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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88.탈진실의 시대에 다시 읽는 고전

작성일 : 2023.01.19 09:17

탈진실의 시대에 다시 읽는 고전

/윤일현

 

 

오이디푸스는 테베의 왕 라이오스와 왕비 이오카스테 사이에서 태어났다. 델포이 신전은 이 아기가 장차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할 것이란 신탁을 내놓았다. 기겁한 라이오스는 핏덩이를 양치기에게 넘겨주며 죽이라고 명령했다. 양치기는 차마 아기를 죽일 수 없어 산짐승의 밥이 되라고 국경지대 산속 나무에 매달아 놓았다. 이웃 나라 코린토스의 양치기가 아기를 발견하고는 자식이 없는 왕에게 바쳤다. 세월이 한참 흘렀다. 오이디푸스는 강인한 체력과 정신력을 가진 테베의 왕이 됐다. 유능한 그가 다스리는 나라에 어느 날부터 원인불명의 역병이 돌았다. 왕은 처남 크레온을 시켜 아폴론 신에게 원인을 묻게 했다. 테베를 휩쓸고 있는 역병은 선왕 라이오스를 살해하고 어머니와 결혼한 자를 벌해야 없어진다는 말을 듣는다.

 

신탁에 따라 살해자 수사가 진행된다. 오이디푸스는 당대 최고의 장님 예언자인 테이레시아스로부터 당신이 범인이란 말을 듣는다. 처음에는 그가 눈이 멀어 진실을 볼 수 없다고 몰아붙이며 왕위 찬탈을 위한 음모라고 분개했다. 그래서 크레온을 격리하고 살인범을 찾아 나선다. 어머니이자 아내인 이오카스테는 불길한 예감이 들었다. 그녀는 사건의 전모를 짐작하고 오이디푸스가 더 이상 비밀을 캐지 않기를 바란다. 오이디푸스는 자신의 파멸을 알면서도 이오카스테의 만류를 뿌리치고 출생의 비밀과 함께 자신이 아버지를 살해한 자라는 사실을 밝혀낸다. 이오카스테는 자살한다. 오이디푸스는 눈이 있어도 진실을 보지 못한 자기 눈을 그녀의 브로치로 찔러 멀게 했다. 그는 운명을 저주하며 스스로 고난을 부여하고 황야로 방랑의 길을 떠난다. 인간 고뇌의 극한을 묘사하며 비극적 아름다움을 완성한 소포클레스의 오이디푸스 왕줄거리이다. 이 작품을 희랍 비극 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고전으로 간주하는 이유는 치밀한 구성과 원숙한 기법 때문이 아니다. 상상하기조차 두려운 처참한 파멸이 분명하게 예견되는데도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진실을 밝히려는 오이디푸스의 확고한 의지 때문이다. 그는 타협을 거부하고 진실을 밝힘으로써 진정한 의미의 비극적 주인공이 됐다. 노벨 연구소는 이 비극을 인류 최고의 작품으로 선정했다.

 

가혹한 운명에 결연히 맞서는 오이디푸스의 용기를 보며 오늘의 한국 사회를 바라본다. 품격과 양심을 저버린 여야의 진심과 진실 공방이 점입가경이다. 여당은 당권 장악을 위해 윤핵관, 친윤, 반윤 등이 이합집산하며 벌이는 싸움으로 국민의 눈살을 찌푸리게 하고 있다. 야당은 성남FC, 대장동 사건 등의 수사를 두고 정적을 제거하기 위해 없는 죄를 조작한 사법 쿠데타라고 주장하며 집권 세력과 맞서면서도 그들끼리는 동상이몽의 내부 투쟁을 벌이고 있다. 정치권이 벌이는 사리사욕과 권력 쟁취를 위한 추태의 현장에 고통받는 국민은 없다. 정치가 이러하니 다른 모든 분야에서도 갈등과 분열, 편 가르기와 실력행사가 일상화하고 있다.

 

진실을 알게 된 오이디푸스의 절규에 다시 귀 기울여본다. “내게 이 쓰라린 일이 일어나게 하신 분은 아폴론, 아폴론, 바로 그분이시오. 하지만 내 이 두 눈은 다른 사람이 아닌 가련한 내가 손수 찔렀소이다. 내 눈이 멀쩡하다면 저승에 가서 아버지와 불쌍하신 어머니를 무슨 낯으로 본단 말이오. 이런 오욕을 스스로 뒤집어쓰고도 내 어찌 이 백성들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겠소? 천부당만부당한 일이오, 그건 안 될 말이오. 내 고통을 감당해줄 사람은 세상에 나 말고는 아무도 없을 테니 말이오.” 이종우 교수는 이 작품을 해설하면서 영웅은 초능력을 지닌 슈퍼맨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영웅은 극한의 상황에서도 인간의 가치를 보존하는 인물을 뜻한다라고 했다. 이 작품은 신의 위력, 신탁 앞에서 무력할 수밖에 없는 인간존재의 근원적 불완전성이 빚은 비극이다. 비극은 고난과 파멸 가운데서도 빛나는 정신적 가치를 보여줌으로써 인간이라는 자긍심을 느끼게 해 준다. 오이디푸스, 그는 파멸했지만 패배하지는 않았고 지도자의 양심을 저버리지 않았다. 정치 불신이 임계점에 다다랐고 극단 대결로 국정이 표류하고 있다고 판단한 여야 정치인이 이번 주(16)초당적 정치개혁 의원 모임활동을 개시했다. 본격적인 활동에 앞서 오이디푸스 왕을 같이 읽어보길 권한다. ‘현재와 같은 오욕을 뒤집어쓰고 어찌 국민을 똑바로 바라볼 수 있겠는가.’

 

윤일현(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