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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고록 <등대이야기 연재5> 2-4. 노을 속에서 번지는 세레나데

작성일 : 2025.03.24 01:05 수정일 : 2025.03.24 01:09

4) 노을 속에서 번지는 세레나데

 

여동생은 15세로 그 시대의 여자아이로는 유난히 크고 날씬했다. 요즘 말로 몸짜이요, 얼굴 짱이었다. 여동생은 소학교(초등학교)를 졸업하고 6·25전쟁 중엔 중학교에 들어가지 못했다. 인천에 계시는 부모님이 고향으로 낙향한다고 하였기에 아내가 인천으로 들어가서 여동생을 소청도로 데리고 왔다. 인천에서는 아버님이 연로하셔서 일자리가 없어서였다. 그래서 고향에서 농사를 짓겠다고 낙향한 것이다.

 

아내는 열다섯 먹은 시동생을 충남 태안의 고향으로 보내 보았자, 장래가 염려되어 데리고 들어왔다는 것이다. 그러나 소청도 역시 여동생의 장래는 밝지 못하다는 것을 알고 있는 터였다. 그래서 내가 아내에게 왜 이런 결단을 내렸는가를 물었다.

 

여보 이젠, 아가씨도 아이가 아니에요

아내의 이 말에 여동생을 다시 한번 살펴보았다. 유난히 키가 크고 예쁜 얼굴이어서 숙녀티가 났다. 아내의 속마음을 알 것 같았다. 나중에 들은 말이지만 동네 녀석들이 저녁이면 인천집 앞에 장사진을 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소청도로 온 여동생이 중학교에 다시 들어가지 못할 것을 알고는 황씨가 여동생에게 중학교 과정을 가르켜 주겠다고 했다. 그래서 여동생과 등대장님의 큰딸(12)이 저녁을 먹으면 황씨가 있는 관사에 가서 학습했다. 그런데 두 달 정도가 지나자 여동생은 황씨네 관사를 가지 못하고 잇었다. 그리고 등대장 관사에 계셔야 할 큰 누님은 조카를 데리고 우리 관사로 오는 것이었다.

내 고향 남쪽 바다 그 파란 물 보이네, 꿈엔들 잊어리오

그 잔잔한 고향 바다 가고파라 가고파 ····

인천 관동 커피집에서 흘러나왔던 이은상 작사, 김동명 작곡 가곡 가고파가 들려 왔다. 황씨의 노랫소리에 감동을 받고 있을 때였다.

- 어딜 가려고

큰 누님의 억양에서 역정이 묻어났다.

언니, 화장실에

 

 

나는 그때서야 눈치챘다. 누님이 왜 저녁을 먹고 나면 우리 관사로 찾아오는지, 그리고 동생이 황씨에게 공부하러 가지 못하는 이유를 ····

이후에도 여동생은 황씨의 노랫소리가 들려오면 관사에서 나가려고 눈치를 봤다.

 

그들의 나이 차는 15살이나 났다. 황씨는 이제 서른이었다. 우리는 누님네와 가족회의를 했다. 매부가 되는 등대장은 경성제대 출신인 황씨가 등대에 들어 온 것이 의심스럽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나이면 홀몸이 아닐것이라고 했다.

어느날 황씨가 나와 독대를 하자고 했다.

황씨가 소청도 등대로 들어온 경위와 자신의 과거, 집안, 미래를 이야기했다. 그간 황씨가 좋은 감정으로 대해 주었기 때문에 그의 말을 믿었다. 그리고 남녀의 사랑이라는 것은 나이도 신분도 초월할 수 있구나하는 생각을 하였다.

 

 

그가 소청도 등대에(항로표지 요원양성소 4기생) 들어오게 된 것은 고향이 개성이었기 때문이라 했다. 부모님이 계시는 고향 가까이 있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자신에게는 사랑했던 여인이 있었다고 했다. 대학을 졸업하고 개성 집에 들였는데 6·25 전쟁이 났다는 것이다.

부모는 대지주였기에 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남아 있었고 자신은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기 위해 개성의 피난민 대열에 합류했다는 것이다. 그리고 대구까지 찾아가 그녀를 만났지만 그녀는 이미 군 장교와 결혼한 여자가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자신은 군입대 보다 등대원을 택하게 되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때 항로표지 요원 양성소 3기생과 4기생에는 고학력자가 많았던것이다. 등대원이 되면 군입대 보류 대상으로 분류되기 때문이다.

 

황씨도 전쟁으로 가장 많은 것을 잃은 사람이였으며, 그도 나의 매부가 되었다. 그래서 우리는 소청도 등대에서 맺혀진 등대 가족이 되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