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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4.07 01:11
<부문3-3>
신앙의 힘으로 살아 온 삶의 고백
-안상진 장로의 수필세계
〈1〉
안상진 장로님과는 부산기독교문화회 일을 하면서 알게 되었다. 1988년 부산내과원장이신 박영희 장로님의 열정과 지혜로 발족한 부산기독교문화회에 필자가 처음 참여한 것은 88년 8월 12일 기독교 문화계 대표회의에 참여하면서 부터이다. 연간 수필집 창간호인 「창밖을 보라」를 89년에 발간하면서부터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었다.
안 장로님은 그 당시에는 안수집사로 박영희 장로님과 같은 교회인 부산영락교회에서 시무하면서 영락교회의 부설 중등교육기관인 영락고등공민학교 교감으로 수고하고 있었다. 필자는 그 당시 부산크리스천문학가협회 회장을 맡고 있던 관계로 부산기독교문화회 문학 분과 위원장으로 참여하면서, 박 장로님을 도와 회보발간과 출판관계 적극적이셨던 안 장로님과 가깝게 되었다. 그 뒤 안 장로님은 부산기독교문화회 사무국장으로 수고하셨고 필자 역시 회장을 두 번이나 역임하였다. 안 장로님은 에이멘 이라는 출판사를 만들어, 기독교문화회 회보와 연간지, 심지어 「기독교문화회보」의 합판본 발간까지 너무나 헌신적으로 활동 하셨다. 그 동안 화보와 연간집에 발표하시는 안 장로님의 글을 통해서 솜씨를 짐작하고 있었는데, 드디어 1995년 10월에는 서울에서 발간되는 전통 있는 계간지 《시와 산문》가을호에 수필로 신인상을 받게 되어 수필가로 문단에 데뷔까지 하셨다.
그런데, 이번에 그 동안의 작품들을 수필집으로 엮었다고 하면서 필자에게 해설을 부탁하셨다. 저로서는 수필 전공자도 아니고, 그렇다고 비평가도 아니기에 극구 사양하였으나, 주의의 사람들 가운데 그래도 필자가 가장 안 장로님과 오랫동안 교분을 나누었기 때문에 부탁하는 것이라는 간곡한 말씀에 허락하였다. 그래서 가제본된 원고를 일별(一瞥)하게 되었다. 일별하여 읽는 동안 안 장로님을 더욱 더 잘 알게 되었고, 그 동안 삶의 역정이 예사롭지 않다는 것은 짐작하고 있었으나, 속속들이 알게 되면서 정말 장로님의 귀한 삶에 감동되어 그 느낌을 몇 자 적어 보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그 동안 필자는 이러저러한 인연으로 수필 해설을 간혹 하였으나, 이번 안 장로님의 경우는 그 동안의 안 장로님의 삶 전부, 즉 탄생에서부터 지금까지의 삶이 투영되어 한 사람의 전 생애를 한편의 드라마를 보는 느낌, 그것도 감동의 드라마를 감상하는 느낌을 받았다.
안 장로님은 경북 상주에서 유복하고 독실한 크리스천 부모를 양친으로 하고 태어났다. 초중등학교를 고향에서 나와 대학진학을 대도시로 할 수 있었으나, 부모님의 권유로 고향에 갓 개교한 상주대학교(그 당시 상주잠업대학)에 입학하면서, 삶의 역정이 복잡해지기 시작하였다. 졸업 후 군복무까지 마치고 공무원으로 취업이 되었으나, 조카의 춘천교대 단기과정 입학시험에 동행하여 조카는 불합격되었으나 안 장로님은 정말 우연히 치른 시험이 합격하여 춘천교대에서 학업생활 중 결국 사모님도 만나게 되고, 강원도 초등학교 교원의 길을 버리고 부산의 영락고등공민학교로 내려오면서 부산생활이 시작되었다. 게다가 영락교회의 분규의 와중에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기에 애쓴 결과 교회당 건물을 반대파에 넘겨주고, 새 교회당을 마련하여 그 곳에서 장로로 피택되어, 대한예수교 장로회 부산노회(통합) 노회장까지 하게 되었지만, 그 동안의 삶이나 교회생활이나 신앙에 많은 시련이 있었다. 이러한 역경 속에서도 그는 신앙의 힘으로 사물이나 현실을 바라보는 긍정적세계관을 확립하고 사모님과 더불어 두 아들도 잘 키워 손자까지 본 행복한 아버지, 시아버지, 할아버지의 모습을 엿 볼 수 있는 작품을 도처에 발견할 수 있었다. 나누어진 제1부부터 5부까지 중요한 작품을 중심으로 안 장로님의 수필의 특성과 작품에 투영된 안 장로님의 삶의 역경에 대한 극복방안이 무엇인가 살펴보고자 한다.
〈2〉
제1부에서는 무엇보다도 그는 유년기와 청년기를 고향 상주라는 지금은 도시가 되어 있지만, 그 당신 전형적인 농촌마을이었던 고향에서 형성된 전원지향적인 세계관을 가지고 있다는 점이 특성이다. 그의 데뷔작인 「그 가을, 그리고 코스모스」는 전원지향성을 가장 분명하게 보여주고 있는 작품이다. 그가 다닌 고등학교 교사의 주변 부지정리가 제대로 되지 않아 누른 황토가 드러난 구릉에다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만 되면 운동장 한 가운데를 제외한 축대와 주변이 코스모스를 심어 가을만 되면 운동장 한 가운데를 제외한 축대와 주변이 코스모스로 온통 뒤덮인 풍경을 회상하는 것으로 이 작품은 시작된다. 가을 교정이 ‘고향의 봄’에 나오는 마을 같은 까닭으로 안 장로님은 자연스럽게 코스모스를 좋아하게 된 것이다. 그러면서 고등학교 시절로 돌아가 선생님들과의 추억, 학장시절로 코스모스 밭에서 사색적인 안 장로님의 호흡과 그 당시 유행하던 무전여행에서 만난 소녀 등에 얽힌 추억 등을 풀어내면서, 코스모스를 동경하고 있다.
이렇게 그는 데뷔시절부터 수필에다 그 자신의 삶의 역정을 투영시키는 솜씨를 가지고 있었다. 따라서, 수필 가운데 신변에 대한 것이 소재가 된 경수필을 주로 창작하였다. 그러나, 경수필이라고 해서 결코 가볍거나 단순한 재미로한 읽힐 수필이 아님이 또한 하나의 특색이다. 이러한 까닭은 그가 회상하거나 때로는 의견을 피력하는 자세가 결코 가볍지 않기 때문이다. 지난 날의 사소한 추억까지 소중하게 간직한 그의 자세에 숙연해지기까지 했다는 것이 필자의 솔직한 고백이다.
이러한 전원지향성에 대해서 안 장로님이 평생의 소망이 담긴 작품이 「전원교회를 꿈꾸며」이다. 특히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시골에서 보낸 크리스천들은 사실 50대후반 이후의 사람들은 비록 도시에서 자랐다고 하여도 그 당시 도시는 오늘날의 농촌이나 소도읍과 유사하였기 때문에 대부분이 전원을 동경하고 있다. 안 장로님이 꿈꾸는 전원교회는 단순하고 막연한 교회가 아니다. 상당히 구체적인 교회이며, 어쩌면 대도시의 교회들은 시도해 볼만한 제안이기도 하다. 물론 신도수가 많은 대형교회는 문제가 많겠지만 적정규모의 중형교회들은 복잡한 도시에서의 교회건축 때문에 이웃들의 법에도 없느 억지를 부리는 상황으로부터 탈피하고 건전한 맑은 신앙과 영혼을 가지기에는 좋은 선택일 수도 있을 것이다. 안 장로님의 제안이 실현되기를 필자 또한 간절히 소망한다.
제2부의 경우에는 주로 교회 안의 잘못된 신앙 양태와 관행을 지적하고 있다. 제2부의 소제목이기도 한 「신년운세와 아멘 무당」은 개신교의 신앙이 샤머니즘화 즉, 지나친 기복신앙을 비판하고 있다. 특히 헌금을 무당의 복채로 비유한 것은 크리스천들이 깊이 새겨야 할 교훈이기도 하다. 물론 한국의 전통신앙인 샤머니즘적 열정이 한국 개신교 신앙에 전혀 긍정적으로 영향을 끼치지 않았다고는 볼 수 없다. 특히 이웃나라 일본 크리스천들은 한국 크리스천들의 감정적이고 열정적인 신앙양태를 부러워한다. 이러한 열정, 즉 신바람 신앙은 샤머니즘은 영향을 받았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한국 크리스천들은 누구에게나 자칫하면 샤머니즘의 부정적인 속성인 기복신앙에 빠질 수 있다. 이러한 경우 이단의 노예가 되고, 성(聖)과 속(俗)을 확연히 구분하는 이중적인 신앙이 되어, 이웃들로부터 지탄받게 될 것이다. 이러한 점에 경종을 울리는 작품이 「신년운세와 아멘 무당」인 것이다. 경각심을 일으키는 또 다른 작품으로 「땡목사, 돌장로」라는 작품이 있다. 목사와 장로들은 스스로 땡목사, 돌 장로가 아닌지 되돌아보고 그렇게 되지 않기 위해 기도해야 할 것이다. 「은밀한 구제를」은 교회가 구제를 생색내기와 이름내기에 급급하고 있지는 않는가 하는 반성을 하게 한다. 특히 마지막 부분에 인용한 예수님의 산상보훈의 일부분인「네 구제함이 은밀하게 하라, 은밀한 중에 보시는 너희 아버지가 갚으시리라」 (마:6:4)는 필자를 포함한 크리스천 전원의 구제에 대한 반성을 촉구하는 구제의 백미(白眉)라는 지적 또한 정말 올바른 인용이다.
다음으로「교회를 섬기시는 분들 유감」에서는 교회의 주보 앞면에 자칭 ‘섬기는 분들’이라고 소개되고 있는 관행에 대하여 잘못을 지적하고 있다. 교회의 목사, 장로, 찬양대 관계자들은 물론 교회를 섬기는 자들임에 틀림없다. 그러나, 주보에서 ‘섬기는 분들’이라는 표현은 주보의 발행주체가 교회이므로 스스로 섬기신다는 존칭을 사용하게 되기 때문에 잘못된 표현임에 틀림없다. 우리나라 언어 사용 가운데 가장 복잡한 구조가 경어법이다. 그러나, 개신교에서 주보나 공적문서나 글, 사회자의 말이나 심지어 기도 가운데도 잘못되 표현은 많은 편이다. 안 장로님은 지적하지 않고 있으나. 공고 되는 게시문에도 사람이름 다음에다 직분명인 목사나 장로를 붙이는 것도 잘못된 것이다. 굳이 붙일 라고 하면 ○○○회장목사(장로)○○○라고 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스스로 장로임을 주저하지 않고 밝히는 것이나 기도 가운데 목사님을 지칭하여 ‘주의 종님’ 이라는 관행 등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특히 젊은 청소년들이 사회를 볼 때 어른들 앞에서 ’○○○형제(자매)님이 기도하시겠다고 하는 것도 잘못된 관행이다. 교회에서의 특별한 용어와 경우라고 반론을 제기할 수도 있겠으나, 교회에서 쓰는 글이나 말도 우리나라의 정해진 어법과 문법에 맞아야 하는 것이다. 안 장로님의 경우 국어학자가 아니라도 평소에 이러한 점에 관심이 많아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고 있고, 필자는 그러한 잘못된 관행이 많아 정확한 용어를 구사하고 있고, 필자는 그러한 잘못된 관행의 발견에 여러 번 공감하기도 하였다.
제3부 「행운목이 잘 크는 집」 은 주로 안 장로님의 행복한 가정 이야기가 주류를 이루고 있다. 역시 데뷔작이, 푸른 초장, 맑은 물가」는 안 장로님 자신의 신앙3대이던 어린 시절과 정겨운 고향교회에서의 에피소드가 줄거리를 이루고 있는데, 정말 행복한 유년기 풍경이라 할 수 있다.
「아버지의 사랑」 에서는 대학 시절 에피소드를 통하여 겉으로는 엄격하시지만, 속으로는 아들을 사랑한 부정이 형상화 되어, 우리 앞 세대의 아버지의 모습을 잘 그려내고 있다. 특히 보수적인 집안에서 자란 사람들은 누구나 공감할 수 있는 작품이다.
3부의 제목이기도 한 「행운목이 잘 크는 집」은 안 장로님 자신의 화초를 좋아하지 않고 난을 잘못 키우는 습관을 진솔하게 고백하면서, 화려하지 않는 관상목인 행운목을 안 장로님 부부가 열심히 키우는 모습을 형상화한 작품이다. 특히 길거리에 버려진 행운목 토막까지 주워다가 살려내는 사모님의 모습에서는 사모님의 신앙적 삶도 보여 주면서 하잘 것 없는 것도 보살피는 행복한 부부와 그러한 행복이 넘치는 크리스천 가정을 충분히 상상할 수 있다.
안 장로님은 삶의 고비 속에서도 성실하게 살아가는 대표적인 크리스천이라고 생각된다. 한국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를 졸업한 점에서 그러한 사실을 유추할 수 있는데 평소의 생활도 검소하고 성실하게 살아가는 점을 보여주는 작품 「천국에 산다」에서 짐작이 사실로 증명되고 있다. 자전거로 출퇴근 하는 습관이나, 재활용품을 몸소 활용하는 모습, 신앙으로 자란 평범하지만 성실한 청년들인 두 아들에 만족 해 하는 것이나 그리고 이러한 삶을 천국이라고 인식하는 것 자체가 바로 성실한 삶인 것이다.
3부의 끝부분에 있는 「사랑하는 자부 은정이에게」,「제1신 우리 집 가계」, 「제2신 네 시어머니 이야기」,「제3신 우백호 이야기」, 「제4신 좌청룡 이야기」, 제5신 태어날 새 아기를 위해」 등에서 사랑하는 시아버지의 모습도 모습이지만, 자기 자신의 평범한 삶에서 나온 용기이다. 그리고 손자 안 현에 대한 글은 할아버지의 특별한 손자 사랑을 느끼게 하는 흐뭇한 작품이다.
제4부에서는 제2부와 같은 성격의 글들이다. 그러나 2부에 비하여 훨씬 기독교에 대한 보편적인식이 바탕이 되어 있다. 따라서, 개인적인 체험이 바탕이 되지 않은 일종의 기독교 칼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글들을 통하여 오늘날의 교회와 노회, 총회들이 대사회적으로 어떠한 자세를 가져야 되는지를 시사하고 있으며, 크리스천의 건전한 세계관 형성의 방향도 제시하고 있다. 특히 마지막 부분의 「노회의 구조조정안」 이라는 작품은 부노회장으로 실무에 종사한 안 장로님의 솔직하고 실질적인 제안이다. 필자 역시 이러한 글들을 자주 쓰고 있지만, 안 장로님처럼 직접 참여하지는 못하고 있다. 안 장로님이나 필자의 소망처럼 교회의 정치가 일반 상식을 뛰어 넘어 빈축을 사는 경우가 하루 빨리 사라지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제5부 「꽃으로 말하는 여인」 은 안 장로님과 인연이 있는 분들의 죽음에 대한 작품이 주류를 이루고 있다. 물론 「목사이신 형님」 같은 안 장로님의 형님에 대한 글도 있지만 아버님의 죽음이 구체적인 과정으로 형상화된 「눈물의 고백예배」를 비롯한 크리스천으로 후회 없이 살다가 천국으로 가신 분들의 추모의 글들에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 가를 시사하고 있다.
〈3〉
안 장로님의 첫 수필집은 지금까지 살펴 본 바와 같이 안 장로님의 삶의 역정이 투영된 작품이다. 따라서 수필로 쓰여진 자서전적(自敍傳的) 성격의 글들이 큰 줄기를 이루고 있다. 나머지 한가지 줄기를 간단히 요약하면 건전한 기독교 세계관이 바탕이 된 교회와 신앙에 관한 글들이다. 그런데, 자서전적 글들은 누구나 쓸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안 장로님과 같이 3대째 신앙을 이어 4대, 5대로 전수할 자질과 각오가 되어 있는 분에게서나 나올만한 작품들이다. 두 번째로 안 장로님의 글들은 남다른 체험의 교회생활과 그로 인하여 정금(정금(正金)처럼 연단된 신앙의 관점으로 교회문제를 바라 보고 있다는 점이다. 이 작품들 역시 안 장로님이 아니고는 쓸수 없다. 앞으로 두 번째 수필집이 나온다면 이러한 신앙적 자세와 기독교 세계관으로 세상을 바라보고 해석하는 경향이 나오기를 기대하는 바이다.
<양왕용/시인 /부산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