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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 칼럼> 우리가 생각하고 해야 할 일

작성일 : 2025.04.13 12:38

우리가 생각하고 해야 할 일

/윤일현 시인

 

누구나 패배를 두려워하지만, 패자 부활전이 원활하지 않은 사회에서 그 두려움은 공포에 가깝다. 속도를 미덕으로 간주하던 고도성장과 민주화 과정에서 크고 작은 혼란과 시행착오를 겪으면서 실패와 패배, 낙오를 유난히 두려워하는 분위기가 조성됐다. 사람들은 치열하게 경쟁하면서 한 번의 실패가 얼마나 치명적인 손실과 상처를 주는지를 뼈저리게 경험했다. 이런 곳에는 무엇을 쟁취하기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악착같은 사람이 있고, 실패가 두려워 적극적으로 도전하지 못하고 무기력한 상태로 그냥 무리 속에 섞여 따라가는 사람이 일정 비율로 존재한다. 성공한 사람도 불안하긴 마찬가지였다. 성공에는 항상 또 다른 실패의 씨앗이 들어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탄핵 정국에서 자기편의 주장이 관철되지 않을 경우 모든 것이 끝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사람들을 어떻게 움직이는가를 생생하게 목격했다.

 

하버드대의 두 정치학자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서로 적대하는 정당, 양극화된 정치, 무너지는 규범, 선출된 독재자에 의한 민주주의 붕괴 패턴 등을 통찰하고 있다. 그들은 민주주의가 생명력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정당들이 선동가들을 걸러내는 필터로 작동할 것엘리트 정치인들 사이에서 관용과 절제라는 불문율을 유지할 것을 강조했다. 저자는 미국의 경우 이 두 가지가 모두 심각하게 약화하였음을 지적한다. 이 책은 도널드 트럼프가 첫 번째 당선된 직후 미국적 맥락에서 쓰였지만, 전 세계에 적용될 수 있는 문제를 다뤘다고 할 수 있다. 두 저자는 그 이후에 쓴 어떻게 극단적인 소수가 다수를 지배하는가에서 그 내용은 훨씬 미국에 집중하고 있지만, 우리에게도 적용할 수 있어 그들의 논리를 따라 우리 정치 상황을 분석해 보는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이번에는 졌지만, 다음번엔 이길 수 있다는 사실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일 수 있다면 정상적인 민주주의 사회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패배가 단순한 정치적 패배가 아니라, ‘존재 자체의 위협으로 느끼면 사생결단의 투쟁이 전개된다. 어느 쪽이든 오늘의 패배가 일시적인 것이 아니고 영원한 것이 될지 모른다고 생각할 때, 극단적인 두려움이 극단적인 행동을 부추긴다. 진보든 보수든, 여야를 막론하고 부패한 권력자는 패배를 두려워한다. 정치 보복이 되풀이되는 곳에서 부패한 정치인은 선거에서 지면 온갖 비리가 드러나 법적인 책임을 피하기 어렵다. 그래서 그들은 선거에서 이기기 위해 선거의 룰까지도 자기에게 유리하게 바꾸려고 한다. 부정선거 시비도 끊이지 않는다.

 

부패한 정치인들은 가짜 뉴스와 대중 선동을 최대한 활용한다. 그들은 SNS나 유튜버, 자기에게 유리한 언론 등을 총동원해 가짜 뉴스를 퍼뜨리고, 상대 정당과 그 구성원을 국가의 적으로 몰아세우며 극단적인 편 가르기를 한다. 이런 상황에서는 정상적인 토론, 양보와 타협, 상호 존중과 배려에 의한 의사 결정은 배척되고, 말초적인 감정에 직접 호소하는 선동가들과 조직을 장악한 권력자에 빌붙은 소수가 전횡을 휘두른다. 그들은 상대의 비리를 침소봉대하며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법부를 장악하거나 영향력을 행사해 유리한 판결을 받아내려고 노력한다. 그들은 입만 열면 법을 이야기하지만, 법의 탈을 쓴 불법과 탈법으로 민주주의를 무너뜨리고 헤게모니를 장악한다.

 

우리나라는 민주주의가 잘 작동하는 나라 중 하나다. 이런 국가에서는 무력 쿠데타보다는 제도와 법을 악용한 내부 붕괴에 의해 민주주의가 파괴될 가능성이 훨씬 더 높다. “리트머스 시험지는 정치인들이 자신과 관련된 세력이 폭력적이거나 반민주적인 행동을 했을 때 보이는 반응이다라고 하는 저자의 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상대편의 문제점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비판하고 비난하지만, 자기편의 비이성적, 비합리적 주장과 행동에는 관대하고 심지어 그런 행동을 조장하는 우리의 정치 현실이 안타깝다.

 

정치 발전과 다음 세대가 교훈을 얻도록 계엄과 탄핵 과정에서 여야 정치인들이 했던 말과 행동을 빠짐없이 기록하고 기억해 온 국민이 민주주의가 무너지는 방식을 제대로 알아야 한다. 혹독한 대가를 치르는 엄청난 경험을 하고 나서야 뒤늦게 깨닫는 일을 더 이상 되풀이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현명한 사람은 역사에서 배우고, 어리석은 자는 경험에서 배운다.’는 말이 너무도 절실하게 와닿는 요즘이다.

 

<시인 /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