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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3.01.06 10:38
다시는 사랑으로 오지 말기, 일시동인(一視同仁)
/양선규
요즘은 하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노래를 안 부르고, 땀에 흠뻑 젖는 운동을 하지 않고, 밤새워 글 쓰는 일을 하지 않고, 고로케나 닭고기 튀김, 오징어 튀김(전 포함) 같이 기름진 것을 먹지 않고, 종교행사에 참례하지 않고, 사람들을 만나 큰소리로 떠들며 이야기하는 것을 하지 않습니다. 아, 또 있군요. ‘사랑’도 하지 않습니다. 그런 것들을 하지 않는 게 무에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아침부터 장황설이냐고, 타박하실 분이 계실지 모르겠습니다. 일전에 쓴 글에서 젊어서는 도박에도 한 번 중독된 적이 있었다고 말씀드린 적이 있었습니다. 그 시절에는 담배도 하룻저녁에 두어 갑씩 피워대곤 했습니다. 이사도 곧잘 다니고 동물들도 많이 키웠고요. 지금 생각해 보니 ‘애정 결핍증’, 아니면 ‘근원 결락 강박’에 많이 시달렸던 시절이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 것들과 결별한 중년 이후의 삶에서 그나마 의미를 두고, 재미를 붙이고, 살던 것들이 그것들인데 요즘 들어서 자의반타의반으로(절반은 코로나 때문입니다) 하지 못하게 되었으니 여간 시원섭섭한 것이 아닙니다. 그게 무슨 소리지? ‘섭섭’은 알겠는데 ‘시원’까지 하다니? 그렇게 반문하실 수도 있겠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의아했습니다. 왜 이런 기분이지? 아무 것도 안 하는데 왜 이리 아무렇지도 않지? 하물며 시원한 느낌까지 들잖아? 그랬습니다. 약간의 혼돈과 방황이 있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특별한 해결책이나 보완책이 있는 것도 아이었습니다. 달리 드는 생각도 없었습니다. 그리고는 그냥 그 기분을 순순히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아주 먼 옛날, 아침에 눈을 뜨면 무얼 하고 놀 것인지부터 생각했던 그 어린 시절의 감성으로 다시 돌아가 보자는 생각은 딱 한 번 했습니다.
제가 지금 사는 곳 근처에 ‘김광석 (다시 그리기) 거리’라는 명물(名物)이 있습니다. 아침마다 저는 그 길을 통해 ‘신천(新川) 산책’을 나섭니다. 신천은 대구의 한강입니다. 많은 시민들이 산책코스로 애용합니다. 그곳을 시민들의 산책길과 휴식처로 개발하고 둑방길을 넓혀서 도시순환도로를 만든 것이 대구시가 역대로 한 일 중에서 가장 잘한 일이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다음에는 도심에 나무를 많이 심은 일이고요. 어쨌든 시가 신천을 개발하면서 그 신천 둑방길 아래로 난 좁고 누추한 골목길도 몇몇 사람들의 노력에 의해서 도심의 명소로 거듭나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제법 카페거리의 행색을 갖추고 손님맞이에 바쁩니다. 초창기의 ‘예술적 향기’는 물론 사라졌습니다. 몇 년 내로는 대규모 재개발 사업이 예정되어 있어서 또 한 번 환골탈태(?)가 기대되는 곳입니다. 저는 그 명물 거리가 생기면서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처음 알게 되었습니다. <공동경비구역 JSA>라는 영화에서 송강호가 “(김)광석이는 왜 그렇게 일찍 갔냐?”라는 대사를 칠 때도 저는 김광석이라는 가수를 몰랐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다’라는 노래도 이 거리에서 처음 들었습니다. 이 노래가 나왔을 무렵에는 본격적으로 처음 겪는 타향살이에 적응하느라 '노래'와 등지고 살았을 때였습니다. 그 뒤, 페이스북 가족이 되어 류근 시인을 알게 되면서 이 노래의 사회역사적 맥락에 눈 뜨게 되고 즐겨 듣게 되었습니다(한 번씩 따라 부르기도 합니다). 이 가수 저 가수 것을 골라가며 듣기도 했습니다. 가장 심금을 울렸던 게 유튜브에 올라 있는 어느 여자 고등학생이 부른 것입니다. 남자 고등학생이 기타로 반주를 넣고 그 옆에 수줍은 듯한 태도로 여자 고등학생이 다소곳이 앉아서 부른 것인데 고졸(古拙)한 맛이 있어 들을수록 감칠맛이 났습니다. 무릇 좋은 예술작품이란 자기가 가진 것에 보태어 향수자의 조력을 양껏 받아내는 힘을 가지는 법입니다. 그 소녀의 노래를 듣고 있노라면 김광석 거리 일대를 헤매었던 제 사춘기의 애환이 저 깊은 곳에서부터 스멀스멀 올라옵니다. 옛날 추억들이 거의 원형 상태로 재생되는 느낌을 받습니다.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이 학생들도 이제는 어른이 되었을 것입니다. 좋은 시절 좋은 추억거리를 잘 만든 것 같습니다.
이 노래 가사 중에는 “다시는 사랑으로 오지 말자”라는 대목도 있습니다. 참 가슴 아픈 사연(맹세?)이 아닐 수 없습니다. 물론 제게도 심금을 울리는 노래가사입니다. 좀 일찍 만났더라면 충분히 제 18번이 될 수도 있었을 겁니다(제가 젊어서는 한 가락 했던 사람입니다). 너무 늦게 만난 탓에 그저 듣는 것에 만족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 탓에 아직도 제 18번은 “그 시절 그 추억이 또 다시 온다 해도 사랑만은 않겠어요.”에 머물고 있습니다. 그 전에는(소리가 좀 올라갈 때였습니다) 조용필의 <창밖의 여자>가 18번이었습니다. “차라리 차라리 나를 잠들게 하라.” 부분을 제외하고는 40대 이후로 고음 처리가 안 되어서 문자 그대로 흘러간 노래가 되고 말았습니다. 오늘은 괜한 넋두리가 많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사랑에 우는’ 노래들을 좋아했던 제게 ‘고통스럽게 하는 절제는 바르게 할 수 없다’(苦節不可貞)는 경문을 가진 주역 예순 번쩨 ‘수택절’(水澤節), 절괘(節卦)는 그야말로 심금을 울리는 괘입니다. 젊어서의 제 애정 편력이 모두 고절(苦節)한 것들이었던 모양입니다. 적어도 18번 노래를 보면 그렇게 짐작할 수밖에 없습니다. 설혹 그런 척하는 모종의 가짜 페이소스 취향이라고 해도 그 혐의를 완전히 벗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구오(九五)는 달갑게 절제함이라, 길하니, 가면 가상함이 있으리라.(九五 甘節 吉往有尙) -- 「상전」에서 말하기를, ‘감절(甘節)’의 길함은 가운데에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라.
상육(上六)은 (쓰도록) 고통스럽게 절제함이니 바르더라도 흉하고 후회가 없어지리라(후회하며 망하리라). (上六 苦節 貞凶悔亡) -- 「상전」에서 말하기를, ‘고절정흉(苦節貞凶)’은 그 도가 궁하기 때문이라. [왕필, 임채우 옮김, 『주역왕필주』, 도서출판 길, 1999(2쇄), 454~455쪽]
절제함에도 단 것과 쓴 것이 있는데, ‘쓴 것’은 가급적이면 피하라는 말씀인 것 같습니다. ‘쓴 것’들은 늘 ‘도가 궁해질 것’들이기 때문에 오래가질 않습니다. 사람살이가 다 그런 것 같습니다. 친구와 술은 오래 묵힐수록 좋다고 하지만 옛정에 얽매여 너덜너덜해지도록 오래 사귄 친구와의 우정은 이미 우정이 아닌 것도 많습니다. 서로에게 ‘사랑으로 올’ ‘때’를 자주 놓칩니다. 깨끗하게 청산하는 게 좋을 때가 많습니다. ‘너무 아픈 사랑’을 강요하는 이들과 더 이상 아옹다옹 할 때가 아닙니다. "그런 식으로 살려면 잘 가세요." 이제 듣기 싫은 소리 한두 마디는 애써 아끼지 말아야겠습니다. 그래야 앞으로도 계속 ‘사랑으로 올’ 미래(새로운 사람들)를 기대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소설가/ 대구교대명예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