻게 대응하고 있는가 하는 점을 주목해 보기로 한다.
분노한 지구가
한번 당해 보라는 듯
너희들도 한번 견뎌 보라는 듯
기승을 부리는 폭염에
꼬리 내릴 줄 모르는 코로나 행위에
죄 없는 선풍기 목줄만 움켜쥐고
이리저리 끌고 다니며
스물네 시간 노동을 강요하며
혹사시키는 힘들고 서글픈 나날들
이겨 내려고 견뎌 내려고
인내는 소진돼 가고
언제 어디서 터질지 모르는 울화
매미는 아랑곳하지 않고
목청껏 불러 대는 사랑 노래에
마음 다독이려고 파란 하늘 올려다보며
한숨 한 번 길게 내쉬어 본다
지구를 강타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하고
심신을 고달프게 하는 코로나도
이글거리는 불볕더위도
붙잡을 수 없는 여름
가을에게 자리 내주려고
시나브로 떠날 채비한다
오는 가을은 쓰잘머리 없는 것들
털어 버리고 모두 통쾌한 웃음 웃는
계절이 되리라
김종신 「분노의 질주」 전문(《문학도시⟫10월호)
김 종신 시인은 시 「분노의 질주」에서 폭염이라는 기후 변화를 자연이 인간에게 내린 징벌로 인식하고 있으며 그 연장선상의 코로나 19의 위기에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힘들고 서글픈 나날들’이며 참는 것도 한계점에 도달하여 울화 즉 분노가 폭발할 지경이라고 술회하고 있다. 그래서 제목을 아마 영화 제목을 패로디하여 「분노의 질주」라 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분노도 계절의 변화에 따라 가을이 오면 ‘시나브로 떠날’ 것이라 소망하고 있으나 현실은 그렇지 않아 정말 안타깝기만 하다. 폭염과 함께 찾아오는 여름이라는 계절보다 가을에다 희망을 걸고 있는 김 시인의 소망은 조금 늦게 오더라도 이루어졌으면 좋겠다. 지금은 벌써 겨울로 접어들고 코로나 19 사태도 2년을 넘어가고 있는 현실이라 위기 극복은 백신접종이라는 의학에만 기대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코와 입을 드러내고
마음껏 숨 쉴 수도 없는 세상
하얀 마스크 속에서
숨죽여 숨 쉬었다
반가운 사람을 만나도
손을 잡고 흔들 수도 없고
잠시 주먹을 맞대며
눈인사로 지나갔다
한겨울을 견디고 핀 꽃들을
매몰차게 갈아엎어야 했던
시린 봄날도 있었다
표정 관리할 필요도 없고
하품이 나면 입을 가릴 필요도 없었지만
답답한 마스크 속에서
우리는 자유라는 숨을 그리워했다
이제는
립스틱을 바르고 싶다
-최옥「마스크」전문(《문학도시⟫10월호
최옥 시인의 시 「마스크」는 이제는 일상의 소품이 되어 있는 ‘마스크’를 제재로 하여 코로나 19로 변화된 일상생활의 여러 모습을 형상화 하고 있다. 그러나 그러한 일상에 대하여 분노하거나 그렇다고 절망하지는 않는다. 변화된 일상으로 인하여 여성들은 화장을 하지 않아도 되어 시간이 절약된다는 자조적인 말을 자주 듣는다. 어쩌면 이런 말은 코로나 19를 대응하는 역설적인 표현일지도 모른다. 최 시인의 시 속에서도 ‘표정 관리할 필요도 없고/하품이 나면 입을 가릴 필요도 없었지만’이라는 부분이 그러한 표현이다. 그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최 시인이 소망하는 것은 ‘우리는 자유라는 숨을 그리워했다’라는 부분처럼 ‘자유’이다. 그러면서 ‘이제는/립스틱 바르고 싶다’라는 마지막 부분에서 여성 화장의 가장 기본인 입술 화장의 회복을 통하여 일상의 회복을 소망하고 있다. 어떤 학자들은 코로나 19가 삶의 방향을 변화시킬 것이라 예언하고 있다. 즉 대면보다는 비대면, 접촉보다는 접속 등으로 인터넷 시대와 더불어 삶의 방향이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라 보는 것이다. 그러나 최 시인은 이러한 점보다 예전처럼 돌아가는 일상을 소망하고 있다. 비대면, 접속 등과 같은 삶의 방식은 인간들만 가지고 있는 ‘사랑의 관계’를 소멸시켜 더욱 많은 문제점을 야기시킬 것이라고 필자 역시 보고 있다.
경고장이 날아왔어요
무리 지어 날면 안 된다고
우리 모두 아파요
비행구역을 한번 벗어나
따가운 가시의 습격을 받았어요
부리에 뿔이 돋았어요
비상이 걸렸어요
빛의 속도로
허공을 침범해 오고 있어요
강력한 거리두기를 해요
움직일 수 없는 새장 속
체중만 자꾸 늘어나요
다이어트 정보 검색에
알고리즘 고구마 줄기처럼 줄줄 따라 나와요
따라 해 보아도
정체된 살은 빠지지 않아요
처음 겪는 힘든 시간
텅 빈 허공에서 서로 얼굴을 붉혀요
고장 난 비행을 서둘러 해제하고 싶어요
날갯짓 삐걱거리는 새
-김순옥「날고 싶어요」전문(『문학도시』11월호)
김순옥 시인의 시 「날고 싶어요」에는 직접적으로 코로나19가 등장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코로나 19로 우리의 삶이 자유롭지 못한 2년 동안의 상황을 새장에 갇힌 새의 경우로 빗대어 설정하고 있다. 대단히 적절한 비유라고 볼 수 있다. 시적 장치로 볼 때 상징의 단계는 아니고 굳이 비유 가운데 어떤 것인가 묻는다면 일종의 풍유라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이 시의 화자는 표면적으로는 새장 속에 갇힌 새들이다. 새들 특히 철새들은 무리지어 창공을 난다. 그런데 그러한 자유를 박탈당한 채 새장 속에 갇혀 있는 신세가 된 것이다.
코로나 19로 인하여 모임이 자유롭지 못하고, 모임의 인원이 제한되고 출입할 때마다 체온 재고 QR코드나 080 전화로 신고해야 되는 우리가 바로 새장에 갇힌 철새 신세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철새의 입장에서 전개하는 상상력도 다양하다. 셋째 연 연의 경우 따가운 가시라는 비유는 식물을 동원한 근육감각적인 아픔을 느끼게 한다. 넷째 연에서는 빛이라는 사물이 등장하여 속도감을 과학적으로 유추하게 만든다. 다섯째 연에서는 인터넷 시대에 걸맞는 상상력을 전개하여 갇힌 것으로 인하여 생기는 부작용을 적절하게 보여주고 있다. 마지막 연에서도 철새들의 갇힘을 고장난 비행이라는 문명의 위기인 비행기로 비유하여 코로나19로 인하여 답답한 현대인의 상황을 다양하게 느끼게 한다.
많은 과학자나 의학자 그리고 미래학자들은 코로나 19라는 악성 전염병의 주기적 발생은 인간들의 과도한 욕망으로 인한 과도한 개발에서 오는 자연환경 파괴에서 왔다고 보고 있다. 그 결과 급격한 기후변화라는 재앙이 닥치고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첫 번째 천사가 나팔을 불자
하늘에서 피 섞인 우박과 유황불이 땅에 떨어진다. -요한계시록-
우리들은 스스로 산을 버렸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강을 버렸습니다.
우리들은 스스로 바다를 버렸습니다.
우리들이 버린 플라스틱들은
병든 산을 만들고,
병든 강을 만들고,
병든 바다를 만들었습니다.
더 이상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과
볼 수 없는 모든 것들이 스며든 독하디독한 바람들 속에서
흰 마스크를 한 그들은.
그들은 죽은 자들의 얼굴을 하고
다 녹아 버린 북극의 빙하들 속에서
다 못 살고 죽은 물고기들과
다 못 살고 죽은 북극곰의 사체死體를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검은 석유를 뒤집어쓴
바닷새를 들고 있었는데,
바닷새는 절망의 목소리로 커억 커억 울고 있었습니다.
하늘과 땅 사이에
숨마저 쉴 수 없는, 버림받은 땅
이 황량한 폐허의 도시都市에서
병든 하늘이 환하게 불타오를 것입니다.
-신인기 「묵시록- 푸른 별 지구에 닥칠 환경위기를 생각한다」(《문학도시⟫ 2021.11월호)
신인기 시인의 시 「묵시록」은 ‘푸른 별 지구에 닥칠 위기를 생각한다’라는 부제가 붙어 있기 때문에 주제가 그대로 노출되어 있다. 시는 원래 주제를 숨겨 독자들이 읽어가는 과정에 파악하게 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렇게 주제를 부제로 하는 것은 바람직한 시작태도가 아니다. 그리고 요한계시록 8장7절이 첫 행과 두 행으로 표기되어 있으면서 뒤에다 –요한계시록-이라고 표시하여 놓은 것도 올바른 시작 방법이 아니다. 만약 필자가 이 시를 쓴다면 부제는 생략하고 제목 다음에다 한호나 두 호 낮은 글자로 이 성경 구절을 인용하여 놓았을 것이다. 이러한 약점을 가진 시임에도 불구하고 신 시인이 인식하고 있는 환경파괴에 대한 태도는 높이 살만하다. 시적화자를 ‘우리들’이라고 한 둘째 연과 셋째 연도 적절하다. 그 까닭은 환경파괴나 오염은 개인 ‘나’의 책임이 아니고 공동체 ‘우리’의 책임이기 때문이다. 이 시가 다소 선언적이기는 하지만 시적으로 성공한 부분은 넷째 연과 다섯째 연에서 병든 산과 강들에게 인격을 부여하여 환경오염을 항의하는 주체로 등장시킨 점이다. 마지막 연에서 요한계시록의 예언을 시적으로 변용한 것도 바람직한 방법이다.
이상 네 시인의 위드코로나 시대를 대응하는 방식은 각각 그 나름의 특색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우리 부산 시인들에게 코로나19의 고통과 트라우마는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 궁금하여 우선 4편의 시를 통하여 그 양상을 살펴보았다.
《문학도시⟫10월호와 11월호에는 다른 경향의 작품들도 많이 있다. 특히 메타시 즉 시작태도를 시로 피력한 유병기 시인의 시 「뿌리 깊은 나무」,(『문학도시』10월호), AI 시대의 상상력을 도입한 고훈실 시인의 시 「메타버스」,「땅콩볼」,(『문학도시』11월호), 김지은 시인의 시 「환상기행 3」,「게임중독 4」 등을 지면 관계상 언급 못한 것은 아쉽다. 이들 시인들의 작품들은 다음 다른 기회에 언급하기로 한다.
<시인/ 부산대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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