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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2025.03.17 10:30 수정일 : 2025.03.17 10:36
<회고록/ 등대이야기> 2-3
3) 귀신 곡소리 같은 꿀꿀이
등대에서 생활하다 보면 많은 새들을 관찰하게 된다. 특히 철새들중 무리에서 낙오된 새들의 휴식을 제공하는 것이 섬이기 때문이었다. 특히 많은 사람이 살지 않는 등대에서는 희귀종을 많이 볼 수 있다. 1950년대 초 소청도 등대에는 가마우지가 많았으며, 여름철 철새 중에는 소청도 사람들이 꿀꿀이라고 부르는 새가 있었다.
내가 1952년 4월에 소청도 등대에 부임하고 2개월 정도 섬에서 생활을 아내와 익히고 있을 때였다. 6월로 접어들었을 때다. 당직 근무를 하는 날이라 일몰 후 등탑에서 등불의 밝기와 등명기 회전 주기를 점검하고 등탑 밖으로 나와 등명기 회전 주기를 점검하려고 등탑에 조금 떨어진 관사의 하얀 석축 담장으로 갔다. 노을도 다 꺼져버린 하늘, 어두움이 바다에 정막이 찾아온 것이다. 뭍에서는 치열하게 전쟁 중이지만 이곳은 아주 평화로울 때가 많았다.
미국 항공모함에서 뜨는 전투기의 굉음 소리도, 포탄의 포화 소리도, 유탄이 사선을 비켜 가는 소리도 들리지 않는 최전선에서 느끼는 긴장감이 탈진된 상태에서 오는 수면상태 같은 때였다. 밤하늘의 외눈박이처럼 등탑의 등명기만이 소리 없이 돌고 있었다. 나는 그날 밤안개가 끼지 않을까 걱정하고 있었다. 수평선으로 지는 태양의 붉은 노을이 유난히 번짐이 많았기 때문이었다. 이런 경우 초여름에는 해수면과 100m 이상의 상공과는 기온 차가 많아서 물방울이 엉기는 수면 아래로 끼는 안개가 많다고 들었기 때문이다. 그런 날은 당직자는 꼬박 밤새며 해안선의 물결에 반짝이는 달빛의 투명 여부를 확인하려고 은굴로 내려가는 벼랑 아래 해상면을 살펴야 한다. 안개가 끼기 시작하면 삽시간에 끼기 때문에 무신호(공기를 압축시켜 내는 나팔 소리)를 가동시키려면 등대 직원 모두를 기상 시켜야 하므로 해무가 끼는 상태를 잘 판단해야 한다.
바다의 항로를 따라 운항 중인 선박들은 안개로 인해 등대 불빛을 볼 수 없기 때문에 무신호 소리로 등대 위치를 알려야 한다. 그래서 바다의 물이랑에서 반사되는 불빛을 확인하려고 은굴로 향하는 암벽의 길을 조금 내려갔을 때 이상한 소리가 들려왔다.
“피-워- 피워-”
“괴-에 괴에-”
소름이 머리카락까지 바짝 세워 놓았다. 전쟁 중이고 지역적으로는 최일선에 있는 곳이기에 항상 긴장하고 있었다. 특히 밤에는 늘 경계를 늧추지 않했다. 갑자기 어두움의 장막을 깨고 은굴 근처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몸을 움직이지 못하고 귀를 곤두세워 소리 나는 방향을 잡으려 했다. 기계 소리나 사람이 내는 소리는 아니었다.
그리고 이 어두운 시간에 경사가 심한 낭떠러지 절벽을 기어오르거나 내려갈 사람은 더욱 없을 것이다. 한 대낮에도 이곳은 길이 험하여 바다로 내려가질 않는다. 더더욱 등대 서쪽으로는 수직에 가까운 암벽으로 은굴로 내려가는 바닷길이 이외에는 없다. 요즘처럼 밧줄로 암벽을 타는 전문가들도 어려운 코스일 것이다. 은굴로 내려가는 길도 오랜 세월 사람이 다니지 않아서인지 사람이 길을 낸 흔적은 몇 군데 되지 않았다. 자연스럽게 깍이고 버썩거리는 붉은 암벽을 딛고 내려가는 곳이기에 어두움이 깔리는 일몰 이후 이곳에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다. 등대 사람들은 몇 명 되지 않고 이곳이 험지라는 것을 알기 때문에 이 시간에 아무도 은굴 근처를 얼씬거릴 사람은 없다. 물때도 물이 들어와서 낚시질할 상황이 아니었다. 큰 동내 사람이나 작은 동네 사람들은 이곳에 오면 등대에 와서 만나보고 가곤 한다. 또한 등대에서 정반대에 있는 동북쪽 분바위는 옹진반도와 가장 가까운 전선이기 때문에 방첩대가 주둔하고 있었으며, 그들도 이곳에 오면 꼭 등대에 들렀다가 간다.
괴기한 소리는 자꾸자꾸 여기저기로 많아져 갔다. 한마디로 무슨 귀신들이 여기저기에서 부르짖는 소리 같았다. 어떻게 확인할 수가 없었다. 내려왔던 길을 엉금엉금 기다시피 하여 다시 등대로 올랐다.
“등대장님”
나는 다급하게 등대장을 찾았다. 등대장님과 누님이 놀라서 뛰쳐나왔다. 등대자은 웃고 있었다. 저 소리 때문이지 꿀꿀이(슴새)라는 새야 여름 철새인데 오늘 첫 무리가 도착했나 보군. 그 귀신 곡하는 소리는 등대 관사까지도 들렸다. 동네 사람들이 꿀꿀이라 부르는 새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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슴새(바다에 서식하며, 무리를 지어 생활한다. 땅 위나 물 위를 달리다가 날아오르며 구부려서 기어가듯이 걷는다. 물고기, 연체동물, 해조류 등을 먹는다.산란기는 6~7월이며, 땅 위에 터널 모양의 구멍을 파고 마른 풀을 깔아서 둥지를 튼 후 한 배에 알을 한 개씩만 낳는다. 한국에서는 여름 철새이며 주로 먼 바다에서 관찰된다. 칠발도,사수도,독도, 구굴도의 슴새 번식지가 각각 천연기념물 332호, 333호, 336호, 341호로 지정되어 보호받고 있다. |
“나도 처음 이곳에 왔을 땐 저 새 소리 때문에 기겁하여 오줌을 쌀 뻔 했어”
나는 꿀꿀이라는 새의 학명을 모른 채 다음 부임지들(옹도, 팔미도, 선미도, 부도, 목덕도, 연평도)을 돌다가 32년만인 1984년 4월에 다시 부임해 소청도를 둘러보니 등탑과 등명기는 옛 모습 그대로이며, 많은 것이 변하여 있었다. 가장 안타까운 것은 여름철에 물범을 볼 수 없음과 꿀꿀이 소리를 들을 수 없었다. 물범도 멸종위기종으로 보호 대상이지만 백령도 두무진에 철마다 돌아온다고 하니 언젠가는 소청도 앞 바다로 내려올 것이리라.
그러나 꿀꿀이는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다. 꿀꿀이는 섬사람들이 식용으로 절종된 것이다. 그래서 꿀꿀이의 학명을 찾아보려고 애쓰고 있을 때였다. 어느 날 저녁 잠들기 전에 등대불을 관찰하려고 밖에 있었는데 아내가 창문을 열고 나를 불렀다. 어서 들어와 보라는 것이었다.
’저 새는 꿀꿀이 아닌가‽‘ 하는 것이다.
TV에 나오는 새는 분명히 꿀꿀이이었다. 꿀꿀이는 밤에만 돌아다니고 낮에는 벼랑의 굴속에서 나오지를 않는 새였다. 꿀꿀이는 야행서의 새이다. 우리가 꿀꿀이를 보게 된 것은 TV에서 보고 놀란 며칠 후였다. 긴 갈고리를 든 동네 사람들이 꿀꿀이를 잡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들은 은굴 벼랑길을 택해 내려갔다. 그리고 그들은 작은 굴속에 갈고리를 넣어 꿀꿀이를 잡는다고 했다. 나는 그 괴상한 소리를 내는 새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 그들이 잡아 온 꿀꿀이를 아내와 한참 구경한 일이 있었다. 그때 본 기억이 되살아 난 것이다. 그리고 꿀꿀이의 학명을 32년 후에야 알게 되었다.
꿀꿀이의 원이름은 슴새이며, 평생을 바다에서 무리지워 생활하는 새였고 산란기인 여름철이 되면 해안으로 들어와 돌 틈이나 흙에 구명을 파고 길 굴을 뚫어서 한 개의 알만 낳는다는 바닷새였다.
꿀꿀이의 몸길이는 48cm 등면은 갈색, 이마, 머리 측면 목은 흰색이며, 흑색의 세로 줄 무늬가 있고 아랫배는 흰색인 슴새목 슴새과로 단일종이다. 사람들이 식용하면서 무차별 남획되어 지금은 희귀한 존재가 되었다고 한다. 수컷은 ’피위- 피위-‘ 울고 암컷은 ’괴에-괴에-‘운다고 한다. 여름철에는 우리나라, 중국 연안, 일본 등지에서 번식하고 필리핀, 보르네오, 인도네시아 등에서 월동하는 철새 이다.
소청도의 슴새는 이제 멸종되었다. 내가 1984년 4월부터 1989년 6월 정년을 맞이하는 5년 동안 꿀꿀이 소리를 듣지 못하였다. 소청도의 물범도 1950년대에는 거룻배로 노를 저어 등대 앞 암초들 사이를 지나가면 바닷속에서 불쑥불쑥 머리를 내밀고 거룻배를 쫒아 오던 눈망울이 커다란 녀석들. 그 물범도 끝내 보지 못하고 소청도 등대를 작별했다. 섬을 보금자리로 알고 살았던 동식물들 그곳에 가장 늦게 합류한 사람들이 그 터전에 사는 생명들과 더불어 함께 살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