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윤일현의 책상과 밥상 사이

<책상과 밥상 사이 > 85.세모단상

작성일 : 2022.12.22 12:46

 

 

세모 단상

/윤일현

 

 

세모의 거리를 걸어간다. 폭설과 한파 속에서도 구세군 자선냄비 종소리가 정겹다. 같은 장소에 서 있으면서 사람들은 편을 나누어 상대를 비난하고 규탄한다. 폭언과 욕설이 그치지 않고 각종 시위는 계속된다. 일사불란한 몸동작과 섬뜩한 눈빛에 온몸이 움츠러든다. 무엇이 저들을 저렇게 분노하게 하는가? 코트 깃을 세우며 생각에 잠긴다. ‘공은 내 덕이고 잘못은 남 탓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왜 이렇게 많은가. ‘중용상불원천, 하불우인이란 구절이 있다. “위로는 하늘을 원망하지 말고 아래로는 남을 탓하지 말라는 뜻이다. 공자는 군자는 뜻한 바대로 되지 않았을 때 그 원인을 자신에게서 찾지만, 소인은 남에게서 찾는다라고 했다.

 

최근 우연히 다시 읽은 젊은 날의 독서 노트 한 대목을 떠 올린다. 저자도 제목도 표시 안 된 글귀에 오래 눈길이 머물러 몇 번 반복해 읽었다. 인류 역사에서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많이 알고,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별로 아는 게 없다고 생각한 시대가 있었다.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일어난 현상으로 그때는 진보와 발전의 시대였다. 과학과 기술은 새로운 것이었고, 그것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엄청난 자신감을 가졌다. 그들이 거둔 성공은 놀라웠다. 이 시기에 중국 황제가 예수회 사람들을 박해할 결심을 한 적이 있었다. 그때 황제의 천문학자들은 일식과 월식 날짜를 맞추지 못했지만, 예수회 수도자들은 정확히 맞추었다. 황제는 이들을 신뢰하고 총애했다. 영국에서는 과학적 영농기술을 도입한 사람들이 구시대 방식을 고수하는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소출을 냈다. 제조업에서도 증기기관과 기계를 이용한 사람들이 보수주의자들을 물리치게 됐다. 이 시대는 교육받은 지성인을 진심으로 신뢰했다. 교육받지 못한 사람은 교육받은 지식인의 가르침에 기꺼이 따르려 했다. 그 결과 획기적인 발전과 진보가 있었다.

 

어리석은 사람은 자신이 많이 안다고 생각하고, 현명한 사람은 자신이 아는 게 별로 없다고 생각하는 시대가 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는 세상이 그렇다. 재난의 시대라 할 수 있다. 오늘의 지식인들은 18, 19세기와는 정반대의 입장을 취하고 있다. 과학자들은 과학이 무엇을 할 수 있을까 회의하며, 일부 경제학자들은 각양각색의 학설이 세상을 더욱 나쁘게 해 사람들을 가난하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가는 국제적 협력 방안이나 전쟁 억제책을 찾아내지 못하고, 철학자는 인류에게 삶의 지침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세상은 사악하거나 어리석은 자들에 의해 통치되고 있으며, 지식인은 아무 대안도 내놓지 못하고 있다.

 

교수신문이 올해의 사자성어로 과이불개(過而不改)’를 뽑았다. 논어의 위령공편에서 공자는 과이불개 시위과의(是謂過矣)’라고 했다. ‘잘못하고도 고치지 않는 것, 이것을 잘못이라 한다는 뜻이다. 작금의 세태를 반영하는 말임이 틀림없다. 선정 과정에서 좁은 소견과 주관으로 사물을 그릇되게 판단한다는 뜻의 군맹무상(群盲撫象)’5위였다고 한다. 나는 이 말에 더 공감한다. 마크 트웨인은 우리가 곤경에 빠지는 건 무지 때문이 아니라 잘못된 확신 때문이다라고 했다. 어떤 문제를 두고 누구나 그릇된 판단을 할 수 있고, 잘못된 확신을 가질 수 있다. 잘못이 드러났는데도 인정하지 않고 고치지 않는 것이 문제다. 공자의 제자 자로는 다른 사람이 잘못을 지적해주면 기뻐했고, 우임금은 훌륭한 말을 들으면 그 사람에게 절을 했다. 순임금은 남과 더불어 선행을 행하면서 남의 장점을 즐거운 마음으로 기꺼이 받아들였다. 순임금은 농사를 짓고 그릇을 만들며 고기를 잡던 시절부터 천자가 됐을 때까지 남의 장점을 받아들이지 않은 것이 없었다.

 

이런저런 생각에 잠겨 계속 길을 걷는다. 눈매가 부드럽고 선한 사람을 만나고 싶다. 가던 길을 멈추고 대형 쇼윈도 유리에 비친 내 모습을 바라본다. 자세는 꼿꼿한가. 그렇지 않다. 내 표정과 눈빛은 어떤지를 살펴본다. 비논리적이고 엉뚱한 생각으로 허우적거리는 늘 모순덩어리인 내가 부끄럽기만 하다. 성탄절이 다가왔다. 백설의 풍경 속에 잠겨 있는 어느 시골 교회 첨탑에는 조그마한 아기별이 사랑을 실천하러 온 예수님을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결핍과 궁핍 속에서 의지할 곳도 없이 이 겨울을 쓸쓸하게 지내고 있는 사람들에게 성탄의 기쁨이 함께하길 기원한다. 또 한 해가 저물고 있다.

(시인·윤일현교육문화연구소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