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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악 다가가기 > 가곡이야기 5.삭대엽과 가시리

작성일 : 2022.12.19 11:33

[가곡 이야기] 5.삭대엽과 가시리

/제민이

 

양금신보(梁琴新譜)는 양덕수(梁德壽)1610년 편찬한 거문고 악보입니다. 여기에 만대엽과 중대엽 악보가 실려 있습니다. 이 책에 삭대엽(數大葉)은 악보는 실리지 않았으나 이름은 거론됩니다. 이미 삭대엽이 만대엽 그리고 중대엽과 함께 존재하였음을 알수 있습니다. 삭대엽의 악보는 1620년에 편찬된 현금동문류기(玄琴東文類記)에 등장합니다.

 

**삭대엽 악보와 가사

증보고금보(增補古琴譜)에 이르면 삭대엽은 평조, 평조 계면조, 우조, 우조 계면조로 형식이 분화합니다. 이 책에는 평조와 우조에 두 곡, 평조 계면조와 우조 계면조에 한 곡씩 악보가 실려 있습니다. 이 중에서 가사는 평조의 두곡, 우조의 한곡, 평조 계면조의 한곡, 4곡에 붙어 있습니다. 그 가사는 다음과 같습니다.

 

[

<삭대엽 우조(數大葉羽調) 1>

천리(千里) () ()든 몸이

()녁 도라 우니노라

님 향ᄒᆞᆫ ᄆᆞ음을 뉘아니 두리마ᄂᆞᆫ

달 ᄇᆞᆰ고

밤 긴 나리어든 나뿐인가 ᄒᆞ노라

 

이것은 백운암 금보(白雲巖琴譜, 1610-1680 사이)우조삭대엽 제 1(羽調數大葉第一)의 가사로 실려 있습니다.청구영언(진본)에는 이 작품과 초장만 다른 작품이 전합니다. 청구영언에서 이 작품의 초장은 늙고 병든 몸이로 되어 있습니다.

 

<삭대엽 평조(數大葉 平調) 1>

성시(城市)에 ᄃᆞᆫ닐제ᄂᆞᆫ

즐겁고 시이러니

강호(江湖)에 나오니 여윈 ᄉᆞᆯ히 지ᄂᆞ매라

이 이렁

ᄒᆞ욤도 역군은(亦君恩)이셔터

 

이 작품은 증보고금보(增補古琴譜)에만 실려 있습니다. 5장이 맹사성의 <강호사시가>와 같기는 하지만, 나머지 장은 다른 자료에서 볼 수 없는 것입니다.

 

<삭대엽 평조<數大葉平調> 2[()]>

풍상(風霜)이 섯거던 날에

슬ᄏᆞᆺ핀 황국화(黃菊花)ᄅᆞᆯ

금분(金盆)의 것거 다마 옥당(玉堂)의 보내실샤

도리(桃李)

고은 양 마라, 님의 뜻 알아라.

 

이것은 대부분의 가집에 나오는 작품입니다. 저자는 송순(宋純, 1493~1583)입니다.

 

<삭대엽 계면조 평조(數大葉界面調平調)>

가시리 가시링잇고

날 ᄇᆞ리고 가시리 잇고

고은님 보내ᄋᆞᆸ고 나ᄂᆞᆫ 엇지 사링잇고

잡ᄉᆞ와

두어련마ᄂᆞᆫ 션ᄒᆞᆫ가도 ᄒᆞᄂᆞ이다.

 

이것은 고려가요 <가시리>를 시조 형식으로 변형한 작품인데, 증보고금보(增補古琴譜)에만 실려 있습니다.]

 

*고려가요 <가시리>와 시조 <가시리>

 

시조 가시리와 고려가요 가시리를 비교하여 봅시다. 고려 가요 가시리는 반복구나 조흥구(助興句, 흥을 돋우는 구절)를 제외하고 인용합니다.

 

[

<여요(麗謠) 가시리>

가시리 가리시잇고 리고 가시리잇고

날러는 엇디 살라 리고 가시리잇고

와 두어리마 면 아니 올셰라

셜온 님 보내노니 가시 도셔 오쇼셔 (樂章歌詞)

 

<시조 가시리>

가시리 가시링잇고 날 리고 가시리잇고

고은 님 보내고 나엇지 사링잇고

와 두오련마가도 이다 (增補古琴譜)]

 

4음보(音步)를 한 행으로 잡을 때, 고려가요 <가시리>는 전체 4행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것은증보고금보(增補古琴譜)에서는 시조 형식에 맞게 3행으로 줄었습니다. 시조 <가시리>의 제1행은 여요(麗謠) <가시리>의 제1가시리 가리시잇고 ᄇᆞ리고 가시리잇고를 그대로 가지고 오면서 리고앞에 목적어 을 삽입했습니다. 시조 <가시리> 1 행에 삽입된 은 원래 여요(麗謠) <가시리>의 제 2행 첫 구절에 있던 것인데, 시조에서 노랫말이 축약되면서 그것은 시조의 제1행으로 자리를 옮긴 것입니다.

 

시조 <가시리>의 제2행은 여요 <가시리> 4행의 첫 두 음보 셜온 님 보내노니와 제2행의 첫 두 음보 날러는 엇디 살라 를 적절히 변형하여 결합한 것입니다. 즉 여요 4장에서 셜온 님을 시조 2장에서는 고은 님을 바꾸고, “보내노니의 어미 노니로 대치했으며, 여요 1장에서 살라 를 시조 2장에서는 잇고로 교체한 것입니다. 여요에서 노니를 시조에서 로 대치하여, 시조에서 앞뒤 구절이 자연스럽게 연결되었습니다. 여요에 를 시조에서 잇고로 교체한 것은 시조 구절의 의미적 완결을 위한 것이면서 동시에 시조의 제1행과 2행이 모두 잇고로 끝나는 운율을 맞추기 위한 선택이었습니다.

 

여요 4장의 셜온 님을 시조 2장에서 고은 님으로 바꾼 것은 무엇 때문일까요? 여요 <가시리>셜온은 의미를 이해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이 어구를 괴로운’,‘슬픈’, ‘서러운등의 의미로 파악하면, “셜온이 임을 수식하기는 곤란하기 때문입니다. 괴롭거나 슬프거나 서러운 주체는 임과 이별하게 된 화자 자신이지, 임일 수는 없습니다. “셜온에 대한 이런 문제 의식이 여요 <가시리>를 시조 <가시리>로 개작한 사람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시조는 여요의 셜온대신 고은을 선택했습니다. “고은은 임을 수식하기에 적합한 표현입니다.

 

시조 <가시리>의 제3행은 여요 <가시리>의 제3행을 그대로 살리되 면 아니 올셰라가도 이다로 바꾸었습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것은 여요의 입니다. 이것은 셜온과 마찬가지로 해석이 어려운 어구입니다. 만약 의 주체를 임으로 보는 관점에서는, 이것을 서운하면이나 역겨워지면’, ‘싫증이 나면등의 뜻으로 파악합니다. 반면 그 주체를 화자로 보는 관점에서는 사나우면이나 서낙하면으로 파악합니다. ‘서낙하면장난이 심하고 하는 짓이 극성스럽다는 뜻입니다. ‘서낙하다로 볼 경우 여요(麗謠) <가시리>의 해당 문맥은 자연스럽게 풀립니다. <가시리>의 제3면 아니 올셰라내가 가시는 임을 잡아 극성스럽게 하면 임이 오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의미가 되기 때문입니다.

 

이 어구가 포함된 시조 <가시리>도 그렇게 읽을 수 있을까요? 시조에서도 이 어구를 서낙하면으로 풀이하면, “임을 잡아 두고 싶지만 극성맞은가도 하나이다정도의 뜻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풀이는 어색합니다. 임을 잡을 수 없는 이유를 여요에서처럼 서낙하면 아니 올셰라로 표현하는 것은 적절하지만, 시조처럼 서낙한가도 하나이다로 표현하면 의미가 다소 부족합니다. 시조의 종결 구절은 화자의 사고를 단정적으로 진술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극성맞은가도 하나이다는 판단을 유보하는 회의적 표현이기 때문입니다.

 

시조 <가시리>3장의 가도는 여요 <가시리>3과 다르게 읽을 수 있습니다. 경상도 방언에서는 시원하다서언하다또는 선하다라고 합니다. “가도시원한가도로 읽으면, “가도 이다시원하기도 하다는 의미입니다. 시조 가시리의 3장 전체는 임을 잡아 두고 싶기도 하지만 시원한가도 하나이다는 뜻이 됩니다. 사랑하던 사람과의 이별은 분명 괴롭고 슬픈 일이지만, 한편으로는 남녀 교제의 과정에 수반되기 마련인 구속, 질투, 번민으로부터 자유로워지는 계기이기도 합니다. 여요 <가시리>에서 재회에 대한 소망을 표현한 가시 도셔 오쇼셔는 시조에서 생략되었습니다. 그 대신 시조 가시리는 이별의 양가성, 괴로우면서 시원한 의미를 표현합니다.

 

*삭대엽의 발전과 정체

신증금보(新證琴譜)1680년 무렵 출간된 거문고 악보입니다. 이 책에서 삭대엽은 4형식 별로 각각 3곡씩 악보가 수록되었습니다. 한금신보(韓琴新譜)는 영조나 정조 무렵의 거문고 악보입니다. 이 책에서는 평조와 계면조에 각각 3, 우조와 우조 계면조에 각각 4곡의 악보가 실려있습니다. 삭대엽의 악곡들이 계속 늘어나는 것입니다.

 

18세기 초반 만대엽은 더 이상 연주되지 않았습니다. 중대엽은 19세기 초반 수명이 다했습니다. 이후 삭대엽만이 발전하여 19세기 후반 가곡 한바탕을 완성하였습니다. 이것은 오늘날에 전승되는 가곡과 동일합니다. 가곡은 전성기에 도달한 것입니다.

 

가곡 한바탕의 연주 방식에는 3가지가 있습니다. 남창만 노래하는 경우, 여창만 노래하는 경우, 남녀창이 교대로 노래하는 경우. 일반적으로 가곡 한바탕은 남녀가 교대로 노래하는데, 마지막 태평가는 남녀가 함께 부릅니다. 남녀창 가곡 한바탕은 태평가를 포함하여 모두 27곡을 부릅니다. 이와 같은 가곡 한바탕의 규모는 18세기 가곡에 비해 매우 방대합니다. 19세기 후반까지 가곡은 계속 작곡되어 악곡 수가 대폭 늘어났던 것입니다. 가곡의 수는 남창 26곡 여창 15, 모두 41곡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이후 가곡은 발전을 멈추었습니다. 더 이상 새로운 악곡은 작곡되지 않고, 가사도 예전 것만 쓰이고 새로운 가사를 수용하지 않습니다. 이제 가곡은 생활의 노래로서는 생명을 다한 것입니다. 가곡을 다시 살리려면 새로운 악곡을 작곡하고, 새로운 시조를 창작하여 새 악곡에 얹어 불러야 합니다. 현재 가곡은 문화재 보호법의 도움으로 연명하고 있습니다. 이점을 가곡계가 외면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제민이/ 가곡가수, 가곡전수자>